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5월 6일(수) 3차 올레길 순례 마지막날,
이번 올레길 순례는 11코스에서 18코스까지 계획하였다. 당초 계획한 일정보다 강행군을 해선지 하루일정이 남아 19코스를 내처 걷기로 하였다. 서울로 가는 비행기는 오후 네시여서 올레길은 12시까지 마치고 숙소로 돌아와야 한다. 비행기 시간까지 다른 여행코스를 기획할 수도 있었지만 기왕 올레길에 올인하기로 한 작정을 흐트리고 싶지않아 19코스를 추가한 것이다. 하여 아내는 숙소에서 짐을 정리하고 휴식을 갖겠다 해서 이른 시각에 혼자 길을 나섰다.
숙소와 가까운 버스정류장에서 김녕포구행 버스를 탔다. 이른 아침이라 타고 내리는 승객이 그다지 많지 않아 버스는 30분도 되지않아 목적지에 날 내려준다. 올레19코스 종점이면서 20코스 시작점인 김녕서포구 간세 포스트에서 스탬핑하고 올레 19코스를 역방향으로 첫발을 시작한다.
간세 포스트너머로 김녕항을 밝히는 두 대의 등대가 제방 끝자리에 서있다. 뱃길을 밝혀주는 등대가 대부분 몸통에 흰색을 두르거나 검정색으로 쌓여 있는데 제방 끝에 서서 포구로 들어오는 배들을 안내하는 등대는 정해진 몸통 색깔을 한다고 한다.
원래 빨간 등대는 등대 오른쪽이 위험하니 왼쪽으로 항해하라고 알려주고, 흰색 등대는 그 반대로등대 오른쪽으로 항해할고 알려준다고 한다. 정리하면 포구로 들어오는 배에서 볼 때 빨간 등대는 오른쪽에, 하얀등대는 왼쪽에 서서 안전하게 배가 포구로 들어오도록 안내하고 있다. 포구로 들어오는 뱃길에 암초가 있으면 노랑색 등대가 서서 조심할 것을 일러주고 있다. 무심코 지나치거나 예쁜 등대를 배경삼아 사진을찍기도 하지만 도로 위의 신호등 처럼 의미를 담고 있을거라는생각은 미처 하지 못했다.
포구를 벗어난 길은 바당길을 버리고 이내 마을길로 이어진다. 마늘이 무럭무럭 자라고 있는 밭 한가운데 산담을 두르고 있는 묘지가 앉아있다. 밭을 두르고 있는 밭담의 돌들은 대충 성글게 쌓여있지만 묘지를 두르고 있는 산담의 돌들은 여간 정교하게 틀을 잡고 있는게 아니다.
조상의 묘를 정성스레 꾸며 모시는 게 대대로 내려오는 유교 전통이라는 점에선 여기 제주도의 묘지도 그 틀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하지만 육지에는 조상을 모시는 묘소가 마을과는 어느 정도 떨어진 산기슭의 양지바른 곳에 안장되어 있다. 하지만 제주도는 많은 묘가 밭 가운데 앉아있는 걸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그리고 어김없이 묘를 두르고 있는 돌들도 지극정성을 들여 쌓아놓았다. 제주도에서는 돌아가신 선친들을 항상 가까이에 모셔두고 시나브로 이야기를 나누는 풍습이 있는가 보다. 육지에서는 성묘나 벌초를 위해서 마지못해 찾아뵙는데. . . .
마을을 벗어나면서 곶자왈지대 안으로 길이 이어진다. 이른 아침 시간이라 오고가는 사람들도 거의 없고 더구나 혼자 걷고 있으니 무작정 걷는데에만 집중한다. 하늘은 낮게 드리운 구름이 햇살을 가리워 덥지도 않아 좋다. 숲이 내뿜어주는 상쾌한 산소덩어리를 한움쿰씩 마셔가며 앞을 향해 걷는다. 행여 올레 표식을 잃지는 않을까 하는 조바심까지 내려놓고 걸어도 좋을만치 길은 외길이다.
