한양도성의 별책부록 수원화성
조선시대 한양을 중심으로 여러 곳에 성체가 축성되었다. 개국초기 개성에서 한양으로 천도하면서 한양도성을 경복궁을 창건과 발맞춰 축성하였고, 임진왜란을 겪은 뒤에는 님한산성을, 병자호란을 당한 뒤엔 북한산성을 쌓았다.
도성과 산성은 그 축성 목적이 조금 다르다. 도성은 도읍의 격을 높이고 왕권과 조정의 권위를 높이기 위해 4대문을 연결해 축성하였다. 이에 반해 북한산성과 남한산성은 지형적 이점을 살려 외적의 침입을 방어하기 위해 축성하였다.
정조는 왜 한양에서 멀리 떨어진 수원 화성을 축성하였을까?
“호위를 엄하게 하려는 것도 아니요, 변란을 막기 위한 것도 아니다. 여기에는 나의 깊은 뜻이 있다. 장차 내 뜻이 성취되는 날이 올 것이다.” 정조, 《정조실록》 15년(1791)
정조가 화성을 세운 가장 큰 이유는 자신의 이상적인 도시를 만들기 위함이었다. 어떻게 보면 루이 14세가 베르사유 궁전을 건축한 이유와 유사하다. 정조는 자신이 꿈꾸는 도시를 만들기 위해 대신들과 의논하며 철저하게 서로 계획하고 실천하였으며, 정교한 석축술을 보여준 것이다.
또한, 할아버지인 영조에 의해 죽은 아버지인 사도세자 묘를 이장하기 위해 지었으며, 정약용에게 궁중 비서인 '기기도설'을 하사하여 거중기를 제작하게 하여 정약용이 거중기를 사용하여 만들었다. 이때 사용된 거중기에 대해서는, 사용된 거중기가 총 11대여서 작업 능률이 4~5배로 높아졌다는 설과, 거중기가 단 한 대밖에 없었고 대신 당시 조선의 모든 기술을 종합한 도구들을 이용하여 축성 기간과 비용을 상당히 아꼈다는 설 두 가지가 존재한다.
성체 외벽은 벽돌로 이루어져 있지만 내벽은 자연의 지세를 이용하여 만든 점을 들어 동양 성곽 건축의 백미를 보여준다고 한다. 하단은 돌로 쌓고 상단을 벽돌로 쌓았으며, 망루 간의 간격이 화포의 사거리 이내로 서로 엄호가 가능하며, 이전 조선의 성들과는 다르게 망루가 성 내부에 있다.
수원화성은 한양도성처럼 4대문을 갖추고 있다. 남문인 팔달문, 동문인 창룡문, 그리고 북문인 장안문과 그 옆에 서문인 화서문이 있다. 화성의 정문은 남문인 팔달문이 아니고 북문에 해당하는 장안문이다. 일반적으로 동북아에서는 남문이 정문이지만, 수원화성에서는 정조가 한양에서 수원화성으로 올 때 북쪽에서 들어오기 때문에 임금이 들어오는 문을 정문으로 한 것이다. 그래서 장안문이 팔달문보다 크다.
성곽중에서 유일하게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화성 순성길, 서장대에서 출발해 본다.
행궁을 나와 왼편에 공사장 차폐막을 따라 오르막으로 길을 잡으면 서장대로 올라갈 수 있다. 친구와 약속시간에 맞추려면 화성 순성을 세시간 안에 마쳐야 한다. 봄의 기운이 한창일 시기건만 초여름 날씨를 방불케 할 만큼 땀을 흐른다. 서장대에서 팔달문 방면으로 시계 반대방향으로 순성을 시작한다. 서장대가 서있는 팔달산 정상까지는 제법 오름길을 지쳐야 한다. 봄기운이 한창 무르익을 시기건만 가벼운 옷차림에도 땀에 흠뻑 젖을 정도로 날씨가 푹하다.
서장대에서 팔달문 방면으로 조금만 내려가면 세계문화유산임을 알려주는 표지석이 서있다. 화성이 축성된 다음 일제와 한국전쟁을 겪으며 상당부가 파괴되었으나 화성의괘 기록에 충실하게 복원할 수 있어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될 수 있었다. 화성은 동장대와 서장대, 두개의 장대를 가지고 있다. 장대란 성곽 일대를 한눈에 바라보며 화성에 주둔했던 장용외영 군사들을 지휘하던 지휘소 역할을 하였다.
서장대는 서노대와 함께 팔달산 정상에 있으며 ‘화성장대(華城將臺)’란 편액은 정조가 친히 쓴 것이다. 정조는 사도세자가 묻혀있는 융릉 참배를 마치고 서장대에 올라 성을 수비하고 공격하는 주간훈련과 야간훈련을 직접 지휘하였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정조는 훈련을 지켜보고나서 그 감회를 적은 현액이 서장대에 걸려있다.
성곽을 축성할 때 지형에 따라 치성이나 옹성 혹은 곡장을 축성한다. 이중 치성은 성벽 일부를 밖으로 돌출시켜 적을 감시하고 공격을 할 수 있도록 만든 시설물이다. 화성에는 모두 15개의 치성이 있는데 그 중 중요한 5곳의 치성 위에 포루를 만들고 적의 동향을 감시하였다고 한다. 서장대에서 팔달문 방면으로 얼마가지 않으면 서포루를 만나게 된다. 서포루는 치성 위에 세워진 시설로 군사들이 머물수 있도록 누각을 올려 서장대로 접근하는 적을 감시하기 하도록 세워졌다.
