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덕분에 익숙한 코스에서 이탈하다.
산행이 거의 일상이 되어버린 친구는 늘 새로운 코스를 선호한다. 고등학교에서 수학을 가르치고 이제는 정년퇴임한 친구는 하루가 멀다하게 산을 오른다. 친구는 산행을 다녀오면 그 감흥을 블로그에 남긴다. 친구 블로그(흐르는 물처럼 (tistory.com))를 찾아 가보지 못한 산에 대한 정보나 친구와 함께 한 산행을 반추할겸 자주 들러본다.
수도권 인근의 산중에서 예전에 가보았던 산이건만 이 친구를 따라가면 전혀 새로운 산으로 다가온다. 수락산이 그랬고, 검단산이 그랬고 관악산이 그랬다. 관악산은 친구따라 4번을 올랐는데 갈 때마다 산행 코스가 모두 다르다. 나는 어찌하여 가보았던 코스를 그다지도 반복해서 올랐던 걸까? 북한산, 도봉산, 검단산, 예봉산은 아마도 10번 이상씩은 올랐을텐데 거의가 같은 코스였다. 전에 비해 산을 찾는 빈도가 늘어난 만큼 친구와 더불어 익숙한 산행에서 벗어나보자.
대남문은 영조의 승은을 받고 신분이 바뀌었네
문수봉에서 비봉능선을 내려다 보며 한때 직장에서 받은 스트레스를 풀겸 이북오도청에서 비봉까지 가파른 등로를 자주 오르던 기억에 잠긴다. 사모바위를 지나 청수동암문길이 아닌 암벽길을 기어올라 저 아래 촛불처럼 서있는 바위 옆에 앉아 갈증을 축이던 생각이 피어오른다.
문수봉에서 성안길을 따라 내려오면 제법 웅장한 모습을 한 대남문과 마주한다. 영조가 창경궁에서 북한산성으로 행차할 때 내시 등에 업혀 대성문으로 들어왔다. 행궁을 둘러본 영조는 나갈 때 당시 소남문이었던 대남문으로 나가게 되자 임금이 지나간 문을 암문으로 둘 순 없어 문을 크게 만들고 문루를 올려 대남문으로 승격하였다고 한다.
이 과정에서 이미 반파되어 있던 북문 누각부재를 옮겨서 만들자는 의논이 실록에 남아있다. 한양도성의 북문에 해당하는 숙정문도 사실 대문으로서 역할을 거의하지 못하고 늘 닫혀있었듯이 북한산성의 북문도 대북문이라 대우를 받지 못하고 그냥 북문이라는 이름으로 거의 인적이 끊긴 상태로 서있다 대남문에게 문루를 빼앗기고 마는 비운을 맞는다. 이에 빈해 숭례문처럼 상궁이나 무수리가 아님에도 임금의 승은을 입어 품계가 소문에서 대문으로 격상되어 지금까지 북한산에서 사람들이 가장 많이 찾는 명소가 되었다.
북한산성의 정문인 대성문
궁궐의 정문을 동쪽이나 남쪽에 세우듯이 산성을 축성할 때도 사대문을 세우고 남쪽으로 정문을 낸다. 대동문 남쪽에 위치한 대성문이 바로 북한산성 정문인셈이다. 하지만 북한산성을 축성하고 청일전쟁이 일어날 때까지 조선은 이렇다할 전쟁을 치르지 않은데다 산세가 험준해 임금이 북한산성을 찾았다는 기록도 많지않다. 산성이 준공되자 숙종은 비교적 평탄한 곳에 서있는 대서문으로 행차하였고, 영조만이 대성문으로 엎혀서 들어왔다고 한다.
대남문에서 준비해간 커피와 비스켓으로 입가심을 하고 종주를 이어간다. 대남문에서 성벽을 따라 걸어도 되지만 영조가 행차한 길을 따라가기 위해 대성문으로 이어지는 성안길로 가기로 한다. 대남문과 대성문 그리고 행궁까지 연결되는 길은 다른 등로에 비해 비교적 잘 닦인 길이다. 축성 당시에 땅을 골라놓은 것이 지금까지 유지된걸까?
대남문에서 용암문까지 이어지는 산성 동남쪽은 의상능선처럼 날카롭게 솟아있는 암봉도 없이 밋밋한 능선으로 이어지고 그 능선에는 현대에 와서 개축한 산성이 그 저습을 드러낸 채 이어지고 있다. 산성 안쪽으로 이어진 성안길보다 성 내에 이어진 길을 걸으면 한결 힘들이지 않고 산행을 이어갈 수 있다. 더구나 성문도 비교적 촘촘히 들어서 있어 산성길 종주하는 산객에게는 심심함마져 덜어준다.
지금 북한산성에는 성문 개축이 한창?
대성문을 지나 야트막한 능선으로 이어지는 성벽길을 걷다보면 연이어 두개의 성문이 공사중이다. 보국문과 대동문이 헐리고 다시 세워지고 있다. 남한산성에서 가장 슬픈 내력을 간직하고 있는 북문인 전승문도 현재 공사중인데 여기도 두 개의 성문이 헐려서 공사장으로 변해있다. 정릉이나 칼바위능선을 타고 오르면 만나게 되는 보국문은 원래 동암문이었으나 성문 아래에 보국사가 창건되면서 이름이 보국문으로 바뀌었다. 수유리 4.19묘역에서 출발하거나 우이동에서 진달래능선을 따라 오르면 대동문에서 만나게 되고 대동문 안쪽은 넓은 광장이 있어 북한산에 오른 산객들이 모여앉아 휴식을 갖는 휴계소였으나 성문이 공사중이라 산객들이 별로 없다.
