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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구석구석/산으로 가자

북한산성 13성문 환종주 1 - 대서문에서 의상능선을 따라 청수동암문까지

by 노니조아 2023. 3. 6.

2023. 03. 01. 삼일절에 왠 북한산성?
한양도성, 남한산성 순환종주를 마치고 난 내게 부채가 하나 생겼다. 지난해 마지막날 한해를 무사히 보낼 수 있음에 안도와 감사의 심정으로 한양도성을 한바퀴 돌았다. 이어서 다가온 설날 전날엔 집 뒤에 단단히 웅크리고 앉아있는 남한산성 일주하며 새해를 맞이하였다. 이렇게 한양도성과 남한산성을 돌고나니 남아있는 북한산성이 자꾸 심통을 부리며 언제 올꺼냐? 하는 거 같아 조바심이 일었다. 일찍 잠자리에 들어선지 평소보다 일찍 눈이 떠진다. 집에서 북한산성 입구까지 대중교통으로 두시간가까이 걸리고 산성을 일주하려면 줄잡아 7시간은 잡아야 한다. 떡 본김에 제사올린다고 하지않던가. 일찍 일어난 김에 배낭을 들쳐메고 집을 나섰다.

북한산성입구. 이른 아침이라 산행길에 산객이 드문드문 보인다.

이른 아침이라 한산한 북한산성 입구
구파발에서 704번 버스에 올랐다. 평소 주말같으면 발디딜틈조차 없는 만원버스건만 이른ㅂ아침이라 한산하다. 울긋불긋하던 단풍이 힘을 잃어가던 작년 11월 어느 금요일 오전, 오봉으로 가기 위해 버스를 기다리는데 북한산에 가려는 산객이 너무 많아 버스에 오르기가 버거웠을 정도였다. 평일임에도 이리 사람이 많을줄이야.
산성에서 버스를 내리자마자 신발끈과 스틱을 준비해 산행에 오른다. 오늘 산행은 산성과 북한산 봉우리 그리고 산성 사이에 서있는 13개 성문을 이어 걷는다.

의상봉으로 올라가는 길과 이정표.

북한산성입구에서 대서문을 지나 성안에 세워진 중성문까지 2.3키로는 약간의 고도를 높여가는 편안한 길이다. 등로 옆에 서있는 이정표를 보지 않아도 될정도로 등로는 잘 다져있다. 산성입구 상가를 벗어나 대서문으로 가는데 의상봉으로 오르는 갈림길이 나온다. 의상봉으로 오르는 길을 보자 어느해 가늘 백화사에서 의상봉으로 오르면서 무지하게 헉헉거렸던 기억이 새롭다.

북한산성 13성문의 첫번째 대서문.
의상봉 갈림길에서 크게 구비진 언덕을 걸어오르면 대서문이 기다리고 서있더. 산성을 완비한 숙종이 바로 이 문을 통해 성내로 들어갔다고 한다. 북한산성 정문으로서 축성당시 16개 성문 중에서 가장 낮은 지점에 위치한다. 성문 위에 누각은 1958년에 복원하였음에도 가장 오래되었다니 산성이 축성되고 나서 번듯하게 대우를 받지 못하다 일제에 의해 훼손되었다고 한다.

조선은 개국과 동시에 한양천도를 감행하였고 법궁인 경복궁을 세우면서 사대산을 잇는 도성을 함께 축성하였다. 이후 이백년 가까이 태평성대를 구가하다가 왜적의 침략을 받아 조선 강토가 왜적의 말발굽아래서 처참하게 유린된 현장을 목도한 인조는 한양 남쪽에 있는 남한산성을 세워 도성방비를 강화하였다. 하지만 이번에는 북방에 오랑케로 치부되던 여진족이 청나라를 세우고 다시 조선 강토를 유린하기에 이른다. 이에 인조의 손자인 숙종은 북방 경계를 강화하고자하는 염원을 담아 북한산성을 축성하여 북방의 오랑케 침략에 대비한다. 하지만 남한산성과 마찬가지로 방어를 목적으로 한 기능은 발휘하지 못하였다.
북한산성에는 북문, 대동문, 대서문, 대성문, 중성문에 초루가 설치되었고, 소동문, 소남문, 서암문, 백운봉암문, 용암봉암문, 동암문, 청수동암문, 부왕동암문, 가사당암문과 수문이 설치되었다. 성곽에는 성문 이외에 시단봉 위에 동장대, 나한봉 동북에 남장대, 중성문 서북에 북장대 등 3장대와 함께 유사시 어가를 북한산성으로 옮길 행궁을 건립하였다.

