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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구석구석/제주도로 간다

[제주올레16코스] 은퇴하고 제주도에서 한달살기하면서 정착을 꿈꿔본다.

by 노니조아 2020. 5. 25.

2020년 5월 3일 (일) 날씨가 흐리고 비가 예보됨.

새벽부터 비가 내린다. 여행할 때 반갑지 않은 것이 비다.

이번 여행을 준비하면서 마지막까지 신경을 쓰인 것이 일기예보다. 출발하는 날 아침까지 스마트폰으로 일기예보를 조회해본 결과 주말에 비가 온다고 되어있었다. 오늘이 바로 그날이다. 일기예보가 틀리지 않는구나 하면서 오늘은 혼자 올레길 순례에 나서기로 했다. 그제 수월봉 아래 험한 자연탐방로를 걸으면서 아내 발가락에 물집이 여러 군데 잡힌 것이 화근이 되어 오늘 하루 게스트하우스에 쉬기로 하였다. 비교적 이른 시각에 길을 나섰다. 터미널에서 고내포구까지 30분도 안걸려 도착했다.

 

다행히 비는 내리지 않고 무거운 구름만 낮게 드리우고 있다. 16코스 출발점인 고내포구 우주물에서 힘차게 첫발을 내디뎠다. 고내포구 언덕배기에 있는 리치망고집에서 망고주스를 먹으려던 계획은 너무 이른 아침이라 패스.

푸른 아침바다는 바람에 유화붓질하듯 표면이 거칠게 덮여 있다. 새벽비가 대기를 깨끗이 청소해선지 시계는 제법 멀리까지 뚫려있어 어제 지나온 길과 오늘 가야 할 길도 시원하고 맑다.

 

비양도를 옆에 두고 이어지는 제주 서쪽 해안가는 왠만한 도심지에 버금가는 상권을 이루고 있다. 다양한 모습을 한 카페와 펜션이 즐비하게 들어서 있고, 전통적인 제주도 토속메뉴는 물론 젊은이들 입맛과 취향에 맞춘 식당들도 문을 열고 손님을 끌어모은다. 오늘 아침엔 아예 임대용 집을 지어놓고 장기임대 혹은 한달살기 여행객을 대상으로 한 집단주거 시설과 마주하기에 이른다. 시원한 바다를 조망할 수 있는 이곳을 한달 임대하려면 어느 정도 예산을 잡아야 할까? 혹시 몰라 연락처도 볼 겸 사진에 저장해놓는다.

 

제주도는 구멍이 숭숭 뚫린 바위들로 인해 한라산에서 발원하여 흐르는 물이 대부분 지하로 스며 들어 물이 귀하다. 중산간지방을 통과한 지하수가 바다에 이르러 솟아오르는 용천수가 식수 역할을 한다. 올레길을 다니다 보면 용천수가 솟아오르는 곳을 옛부터 귀하게 여겨온 것을 알 수 있다.

여기 새물도 풍부한 용천수를 자랑하지만 물을 길어올릴 때 파도가 들이치면 위험할 수 있어 암석을 발파하여 방파제를 만들어 물긷는 데 어려움을 해소하였다고 한다. 풍부한 용천수를 자랑하듯 내려다 보니 정말 맑은 물이 제법 고여 있다.

 

해안도로를 따라 한시간 반가량 걸어 구엄마을에 도착하였다. 구엄마을에는 소금빌레가 있다. 다른 해안과 달리 구엄마을 앞은 평평한 천연암반이 넓게 자리하고 있다. 평평한 암반 위에 바닷물을 길어올려 소금을 생산하여왔다고 한다. 천연소금을 생산하는 암반지대를 소금빌레라고 부른다.

인간이 음식을 조리하여 먹기 시작하면서 소금은 가장 귀한 식자재로 여겨진다. 구엄마을에서 소금을 생산해온 명맥은 이미 끊어졌지만 한창일 때는 1년에 17톤 이상을 생산하였고 이 마을의 가장 중요한 수입원이어서 왠만한 밭보다 높은 가격에 거래되었다고 한다.

 

올레길 16코스는 구엄마을 포구에서 수산봉을 향해 다시 내륙으로 이어진다. 해안도로를 걸을 때는 시원하게 불어주는 바닷바람과 거칠것없이 펼쳐진 푸른 바다가 지루함을 잊게 한다. 하지만 내륙으로 들어서 고만고만한 밭들과 마을길을 이어주고 있는 올레길을 걸을 때면 지루함이 금방 찾아온다. 곶자왈이라도 나오면 그나마 상쾌한 공기를 흡입하는 재미에 참을 만도 하지만. . .

 

수산봉을 오르는 데 그리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정상에 올라오니 오름 군부리가 깊지 않아 잔디가 잘 정돈되어 있고 운동시설까지 갖추고 있어 아랫마을 사람들이 산책나와 운동하기 딱 좋다. 수산봉은 산아래 곰솔이 있어 더불어 이름이 알려진 오름이다.

 

수산봉으로 내려오는데 갑자기 사방이 어두워지기 시작한다. 서쪽 해안가를 바라보니 검은 구름이 짙게 드리우고 있다. 일기예보처럼 드디어 비가 오려나보다. 걸음을 서둘러 소나무가 서있는 수산저수지로 내려갔다. 소나무에 다다를 무렵 드디어 굵은 빗방울이 후두둑 흩뿌리기 시작한다. 우산을 꺼내들고 소나무 아래에서 비가 긎기를 기다렸다. 소나기였다.