혼자서 내처 걷다보니 중간 스탬프가 서있는 동복리 마을 정자에 도착했다. 정자에 앉아 물 한모금 마시면서 잠시 휴식시간을 가져본다. 이 근처에 벌러진 동산이 있다고 올레 홈페이지에 안내되어 있는데 오는 동안 그 동산을 가리키는 안내 표식이 보이질 않는다. 기왕 홈페이지에 등재할 정도면 차라리 올레길 중간 스탬프지점을 그곳에 세워두는게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이런 생각을 안주삼아 쉬고 있는데 중년 부부가 반대쪽에서 걸어오고 계신다. 여기까지 오는 동안 올레꾼은 고사하고 밭으로 나가는 동네 어르신 조차 뵙지를 못하였기에 너무 반가워 먼저 인사를 드렸다. 두분은 조천에서 일찍 길을 나서 벌써 여기까지 오셨단다. 서로 지나온 길을 얘기하는데 두분은 이미 제주올레 종주를 마쳤다고 한다. 그때는 직장관계로 나처럼 구간을 나누어 걸었는데 이번엔 아예 논 스톱으로 올레길 종주에 나섰다고 하신다.
이제 3코스만 마치면 제주올레 논스톱 종주를 기록하시게 된다. 나도 은퇴하면 두분처럼 끊지않고 죽 ~~ 이어서 걸어보겠다고 호기를 부려본다. 담소를 나누다가 내 관심사인 산티아고길이 화제에 올랐다. 그러자 아내되시는 분이,
"저희는 이미 다녀왔어요, 재작년에... 꼭 한번 가보세요, 정말 좋아요" 하시자, 남편분께서는 한 술 더 떠,
"가시기 전에 동해안 해파랑길 700키로를 먼저 걸어보세요, 정말 가볼만한 길이죠. 우리는 그 길도 벌써 마쳤어요"
두분 덕분에 나는 해파랑길 700키로 숙제를 하나 더 받아들게 되었다. 헤어지면서 사진 함께 찍자고 하니 아내분께서는 극구 사양하신다. 나이가 드니 사진 찍는 걸 멀리하게 된다고 하신다. 하긴 나도 어느결에 내 모습을 가까이 찍는걸 좋아하지않는다. 두분은 오늘 어느 길을 걷고 계실까?
마을길은 다시 바당길로 이어진다. 하늘은 어느덧 구름 한 점없이 깨끗한 얼굴로 바다와 맞닿아 있다. 탁 트인 바다를 보며 크게 심호흡 한번 하고 바다 한가운데 살포시 내려앉은 섬을 바라본다. 사람이 살고 있지는 않은 듯 싶다. 누가 만들어 놓았는지 널직한 돌들을 모래 위에 징검다리가 놓여있다. 징검다리를 따라 한걸음씩 발걸음을 옮겨 바닷물 가까이에서 그 섬을 다시 바라다본다.
다려도라고 부른다. 일몰이 아름답기로 유명하단다. 일출, 일몰 사진 찍기를 즐기는 내게는 핫스팟이다. 오늘은 일정상 일몰을 찍을 수 없으니 다음번 올레길 투어엔 여기 일몰을 렌즈에 담을 수 있도록 일정을 맞춰야겠다. 해산물이 풍부하고 다양한 어종이 낚시에 잡혀 낚시꾼들도 많이 찾는다고 안내되어 있다.
서우봉을 바라보면서 무거운 발걸음을 너븐숭이 동산으로 옮긴다. 낮게 드리웠던 구름이 그냥 남아있었으면 괜찮았을텐데 하는 마음에 괜시리 푸르고 맑은 하늘이 야속하다. 제주 4.3으로 수많은 무고한 생명이 스러진 그곳을 갈 때는 차라리 흐리고 어두운 날씨여야 하는데 너무나도 청명한 하늘이다. 스스로 가진 부채의식을 숨길 곳조차 용납하지않을 듯이 너무 푸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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