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락산에 오르려거든 향로봉 능선코스로 가시라! 결코 실망시키지 않으리니..
2020년 10월 3일 하늘이 열린 날 친구들과 수락산을 올랐다.
한가위 연휴가 가까워 질 무렵 고교절친 오인방 카톡방에서 서로 안부인사를 나누다가 산행계획이 잡혔다. 주말마다 ‘혼산’을 다니는 산행매니아 친구 제안에 나와 국립공원CCTV공사 감리감독하는 친구가 흔쾌히 동의하였다. 충청도에 살고 있는 두 친구는 선약과 교통편 문제로 아쉽게 합류하지 못하였다. 산행매니아는 수락산을 제안하였고, 감리감독 친구는 각자 준비물을 할당하면서 순식간에 산행계획이 결정되었다.
산행코스는 수락산 유원지 – 향로봉 – 정상 – 치마바위 – 수락산유원지로 내려오는 원점회귀 코스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어쩔 수 없이 마스크를 착용하고 산행을 시작하니 금새 더운 기운이 안면부를 가득 채운다. 호흡도 가빠지는 속도가 빨라지고. 그래도 산행이 시작되는 구간엔 마주치는 사람들이 많아 꾹~~참고 조금씩 고도를 높여나간다.
내원암으로 오르는 방향을 버리고 오른쪽 향로봉 방면 오름길로 산행길을 갈아탄다. 산행매니아 친구는 우리에게 수락산 향로봉을 꼭 보여주고 싶었다며 이 코스를 선택한 이유는 올라가보면 안다고 한다. 내게는 수락산이 두 번째 산행이지만 이 코스는 처음이라 반갑기도 하고, 또 고맙기도 하다.
나뭇가지 사이로 난 길을 얼마간 오르니 발 아래는 물론이고 온 주변에 화강암 바위들이 세월이 다듬은 매끈한 모습을 하고 누워있다. 억겁의 세월동안 바람과 물이 가해온 압박에 못견뎌하듯 갈라지고 패인 모습으로 서있거나 누워있는 바위들이 산행의 거친 숨소리를 받아준다.
단단한 근육질 바위가 완만한 경사를 이루는 릿지구간이 나온다. 여기서부터 향로봉 정상까지는 비탈바위 위를 걸어가는 릿지구간이다. 억겁의 세월동안 바람에 쓸리고 세찬 빗물기에 다듬어진 바위결은 그 표면이 단단해 보이는 근육질이다. 경사가 그다지 위협적이지 않아 우리는 가벼운 마음으로 하지만 약간은 조심스레 발걸음을 위로 옮겨가며 시원스레 뚫린 조망을 만끽한다.
주변에 올라오는 일행이 없는 걸 확인하고 갑갑한 마스크를 벗고 계곡에서 올라오는 시원한 바람에 땀도 들이고 팍팍해진 다리도 쉬게 해줄 겸 널직한 바위에 걸터앉았다. 발아래 내려다 보이는 경치도 둘러보고 올라온 길도 되짚어보면서 휴식을 가진다. 가을 초입이라고 하지만 아직은 단풍이 찾아들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내설악에는 중청까지 단풍에 젖어있을텐데…
땀을 들이고 나서 다시 오르던 길을 이어나갔다. 향로봉에 오르는 두 번째 릿지 구간에 당도했다. 두번째 리지구간은 두단계로 나뉘어 있다. 리지 중간지점에 소나무와 바위 턱이 있어 잠시 쉴 수도 있지만 아래 구간은 길이가 짧고 경사도 윗구간에 비해 조금 덜하다. 매니아 친구는 두려움만 갖지 않고 발을 디디고 오르면 미끄러지지 않는다고 하면서 우리를 안심시키려 하지만 경험하지 못한 걸 이론으로 설득하는게 쉽지만은 않은 법.
