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레길 완주를 위해 이번이 세번째 구간 종주다.
2016년 겨울에 시작해서 2017년 봄에 두번째 구간 종주로 10코스 종착지 모슬포까지 왔고, 이번 구간 종주에서는 19코스 김녕까지를 계획하고 있다. 지난 두 번의 올레길 순례에서는 제주가 보여주고 싶은 자연 풍광과 그 안에 스며있는 마을과 작은 오솔길을 무작정 걸으며 “빨리 이 길을 완주하여야지” 하는 단순한 목표의식 아래 걸었다.
그러다 보니 길섶에 피어있는 들꽃도 살피지 못했고, 제각기 다른 모습을 하고 있는 집담과 밭담들도 그저 그렇게 지나치기 일쑤였다. 마을에서 마주치는 분들과 눈인사를 나누는 상냥함도 없었고, 가벼운 대화를 나누는 살가운 시간도 없었다. 올레길을 처음부터 끝까지 걸어보자고
하지만 이번 여행에서는 내게 다가오는 제주도가 좀더 친밀하게 느껴진다. 눈에 보이는 아름다운 자연경관은 여전히 매력적으로 다가오고, 넉넉히 휘어져 동리를 돌아가는 마을길도 정겹고 마을길과 안마당을 가르는 화산암 집담을 쌓아올리는 형식도 제각각이다. 어느 집담도 안으로 훤히 들여다 볼 정도로 경우 배꼽높이 밖에 되지 않는다. 육중하게 걸어잠그는 대문도 없고 여전히 집주인의 현재를 알리는 정랑에 통나무 세개가 가로 걸려있다.
지나가는 여행객에게 먼저 가볍게 눈인사를 건네기도 하고, 마당에서 물을 주고 있는 아저씨께 궁금한 제주도 일상을 여쭈기도 한다. 따가운 햇살을 피해 그늘에 쉬고 있는 밭주인에게 심고 있는 작물에 대해서 여쭈기도 한다. 이전과는 다른 여행이고 감흥이다. 우리가 제주도에 한발 더 깊이 들어가고 있는 것은 아닐지. . . .
오설록에서 문도지를 지나 저지리 초입에 자리한 제주현대미술관에 이르니 점심 무렵이다. 본관 앞 정원에는 조각품들이 전시되어 있어 지나는 올레객에게 미술품을 감상할 수 있는 호사를 선사하고 있다. 하지만 실내 전시관은 여전히 코로나 영향으로 휴관중이다.
정원 한켠에 마련된 쉼터에서 휴식을 가지며 아내와 상의한다. 여기서부터 한림항까지 가는 길에 식당이 없으니 여기서 요기를 하고 가는게 나을거 같다고. 의견일치를 보고 흑돼지 요리를 전문으로 하는 나름 깔끔해보이는 식당에서 이른 점심을 가진다.
저지오름에서 시작하는 올레 14코스를 출발한다. 저지오름은 닥모르오름 혹은 '새오름'이라고도 불리우고 있다. 제주도 전역에 대략 330여개의 오름이 산재되어 있는데 많은 여행객들이 찾아보는 몇 안되는 유명한 오름이다. 오름 아래에 자리한 저지리 생태마을은 자체 홈페이지(http://www.ecovil.net/index.php)를 운영할 정도로 우리나라 농가마을 중에는 꽤 유명세를 가지고 있다.
오름을 오르는 길은 오름 등고선을 따라 빙 돌아가게 만들어 놓았다. 바닥도 마줄기로 엮은 마대를 깔아놓아 맨발로 걷기에 충분하다. 신발을 벗고 맨발로 걸으면서 지압 효과도 누려본다. 다소 높은 오름이라 정상까지 오르는데 제법 시간이 걸린다.
역시 어느 산, 어느 봉우리든 정상부에 올라서면 탁트인 시야가 주는 청량감이 있다. 서쪽 해안 방향으로는 멀리 비양도가 손이 잡힐듯이 앉아있고, 중산간방면에는 마을과 곶자왈 오름들이 함께 어우러져 있다. 비양도 방면을 조망하면서 오후에 걸어갈 곳을 어림하여 훑어본다. 눈을 아래로 돌리면 깔때기 모양의 굼부리가 움푹 들어가 있고 다양한 식생의 잡목들이 우거져 있다.
제주 올레길을 처음 기획하고 개척해 놓은 사단법인 제주올레는 이 길을 즐기러 방문한 여행객들이 불편해 하지 않도록 쉬지않고 관리를 하고 있구나 싶다. 바래지 리본, 반듯이 서있는 간세와 표지목이 이른 반증한다. 당연히 올레길 자체도 풀섶이 우거지거나 허물어져 있는 곳을 본적이 없다. 순전히 제주를 사랑하고 그 자연유산을 소중히 간직하고자 하는 분들이 제주를 여행하는 사람들에게 제주가 갖고 있는 본연의 맛과 멋을 선사하고픈 순수한 열정이 느껴진다. 올레길이 개척된 지 10여년이 흘러 손상되고 다소 흐트러질 수도 있을텐데…
14코스를 가다보면 밭담에 예쁘게 쓴 손글씨가 걸려있는 걸 만난다. 걸음에 지친 올레객을 위로해주고 힘을 북돋아 주려는 소박한 정성이 고맙다. 걸어가면서 다음번 판자에는 무어라 쓰여있을까 하는 궁금증에 발걸음이 가벼워진다. 시골 한가운데다 카페를 연 사장님은 카페로 들어오는 입구 마당에 손님을 유혹하는 글귀를 세워놓은 아이디어도 참신하고...
저지생태마을에서 바다가 보이는 월령포구까지 10km 구간은 걸을 때 다소 지루해질 수도 있다. 하지만 주민들이 꾸며놓은 다양한 장식들도 있지만 제주올레가 길을 닦은 다음 토속적인 길이름을 붙여놓은 곳도 중간중간 자리하고 있다.
움푹 패인 지형을 제주어로 굴렁지다고 한다. 제주올레에서 새롭게 개척한 이 길은 굴곡이 있는 숲길이므로 굴렁진 숲길이라고 이름을 붙였다. 구불구불한 숲길에 잡목과 풀들이 무성하게 자라는 지역이라 이를 관리하고 있는 올레사무국 분들의 노력에 고개를 숙이게 된다.
오시록헌은 아늑하다는 의미의 제주어이다. 밭 길을 걷는 느낌이 오시록해서 제주올레에서 오시록헌 농로라고 이름 붙였다.
제주올레가 올레길을 개척하면서 붙여놓은 길들을 지나다보니 어느덧 14코스 중간스탬프지점인 월령포구의 성니장 군락지에 도착했다. 해가 뉘엇늬엇 저물어가고 하루를 마무리하는 시간이 되어간다. 내륙지방을 걷다가 해안길을 걷게되니 무료함이 덜해진다. 14코스 종착지까지는 무리라 오늘 일정은 여기서 마무리하고 내일 다시 이어서 걷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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