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따라 밀양 구만산행에 나선다
엊그제가 중복이다. 월초엔 장마가 온나라를 덮고 있어 그나마 더위를 견딜만했다. 여기저기 수해로 고통을 받고 계신분들에게 면구스런 얘기라 속으로만 그렇게 생각했다. 장마가 물러간 한반도는 말그대로 용광로다. 야외할동을 자제하라는 정부와 지자체의 경보가 휴대폰을 달구고 있는데 우리는 짐을 꾸려 울산으로 내려갔다.
울산에서 1년간 시설공사 감리차 파견내려간 친구가 파견이 끝나기 전에 내려와 놀다 가란다고 성화다. 지난 봄에 준비했다가 코로나로 두번이나 연기한 터라 더는 미룰 수가 없다. 수서에서 SRT로 울산까지 2시간 반이면 족하니 세상이 좁아진게 아니라 세상이 자꾸 빨라지고 있다.
울산역에서 우리를 픽업한 감리친구는 몇년 사이에 중산꾼이 다됐다. 우리의 산행리더 친구를 따라 여기저기 산을 좇아다니더니 이제는 산행 얘기가 나오면 샨행리더와 거의 티티카카수준이다. 특히나 밀양, 울산, 울주 그리고 청도에 걸쳐있는 영남알프스에 대해선 산행리더와 맞잡이 수준에 이른다. 왠지 오늘따라 소외된 느낌?
오늘은 밀양이 숨겨놓은 구만산을 오르기로 했다. 구만암입구에서 오른쪽 능선길을 타고 정상에 오른 다음, 구만폭포를 지나 구만굴까지 찍고 원점으로 회귀하는 환상코스다. 구만산 높이가 북한산 백운대보다도 아래라는 생각에 스틱도 안챙기며 가벼운 뒷동산 산책쯤으로 준비했다. 산행리더, 감리친구와 구만암 입구 한적한 도로 옆에 주차를 하고 본격적인 산행에 나선다.
출발 전에 함께 등산 인증사진을 찍고 도로를 따라 산행에 오른다. 구만암까지는 약간의 오름을 가진 도로를 걷는다. 구만암 앞까지 그다지 길지 않은 길인데 벌써 땀구멍은 최대수위로 열어버린 듯 줄줄 땀이 얼굴 위로 흘러내린다.
오른쪽으로 길을 잡고 오른다. 감리친구는 지난 봄에 왼쪽으로 난 길을 잡아 정상을 찍고 도로 같은 길로 내려오느라 무척이나 지루했다고 푸념섞인 경험을 내놓는다. 우리나라 산이라고 붙여진 데는 안가본데가 거의 없는 산행리더는 구만산이 처음이란다. 아마 그래서 이번 산행을 이곳으로 잡았나보다.
삼복지간엔 입술에 달린 밥알도 무겁다지 않는가!
헌데 산행들머리부터 오름강도가 장난이 아니다. 경사가 급하다보니 등로가 지그재그로 나있다. 지그재그 산길이 마치 스키활강하듯 짧게 끊어서 돌아가니 처음엔 그다지 힘이 든다는 느낌이 없었는데 시간이 갈수록 쏟아낸 땀만큼이나 체력이 하강하고 있는거 같다. 자꾸 위를 올려다 봐도 능선길은 멀었는지 무성한 나무가지만 보이고 하얀 하늘은 감감하다.
목도 축이고 호흡도 고를겸 잠시 쉬어본다. 그동안 산행을 하면서 되도록이면 앉아서 휴식하는걸 되도록 피해왔었다. 앉았다가 다시 일어나 산행을 재개하면 서서 휴식을 가질 때보다 힘이 더들고 근육이 풀리는 경우가 있어 느리게 걸으면서 휴식을 되도록 정상에서 갖는 방식에 익숙하려고 했다. 헌데 오늘은 다리가 풀리는 느낌이다.
결국 능선 분기점에 오르자마자 주저앉아 버린다. 어느핸가 불볕을 뚫고 북한산을 오르다 1시간만에 쫒기듯 내려온 기억이 난다. 거의 더위를 곱배기로 먹은 것처럼 한동안 두통에 고생하였었다. 그리고 지난 6.25 한양도성 순성종주하다가 더위와 근육경련으로 중도 하산한 경험에 비추어 내 몸은 더위에 취약한건 아닐까? 산행을 중단하겠다는 나를 다독이며 기다려준다. 준비해간 수박화채와 빵으로 요기하고 다시 힘을 내본다.
