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06. 14. 이른 아침에 맞는 한적한? 피렌체의 거리
피렌체에서 베네치아 가는 이딸로열차시간이 10:39이다. 숙소에서 중앙역까지는 걸어서 20분, 버스로 15분 거리다. 우리는 아침 일찍 일어나 하루 반나절로 아쉬운 피렌체를 다시 둘러보고자 숙소를 나섰다. 이른 아침이어선지 관광인파로 몸살을 앓던 두오모성당 주변이 한산하다. 어제 돌아본 길을 되짚어 다시 천천히 걸어본다. 브루넬레스키도 다시 찾아보고 시뇨리아 광장에서 다비드의 부릅뜬 눈과 돌을 잡고 있는 오른손을 유심히 바라본다.
우피치 미술관을 지나 베키오다리로 향한다. 로마처럼 피렌체도 사람들이 많이 몰리는 곳은 되도록 이른 아침시간에 방문해야 여유롭게 사진도 찍고 즐길 수 있다. 베키오다리 위에 상점들은 아직 문을 열지 않아 오리려 적적할 정도다. 원래 베키오다리 양 옆에는 푸줏간과 가죽 상점들이 있었는데 메디치가문이 별장이 있는 피티궁정을 갈 때마다 악취가 진동을 해 보석상으로 바꾸었다고 한다. 지금도 금은보석과 명품시계를 판매하는 상점들이 주로 보인다.
그 많은 전통 유적들에서도 당당한 멧돼지
베키오다리에서 피렌체 전통시장으로 발길을 돌린다. 전통시장은 베키오다리에서 레플리카광장을 가다 보면 나온다. 중앙시장에 비해 피렌체 전통시장은 피렌체 주민들이 자주 찾는 시장인데 여기에 피렌체 명물이 있다고 한다. 침을 질질 흘리고 앉아있는 멧돼지동상인데 혓바닥에 동전을 올려놓고 떨어뜨려 철망 안으로 들어가면 행운이 온다고 한다. 사실 여길 찾기가 쉽지 않아 시장 근처에서 마침 장사를 준비하는 분에게 사진을 보여주고 위치를 물어 겨우 찾았다. 피렌체엔 문화유적이 차고 넘치는데 이 멧돼지는 어떤 행운을 잡았기에 관광객을 불러 모으는 것일까?
멧돼지 코를 쓰다듬으며 행운을 빌고 이내 자리를 떴다. 베네치아로 떠나려면 준비할 시간이 많이 필요한 아내는 숙소로 들여보내고 나는 다시 미켈란젤로언덕을 향해 잰걸음으로 출발한다. 열차 시간에 맞추려면 왕복 한 시간 내에 다녀와야 한다. 구글맵으로 예측한 소요시간은 왕복해 50분 남짓 걸린다. 역시나 언덕 위 광장엔 사람들이 별로 없다. 황동 다비드상이 피렌체 시내를 째려보고 서있다. 아침 시간에 바라보는 피렌체의 말쑥한 모습을 보고 싶어 땀을 쏟으며 올라왔는데 역시나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피렌체와 베네치아에서 무임승차는 꿈도 꾸지 말길
준비를 마치고 숙소 바로 앞에 있는 버스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린다. 피렌체 중앙역까진 15분가량 걸린다고 하지만 넉넉하게 시간을 잡고 내려왔다. 하지만 구글맵에서 안내하는 버스는 올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거의 50분가량을 남기고 정류장에 도착했는데 시간이 자꾸 흘러 30분 겨우 남았다. 우리가 조바심을 내며 버스가 오는 곳을 자꾸 쳐다보니 함께 기다리던 일행이 조금 5분 뒤에 온다고 한다. 기다리던 14번 버스를 겨우 올라타 안도하며 서있는데 우리에게 버스가 온다는 걸 알려준 두 사람은 바로 버스승차권 검표원이었다. 만약 우리가 승차권 없이 탑승했다면 꼼짝없이 목돈이 나갈 뻔했다.
