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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구석구석/소풍가는 길

어쩌다 부산여행 마지막날은 흰여울과 감천문화마을 순례

by 노니조아 2023. 12. 15.

안녕, 광안리!
결혼식 참석을 핑계로 갑자기 결행한 부산여행 마지막 날이다. 오늘 일정은 흰여울문화마을 - 감천문화마을 - 보수동책방거리 - 자갈치시장 - 부산역으로 돌아볼 예정. 이동이 편하게 캐리어를 부산역 무인락커에 넣으려고 찾아갔는데 이미 락커가 모두 사용 중이다. 하는 수없이 추가금을 내고 유인보관소에 위탁하고 밀면집으로 간다.

부산역에서 소문난 밀면집, 원조부산밀면
유인보관소에 캐리어를 맡기고 부산역 맞은편 골목에 있는 밀면전문식당에 들어갔다. 삶은 면에 육수의 정석이라는 꿩육수를 넣고 계란과 잘게 찢은 꿩고기를 고명으로 얹어 나온다. 비빔과 물면을 하나씩 주문해 맛보니 시원한 육수가 깔끔하게 넘어간다. 냉면보다 시원하고 상큼한 맛에 취해 유명한가 보다.

흰여울문화마을에서 영화 변호인을 만나다.
피난민들의 애잔한 삶이 시작된 곳이자 현재는 마을 주민과 함께하는 문화마을공동체 흰여울문화마을이 자리한 곳이다. 부산의 대표적인 원도심 흰여울길은 봉래산 기슭에서 굽이쳐 내리는 물줄기가 마치 흰 눈이 내리는 모습과 비슷하다 하여 이름 지어졌다. 2011년 12월, 낡은 가옥을 리모델링하면서 현재는 영도의 생활을 느낄 수 있는 독창적인 문화 예술마을로 거듭났다. “
영도구청이 이 마을에 대해 소개한 글이다. 영도하면 태종대였으나 이제는 흰여울문화마을이 그 바통을 빼앗아버린 느낌이다.

경사진 산허리에 마치 계단식 논을 만들듯이 작은 집들이 층층으로 빼곡히 담장을 이웃해 지어져 있다. 문화마을로 거듭나기 전에는 판자촌이어서 마을을 떠나는 주민이 많았으나 외지인이 들어와 빈집을 카페와 공방등으로 개조해 이제는 관광명소로 자리잡고 있다. 카페에 앉아 바다를 내려다보면서 달달한 라떼 한잔 마셔보고픈 유혹이 우리를 잡아끈다.

마을 중간쯤 눈에 띄는 안내간판이 서있다. 지금은 고인이 된 김영애가 억울하게 잡혀 들어가 모진 고문을 받고 있는 임시완을 위해 변호를 부탁한다. 영화에서는 바로 이 계단 앞에서 나누는 대화가 영화 ’변호인‘에서 극적인 전기를 맞게 된다.

”니 변호사 맞제? 변호사님아 니 내좀 도와도“ 부산에서 정치권과 무관한 세무관련 변호로 이름을 날리던 노무현은 이 부탁에 이렇게 답한다.
”이런 게 어딨어요? 이러면 안되는거잖아요! 할께요! 변호인 할께요“ 이 사건 변호를 시작으로 우리나라 정치사에 신선한 바람을 일으킨 인간 노무현의 시대를 열어젖힌 그 자리다, 영화에서는.

흰여울터널 안에서 건져올린 인샹샷
마을 끄트머리에서 위로 올라가면 바다를 시원스레 조망할 수 있는 전망대와 느린우체통이 자리하고 있고, 아래로 내려가면 절영산책로로 이어진다. 위로 난 계단을 올라 전망대에서 인증샷을 남기고 피아노계단을 따라 절영산책로 내려간다. 절영산책로에는 인생샷을 남길 수 있는 포토 스팟이 기다린다.

절영산책로에서 해안터널 방면으로 가는 길은 찾기 쉽다. 사람들이 폰을 손에 쥐고 가는 방향으로 좇아가면 된다. 흰여울 해안터널 안에서 바깥으로 역광을 이용해 자신의 다양한 포즈를 사진에 담으려 길게 줄이 이어져 있는 모습을 이내 발건할 수 있다. 터널 길이가 길지 않아 우리는 반대쪽 출구에서 인생샷을 남겨본다. 반대쪽엔 기다리는 줄이 없어서 여유를 갖고 셔터를 누를 수 있다.

주민 참여로 일궈낸 문화브랜드, 감천문화마을
영도에서 시내버스와 소형버스를 차례로 이어타고 감천문화마을로 향한다. 흰여울문화마을의 젠트리피케이션은 사실 감천문화마을 복사본이다.