산행리더는 달리 리더인가? 나에게 휴식과 취식을 권하면서 상태를 면밀히 살폈나보다. 아침을 거르고 산에 오르면서 땀을 많이 흘려 그런거니 요기를 하고 쉬면 괜찮아질꺼란다. 10분가량의 휴식과 취식을 마치고 다시 산행을 이어가는 데 방전된 체력이 다소나마 회복된 느낌이다. 능선길이라 오르내림도 거의 없고 정상까지 대략 3.1키로 정도는 가볼만하다.
구만산에 구만명이 피신해왔다?
지루하게 이어지는 능선길은 정상이 종착역이다. 언제나정상에 도달하는 순간은 망각의 시작이다. 언제 그랬냐는듯이 산행의 고통을 깡그리 잊어바리고 기쁨에 도취한다. 마치 환각제라도 맞은것처럼. 그런 마성이 사람들을 산으로 잡아끄나보다. 능선분기점에서 그냥 내려갔으면 어쩔뻔했나싶게 마냥 즐겁다. 각자가 준비해온 간식으로 정상식을 마치고 하산길에 오른다.
해발 784미터 구만산은 이름 그대로 구만명이 임진란을 피했다고 한다. 율곡은 임진란이 일어날 것을 예견하고 십만양병설을 주장하였다고 한다. 이곳으로 피신온 9만명에 만명만 더해 군사를 키웠다면 감히 왜군이 이 강산을 유린하진 못하였을텐데 하는 생각을 하면서 돌길을 조심스레 내려간다. 아래를 내려다 보니 산이 품고있는 깎아지른듯한 절벽사이로 난 깊은 계곡으로 전란을 피해 들어와 살았다는 조상들의 얘기가 맞았다는 생각이 든다. 정상에서 하산하며 내려다보니 높지않은 산임에도 빼어난 산세와 깊은 계곡이 여늬 명산에 뒤지지않는다. 저 아래 높이 치솟은 암벽 봉우리는 우리를 보고 ‘이만하면 자못 명산이지않소?’ 한다.
험한 돌길을 조심스레 내려오는데 경사를 이기지 못한 등산로는 아예 철계단으로 바뀐다. 철계단도 지그재그로 나있을만큼 경사가 대단하다. 계단을 내려오고서야 그 이유를 단박에 알았다. 40여미터 낙폭을 자랑하는 구만폭포에 이르는 길이었다. 갈수기에도 물줄기가 살아있을 정도로 풍부한 수량을 자랑하는 구만폭포가 계곡 깊숙한 곳에 숨어있다. 구만명의 피난민은 아마도 여기에 숨어 지내지 않았을까? 구만암에서 이곳 구만폭포까지는 좁고 깊은 계곡이 길게 패여있다. 그래서 여기 계곡을 통수골이라고 불린다.
산행 들머리부터 시작한 격한 오름에 거의 방전되다시피 한 체력을 차고 깊은 용소에 몸을 담그면서 한꺼번 싹~~ 날려버린다. 조심스레 용소의 깊이를 가늠해보니 한길 깊이에 미치지 못한다. 두 세번의 발차기면 폭포 아래에 설 수 있기에 쏟아져 내리는 폭포에 등짝을 내맡기고 물맞이를 해본다. 난생처음 가져보는 폭포수 물맞이다. 내장까지 시원하게 뚫어주는 맛이 정말 맞이보지 않고는 그 맛을 알 수가 없으리라.
물맞이와 알탕으로 서늘해진 몸을 추르려 하산길에 오른다. 게곡을 따라 구만암까지 이어지는 길은 때로 개울을 건너기도 하고, 다듬어지지 않은 돌들이 밭을 이루는 너달지대를 한동안 걷기도 한다. 좁고 긴 계곡을 얼마나 내려갔는지 식어있던 몸이 다시 더위에 달궈지고 마침내 땀으로 얼룩진다.
구만굴에서 산행의 대미를 얻다.
하산이 끝나갈 무렵 길이 갈라진다. 오른쪽 길을 따라 제법 올라가니 구만굴이 나온다. 안내판을 대신해 출입을 막는 줄이 쳐져있다. 굴에서 사람이 떨어지는 사고가 있었다는 산행리더의 설명이다.
굴안에서 잠시 휴식을 겸해 모델이 되어본다. 요즘 이태리 돌로미티여행을 준비하고 있다. 돌로미티에 있는 트레치메에도 여기처럼 굴 안에서 멋진 사진을 얻을 수 있는 굴이 있다. 거길 연상하며 몇 컷을 더 연습해본다.
거의 7시간에 걸친 산행을 마무리한다. 산행 들머리부터 시작된 가파른 오름길에서 기진맥진해 예정된 코스를 완주할 수 있을까 싶었던 구만산 환상종주를 완성할 수 있었던 힘은 무엇이었나? 그 답 대신 동행한 친구들에게 근처 마트에서 이이스크림을 사주는 걸로 갈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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