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11. 24. 우린 단풍구경 한번 않가!?
한동안 어줍잖은 프리랜서 할 때는 주말이나 주중에 근교나 원거리 여행을 곧잘 했는데, 지난여름부터 다시 근로소득세를 내는 처지다 보니 주말에도 집콕하며 시간을 보낸다.
“ 우린 단풍구경 한번 않가!?”
아내가 가을을 걍 보내고 말 거냐고 지청구다. 사실 집콕도 하였지만 이래저래 친구들 하곤 가을놀이까지 다녀온 거라 부아가 오를 만도 하다.
이미 계절은 붉게 물든 단풍이 이미 힘을 잃고 옹그린 잎새가 바람에 힘없이 흩어지고 있는 11월도 하순 한가운데다. 늦은 가을을 버텨주는 단풍나무 몇 그루가 그나마 위안을 주겠지만 단풍구경보단 수려한 경관을 자랑하는 곳을 검색하여 출발한다. 충주호를 따라가며 악어봉, 옥순봉 그리고 구담봉이 오늘 우리가 갈 목적지다.
아침을 생략한 채 집을 나선 탓에 산행에 앞서 이른 점심을 먹기 위해 충주호 주변 맛집을 검색해 본다. 충주시내 못 미쳐 자리한 중앙탑공원 주뱐으로 막국수타운이 밀집되어 있다. 그중에서 방문후기가 가장 많으면서 평점이 높은 식당을 네비에 찍는다. 깔끔한 내부에 국산 식자재만을 사용한다는 자부심인 양 음식을 설명하는 판넬이 인상적이다. 정성껏 차려내 온 음식도 깔끔하고 담백하다.
오늘 첫 번째 방문지, 악어봉 전망대
식사를 마치고 식당을 나와 네비에 카페 ‘게으른 악어’를 찍고 출발햔다. 구불구불 충주호반을 따라 개설된 호반길을 지난 얘기를 나누며 느리지도 그렇다고 빠르지도 않은 드라이브 속도로 달리다 보니 교통관제에 분주한 경찰이 보인다. 악어봉 전망대용 주차장을 관리하느라 교통경찰이 오전부터 분주하다. 주차장에서 악어봉 전망대까지 1키로도 되지 않는 숏코스 거리다.
구간거리는 아주 짧지만 끊임없이 오르막길이다. 길도 외길에다 방문객이 많아 구간구간 정체마저 발생한다. 흙길에 경사가 있어 오름길이 쉽지 않다. 내려오던 산객 한 분이 사용하던 나무 지팡일 아내에게 건넨다. 이 지팡이가 오르고 내리는데 효자 노릇을 제대로 한 걸 내려온 뒤에 알았다.
악어봉 구간 7부 능선쯤 오르니 시계가 탁 터진다. 악어가 호수로 들어가듯 몽글몽글한 산자락들이 한눈에 들어온다. 내려오던 어느 산객이 ‘여기서 보는 경관이 더 좋네’ 하는 소리에 연신 사진을 담아본다.
주차장에서 출발한 지 30분도 되지 않아 악어봉 전망대에 도착한다. 수십 마리 성장한 악어떼들이 마치 충주호로 일제히 달려들어가둣함 모습이 압권이다. 전망대 가장 좋은 스팟에서 몇 컷 찍고 자리를 피해 준다. 이름이 붙여진 그대로 악어봉!!
서둘러 오를 때는 미처 보이지 않던 주변의 산세들이 여유를 담아 내려올 때는 보이게 마련. 나무들 사이로 멀리 월악산 중봉이 날카롭게 솟아있다. 고도 1천 미터 남짓하지만 정상 부근의 깔딱 구간은 치악산만큼이나 악명이 자자한 봉우리로 우리 기억 속에 남아있는 월악산을 뒤로하고 하산을 서두른다.
넓게 마련된 주차장을 내려다보며 육교를 건너 게으른 악어 카페에 도착한다. 커피 한잔을 할 수도 있겠으나 당초 계획한 일정을 소화하려면 서둘러야 한다. 네비에 옥순봉주차장을 찍고 출발~~~.
옥순봉이냐 구담봉이냐? 그것이 문제로다.
그다지 넓지 않은 주차장 한켠에 차를 세우고 다시 등산길에 오른다. 주차장에서 이정표를 따라 적당한 오름길을 걸어가는데 아내는 악어봉보다 걷기가 훨씬 수월하다며 앞서간다. 악어봉에서 만났던 산객들이 하산하며 왁자지껄 등로가 시끄럽다.
본격적인 산행들머리에 이정표가 서있다. 주차장에서 출발해 1.4킬로 지점을 지날 즈음 갈림길이 나온다. 갈림길에서 구담봉은 600미터, 옥순봉은 900미터 거리에 있다는 선택지 앞에서 잠시 숨을 고른다. 매도 먼저 맞는 게 낫다고 먼 쪽을 먼저 가기로 한다. 결국엔 두 곳을 다 갈 거니까.
