뒷마무리를 하지 못해 늘 찜찜한 게 하나 있다.
자전거로 출퇴근하는 소위 자출생활이 자리 잡혀 갈 때쯤 4대 강에 자전거길이 조성되고 4대강 자전거종주가 라이더들에겐 꼭 넘어가야만 하는 통과의례가 될 즈음, 나도 거기에 동참하였다.
한강, 북한강, 새재, 금강 그리고 영산강까지 종주 라이딩에다 안동댐에서 상주 상풍교 구간까지 완성하고 대망의 낙동강구간을 남겨놓았을 때 갑자기 자출을 하지 못하는 상황에 직면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자전거를 볼 때마다 남겨진 낙동강구간에 대한 아쉬움으로 풀지 못한 매듭처럼 답답한 마음이 울컥거린다.
그러다가 최근 들어 다시 자출을 시작하게 되었다. 처음엔 집에서 4킬로 남짓한 지름길로 출퇴근하다가 시월초부터 한강 잔차길을 이용한 우회길을 이용하니 편도 20킬로가 된다. 아침저녁으로 편도 20킬로 자출을 하면서 스멀스멀 낙동강종주 숙제가 고개를 들고 언제 할 거냐며 시비를 걸어오는 거 같다.
결국 숙제를 해치우기로 했다. 10월 마지막주 토, 일 이틀 동안 상주보에서 낙동강하구둑까지 300여 킬로 낙동강종주를 감행키로 결정하였다. 결정과 함께 오래된 클릿슈즈를 버리고 새것으로 장만했다. 페달링을 할 때마다 틱, 틱 하는 잡소리도 실력 있는 미케닉샾에서 잡았다. 이제 남은 건 엔진능력을 점검할 차례다.
2024. 10. 19. 10:20 ~ 17:00 한강 환종주 라이딩
엔진을 점검키 위해 한강을 한 바퀴 도는 환종주를 오랜만에 도전해 보기로 했다. 장거리라이딩 종주를 하려면 체력안배와 구간단위로 라이딩과 휴식 그리고 영양섭취를 위한 플랜이 있어야 한다. 그래서 25킬로마다 휴식을 가지면서 수분과 영양을 공급키로 했다. 아울러 때때로 올라오는 경쟁라이딩이 가져올 페이스 오버는 하지 말자고 다짐한다.
10여 년 전에 구입한 클릿신발이 낡고 바닥이 벌어져 거금(?)을 투자해 새로 장만했다. 옴팡진 모습으로 날 기다리는 클릿신발을 조이고 헬맷을 착용하면서 라이딩 준비 끝! 아파트 단지 옆 공원에 터주대감처럼 서있는 400년 보호수에 인사를 올리고 한강으로 출발한다.
제1구간, 감일동에서 팔당대교까지 26킬로
마을에서 이내 성내천 자전거길로 들어선다. 아침시간이라 길바닥이 어제 내린 비가 마르지 않아 축축하다. 일직선으로 곧게 뻗은 풍납동의 둑방길은 양 옆에 벚나무가 그늘을 드리워준다. 매년 봄이면 벚꽃이 짧은 개화를 마치고 길 위를 눈처럼 덮어준다. 이 길 끄트머리 내림길은 한강 잔차길로 이어준다.
한강길 환종주는 두 개의 업힐 구간을 갖고 있다. 하나는 구리암사대교 아래를 치고 올라가는 암사동 업힐이고 나머지 하나는 한강 너머 덕소에서 구리로 넘어가는 길에 있다. 업힐에 클릿의 도움을 받아볼 겸 끌어올리는 페달질도 해본다. 경사가 심하지 않아 별 어려움 없이 꼭지점을 통과하면 오를 때 쏟은 힘을 재충전하는 다운힐을 만끽한다. 자칫 사고의 위험이 있어 앞을 주시하면 속도를 제어한다.
미사리 자전거 전용도로와 팔당대교를 지나 대교 아래 자전거 쉼터에 도착한다. 오랜만에 나선 긴 라이딩 첫 구간 기착지에 도착해 귤 한 개와 따스한 커피 한 모금으로 휴식을 가져본다. 이렇게 25킬로 단위로 4번 휴식하고 달리면 5개 구간을 통과할 게고 총 125킬로 정도 거리를 소요시간은 5시간 반정도?
