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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구석구석/제주도로 간다

[제주올레13코스] 특전사숲길, 고목숲길 고사리숲길을 걸어보세요

by 노니조아 2020. 5. 14.

용수포구 절부암에서 12코스를 마무리하고 이어 13코스로 길을 잡았다. 12코스 녹남봉 오름에서 출발해 해안가 마을길을 돌아 옥빛 바다 위에 떠있는 차귀도를 바라보며 하염없이 걸었다. 상쾌한 바다내음과 시원하게 불어오는 바람을 맞으며 걸어오는 길이라 그다지 지루하지 않았다. 오늘 일정을 어디에서 마무리할까? 일단 다리가 허락하는 곳까지 걸어보려고 한다. 해안도로를 버리고 집담이 오르락내리락하는 마을길을 따라 13코스를 걷기 시작한다.

 

용수포구에서 용수2길을 따라 마을 속을 걸어가다 문득 눈에 띄는 집이 들어온다. 허름한 시골집에 불과하지만 돌로 쌓아올린 집담과 싸리담을 하얗게 페인트로 단장해놓았다. 대문 앞 공터에는 다소 거칠지만 나무와 돌로 장식을 꾸며놓아 지나가는 길손의 눈길을 잡을 만하다. 자세히 살펴보니 잔뜩 녹이 낀 철판에 이름을 그려넣고 하얀 벽에 걸어놓았다

 

호기심에 카카오네비 로드뷰로 현위치를 조회해보니 원래 모습이 이랬다. 여느 제주도 집처럼 대문이 없고 일자형 본채와 그 앞에 창고가 딸려있는 집이었다. 누군가가 이집을 멋지게 꾸며놓았다. 집 구조 자체는 살려놓고 담장과 싸리담 그리고 대문을 만들어 놓았다.

 

녹슨 드럼통 뚜껑에 가베라 쓴 간판을 하얀 벽면에 치우쳐 걸려있다. 가베? 대한제국 고종황제가 소위 양탕국이라는 가베(Coffee)를 러시아공사관에서부터 그리 즐겼다는데…. 여기 집주인이 커피를 가베라고 붙여놓은 걸까? 문이 없는 출입구 상단에는 머리를 조심하란 듯이 두개의 종이 매달려 있다. 어찌되었든 아니 들어가볼 수 없지 않은가?

 

안으로 들어가니 바닥엔 작은 자갈들이 가지런히 깔려있고 그 한가운데 다육이 화분이 보기좋게 층층을 이루며 그루터기 나무위에 올려져 있다. 벽에는 해녀들은 소재로 한 그림들이 일정한 간격을 두고 걸려 있다. 출입구에서 바라보이는 정면에 걸려 있는 두 점의 그림아래 이 전시장 주인을 소개하는 안내판이 걸려있다.

삼성그룹에서 직장생활을 마치고 자신이 좋아하는 삶을 찾아 생활해 온 지난 10여년을 바탕으로 인생 2막을 멋지게 가꾸고자 제주 해녀를 자신 만의 필치로 그림을 그리면서 서화전도 가지는 한익종씨의 전시실이란다.

 

나도 직장을 마치면 인생2막은 진정으로 내가 꿈꿔왔고, 꼭 해보고 싶은 일에 마지막 열정을 쏟아보자! 해보지만 아직도 준비가 부족하다. 준비가 부족하다기보다는 나의 인생 황혼기에

정말 이건 꼭 해보고 싶다

라고 깊이있게 나에게 질문을 던져 그걸 얻고자 하는 치열한 노력이 있었나 하는 자문을 해보게 한다. “남들이 좋아하는 세계여행? 이웃을 향한 의미있는 봉사? 아니면 마지막으로 해보고 싶은 공부?” 정말 이걸 하지 않으면 두고두고 후회할 그 무엇을 찾아야 할텐데. . . .

