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히 내리는 비에 바람까지 세다.
‘바다를 바라보면’에서 소고기라면과 해물라면으로 허기와 온기를 채우고 다시 길을 나선다. 식당에서 올레길을 따라가면 월정리해변과 마주한다. 바다로 이어진 길을 걸어가는 데 빗줄기가 굵어지고 바람까지 세다. 비와 바람을 동시에 막으려니 전방 시야를 자꾸 가릴 수 밖에 없다.
바닷가에는 짖꿎은 날씨에도 아랑곶하지 않고 서핑에 열중하는 무리가 보인다. 무엇이 저들로하여금 바다로 부른 것일까?
‘조금’ 불편해도 괜찮다던 낭만의 강도가 ‘많이’ 불편하게 긁어대는 굵은 빗줄기와 바람에 굴복하여야 하나? 결국 아내와 타협하고 말았다. 올레길과 교차하는 첫번째 버스 정류장이 나오면 오늘 일정을 끝내자고.
월정리해변을 지나 잠시 밭들 사이로 난 길을 한바퀴 돌아나오면 행원포구에 당도한다. 올레 20코스 중간스탬프를 기록하는 광해군가착지가 있다. 20코스도 이제 반을 지난 셈이다. 빗줄기가 점차 가늘어지고 해안을 벗어나면 바람도 잦아지기에 내쳐 끝까지 가자고 결정을 번복한다.
광해군은 반정으로 왕위에서 밀려나 강화도에 유배된다. 광해군 복위를 두려워한 반정공신과 인조는 한성에서 가장 먼 제주도로 유배지를 옮기게 되는데 바로 여기 행원포구에 하선하고 나서 신하들이 제주도라고 이르자 비로소 광해가 제주도에 유배되었음을 알았다고 한다. 광해는 이렇게 18년간 유배를 살다가 한많은 생을 마감하였다.
시인 박노해와 함께 걷는 올레길
행원포구를 지나자 올레는 마을 속으로 방향을 잡는다. 마을을 지나 밭과 작은 숲에는 시인 박노해와 함께 ’걷는 독서‘ 올레길이 나온다. 100미터마다 박노해시인 작품 ‘걷는 독서’에서 발췌한 명구를 파란색 입간판에 적어놓고 올레꾼을 맞이한다.
처음으로 올레꾼을 맞는 문구, ‘나눔만이 나뉨을 막을 수 있다.’ 나라를 끌어가는 위정자와 기업 총수는 한번이라도 이 문구에 깊은 성찰의 시간을 가져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얼른 털어낸다. 남을 탓하기 전에 나부터 반성하는 자세가 우선되어야 한다.
그래 ‘사랑은 나의 시간을 내어주는 것이다.‘ 나를 우선시 하는 마음보다 이웃을 먼저 생각하고 이해하고 배려하는 마음을 가슴에서 끌어내는 시간이 필요하다.
‘마음아 천천히 천천히 걸어라, 내 영혼이 길을 잃지 않도록’
큰 웃음은 깊은 울음 속에서 배어나오는 법.
박노해와 함께 걷다보니 어느덧 빗줄기가 가늘어지고 바람도 잦아들었다. 다시 힘을 내어 20코스 종점까지 가기로 결정하고 힘을 낸다. 해안도로에서 살짝 벗어나 마을 안으로 이어지는 올레길이라 바다에서 부딪혀오는 바람이 상대적으로 적다.
올레길은 끊지말고 쭉 이어서 걸어야 제 맛
길은 구좌읍 한동리에서 살짝 바다를 터치하고 마을 속으로 사라진다. 헌데 한동리 해변 방파제에 제주도 방언을 소개하고 있다.
‘어둑은날 시민 밝은날 싯나 - 어두운날이 있으면 밝은날이 있다‘
‘어떵 살아 점쑤꽈? 펜안 햇수꽈? - 어떻게 살고 있나요? 편안하신가요?
정말 다채로운 올레길을 걸어가는 동안 수없이 되뇌었다. 아내와 함께 과감히 렌터카와 호텔을 버리고 대중교통과 게하를 기반으로 올레길을 걷자고 한 것은 아주 잘 한 결정이다. 여기에 하나를 더하자면 1코스 시작에서 21코스 종점까지 순방향으로 계속 이어서 걸을 수 있다면 금상첨화.
세화리해변이다. 20코스 종점이 정말 가까워졌음을 실감한다. 쉬지않고 내리는 비와 바다에서 강하게 불어오는 바람을 뚫고 결국 네시간 반만에 18여키로에 이르는 올레길 20코스를 완성하였다.
'우리나라 구석구석 > 제주도로 간다'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하추자도 올레길] 신양항-예초리 기정길-대왕산-졸복산을 도는데 3시간 반!! (1) | 2022.12.02 |
---|---|
[추자도 올레 18-1] 제주올레 완주인증에 추자도 올레길은 필수잖아! (0) | 2022.12.02 |
[제주올레 20코스] 김녕서포구에서 월정리해변까지 비가 오는데 ‘조금 불편해도 괜찮아’ (0) | 2022.11.21 |
[제주올레19코스] 너븐숭이동산에서 순이삼촌이 부르짖는 처절한 절규를 들었다 (2) | 2020.07.23 |
[제주올레19코스] 벌러진 동산에서 만나뵌 부부는 오늘 어디를 걷고 계실까? (0) | 2020.07.21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