내겐 어떤 취미가 있을까?
자식보다 자네가 좋고
돈보다 자네가 좋아~~
자네와 난 보약같은 친구야~~~”
쉼터에 마련된 무대에서 부부가 앰프, 스피커, 전자 악보를 제대로 갖춰놓고 행복하게 진시몬의 보약 같은 친구를 연주하고 있다. 연주가 끝나자 엄지척과 함께 박수를 보낸다 마냥 앉아서 연주를 감상하고 싶지만 갈 길이 멀어 이내 출발한다.
덕소대교를 지날 때까지 머릿속엔 아까 색소폰을 연주하는 모습과 노래가사가 맴돈다. 그러면서 내겐 어떤 취미가 있을까? 하는 물음이 생각의 끄트머리에서 떨어지지 않고 계속 매달린다.
‘마냥 즐겁고, 자주 할 수 있는 게 무얼까? 그리고 다른 사람보다 조금은 잘할 수 있는 게 무얼까?’ 하는 생각을 하다 머리를 흔든다.
‘취미는 전적으로 내가 좋아하고, 하고 있는 과정에서 즐거우면 되는 거야!
혼자일 때는 도서관에서 책을 읽고, 이렇게 자전거를 타고, 또 친구들과 함께 산에도 가고, 마나님과 함께 둘레길도 걷고 이따금 일출, 일몰이 보고 싶으면 사진길 들고 나와 사진도 찍고 그런 걸 블로그에 기록으로 남기는 걸 좋아하니 그게 내 취민겨! 꼭 잘해야만 할 필요는 없잖어?‘
제2구간, 팔당에서 용비쉼터까지 26킬로
색소폰 연주에 매료돼 한참을 취미와 논쟁을 하다 보니 미음나루 업힐구간으로 접어든다. 구리로 넘어가는 이 구간은 경사도가 제법 있어 가쁜 숨을 헉헉대며 허벅지에 남은 힘을 거의 소진할 즈음에야 겨우 올라갈 수 있다. 이전에는 끌바의 유혹이 전혀 작동치 않았는데 그동안 잔차용 근육이 모두 사라져버린 탓일까, 자꾸 내려서 걸어가고 싶은 생각이 올라오는 걸 인식할 정도가 되었다. 그래도 아직까진 끌바를 해야 할 정도로 쇠약하지 않으니 다행이다 싶은 생각을 하며 정상에서 물 한 모금 먹고 이내 출발한다. 다음엔 근처에 있는 대원군의 서원철폐의 첫 번째 철퇴를 맞은 석실서원과 태종의 행동대장으로 이름을 날린 조말생묘역을 둘러보자...
남양주와 구리를 경계하는 왕숙천을 건너 구리시계로 들어서면서 가을축제 분위기다. 구리시가 조성한 넓고 긴 코스모스단지옆 자전거길에 축제를 즐기는 사람들이 많아 속도를 낼 수가 없다. 나도 잠시 쉬면서 코스모스를 한 컷 찍어본다.
코스모스공원에서 눈을 돌리면 한강을 건너는 30번째 다리가 준공을 위해 막바지 공사 중이다. 준공이 임박해 오는데 다리 이름울 두고 구리시와 강동구가 양보없는 대치를 계속하고 있다. 지명을 빼고 ‘서른 다리’로 하면 안 될런가? 서른 번째 다리란 의미로. 일설에 한강에 놓인 다리 중 가장 긴 사장교라고 한다.
뚝섬유원지 끄트머리에 자전거인증센터가 서있다. 다음 주 낙동강종주 구간 내내 저 인증센터 10곳을 지나며 스탬프를 찍어야 끝이 난다. 인증센터 한 곳을 지날 때마다 어떤 마음일까? 중랑천이 한강과 합류하는 곳에 용비쉼터가 있다. 두 번째 구간을 여기서 마치고 잠시 휴식.
재3구간, 용비쉼터에서 행주산성까지
용비쉼터에서 출발해 잠수교를 거쳐 이촌동 한강공원을 지나는데 지난번 한강 불꽃축제가 떠오른다. 한화그룹이 주최하고 서울시가 지원하는 불꽃축제는 서울시민에게 보기 드문 볼거리 중 하나로 꼽힌다. 해마다 사진기와 삼각대를 챙겨 와 밤하늘을 수놓는 황홀한 장면을 앵글에 담는 추억을 즐겼으나 지난번엔 포기했다.