또한 주둔부대인 훈련도감, 금위영, 어영청인 유영지 3개소, 군량미를 보관하는 군창 3개소, 성곽 관리와 방어를 분담한 승병들이 주둔할 승영사찰 등을 설치하였다. 이후 유사시 도성민들이 전부 들어가 항전할 때 필요식량을 대략 계산한 결과, 무려 곡식 10만 석이 필요하다는 계산이 나오게 된다. 이에 그 많은 곡식을 산성 내에 쌓기는 힘들다고 산 아래에 창고를 지금의 평창동에다 평창이란 이름으로 만들고 5만석을 여기에 비치하게 된다.

산성종주 두번째 성문 중성문
대서문을 지나 약간의 땀을 보태면 중성문에 다다른다. 10여년전 북한산행을 자주하던 어느 가을날에도 오늘처럼 북한산성 종주를 한적이 있다. 그 때는 북한산성 입구가 아니라 백화사에서 출발해 의상봉으로 곧바로 올라갔다. 덕분에 중성문을 지나치지 못하고 12성문 종주에 만족한 적이 있다. 오늘 북한산성 입구에 산행들머리를 잡고 출발한 데는 의상봉의 가파른 능선을 헤치고 올라갈 자신이 없어서였다.

북한산성 내성에서 시체를 밖으로 내보는 시구문. 북문 아래에도 시구문이 있다.

중성문은 북한산의 노적봉과 증취봉 사이의 협곡에 설치된 성문이다. 대서문에서 이곳에 이르는 지역은 지형이 비교적 명탄해 적의 공격에 취약한 구역이었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이곳에 적의 공격을 이중으로 방어할 수 있는 차단성분인 중성 역할을 담당하였다. 중성문 옆의 암반에 폭 2.1m, 높이 18m 규모의 작은 암문이 숨겨져 있다. 이 암문은 원래 이름이 없었으나 성 안에서 생긴 시신통들이 중성문을 통과하지 못하고 이 문을 통해 나간다고 해 시구문이라 불리었다.

본격적인 산성종주는 지금부터.
중성문에서 다시 오던 길로 되짚어 내려가야 한다. 의상봉과 용출봉사이에 숨어있는 가사당암문으로 오르려면 중성문에서 다시 내려가다 국녕사로 오르는 길로 가야한다. 의상봉에서 시작해 문수봉에 이르는 의상능선은 7개나 되는 봉우리를 때로는 쇠줄을 잡고 오르거나 암봉 옆을 우회하면서 오르고 내리기를 반복하는 북한산에서 가장 험하고 빡센 등산코스다.

명분과 실리 속에서.  . 
중성문에서 10분 가량 내려오다 길 왼쪽으로 '국녕사오르는 길' 안내표지를 따라 등로를 잡으면 본격적으로 경사를 높여가는 등산이 시작된다. 나무들이 사이로 북한산 봉우리들을 둘러보며 오르지만 시계가 확트이는 능선길만 못하다. 대신에 계곡이 깊어선지 작은 폭포들 위로 흐르던 물이 그대로 얼어붙어 있다. 우수가 지나고 내일 모레면 경칩인다 여긴 아직도 한겨울이다. 20여분 정도 다리에 힘을 주어가며 오르니 국녕사가 나타난다. 1711년(숙종 37년)에 북한산성을 축성한 뒤, 성내의 군사 요충지에 사찰 13곳을 건립하여 산성의 수비와 성곽 관리를 맡겼다고 한다. 유교를 숭상하고 불교를 배척하는 조선이 축성을 하고 성을 지키는데 승군을 활용할 생각은 어떤 논리에서 나온걸까. 

국녕사에서 바라본 백운대와 만경대. 가장 높은데 서있는 백운동 암문이 두 봉우리 사이에 선명하다.