“‘감천'은 6.25 한국전쟁 직후 어려웠던 시절의 애환과 삶이 녹아 있는 산복도로 마을입니다. 산자락을 따라 뒷집의 조망권을 해치지 않는 건축은 이웃을 배려하는 미덕을 보여주고, 모든 길이 통하는 미로 골목길은 이웃간 소통을 중시하는 감천'만의 독특한 특징입니다.
2009년부터 진행된 마을미술프로젝트의 성공을 시작으로 대한민국의 대표 문화마을'로 자리 잡았고, '한국의 마추픽추', 한국의 산토리니 등으로 불리며 해마다 국내외 관광객 300만 명 이상이 방문하는 부산의 대표 관광명소가 되었습니다. “

감천마을에는 다방면의 예술가들의 작품을 만나볼 수 있다. 건축가 승효상의 독락의 탑

 빈자의 건축가 승효상 작품도 있고 어린왕자도 있고
마을을 마치 말발굽처럼 크게 감아도는 메인 산책길을 따라가면 여러 예술가들이 공들여 제작한 작품을 볼 수 있다. 비움의 건축가로 유명한 승효상의 작품도 만나볼 수 있다. 좁은 집터에 세워진 독락의 탑이라는 작지만 튀는 디자인을 품은 건축물이다. 혼자서 즐길 수 있다는 이 탑모양의 작품 속으로 들어가 감천마을을 내려다보면서 차 한잔 하면 어떨까!

감천마을을 내려다보고 있는 어린왕자와 옛날 샘터

길옆 난간에 앉아 마을을 내려다보고 있는 어린왕자의 앙증스런 표정을 모델삼아 사진을 찍으려는 대기열에 함께 할 엄두가 나지 않을 정도다. 대기열에 함께하는 대신에 어린왕자가 빗겨서 있는 모습을 담을 수 있는 대체장소를 아내가 찾았기에 사진처럼 인증샷을 대신한다. 4시에 어린왕자를 찾아와 기쁘게 해 줄 그는 누구일까? 읽은 지가 너무 오래되어 기억이 나지 않는다. 어른들의 동화라는 어린왕자를 다시 꺼내봐야겠다.

산비탈에 층층이 지어진 집들이라 식수도 문제가 되었을 터. 상수도가 보급되기 전에는 마을마다 공동우물터가 있었다. 땅 깊은 곳을 지나는 수맥을 귀신처럼 찾아내 우물을 파 동네의 상수원을 공급하기도 하고 빨래터가 되어 이웃집의 대소사를 함께 걱정하는 작은 광장노릇을 하던 곳이다. 두레를 던져 퍼올리기 어려울 때는 수동식 펌프를 이용하기도 하였으나 이제는 옛 추억을 길어올리는 장식품이 되었다. 

이제 감천문화마을은 부산을 대표하는 명소가 되어있음을 실감한다. 마이크로버스가 주민의 발이 될 정도로 소박하고 한적한 마을이지만, 쉴 새 없이 대형버스가 좁고 구비진 차도를 올라와 관광갯들을 토해내고 있다. 우리같은 내국 관광객이 아니라 일본, 중국, 동남아 관광객이다. 삶의 보금자리가 어느새 관광객들의 눈요기가 된 걸 감천마을 주민들은 마냥 기뻐할까???

보수동 책방골목에서 ‘남한산성’을 사고,
감천마을에서 국제시장 끝자락에 자리한 보수동 책방거리로 향한다. 지금도 서울 청계천에 가면 중고책방이 있다. 대학시절 개강과 함께 전공과목별로 교재가 정해지면 으례히 방문한 곳이 청계천 중고서점이었다. 알량한 책값이라도 아끼려고 중고원서를 구매하던 적이 있다. 지금은 그때의 명성이 퇴색해 그 규모가 쪼그라들어 몇 개 남지 않았는데 부산의 보수동에도 중고책방이 그나마 몇 군데 남아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가 이제는 관광명소로 탈바꿈하였다.

병자호란 당시 남한산성으로 행궁해 옹졸한 싸움을 치렀던 당시의 모습을 단순 명쾌하게 그린 김훈의 소설, 남한산성을 한 권 샀다. 그의 단문으로 그린 필치가 너무 멋있어 언젠가는 필사를 하고자 마음먹은 것을 실천하기 위해 샀다.  

국제시장 안에 명소로 자리잡은 부산 국제영화제 거리를 지나 자갈치시장에 있는 꼼장어집으로 간다. 늦어버린 저녁을 먹고 서울로 올라갈 시간이다. 꼼장어 정식에다 소주 한잔으로 부산 여행의 아쉬움을 달래고 부산역까지 걸어가 본다. 갑자기 결정한 여행이라 SRT가 늦은 밤시간 열차편만 남아있어 어쩔 수 없이 구매한 지라 열차시간까지 아직도 한참이다.

부산역에서 이번여행을 정리해 본다. 지난주에 다녀온 홍콩의 연장선으로 즐긴 거 같다. 바다에 인접한 지형에 평지보다 산이 많은 홍콩과 부산은 여러모로 닮아있다. 한정된 평지다 보니 고층아파트가 많고, 터널과 육교와 긴 다리가 많은 게 홍콩의 복사판이란 인상을 남기고 부산을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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