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시간은 올레 17코스를 이어서 걷는다. 17코스 중간스탬프지점인 어영소공원은 제주시민보다는 여행객이 많이 찾는 공원같다. 렌트카로 해안도로 일주를 즐기는 관광객이 점심을 먹고 잠시 휴식을 가질 수 있는 공간이다. 하지만 광활한 부지를 차지하는 제주공항이 도심지와 분리시켜놓아 현지민이 도보로 공원에 다다르기 쉽지 않다. 공원 양 옆에 거주하는 주민들만이 걸어서 이곳을 올 수 있다.
어제 오후 광령사무소에서 무수천을 거쳐 도두봉까지 순례를 마치고 오늘 오후 그 지점부터 다시 걷는다. 제주공항과 해변 사이로 난 해안도로 위에 올레길이 이어져 있다. 상큼한 바닷내음을 담은 바닷바람이 따갑게 내리쬐는 햇살을 중화시킨다. 그많던 안개와 구름은 흔적도 남기지않고 종적을 감춘 하늘엔 푸르디 푸른빛을 한껏 자랑한다.
10분도 안되는 간격으로 비행기가 활주로를 차고 오르고, 또 활주로에 내려앉는다. 공항이 시내 가까이 위치한 까닭에 주민들이 겪을 소음 스트레스가 만만치 않아보인다. 김포공항과 마찬가지로 주변이 도시화가 되어 인구가 제법 밀집해 있어 공항 이전이 부득이 해 보인다.
공항을 두르고 있는 담장과 나란히 뻗어있는 도로가 지루함을 느낄정도 길다. 다행히 시원하게 불어주는 바닷바람, 주기적으로 울려대는 비행기 이착륙 소음 그리고 간간히 찾아볼 수 물질하는 해녀들. 이런 모습들로 그 지루함을 달래준다. 해녀들이 갓잡아 올린 전복이나 소래를 안주삼아 시원한 맥주라도 마시면 지루한 오후의 올레길이 좀 상쾌해질 시간.
용머리해안으로 가기 위해 도로에서 해안길로 내려섰다. 멀리 용두암이 손에 잡힌다. 구불구불한 해안길을 따라가는데 해안 절벽아래 넓은 바위 쉼터가 나온다. 그늘막으로 햇볕을 가린 넓은 쉼터에 해녀들이 갓잡아 올린 해산물을 팔고 있다. 해삼과 전복, 소라를 그 자리에서 먹기좋게 손질하여 팔고 있다. 우리는 한 접시 주문하고 입가심으로 맥주도 하나 곁들였다.
가격이 제법 쎄다. 일반 식당에서는 메인 요리에 서비스로 나올 정도 양에 불과한데 두사람 해물정식 가격에 맞먹을 수준이다. 하지만 시원한 바다를 조망할 수 있는 자리에서 갓 잡아올린 해산물을 그 자리에서 손질해 먹을 수 있게 내놓는 요리는 가격으로 매길 수 없는 프리미엄이 있게 마련이다. 그리고 그 프리미엄을 지불할 정도의 충분한 가치다.
해녀의 정성으로 차려진 맛깔스런 음식과 함께 한 꿀같은 휴식을 접고 다시 올레길로 올라섰다. 쉼터에서 해안으로 튀어나와 있는 길을 돌아가자 용두암이 우리를 맞는다. 제주도가 여행지로 각광을 받기 전부터 제주를 대표하는 핫 스팟이다.
용이 머리를 쳐들고 있는 모양의 바위라고 하여 용머리바위라 부르기도 한다. 용암이 위로 솟구쳐 오르면서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용왕의 심부름꾼이 한라산에 불로장생의 약초를 캐러왔다가 산신이 쏜 화살에 맞아 몸은 바다에 잠기고, 머리만 물 위에서 바위로 굳어버렸다는 내용 등 다양한 이야기를 가지고 있는 용두암은 한낮보다는 조명을 받아 빛나는 야경타임 아니면 일출타임에 용머리 위로 떠오르는 해와 함께 앵글에 담을 시간이 내겐 제격인데...
용두암에서 계단으로 올라 다시 시내로 길을 잡았다. 17코스 종착지도 가까와지고 여기서부터는 시내를 관통하는 올레길이다. 도심지로 들어가기 전에 마지막 풍광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한천이 바다로 흘러들어가기 직전에 넓은 호수를 만들어 푸른 물이 그득히 고여있다. 용이 사는 연못이라 하여 용연이라 불리는 곳이다
용연을 가로질러 걸쳐있는 구름다리에 서면 다리 양 옆으로 정말 아름다운 연못을 제대로 만끽할 수 있다. 세로로 거칠게 깎여버린 화산암벽으로 에워싸인 연못은 그 아름다운 풍광으로 인해 조선시대엔 지방관리들이 배를 띄우고 술자리를 벌이며 풍류를 즐겼다고 한다. 용이 가진 영험한 기운으로 연못에 사는 용을 위해 기우제도 지냈다고 한다.
용연에서 한 이십여분가량 도심지 속 구불구불한 골목길로 올레리본을 보물찾기하듯 걷다보니 제주목관아와 관덕정이 나온다. 제주목관아는 조선시대 제주의 도청소재지다. 관청건물은 관덕정을 제외한 대부분이 일제에 의해 훼손되었다. 그 이후 발굴을 통해 조선후기 모습으로 다시 복원되었다고 한다.
제주목관아 입구에 “守令以下皆下馬(수령이하개하마, 수령을 제외한 모든 이는 이 앞에서 말에서 내린다)” 비석이 서있다. 종묘 입구에 서있는 하마비와 같은 역할을 한다. 종묘에 서있는 비석엔 “至此大小人員下馬碑(지차대소인원하마비, 여기에서 대소를 막론하고 모두 말에서 내린다)”라고 씌어있다. 지방관청 앞이라 임금이 아닌 수령이 들어간 차이가 있다.
관아 앞에 서있는 관덕정은 활쏘기 시합이나 과거시험, 진상용 말 점검 등 다양한 행사가 이루어진 곳이었다. 관덕정 현판은 본래 안평대군의 글씨였으나 불에 타서 없어지고 현재는 이산해(李山海, 1539~1609)가 쓴 현판이 걸려있다. 제주도에 남아 있는 전통건축물 중 가장 크고 오래된 유물이다.
제주목관아에서 올레리본을 따라 주택가 골목길은 조금 지나면 17코스 종점 간세라운지에 다다른다. 아침 일찍부터 가파도 올레길을 따라 섬을 한바퀴 돌고나서 다시 제주 시내로 들어와 17코스 잔여구간을 마무리한다. 이른 아침인 여섯시 반에 숙소를 나와 올레길을 걸어 오후 4시에 하루 일정을 마무리한다. 이제 맛있는 메뉴로 저녁을 먹으러 갈 시간이다.
제주도에 왔으니 제주도를 대표하는 흑돼지 삼겹살은 먹어줘야 하지않은가! 대정에서 우리를 태워주신 기사님이 추천한 칠돈가 단일메뉴 흑돼지 요리로 저녁식사를 하기로 하고 길을 잡았다. 간세라운지에서 한 30분은 걸어야 할 거리에 떨어져 있다. 이미 마음 속으로 간세라운지에서 하루일정을 마감해버리다보니 다시 걸어서 식당까지 가려니 발걸음이 천근하고도 만근이다.
흑돼지 2인분 600g에 54,000원 단일메뉴로 저녁을 마치니 다시 힘이 솟는다. 숙소까지 그리 멀지않은 거리라 발걸음도 가볍게 숙소를 향하며 하루를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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