북한산성 종주 네시간만에 10번째 성문, 용암문에 도착용암문은 북한산성의 대동문 북쪽에 있는 암문으로, 산성이 축성된 1711년(숙종 37년)에 지어졌다. 용암봉 아래에 있어서 용암봉암문이라고도 부르며 우이동으로 통하는 관문이다. 용암문부터는 서서히 노적봉과 만경대 사이 로 난 등로를 타고 올라야 한다. 노적봉 갈림길이 가까워지면서 등로엔 크고 작은 돌들이 많아 산행이 불편하다.
노적봉갈림길부터는 만경대 등허리로 난 암벽지대를 지나야 하는데 전과 달리 철계단을 설치해 그다지 어렵지 않게 오른다. 철계단을 지나면 다소 평탄한 암릉길이 나오는데 여기가 북한산 베스트 포토존이라 말하고 싶다. 가을이 무르익어 단풍이 산자락 아래부터 타고 오를 때 여기서 산 아래를 굽어보면 정말 아름답다. 기린봉과 염초봉 사이로 흐르는 계곡에 울긋불긋 타오르는 단풍과 푸른 물이 뚝뚝 떨어질것만 같은 파란 하늘이 그려내는 한폭의 풍경화는 가히 절경이라 할 수 있다.
종주신행에 백운대를 넣어야 하나?
이번엔 북한산 정상이 서있는 백운대로 눈을 돌리니 자못 웅장한 암봉이 거침없이 시야를 꽉 채운다. 정상에는 태극기가 휘날리며 정상인증을 개념해주고 정상을 향해 오르는 산객들이 오른쪽 암벽에 줄지어 있다. 산성종주를 할 때마다 맞딱뜨리는 고민이 다시 고개를 쳐든다. 백운대까지 찍고 내려오면 시간과 체력을 감당할 수 있을까? 백운봉암문에서 백운대 정상을 찍고 내려오려면 적어도 한시간 가량을 투자해야 한다. 시간이 넉넉하더라도 체략이 문제가 된다. 이따금 왼쪽 허벅지에 스멀스멀 쥐가 오르기도 하는 마당에 산성에서 비껴서있는 백운대를 교통체증까지 빚고 있는데 굳이 줄지어 올라야 하나?
이전에 왔을 때는 위문, 이번엔 백운봉암문
결국 백운봉암문에서 결정하였다, 오르지않고 바로 북문으로 내려가기로. 북한산에서 가장 붐비는 교차로인 백운봉암문은 백운대를 오르려면 어쩔수 없이 지나야 하기에 동서남북에서 모여든 산객이 모두 여기서 만나게 된다. 축성 당시에 백운봉암문이었다가 일제가 위문으로 고쳐부르던걸 다시 원래 이름으로 되찾았다 이제 13개 성문 중에서 두개가 남았다.
북한산성에서 대문 대접이 소홀한 북문
산성에는 6개의 대문, 7개의 암문 그리고 1개의 수문이 있다. 대서문, 중성문, 대남문, 대성문, 대동문 그리고 북문까지 6개의 대문인데 유독 북문만이 대자가 붙여지지 않았다. 다구나 축성된지 30년도 되지 않아 문루가 대남문에게 빼앗기나니 명맥만 붙어있는 대문이다.
백운봉암문에서 절벽처럼 가파른 하산길을 따라 한참을 내려오다보면 대동사와 상운사로 들어가는 길이 나온다. 이 길을 따라 절집 앞을 지나면 ’등산로 없음‘ 이라는 안내판이 나온다. 사찰 경내로 들어가지 않고 가던 길을 이어가면 북문으로 오르는 길과 만난다.
북문에서 왼쪽으로 돌아 성체를 따라오르면 얼마지나지 않아 편평한 너럭바위로 이루어진 원효봉이 탁트인 시계를 자랑하며 반긴다. 백운대를 위시해 서있는 노적봉, 만경대, 염초봉이 솟아있고 봉우리들 오른쪽으로는 아침부터 내쳐 걸어온 북한산 주능선이 의상봉까지 이어져 달린다.
장쾌한 조망에 취한 나머지 오늘은 한번도 풀샷으로 찍은 사진이 없어 산객에게 조심스레 사진 한장을 부탁해 본다. 7개 암문 중에서 마지막 암문을 찍으면 오늘 산성 종주를 완성하기에 발길을 원효봉이 잡아둘 수가 없다.
서암문에서 북한산성 13성문 환종주를 완성하다.
여느 앞문과 마찬가지로 성문 상부에 문루매를 마련하지 않았다. 대부분의 암문 출입구가 네모난 형태를 보이는데 서암문은 외관상 무지개 모양의 홍예 형태를 띠고 있다. 서암문은 성내에서 생긴 시신 물을 내보내는 문이라 해 시구문으로 불리웠는데 중성문 옆에 서있는 시구문에
갑자기 새벽에 일찍 눈이 떠지는 바람에 제대로 준비도 하지않은채 시작한 북한산성 13성문 종주를 거의 7시간만에 무사히 완성한다. 의상능선을 오를 때 이따금씩 햄스트링에 무리가 온 것처럼 불편하기도 했고, 북문을 오를 때는 허벅지에 쥐가 오르기도 하였으나 어쨌든 완주하고 시원하다. 이로서 한양도성, 남한산성 그리고 북한산성까지 한양에 세워진 도성과 산성 3종세트를 완성하였다. 완성하고 보니 별책부록이 남아있다. 봄이 오는 길목에 화성행궁으로 나들이 나서 별책부록까지 마무리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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