조선은 유교를 국시로 하였으나 중요한 시설에 사찰을 세워 별도의 기능을 부여하였다. 인조는 전국의 승려를 동원하여 남한성을 축조하였고 이때 동원된 승려들이 거처할 곳으로 산성 안에 7개의 사찰을 세웠다고 한다. 우리가 잘알고 있는 강남의 봉은사는 성종과 중종이 잠들어있는 선정릉을 수호하고 제사를 필요한 제수를 공급하는 능침사찰 역할을 하였다고 한다. 능침사찰이 되면서 지금의 자리에 왕실로 부터 많은 땅을 하사받았고 은혜를 받든다는 의미로 '봉은사'로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산성 세번째 성문, 가사당암문에 오르니
국녕사 좌불 뒤로 난 등로를 따라 10여분 오르니 의상능선에 세워진 세개의 암문 중 첫번째 성문, 가사당암문이 나온다. 북한산성 입구에서 바라볼 때 오른쪽에 날카롭게 사있는 의상봉에서 용출봉으로 이어지는 미릿한 고갯마루에 서있다. 암문은 비상시에 병기나 식량을 반입하는 통로이자, 때로는 구원병의 출입로로 활용되는 일종의 비상출입구이다. 산성의 방어력을 높이기 위해 적이 비교적 쉽게 접근할 수 없는 고갯마루나 능선에 설치하였다.

암문에 이어져있는 성체와 여장은 도성에 비해 초라해 보인다. 여장에서 적을 공격하기 위해 뚫어놓은 총안과 옥개석등도 근처에 널린 돌을 쪼아서 쌓은것처럼 규모가 아담하다. 그나마도 밋밋한 능선에서나 볼 수있고 급경사나 암벽지대는 그자체가 천연방어시설이라 여장이 설치되어있지 않다. 암문에서 대남문방향으로 시선을 돌리면 가파른 암봉들이 이어져있다. 바로 앞에 보이는 용출봉에서 용혈봉, 증취봉, 나월봉, 나한봉 그리고 문수봉까지 험한 산행이 시작된다. 특히나 가사당암문에서 바라보이는 용출봉은 하얀 암벽이 솟구쳐 오른 고압적인 모습을 드러내보이며 한번 올라와 봐 하는 것같다.

성체가 워낙 작은 규모에다 암벽지대는 여장마져 세워지지 않아 때로는 성안길로 걷다가 성안길이 여의치 못하면 성벽위를 걸어오른다. 암문에서 사뭇 평탄한 길을 오르다가 용출봉 자락 아래부터는 말 그대로 험난하다. 스틱을 한 손에 잡고 다른 한 손으로 바위에 설치된 쇠줄을 잡고 거의 기어올라가야 한다. 힘을 쏟으며 암벽 사이로 난 쇠줄을 잡고 한참 씨름하다보면 어느덧 정상이다. 잠시 숨을 고르고 이내 용혈봉으로 산행을 이어간다. 용출봉 암릉길을 내려오다 보면 각기 다른 형상을 하고 서있는 바위를 볼 수 있다. 누워있는 물개가 백운봉을 향해 머리를 들고 포효하는 모습처럼 보이는 바위 옆에는 위아래가 분리된 두 개의 바위가 서있다. 그 사이에 용혈봉으로 오르는 좁은 바위길 등로가 보인다.

용혈봉에서 바라본 의상봉(뒤에 서있는 봉우리)과 용출봉

용혈봉에 올라 잠시 뒤를 돌아본다. 의상봉과 용출봉이 마치 이등변삼각형 두개를 세워놓은 것처럼 날카롭게 서있다. 그 사이에 가사당암문이 숨어있고 오른쪽에 가사당암문을 수비를 담당하던 승병이 기거하였다는 국녕사 법당 지붕이 살짝 보인다. 특히난 오를 때는 제대로 경사진 모습을 몰랐는데 여기서 보니 망루처럼 솟구쳐오른 용출봉이 예리하다. 봉우리 그자체가 단단한 천연성벽과 망루로서 손색이 없다. 누가 알려주지 않으면 북한산성 줄기라 알수 있을까?