성체의 굳건함을 도성에 비견하리!
서암문을 나와 성밖길로 걸어본다. 성체의 모습을 제대로 보려면 성밖길을 걸어보아야 한다. 한양도성 중에서 순조 재위시에 보수한 구간과 수원 화성을 비교해보면 성체의 모습이 유사하다. 하지만 화성의 성체가 보다 더 조밀하고 단단해 보인다. 돌을 깎아 모서리를 맞추어 쌓아올린 모습이 서로 닮아있음을 알 수 있다. 기단부분에는 큰 돌을 쪼아 받치고 위로 가면서 가로, 세로 40센치 크기의 규격화된 돌을 정교하게 맞추어 올렸다.
서장대에서 서포루와 남포루를 지나면 급격한 내리막이 팔달문까지 이어진다. 남치 치성을 지나 내리막이 평지로 바뀌는 곳부터 팔달문까지는 성곽의 흔적은 사라져버리고 만다. 성곽을 복원하려면 사유재산을 침해하거나 정부 예산으로 매입을 하여야 한다. 하지만 이미 자리잡은 생활의 기반을 선뜻 내놓을 분들이 있을까? 한양도성 숭례문에서 돈의문 구간처럼 이미 대기업의 사옥이나 사무실이 도성의 흔적을 삼켜버리듯 여기도 사유재산으로 변해버려 더 이상 복원의 가능성을 묻어버렸다. 하지만 수원시청은 포기하지 않고 지역 주민들과 협의 중이라고 한다. 사유재산권을 침해하지 않으면서 조상의 얼과 숨결이 담긴 유적을 복원하는데 아마도 협조가 이루어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수원화성의 남문이면서 옛부터 교통의 중심인 팔달문
과거부터 팔달문 주변은 수원의 대표적인 구시가지이다. 다시말해 행궁에 수원관청이 들어서있었고, 인근 지방에서 오는 사람들의 왕래가 매우 빈번해 재래시장인 남문시장과 지동시장이 팔달문 주변으로 발달였다. 하지만 수원역이 생겨나면서 과거의 번화함이 점차로 쇠퇴하였으나 여전히 지동시장과 남문시장은 그 기능을 유지하고 있다.
한양도성의 성문과 같이 성벽 기단 위에 문루를 올렸다. 문 바깥쪽으로 문을 보호하고 방비를 단단히 하기 위해 반원 모양으로 옹성을 쌓았다. 문루는 옛 그대로이지만 옹성은 1975년 화성의괘를 참고하여 본래의 모습으로 복원한 것이다.
팔달문에서 지동시장을 가다보면 수원천을 만나게 된다. 수원천 위로 조그만 걸어가면 남수문을 만나게 된다. 남수문의 첫인상은 복원은 하였으되 복원하였다는 티가 확연히 드러난다. 9개 수문을 모습이 여느 건설사가 최근에 기계로 깎아만든 것임이 여실히 드러난다. 햇살이 반사되어 반짝이는 다리가 너무 어색하다. 남수문은 여러차례 붕괴와 복원을 반복하다가 1922년 홍수에 모두 무너져 자취가 사라졌다고 한다. 2012년 현재와 같이 복원하였으나 의괘의 기록에 충실하게 원형 그대로 복원되지 않았다고 한다. 당초 의괘에는 9개 홍예다리 위로 사람들이 통행하는 모습이었다고 한다.
남수문을 건너자 오르막이 이어지고 오르막 정상에 각루가 세워져 있다. 각루는 성곽의 비교적 높은 지형 위에 세웠으며 주변을 감시하고 휴식을 취할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 팔달산 일대를 제외하고 화성은 대부분 평지를 이루고 있다. 따라서 성의 본래 기능에 충실하기 위해 방어를 목적으로 하는 감시용 망루와 포루, 그리고 치성을 일정한 간격마다 설치해놓았다. 팔달문에서 동쪽으로 이어진 언덕에 세워진 동남각루는 2층의 누각으로 되어있으며 아래층에는 온돌을 깔았고, 윗층에는 널판지로 된 문에 활을 쏠 수 있도록 구멍을 내었다.
팔달문에서 창룡문에 이르는 성안길과 성밖길에 그늘이 하나도 없다.
동남각루에서 성안길을 걷다보면 동삼치, 동이치라는 이름이 붙은 경계용 치성과 동1포루, 동2포루와 같이 포를 설치하여 적을 공격하는 시설이 일정한 간격으로 서있다. 그리고 봉화를 올릴 수 있는 봉돈도 함께 설치되어있다. 이 봉돈은 시야가 확트인 동쪽에 설치해 봉화를 올리면 행궁에서 바로 확인 확인 할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고 한다.
오후가 되면서 꽃샘추위라도 와야 할 봄이거만 햇살이 너무 따가운 가벼운 옷차림에도 땀이 제법 흐른다. 순성길 중간에 잠시 땀을 들이려면 나무 그늘이 아니라 포루에 앉거나 기대어 땀을 들여야 한다. 만약 한여름에 화성 순성길을 나선다면 일사병을 걱정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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