산행매니아 친구는 감리감독 친구 신발이 못내 걱정스러운지 아래 짧은 구간을 조심스레 올라가보길 권한다. 신발이 등산보다는 가벼운 트레킹에 적합한 신발이라 자칫 ‘미끄러지기라도 하면’ 하는 걱정에 향로봉 코스를 괜히 고집한 게 아닌지 후회하는 마음에 어찌해야 하나~~ 하는 모습이 역력하다. 배낭에서 응급용 밧줄을 꺼내 위로 올라가 내려보기도 하지만 길이가 턱없이 짧다. 서로가 방법을 찾는라 이리저리 하다 결국 감리 친구가 아래 계곡으로 방향을 바꾸어 산행을 잇기로 하였다.
"이 썩은 사바위가 뭘라고~~~" 하겠지만 정말 리지구간에 땀을 쏟아내고 올라와 맞이하는 저 바위는 충분히 그 보상을 해 줄만했다. 매니아 친구는 감리친구와 저 모습을 함께 하지 못한 걸 여간 속상해하지 않는다. 저 바위에 이르는 동안 혼자서 되뇌인다.
‘내려가서 정상으로 올라가는 길은 잘 찾았겠지…’ ‘잘 내려는 갔겠지…’ 어디쯤 올라가고 있으려나…’
내려간 친구 걱정하랴….. 함께 가고있는 내 모습을 앵글에 담아주랴…. 참 사려깊고 배려하는 마음이 더없이 고마워 이번엔 내가 카메라를 받아 한입 베어문 사과 자리에 앉은 친구 모습을 담아주었다. 그리고 대문 사진 처럼 비록 썩은 사과지만 한 입 크게 베어물 기회를 주었다.
향로봉 정상에서 감리친구에게 전화를 넣어봤다. 내원암으로 오르는 중이란다.
“나 지금 간이 매점을 지나고 있어, 시원한 막걸리도 팔고 있어 네 이름 걸고 외상했으니 내려오면서 갚아라~~~”
“그래 알았어, 기왕 외상한거 파전도 사가지고 올라와~”
내원암 경내 마당에 올라온 친구를 휴대폰으로 통화하면서 육안으로 확인 우리는 마치 곁에서 만난 것처럼 기뻐 날뛴다. 짧은 이별이었지만 서로의 생사(?)를 확인하고 수락산 정상에서 만나기로 하고 각자의 길을 재촉하였다.
수락산 정상에 올랐으면 아기꼬끼리는 꼭 찾아보고 가셔야죠...
감리친구와 다시 만나지 못했다면 큰일 날뻔했다. 내려가는 동안 배에서 나는 쫄쫄쫄 시냇물 소릴 들으며 갈 판이었다. 정상에서 다시 만나 한적한 장소에 자리를 마련해 기다리던 점심먹을 시간이다. 원래 김밥은 내가 당번이다.
약속시간보다 한시간은 일찍 집을 나서 ‘김밥집 찾아 삼만리~~”를 해메었는데 도대체 영업하는 집이 하나도 없다. 아무리 긴 연휴라지만 김밥집은 24시간 영업을 하기에 분명 열었을꺼라 예단하고 찾아다녔지만 결국 빈 손으로 친구들과 만났다.
미안한 마음에 주전부리감을 배낭에서 꺼내놓고 있는데 감리친구 배낭에서는 제대로된 한끼 식사가 나온다. 송편, 사과에다 포도까지 정성스레 닦아서 가져왔다. 제수씨에게 감사의 인사를 마치기가 무섭게 송편을 입에 물었다.
점심을 마치고 다시 정상석으로 올라와 인증샷을 박으려는데 산객이 너무 많다. 인증샷을 포기하고 하산길로 길을 잡는다. 회색 콘크리트 둥지를 건너 도봉산과 북한산 인수봉에 등줄기가 푸른 옷을 두르고 있다. 저기 보이는 산은 자주 그리고 많이 올라보았는데 왜 수락산을 오를 생각을 하지 않았는지 나도 의아했다.
그동안 나는 산행에 편식을 많이 하였구나 싶었다. 결국 남들이 많이 가는 산을 주로 반복해서 올랐던 것이다. 북한산, 도봉산, 예봉산, 지리산, 설악산, 덕유산, 치악산, 한라산, 검단산, 관악산, 두타산, 태백산, 소백산, 월악산, 오대산 . . .
