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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구석구석/제주도로 간다

[제주올레3코스]두모악갤러리에서 김영갑을 추모하다.

by 노니조아 2020. 3. 9.

2017년 5월 3일 행장을 꾸려 집을 나섰다.

되도록 가볍게 꾸린 짐인데도 제법 부피가 나간다. 집 앞에서 버스를 타고 종합운동장으로 향했다. 거기서는 김포공항까지 빠르게 가는 급행전철이 있어 지루하지 않게 공항에 도착할 수 있다. 직장에 매인 몸이지만 이렇게 나름 길게 휴가를 떠날 수 있었던데는 나름 행운이 있었다. 금년 5월 초는 근로자의 날, 어린이날에다 부처님오신 날과 촛불대통령선거일까지 겹쳐 그야말로 황금연휴다. 회사에 양해를 구하고 이틀 휴가를 더해 장장 6박7일간의 제주도 여행을 떠난다. 우리의 여행을 축복하듯 덥지도 춥지도 않은 따사로운 날씨에 하늘마져 맑고 푸르르다.

기내에서 내려다 본 제주... 멀리 제주시와 한라산이 보인다

카운터에서 발권을 하고 나니 아직도 시간이 넉넉하다. 하지만 점심 때를 알릴 요량인지 배가 출출해져온다. 공항식당에서 가볍게 점심을 먹고 우리는 비행기에 올라 제주도로 날라갔다. 언제나 그러하듯 나는 비행기 티켓을 발권할 때 창가를 달라고 한다. 그것도 비행기 날개가 잘보이는 동체 뒷쪽으로 좌석을 요청한다. 그래야 하늘에서 내려다 보이는 창밖의 경치를 찍을 때도 비행기 안이라는 걸 암시할 수 있으니까...

 

가름게스트하우스 입구에 걸린 하우스 소개그림

공항에 내리자마자 가름게스트하우스가 알려준대로 법환리로 가는 버스를 찾았다. 공항버스로 한시간 가량 달려 숙소 인근 정류장에 우리 부부를 내려놓았다. 캐리어를 끌고 지도를 따라 800M 가량 걸어 숙소에 도착해 체크인을 하고 방을 배정받았다. 2층에 있는 방으로 올라가 여장을 풀고 앞이 탁트인 베란다로 나갔다. 동리에서 그리 멀지않은 앞바다에 동네를 지켜주는 밤섬이 자못 늠름하게 앉아있는 모습이 아무 거리낌없이 시야에 담긴다. 일단 숙소 선택은 합격!

 

숙소에서 켄싱턴호텔로 이어진 올레길 위에서

숙소 주변을 살피고 저녁식사도 할겸 휴게실로 내려가 주인장께 가까이에 있는 맛집을 추천해달라고 하니 퓨전흑돼지집을 추천해주신다. 우리는 가벼운 차림으로 숙소를 나와 법환리 동네를 한바퀴 돌고 나서 추천받은 식당으로 향했다. 연탄으로 굽는 흑돼지인데 우선 식당에서 기름이 곱게 배이도록 초벌구이를 해서 내온다. 그다지 배는 고프지 않았지만 일찍먹고 워밍엎 겸 숙소 주변의 올레길을 어두워지기 전에 걸어볼 요량으로 이른 저녁을 먹었다. 나중에 안 사실인즉, 이 식당은 게스트하우스 사장님 아드님이 서울에서 회사를 다니다 그만두고 내려와 연 식당이란다. 퓨전답게 1층은 개방된 실내에서 재주도 흑돼지 요리를 팔고 이증에는 갤레리겸 바를 운영한다. 외지인이 자금을 투하한 가족 사업인 셈이다.

 

멀리 제주도민의 반대를 무릎쓰고 건설중인 강정해군항이 보인다

배를 채운 우리는 올레길 7코스 중간쯤인 켄싱턴리조트 부근 올레길을 걸었다. 법환리에서 캔싱턴리조트까지도 제법 길이 멀다. 리조트까지 오니 사방이 어둠으로 덮여있어 더는 걸을 수가 없어서 하는수 없이 숙소롤 돌아왔다. 올레 패스포트에 도장을 찍는 건 잊지않고...

 

2017년 5월 4일 오랜만에 다시 찾아온 두모악, 그리고 가슴을 아려오게 하는 김영갑!!

숙소에서 제공하는 토스트와 쥬스, 커피로 아침을 먹고 본격적인 순례자 고행길에 호기롭게 올랐다. 서귀포에서 버스를 갈아타고 두모악으로 가는 갈림길에서 하차해 두모악까지 한시간 가량을 걸었다. 두모악에는 제주도를 너무 사랑한 나머지 카메라를 달랑 둘러메고 제주도에 내려와 몹쓸놈의 파키슨병에도 불구하고 생명의 끈이 붙어있을 때까지 제주가 품고있는 아름다움을 앵글에 담은 김영갑과 그의 작품 전시실이 있다.

몇해전 겨울, 그때도 아내의 생일을 기념해 제주도로 여행오면서 답사여행기 대가인 유홍준교수의 연작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 제주도편'을 읽게 되었다. 그의 답사기를 읽으면서 김영갑갤러리를 가보지않고는 제주도를 가보았다고 할 수없다고 단언할 만큼 우리를 확 잡아끌어당기는 마력이 내재된 곳임을 비록 활자로 읽었음에도 느낄 수 있었다. 제주도가 가지고 있는 오름과 바람을 앵글에 담는데 20년의 세월을 바친 그의 지독한 순수가 나를 끌었지 싶다. 그를 통해서 용눈이 오름을 알았고, 다랑쉬오름에 오르면서 어미가 자식을 보듬듯 아끈다랑쉬오름을 연신 보살피듯이 바라보게 되는 자연스런 내 몸짓을 알게되었다.

아마 5년만에 다시 찾아온 듯한 데 그당시 다소 협소해보였던 주차장이 제대로 확장되었고, 넓직하고 포근한 후원 공간까지 더하니 한결 여유롭고 넉넉해보였다. 전시실 앞에는 어린이 가슴 높이만큼 돌과 흙으로 쌓아올린 여러 개의 토담줄 위에 흙으로 빚은 해학스럽고 앙증맞은 토우들이 제각각의 모습으로 앉아 오는 이들을 반긴다.

 

러리에서 적지않은 시간을 여투어 사진도 찍고 앙증스런 토우들과 담소를 나누었다. 이제는 김영갑작가와 작별을 하여야할 시간이다. 그의 치열했던 삶의 여운을 가슴에 간직하고 오렌지색 리본을 찾아 길을 나섰다.

뱀처럼 적당히 구불거리는 포장도로 옆 가로수에 걸려있는 올레길 리본 따라가다 보니 이내 화산재가 부셔져 퇴적된 거무티티한 밭들 사이로 이어진 좁은길로 올레길은 이어진다. 밭과 밭을 구획하는 밭둑길 옆에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꽂혀있는 막대기에 오렌지색과 파란색 올레 리본이 바람에 나부낀다. 얼마를 걸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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