이딸로야 제발 연착 좀 해다오
버스는 중앙시장을 지나 10:30분 중앙역 바로 앞 정류장을 지난다. 헌데 버스는 정류장을 그냥 지나친다. 문을 두드리며 내려 세워달라고 하는데 옆에 있던 분이 여긴 버스가 서는 곳이 아니란다. 열차시간은 10:39이고 ITALO 고속열차는 지연되는 경우가 거의 없다고 하는데 걱정이다. 10:36분 산타마리아 노벨라성당 앞에서 버스가 서자마자 우리는 아무 생각없이 중앙역으로 달린다. 캐리어가 이리저리 기우뚱거리고, 가슴에 숨은 차오르고... 아내에게 내가 먼저 가서 열차 플랫폼을 찾아서 알려주기로 하고 마치 백 미터 달리기 하는 선수처럼 정신없이 뛰었다. 그러면서 뒤에 뛰어오는 아내 위치도 놓치지 않으며...
결국 우리는 열차를 탈 수 있었다. 눈썹을 휘날려가며 달린 덕분이 아니라, 열차가 5분 지연되는 바람에. 전광판에 우리가 탑승할 열차번호를 확인하니 8번 플랫폼이다. 대합실과 플랫폼사이에 많은 승객들이 밀집해 있어 자칫하면 아내를 놓칠 수도 있기에 플랫폼으로 들어가는 개찰구에서 아내를 기다린다. 그러는 한편, 플랫폼을 바라보니 탑승하려는 승객들이 제법 많이 기다리고 있다. 우리가 탈 객차 앞에 당도하여 가쁜 숨을 고르며 전광판을 바라본다. 5분 지연이라는 안내 멘트가 있다. 만약 우리가 열차를 타지 못하였다면 40% 할인된 발권한 요금은 100% 손실이고, 정가의 요금으로 다음 열차 승차권을 사는 도리밖에 없었다. 정말 하느님이 보우하사.....
우리는 왜 베네치아에선 항상 반나절 투어만 할까!
베네치아에 도착해 숙소에서 체크인을 마치고 본격적인 수상도시 투어에 나선다. 아내는 처음이지만 내게는 두 번째 방문이다. 2001년 2월 아이들 둘을 데리고 서유럽 4개국 자유여행 때에도 반나절을 이곳에서 보냈다. 로마에서 심야열차를 타고 산타루치아역에 이른 아침 도착하여 점심 무렵까지 머물다 스위스 인터라켄으로 출발했다. 이번 여행도 오후시간 동안 이곳을 여행하고 내일 아침 일찍 스위스가 아닌 돌로미티로 출발한다. 베네치아에도 볼거리와 할 거리가 무척 많지만 우리에겐 알프스를 방문하는 거점도시 그 이상의 의미를 갖지 못하나 보다. 지난번엔 인터라켄의 융프라우에 밀리고 이번엔 돌로미티에 밀렸다. 하긴 베네치아는 수용능력을 초과해 밀려드는 관광객들이 반갑지 않나 보다. 이젠 관광세마저 징수하니...
산타루치아역 앞에 있는 수상버스를 타지 않고 왼쪽으로 이어진 골목골목을 따라 걸어간다. 때로는 앙증맞은 홍예다리를 건너며 사람들 사이를 마치 헤집듯이 걸어간다. 좁디좁은 골목 운하에는 승객을 태운 곤돌라가 유유히 흘러가고 있다. 맨 먼저 목표한 리알토다리에 도착한다. 운하를 가로지르는 다리 중에서 가장 유명한 다리로 베네치아에 오면 무조건 방문하는 다리다.
따가운 햇살을 뚫고 걸어가길 1시간가량. 리알토 다리아래 젤라토가게가 눈에 들어온다. 출출해진 목을 달래려 젤라또를 주문해 그늘진 자리에서 먹는다. 좁은 골목길이 많아 햇살을 바로 받지 않기도 하지만 여름 초입으로 들어선 날씨는 걸어가는 발목을 무겁게 한다. 곤돌라 옆구리에서 흘러내리는 초콜릿을 보니 입에 군침마저 돈다.
아쿠아 서점이 베네치아 새 명소?
리알토다리에서 요즘 새롭게 떠오르는 핫 포인트로 방향을 잡는다. 베네치아 하면 운하, 물의 도시, 리알토다리, 산마르코광장 등의 연관 검색어가 떠오른다. 촤근들어 이런 고전적인 의미가 식상한 여행객들 사이엔 소도시 걷기, 한달살기와 같은 새로운 트렌드가 자리잡고 있다.