철모바위를 지나는데 살이 제법 오른 고양이가 우릴 반긴다. 지나는 산객들에게 동냥으로 얻어먹은 고양이치고는 때깔이 제대로다. 살도 통통하고, 매서운 눈매도 살아있는게 마치 이 산에 서식하는 짐승의 먹이사슬 최상부에 위치한 포스다. 하긴 민가에 기식하는 고양이와 비둘기는 그 야생성을 상실해 동물 분류마저 다시할 판이다. 아니면 야생성을 다시 돌려주는 노력이 필요하다.
쥐를 잡는 능력을 상실해 동냥으로 연명하는 고양이는 따로 ‘개냥이’로 분류하고, 공원에 놀러 나온 주민이 던져주는 과자로 연명하는 비둘기는 ‘닭둘기’ 종을 나눠야 할 때가 되지않았을까? 그리고 부모에게 얹혀사는 커플은 어떻게 분류하여야 하나???
야생성을 잃어버린 동물과 달리 식물은 더 공해로 찌들어가는 척박한 환경에서 질긴 야생성을 공고히 하고 있다. 바위 사이에 뿌리를 깊이 박고 청청한 모습을 자랑하는 이름 모를 풀들과 소나무를 마주하고 있으면 경외심마저 든다. 사는 게 힘들고 고단해도 저들만하랴! 타는 듯한 가뭄과 모진 비바람에도 꺾이지 않고 흐트러지지 않는 모습으로 오가는 산객을 맞이하는 저 바위 위에서 꼿꼿하게 서있는 모습에 고개를 아니 숙이랴…
길을 재촉해 크고 작은 바위를 초대형 기중기로 쌓아놓은 것 같은 암석군 앞에 섰다. 산행매니아 친구가 아기코끼리를 찾아보란다. 나는 한참을 찾았다. 가운데 큰 바위 위에 녀석은 앉아있다. 땡볕에 엄마코끼리는 어디에 두고 혼자 저 위에서 누워있을까? 점심끼니 채울 시간도 넘었는데 밥은 먹었을까? 마치 배가 고파 엎드려있는거 같다.
아기코끼리바위에서 눈을 오른쪽으로 돌리면 이번에는 봉우리 위에 동그란 바위가 올려져 있다. 그 위로 사람들이 앉아있기도 하고 서있기도 한다.
하강바위. 친구들에게 올라가라고 했다. 여기서 내가 사진 찍어줄 테니 올라가보길 권했다. 잠시 뒤 바위 위에서 친구가 손을 흔든다. 휴대폰 줌을 최대로 당겨 모습을 담았다. 헌데 너무 멀어서 얼굴이 식별되지 않을 만큼 멀다. 이럴줄 알았다면 DSLR을 가져올걸…
삼인행이면 필유아사라 하였다. (三人行 必有我師焉)
우리는 치마바위를 끝으로 하산길을 잡았다. 서울 근교에 있는 수락산행이 이토록 즐겁고 재미 가득할 수 있었던 건 산행매니아 친구 덕분이다. 그동안 친구가 다녀온 산은 이루 헤아릴 수가 없다. 내 짧은 산행이력을 들이밀라치면 이 친구는 내가 들이민 산에 덪붙여 주변 산까지 꽤뚫고 있다. 우리나라 산은 물론이고, 히말라야, 일본알프스에 심지어 킬리만자로까지 도전장을 내밀 정도다.
감리친구는 지난번 대천 모임에서 매니아친구의 산행 이력을 기억하였다가 오늘 산행을 기획하는 역할을 하였다. 우리는 비록 홀로 이 세상에 나왔지만 필연적으로 ‘더불어 사는 인간’으로 살 수 밖에 없다. 친구가 그동안 경험한 걸 함께 공감할 수 있는 기회로 만들어주고 점심요기도 정성껏 준비해 온 마음이 참으로 고맙다.
그동안 난 주로 혼자 아니면 아내와 함께였다. 산을 갈 때도, 자전거로 국토종주 라이딩을 즐길 때도, 제주도 올레길을 걸을 때도 그렇고 심지어 해외여행을 할 때도 혼자 아니면 가족과 함께였다.
이제는 친구들과 함께 할 수 기회가 주워질 때마다 마다하지 않고 함께 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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