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자신과 싸우려하는가?
슈베르트를 좋아하는 심리학자가 있다. 그는 행복을 주제로 강연하는 중간에 슈베르트가 남긴 유명한 가곡을 불러줄 정도로 좋아한다고 한다. 그래서 외모마져 슈배르트처럼 뽀그리파마를 하고 둥근 안경을 쓰고 다닌다.
김정운 교수가 행복을 주제로 한 강연을 유튜브로 시청하다가 빵 터진 대목이 있다. 행복하기 위한 여러 조건을 설명하던중 내 스스로에게 애정을 갖고 자신을 아껴주어야 한다고 하면서
“어떤 사람은 이웃과 싸우는 것도 부족해 자신하고 싸워요. 마라톤을 완주하고 나서 ’오늘 나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겼다!‘고 하면서 말이죠. . . ”
강연을 보다 유쾌하게 이끌려고 한 말인데도 나는 그 내용에 찔리는 구석이 있었다.
’나도 때로 그럴 때가 있지‘ 하면서 과연 마라톤을 완주한 사람이 정녕 자기자신과 싸웠을까? 아마도 자기가 정녕 하고픈 것을 성취한 기쁨을 표현한 것이고, 마침내 이루어내 성과가 내어준 만족과 그에 따른 행복을 그렇게 나타낸 것이지 않을까?
산행매니아가 도전하는 종주산행이 그렇고, 한강을 달리는 일상마라토너의 완주가 그들에겐 행복의 도구일것이다. 그래서 나도 사대강 자전거 종주를 꿈꾸고, 제주도 올레길 완주를 강행하곤 했다.
불수사도북에 나서는 이유
지난번 밀양 구만산 산행에서 받은 충격을 다시 확인하려고 산행에 나섰다. 산행을 시작한지 한시간도 안되 급격히 떨어진 체력으로 산행을 접으려했던 기억이 생생히 마움 한켠에 또아리를 틀고 있다. 아직도 가보지 못한 산이 많이 남아있고, 해마다 하고픈 지리산 화대종주가 대기하고 있다. 지금 내가 부릴 수 있는 체력으로 하고픈 산행을 감당할 수 있는지 확인차 오늘 산행을 갖기로 한다. 일종의 테스트 산행? 산행을 좋아한다면서도 서울을 에두르고 있는 불수사도북을 왜 생각해내지 못했을까? 아마도 감당할 자신이 없어서였을께다, 한번에 완주하기엔. 헌데 나누어 갈 생각은 그동안 왜 하지 못했을까? 꼭 한번에 끝을 봐야한다는 법도 없는데.
화랑대역에서 시작하는 불수사도북에 나도 동참하겠다는 각오를 다지며 역사를 빠져나온다. 불암산 산행 들머리, 공릉산백세문에서 배낭 허리끈도 조이고 스틱 길이도 맞추며 호흡을 크게 들이쉰다.
불암산까지는 삼육대후문을 지나 헬기장에서 숨을 돌리고 깔딱고개를 올라서는 코스로 대략 2시간이면 충분할거 같다. 이어서 덕릉고개를 지나 점점 가팔라지는 도솗봉옆길을 지나면 저마다의 모습을 뽐내며 솟아있는 바위들과 얘기하다보면 수락산 정상. 여기서 시간과 체력이 남아있으면 회룡역으로 내려가고, 그렇지 못하면 장암역으로 하산키로 한다. 대략적인 소요시간은 7시간으로 오후 5시에 산행을 마칠거 같다.
불암산을 향해 출발 ~~~
태릉사격장과 한전연수원 부지를 두르고 있는 철망으로 된 담장 사이로 난 산길은 고도를 느낄 수 없을 정도로 편한 오솔길이다. 바람이 지나갈 자리가 없다보니 땀이 주르르 흐른다. 9월로 들어섰건만 아직도 기온은 여름이다.
철망길이 끝나는 지점에서 사방이 탁트인 조망터가 나온다. 올라온 길을 내려다보니 화랑대가 눈에 들어온다. 홍범도장군 흉상으로 논란의 중심에 서있는 육사 교정이 보인다. 설립당시 다른 사관학교에 비해 일본 사관학교 출신이 주류를 이루었으니 그 뿌리가 어디 가겠는가 싶다.
서울둘레길 철쭉동산으로 가는 길과 불암산 정상으로 가는 길로 갈리는 분기점이 나온다. 주의를 잃고 한무리의 산객을 좆아가다가는 자칫 철쭉동산으로 갈 수도 있다. 본격적으로 불암산 정상으로 가는 길에 ‘불암산 전설’ 안내판이 서있다. 금강산에서 내려왔다 돌아가길 포기하고 돌아앉았다네. 금강산에서 내려가다 속초에 주저앉은 설악산 울산바위의 동생일까?
어렵지않게 오른 불암산?
편안한 오솔길이 끝나가는 헬기장을 지나면 암반 맨살이 고스란히 드러난 오름길이 시작된다. 불암사에서 올라오는길과 합류지점에 이정표가 서있다. 정상까지 1.3키로에 깔딱고개가 기다린다고 한다.