베네치아를 상징하는 유적과 명소에선 벗어나 있지만 다소 의외의 핫 포인트가 있다. 바로 리브레리아 아쿠아서점이다. 서점 입구를 들어서면 알방통행의 좁은 통로 끝에 물에 침수된 고서적으로 쌓아놓은 계단이 나온다.
그리고 출구 쪽으로 나가다 보면 양 옆으로 물에 빠졌던 고서적들이 꽉 들어차 있다. 물론 서점 본연의 역할인 책과 기념품을 팔고 있다. 특히 고양이와 관련된 책이나 기념품이 유독 많다.
베네치아에서 두 번째로 유명한 다리, 탄식의 다리
아쿠아서점에서 바다로 곧장 뻗은 길을 따라가면 리도섬이 바라보이는 바다가 나온다. 운하를 흐르는 조용한 물결이 바다와 만나며 제법 속을 울렁이게 하는 너울로 바꿘다. 해변길에 사람들이 잔뜩 몰려있다. 탄식의 다리를 배경으로 인증샷을 남기려는 사람들이다.
두칼레궁정과 감방을 연결하는 다리인데 일단 감방에 수감되면 더 이상 바깥세상으로 나올 수 없는 철옹성이어서 죄수들 입에서 탄식을 불러오자 영국의 유명시인 바이런이 이렇게 불렀다고 전한다. 하지만 이 다리는 바이런의 명명보다 희대의 바람둥이 카사노바가 그 철옹성을 뚫고 탈출해서 더 유명해졌다?
유럽의 응접실 산미르코광장에 아쿠아 알타가
과거 베네치아공화국의 정치, 경제, 문화의 중심으로 자리잡은 산 마르코광장엔 산 마르코대성당 앞에 열주로 장식된 2층 건물이 둘러싸고 있다. 광장 안으로 들어서면 마치 거대한 홀에 들어온듯하다. ‘광장을 덮을 수 있는 지붕은 오직 하늘밖에 없다’는 나폴레옹 말에 고개를 끄덕이게 한다.
공장에 들어서니 여기저기 물이 고여있다. 물이 고여있는 자리를 자세히 보니 한 곳에서 거품을 일으키며 물이 솟아오른다. 베네치아는 11월부터 4월까지 만조 때에 물이 차오르는 현상이 반복되는 대 이를 아쿠아 알타라고 부른다. 6월 중순인데도 물이 차오르는 모습을 직접 보게 된다.
겨우 반나절 시간을 낸 우리에게 이런 진기한 현상을 보여주는 걸 보니 더 머물러야 할 모양이다.
산마르코 광장에 오면 카페 플로리안에서 차 한잔?
광장을 둘러싸고 있는 건물 1층엔 유명한 카페들이 음악을 연주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가장 오랜 역사를 지닌 카페 플로리안은 1720년에 문을 열고 지금까지 영업을 하고 있다고 한다. 마침 저녁시간을 알리듯 배에서 신호가 온다. 가벼운 메뉴로 식사를 주문해 카페의 분위기에 젖어본다.
아쉬운 베네치아 일정은 아카데미 다리에서 마무리
식사를 마치고 숙소로 돌아가야 할 시간이다. 돌아가는 길은 아카데미다리를 건너 지름길로 잡는다. 나무로 된 아카데미 다리 위에서 산타 마리아 델라 살루테 성당을 바라보는 경치가 압권이다. 시간이 된다면 석양에 물들고 있는 성당의 황홀한 모습까지 보고 싶은데 아침부터 한 강행군으로 체력이 바닥이다.
아내에게 베네치아 명물 곤돌라를 한번 타보자고 하니 물이 무섭단다. 곤돌라 가격은 90유로 정액제라 4인이 타면 상대적으로 가격 부담이 적다. 함께 승선할 팀을 찾기가 쉽지 않다. 결국 산타 루치아역으로 돌아와 숙소가 있는 메스트레로 가는 전철에 오른다. 전철에 오르니 객실 천장에는 여행기간 내내 우리를 긴장케 하는 소매치기를 조심하라는 안내표지를 걸려있다. 언제나 안심하고 여행을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며 오늘 일정을 마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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