 

가베전시장을 나와 올레길을 걸어가는 한동안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줄기차게 내게 묻고 또 물었다. 하지만 질문의 집요함은 이내 올래길 표지 리본과 안내 표지목을 잃어버리지 않으려는 본능에 그만 무산되고 말았다. 기왕 휴식하러 왔는데 이런 무거운 주제에 매달리는 게 다소 부담스러웠다. 생각의 끈을 놓자 휘~ 불어가는 바람에 보리밭이 군무를 추듯 춤을 춘다. 밭담 아래 흐드러지게 피어있는 들꽃들이 내게 웃으면 한마디 하는 듯하다. 편하게 천천히 생각하라고……

 

1132번도로를 가로질러 가면 이때부터 올레길은 두갈래로 갈라진다. 하나는 용수저수지 방면으로 가는 본래 올레길이고, 다른 하나는 우회하여 가는 길이다. 우리는 우회길을 선택하였다. 날도 많이 저물고, 오늘 하루 6시간째 강행군(?) 중이라 저지오름까지 가는 건 무리라 판단하였다. 오늘은 13코스 중간스탬프지점까지 가기로 하였다.

 

잘 정비된 시골길을 따라 걸어가는 내내 비슷비슷한 밭과 밭담이 이어지다 끊어지고 또 이어진다. 두다리가 무거워져갈 무렵 길은 숲사이로 난 샛길로 가라고 간세가 이끈다. 지금부터 낙천리 아홉굿마을, 중간스탬프지점까지 다양한 숲길과 함께 하게 된다.

 

그 첫번째 길이 특전사숲길이다. 50명의 특전사 대원들이 이틀 동안 총 3Km,7개 구간에 걸쳐 사라졌던 숲길을 복원하고 정비하여 만들어 낸 길이다. 한때 사람들의 왕래가 끊어져 사라졌던 숲 속의 오솔길이라 더욱 신비롭다. 자연재해를 입거나 대형사고가 터지면 어김없이 자연봉사자로 나서는 분들이 있다. 세월호사고가 터졌을 때 온몸을 던진 분들도 그 중 한 팀이리라. 군에서 특수전 훈련을 받은 그분들이다. 어떠한 보상도 바라지 않으며 선뜻 나서는 그분들의 노고를 오늘 우리는 여기 올레길에서 만나다. 참으로 고마운 분들이다.

 

특전사숲길을 나와 차도옆을 걷다보면 이번엔 고목숲길로 가라고 한다. 수령이 오래된 큰 고목이 눈길을 끄는 숲길이다. 제주올레 사단법인이 이 길을 새롭게 내면서 고목숲길이라고 이름 지었다고 한다. 수령이 수백년되는 고목들이 자생하고 있지는 않다. 해안가에서 멀지않은 중산간아래에는 잡목들이 화산 덩어리와 얽혀 자하고 있어 고목을 보기가 쉽지는 않다.

 

낙천리에 거의 다다를 무렵에는 고사리숲길이 조성되어 있다. 길 양편에 고사리가 가득해 제주올레에서 고사리숲길로 명명했는데 고사리를 채집해 본 경험은 없고 마트에서 사본게 전부인 우리는 유심히 길섶을 살폈다. 고사리를 꺾어볼 심사가 아니라 기왕 고사리숲길을 걷는 김에 고사릴 보아야 하지 않을까 해서다. 다행이 숲속에 다소곳이 자라고 있는 고사리를 보자 우리는 서로 웃었다. 사소하지만 목적한 바를 이루었으니까

 

드디어 오늘의 종착지 낙천리에 우리는 도착했다. 구름 속으로 모습을 감춘 해도 그 힘을 모두 잃어갈 즈음에 오늘 일정을 마무리하게 되었다. 낙천리는 350여 년 전에 제주도에선 처음으로 대장간(불미업)이 시작된 곳으로 불미업의 주재료인 점토를 파낸 아홉 개의 구멍에 물이 고여 수원이 풍부한 샘(굿)이 되었다는 이야기를 간직한 곳으로 알려져 있다. 마을 사람들이 직접 만든 천 개의 아름다운 의자들이 보기 좋게 구성되어 있는 곳에 파란색 13코스 중간스탬프 포스트가 서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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