불암산을 지키고 있는 거북바위가 나온걸 보면 정상이 곧바로 나올 기세다. 그늘을 지우고 있던 수목들이 바위에선 버티기 어려지않은가. 뜨거운 태양이 쏟아내는 열기를 고스란히 받으며 정상으로 가는 가파른 암릉길을 마치 더듬듯 오른다.
태극기가 휘날리고 있는 불암산 정상을 바위줄을 잡고 올라본다. 정상에 올라 먼저 남은 수락산 구간을 바라보고, 불암산 아래 마치 전시장에 성냥갑처럼 가지런히 배열된 아파트단지가 북한산 자락까지 펼쳐져 있다.
태극기가 꽂혀있는 정상은 올라가거나 내려올때 밧줄을 잡지 않으면 안된다. 나이가 지긋하신 어른들이 아직 취학 전인둣한 어린이를 정상까지 데리고 올라왔다. 밧줄에 의지해 올라올 때는 그럭저럭 할수 있지만 내려갈 때는 만만치 않을정도로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다행히 안전하게 내려갔지만 왜저리 무리를 하지 싶다.
정상에서 내려오다 쥐바위에게 인사하고 좀더 걸으먄 적지않은 산객들이 쉬고있는 너른바위지대가 나온다. 오늘 점심을 할 요량으로 나도 그늘진 쉼터에 자리를 잡고 과일과 빵으로 요기를 한다. 가져간 물이 절반가량 남아있다.
수락산을 향해 Go? 하산?
덕릉고개로 내려오는 길은 다소 길지만 힘들지는 않다. 험한 지형도 없고 나뭇잎들이 가리워준 그늘로 쉼없이 곧바로 덕릉고개까지 내려왔다. 덕릉고개에서 남아있는 물이 너무 적어 주변에 급수할 곳을 둘러보니 군부대뿐이다. 수락산으로 가는 길에 사찰이나 암자도 등로를 한참 벗어나야 한다.
‘걍 하산할까‘ 하는 유혹에 한참을 주저앉아 휴식 속에 장고를한다. 장고 끝에 악수? 라는 말이 있는데 일단 고~하기로 하고 다시 산행을 이어간다.
불암산 오름길과 마찬가지로 여기도 달리 힘든 구간없이 산행을 이어갈 수 있을만큼 편안한 길이 이어진다. 좀 긴 오름경사가 나오면 좀 길게 휴식을 가져본다. 도솔봉 아래를 지나는 길 위로 말벌들이 왱왱 거리며 길을 막는다. 잠시 기다리면 이들이 가라앉길 기다리는데 성난 벌들이 비켜날 기미가 없어 그들 속을 빠른 걸음으로 거의 지나갈 무렵 왼발 복숭아뼈 아래가 따끔한다. 결국 한방 먹고 말았다.
벌침에 기운을 얻어 수락산 정상에 오르다
벌에 쏘인 자리가 예방주사 맞을 때처럼 걸을 때마다 따끔거린다. 참지못할 정도는 아닌데 자꾸 신경이 쓰이길래 아예 등산화와 양말을 벗어 등에 메고 맨발로 걷는다. 가는 자갈과 모래가 발바닥을 자극하는 아픔이 따끔거리는 발목의 통증을 상쇄시켜준다.
치마바위 아래에서 다시 등산화를 신었다. 치마바위 위에 올라앉은 하강바위를 바라볼 수 있는 지점에서는 웅장한 바위 위에 숨어있는 애기꼬끼리도 찾아볼 수 있다.
여러 모양의 바위들을 보노라니 아까의 아픔을 느낄 겨를이 없다. 수락산 정상까지는 아직도 가야 할 길이 제법 남았다. 꼬끼리바위에서 정상 중간에 책가방바위, 철모바위가 바라보인다. 다시 산아래로 난 길을 천천히 걸어오르니 드디어 수락산 정상이다. 정상석을 어느 분이 훼손한 뒤로 여전히 초라하게 서있다.
수락산 정상 아래 아이스크림과 막걸리를 팔고 있다. 그동안 참아오던 갈증을 두 잔의 막걸리로 확~~ 날려버릴듯 폭풍흡입하고 시간을 보니 장암으로 내려가야 할 시간이다.
험하고 가파른 장암역 하산길엔 거의 동행이 없을정도로 인기없는 구간인가보다. 경사진 등로에 바위구간이 많아 장암에서 올라오려면 여간 힘을 쓰지 않고는 못배길 구간이다. 석림사가 가까워질무렵 계곡에는 제법 물소리가 드높다.
오전 10시에 시작한 불암산-수락산 종주산행은 장암역에 5시 반 도착으로 마무리한다. 수락산 정상으로 가는 오름길에서 마주한 힘겨움은 여전히 내겐 물음표임을 확인할 수 있는 산행이었다. 과연 내게 우리나라가 자랑하는 제법 높은 명산들을 오를 체력을 가지고 있는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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