증취봉과 나월봉 사이에 세워진 부왕동암문

네번째 성문 부왕동암문 주변은 소박한 여장 자취가 남아있다.
의상능선과 응봉능선 사이에는 원효대사가 지었다는 삼천사가 있어 통상 삼천사계곡으로 불리운다. 삼천사 계곡을 따라 오르다 증취봉과 나월봉 사이로 난 등로로 오르면 부왕동암문을 만날 수 있다. 시계를 보니 북한산성입구부터 여기까지 두시간, 가사당암문에서 40여분 걸렸다. 가사당암문에서 비록 1.1키로 정도 오르내리는데 40여분이나 걸렸다, 평지는 10분이면 족한데. 의상봉에서 증취봉까지는 거의 능선 바위길로 이어지고 증취봉을 내려와 암문까지 밋밋한 숲길로 이어지다 나월봉구간에서는 능선을 비껴 걷는다. 암봉이 좁고 높아 등로를 이어붙이기가 여의치 않고 산행 안전을 담보할 수 없어 봉우리 옆구리를 따라 오르내린다.

증취봉에서 부왕동암문 사이에 축성한 여장과 총안

한양도성 인왕산구간이나 남한산성을 가보면 축성 당시의 성첩과 성가퀴 모습을 그대로 볼 수 있는 있다. 특히 한양도성은 시대에 따라 성을 개축하는 방법이 달라 성돌의 크기와 성첩을 쌓아올린 모습이 확연히 차이가 난다. 하지만 성체 위에 올린 여장은 그 모습이 변하지 않았다. 타구와 타구 사이에 전투시 적의 공격을 효과적으로 방어하기 위하여 쌓아올린 여장은 세 개의 총안과 옥개석으로 구성되어 있다. 가장 늦게 축성된 북한산성은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돌을 그대로 쌓아올린 곳이 많다. 부왕동암문으로 내려가는 길에 주변 활석을 이용해 쌓아올린 여장의 모습이 앙증맞다. 자세히 들여다 보면 근총안, 원총안, 타구, 옥계석까지 갖출 건 다 가지고 있다.

나한봉에 새로 복원된 치성

나한봉정상에 치성이 복원되었네
나월봉을 비켜오르면 이내 나한봉에 이른다. 예전에는 나월봉에서 곧바로 남장대로 올라 청수동암문으로 가다보니 그냥 지나치던 봉우리였다. 그때의 기억으로 그냥 지나치려고 하는데 성체가 돌출된 모습 위로 산객들이 제법 보인다. 우회로로 가는 걸 접고 곧바로 나한봉으로 오른다. 나한봉 정상은 치성이 복원되어 있고 안내판이 치성에 대해 설명해준다. 

성곽에서 적의 주요 접근로나 방어상 중요한 지점에 지형상 잇점을 최대한 활용하여 성체를 돌출시켜 쌓게된다. 성체를 둥글게 만든 것은 곡장이라하는 데 한양도성 백악구간에서 찾아볼 수 있고, 사각형 구조물로 만든 것을 치성이라고 한다. 남한산성 연주옹성처럼 성밖으로 반원형의 작은 성을 덧대어 쌓아놓고 군사나 화포를 전진 배치한 성을 말한다. 

남장대에서 내려다보면 의상능선에 서있는 봉우리들이 모두 보인다.

나한봉에서 내려와 마주보이는 남장대까지 짧은 암릉을 오르면 의상능성에 솟아있는 봉우리를 가감없이 조망할 수 있다. 마치 무너지고개에서 바라보는 설악산 공룡능선처럼 누런 이빨을 드러낸 암봉이 연이어 서있다. 능선 끝자락의 의상봉이 예서 보니 오히려 밋밋하게 보인다.

의상능선 마지막 암문에 도착하다.
의상능선에 숨은 세 개의 성문 중 마지막 성문에 도착했다. 가사당암문을 출발해 2.2키로가량 되는 거리를 한시간 반만에 도착했다. 청수동암문은 한양도성과 연결되는 문이다. 인왕산구간에서 기차바위를 따라 내려오면 탕춘대성과 이어진다. 상명대학교를 뒤를 두르고 이어지는 탕춘대성은 비봉으로 연결되어 비봉능선 마지막 봉우리 문수봉으로 오른쪽으로 끼고 오르면 바로 청수동암문이다. 주말에 북한산을 오르면 으례 비봉과 사모바위를 거쳐 문수봉 암벽으로 기어오르거나 계곡길로 오르면 청수동암문을 거치게 되어 자주 만나던 성문인데 오늘은 의상봉으로 올라 만나게 되었다. 대남문에서 백운동암문까지 이어지는 길은 거의 평지 수준의 성안길이다. 북한산성 종주의 하이라이트를 지나왔으니 내쳐 마무리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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