 

수산봉에서 수산저수지로 내려오다 보면 저수지 옆에 오래된 소나무 한그루가 떡 버티고 서있다. 높이 10m, 둘레 4m의 거목으로, 4개의 큰 가지가 뻗어 있는데, 최대 수관폭은 26m에 달한다. 이 나무는 400여 년 전, 수산리 마을이 생길 당시 심은 것으로 전해진다. 마을을 지키는 수호목으로 보호돼 왔는데, 눈이 내려 수관 윗부분에 덮이면 마치 백곰이 저수지 물을 마시는 모습처럼 보인다고 해서, 곰솔이라고 부른다. 저수지로 향한 가지는 나무 밑둥보다 더 낮게 드리워 물을 먹고픈 형상이다.

 

수산봉과 곰솔을 벗어나자 슬금슬금 구름이 걷히기 시작한다. 하루종일 내린다던 예보는 보기좋게 빗나갔다. 수산봉에서 중산간 마을로 이어진 올레길 16코스는 중간스탬프지점인 항몽유적지까지는 물메밭담길과 함께 가게 된다. 물메(수산)마을은 농촌체험 치유마을로 유명하다. 마을주민들의 노력과 제주시의 지원으로 밭담길을 걸으면서 마음에 상처를 가진 분들에게 치유의 시간을 주고자 조성된 길이다. 마을은 정갈하고 집담과 밭담이 고즈넉히 자리한 마을에는 잘 지은 집들이 많이 눈에 띤다.

 

올레길을 걷다가 밭에서 열심히 농사일을 돌보시는 분들과 말씀을 나누기는 쉽지않다. 아침 일찍부터 걷기 시작해 세시간이 다되어간다. 마침 앞마당에서 작물에 물을 주고 계신 분께 그동안 궁금한 게 있어 여쭈었다. 모슬포에서부터 줄곧 갖고 있던 궁금증이었다.

 

선생님 왜 옥수수에 비닐을 덮으셨나요? 너무 어려 바람에 꺾일까봐 덮은 건가요?”

, 그거. 냉해입지 말라고 덮은거요. 밤낮 기온차가 너무 커서 얼어죽을 수도 있어

오다보니 호박도 덮어놓았던데 호박도 냉해입지말라고 덮은 거네요?”

그렇지..”

옥수수는 강원도가 유명한데 제주도 옥수수는 사료용인가요?”

아녀, 옥수수를 수확하려고 하는거지. 제주도 옥수수는 강원도거 보다 더 맛있어서 잘팔려

제주도에서 수확해 서울에다 팔려면 물류비가 장난아닐텐데요?”

 

그러니까 육지보다 일찍 심어서 조기수확하잖어. 육지보다 기온이 따뜻해서 여긴 저렇게 컸잖어. 육지는 아직 심을 생각도 않잖어. 요긴 유월말이면 벌써 수학해서 내다 팔잖어. 육지는 그제서야 싹이 나올껄..”

이번이 세번째 올레길 방문인데 재작년 겨울에 왔을 때도 밭에 당근, 무우, 배추가 무럭무럭 자라고 있는 걸 봤어요. 제주도는 사철내내 농사일이 있네요?”

제주도는 마늘, 양파, 무우, 배추, 옥수수, 감자, 당근.. 밭작물도 많고, 감귤밭도 있고, 요즘은 시설하우스에서 키우는 한라봉, 천리향 등등 일손이 태부족이야. 코로나땜에 외국인이 많이 제나라로 돌아가 일손부족이 심각해

저 은퇴하고 제주도 오면 일거리 찾는게 어렵진 않겠네요?”

농촌일한다면야 굶어죽진 않어. 오면서 마늘이며 양파 갈아엎는 거 못봤어? 사람을 구할 수 없어 갈아엎는거야…”

선생님도 육지에서 건너오셨나요?”

정년퇴직하고 여기 내려온 지 몇 년됐어. 욕심안부리면 살아가는데 문제없어

감사합니다, 선생님. 건강하세요

 

어르신과 헤어져 다시 길을 이어간다. 이제 은퇴할 나이가 다되어 가는데 제주도에 내려와 사는건 어떨까? 농촌에서 태어나 얼치기 농사일을 도와주긴 했어도 내가 밭을 사서 전문적으로 농사를 지을 엄두는 나지 않고, 일주일에 반은 농사일을 거들어주고 반은 제주도를 공부하면서 투어가이드를 하는 것도 괜찮아 보인다. 요렇게 아담한 집을 지어놓고 책도 읽으면서 자연과 더불어 사는 삶이 나빠보이진 않는다.

 

내년에 은퇴하고 제주도로 내려와 살아볼까? 우선 가을에 감귤 수확이 시작될 무렵을 잡아 제주도 한달살기 계획으로 내려와서 내가 버틸 수 있을 정도의 노동강도라면 한번 고려해봄직하다. 천혜의 관광자원을 가진 제주도에서 우선 생계형 일자리를 기초삼아 일년가량 보내고 코로나사태가 완전히 물러가면 다시 외국인 방문객이 늘어날테고, 그때를 맞춰 일본어와 영어 문화권의 관광객을 상태로 관광문화해설사 노릇(?)을 하면서 인생 2막을 보내는 건 어떨까?

이런 상념에 힘들 줄도 모르고 걷다보니 어느덧 중간스탬프에 당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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