구담봉가는 길을 너무 얕잡아봤네
갈림길까지 평이한 오름길이라 구담봉까지 900 미터면 왕복 30분도 안 걸리겠다며 호기롭게 출발한다. 처음엔 약간 내리막길이라 적당한 오르내림이 있겠지 했다. 헌데 내리막길이 너무 깊다. 그리고 오름길은 악어봉은 저리 가라 한다.
세 번에 걸쳐 오르내림이 이어진다. 길은 흙을 밟고 서서히 오르고 내리는 길이 아니고 숫자를 세다가 잃어버릴 정도로 철계단이 잇대어 솟아있다. 그렇다. 우리가 가고 있는 구담봉은 솟아있는 봉우리에서 충주호로 느긋하게 흘러내리는 산줄기가 아니라, 억겁의 세월 동안 눈과 비 그리고 바람에 씻기어 겨우 뼈대만 앙상하게 남아있는 암벽 덩어리였다.
헉헉대며 계단을 오르내리다 보니 땀이 비 오듯 하고 숨이 턱에 차오른다. 마지막 계단에서 폴짝 뛰어내려 경사진 바위를 오르니 구담봉 표지석이 앙증맞게 앉아서 우리를 반겨준다. 표지석에서 호수가 내려다보이는 전망대로 자리를 옮겨본다.
제천 방면으로 호반 줄기가 푸르게 뻗어있다. 멀리 제비봉 아래 충주호 유람선선착장이 보인다. 제비봉 뒤로 크고 작은 연봉들이 맑고 푸른 가을 하늘을 우러르고 있다.
힘겨운 산행노동을 겪고나 선지 눈앞에 펼쳐진 풍광은 말로 표현하기에 내 수사가 너무 빈약하다. 시원스레 펼쳐진 아름다운 충주호반과 호수를 두르고 있는 산자락이 벼천지를 연출한다. 더구나 티 없이 맑게 드리운 푸른 하늘은 폐부에 찌든 오염을 깔끔히 청소해 준다. 잔잔한 수면에 느릿한 자욱을 그리며 여유롭게 흐르는 유람선이 내게 한마디 건넨다.
“뭐이 그리 조급한겨? 걍 쉬엄쉬엄 살어!!”
이제 옥순봉으로 가자!!
구담봉으로 간 길을 되짚어 갈림길로 돌아온다. 잠시 숨을 고른 다음 옥순봉으로 길을 잡는다. 내심 옥순봉으로 가는 길을 잡으며 희망을 가져본다.
‘설마 구담봉 가는 길보단 쉽겠지’
그랬다. 옥순봉으로 가는 길은 구담봉길에 비하면 아스팔트였다. 급하지 않은 내리막 경사가 옥순봉에 다다를 때까지 이어진다. 오르내림 급경사 하나 없이 마치 긴 꼬리를 가진 악어가 물속으로 유유히 잠겨 들듯이 충주호를 향해 능산길이 옥순봉까지 이어진다. 갈림길에서 10여분남짓 걸어가니 옥순봉 표지석이 호수를 배경 삼아 앉아있다.
산봉우리에 에둘린 호수를 거슬러 올려다보니 멀리 호수면 오른쪽에 솟아있는 봉우리에 늦가을 저물고 있는 햇살이 빛나고 있다. 여기 오기 전에 방문한 구담봉이다. 호수 맞은편에는 적벽처럼 병풍바위가 햇살을 정면으로 받고 서있다.
이제 산행을 마치고 차가 서있는 곳으로 돌아가려고 정상에서 막 내려오는 데 이정표 하나가 서있다. “옥순봉 전망대 0.1km”. 날도 저물어가는데 산길 100미터를 더 내려가야 한다는데 잠시 망설여진다. 하지만 예까지 와서 전망대를 그냥 지나치질 수는 없었다.
이정표는 되도록 정확하게 하길…
이정표에서 불과 10여 미터 걸어가니 이내 전망대가 나온다. 전망대에서 내려다보는 경치는 가히 Incredible!!! 호수 본류를 가로지르는 붉은색 옥순교와 지류를 건너는 출렁다리가 걸쳐있다. 푸른 하늘빛이 호수면에 내려앉아 하늘과 땅이 푸른빛으로 채워지고 그 옆으로 피톤치드를 발산하는 수목들로 채워져 있는 산줄기가 끊어질 듯 이어지고 있다. 아이들에게 찍은 사진을 보내니 ‘유럽 어디 유명한데 같아요!’ 한다.
옥순봉을 마지막으로 늦가을 단풍여행을 마무리한다. 하산해 근처 식당에서 저녁을 먹고 귀갓길에 오른다. 청풍단지를 지나는데 경관조명을 받고 있는 다리가 핑크빛 색채를 뽐내고 있다. 다리가 발산하고 있는 핑크빛이 오늘 우리가 옥순봉과 구담봉, 악어봉에서 받은 감동을 대변하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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