불꽃명소로 손꼽히는 서부이촌동 한강공원과 노들섬에 안전을 이유로 불꽃을 즐기려고 모여들 인파를 원천봉쇄하는 바람에 삼각대를 세워둘 자리를 확보하는데 실패한 결과다. 이태원 참사를 빌미로 너무 심하게 통제를 한다. 노들섬 넓은 잔디광장에 사람이 보이질 않는다. 선착순으로 3천 명만 입장시키고 문을 걸어 잠갔다고 한다.
서부이촌동 한강공원은 아얘 한화그룹 안전요원과 경찰들이 구경 나온 사람보다 더 많아 보일 정도다. 해마다 이곳에서 사진을 찍었는데 둔치에 펜스를 둘러 안으로 들어가지도 못하게 막아버렸다. 경찰들과 실랑이하던 진사 한 분이 내뱉는다.
“안전이 위한다면 차라리 불꽃축제 허가를 내주지 말든가! 기왕 할 거면 보다 많은 사람이 안전하게 관람할 수 있게 관람명소를 사전 답사해 자리를 조성해 주는 게 낫지 이렇게 아예 원천봉쇄 해버리면 하나마나 하녀?!!”
씁쓸한 기억을 애써 지우며 달리다 보니 방화대교가 보인다. 내년부턴 불꽃축재 참가를 내 스스로 봉쇄하자? 하면서 세 번째 휴식울 갖는다. 80킬로 정도 달렸지만 아직까지 체력적으로 문제가 되진 않아 보인다.
제4구간 행주산성에서 잠수교까지
팔당대교엔 초계국수요, 행주산성엔 원조국수다. 이게 라이더들 사이에 퍼져있는 국룰. 나처럼 서울 동부지역에서 서쪽으로 라이딩하는 할 때는 여기 원조국수에서 점심을 해결한다. 말끔한 뒤끝에 혼자 먹기에 벅찬 량이 원조국수집이 자랑하는 매력포인트. 하지만 배고픔 신호가 전혀 없어 오늘은 패스.
행주산성 아래 진차길 옆으로 자전거 핀매매장, 용품매장, 정비업체가 밀집해 있다. 심지어 자전거 세차장까지 들어서있다. 작년에 이곳에서 자전거 분해 세척을 받으면서 브레이크 패드를 교환한 적이 있다. 헌데 이번에 잡소리를 잡아준 천호동 미케닉이 패드가 반대로 부착되어 있음을 발견했다. 단순한 실수인지 실력이 별로인 미케닉인지 아직까지 의문부호.
라이딩에 바람을 어찌해야 하나
행주대교를 건너와 다시 강 남쪽길을 따라 방화대교를 지나는데 바람의 방향이 바뀌었다. 강 북단을 달릴 때는 측풍으로 그다지 저항을 받지 않고 달렸는데 이제는 안연히 바람을 안고 달린다. 자전거 라이딩을 할 때마다 유심히 체크하는 것이 바람의 세기와 방향이다. 기왕이면 순풍에 돛 달고 가는 게 '누이좋고 매부좋고...' 아닌가? 오늘도 예외 없이 바람을 체크하니 평소보다 센 바람에 수시로 풍향이 바뀐다고 한다.
어쩌랴! 내가 제갈공명도 아니고 바람이 부는 대로 가면서 안고 달려야 한다면 안고 달리고, 바람을 업고 간다면 그나마 행운이지 하며 즐겨야지. 대신 무리하게 속도를 탐하지 말고 페이스에 맞춰서 나만의 라이딩을 고수하기로 한다. 자칫 순풍에 취하다 보면, 뜻하지 않는 호된 역풍을 맞을지도 모르는 게 세상이치 아닌가.. 어느덧 여의도 구간에 들어선다. 지금부터 잠실구간까지는 자전거 도로와 산책로를 가로질러 다니는 사람들이 많은 구간이라 천천히 달려야 한다.
마지막 구간 잠수교에서 집까지
잠수교를 잠원동 한강공원에서 잠시 숨을 고르고 마지막 구간을 달린다. 전에 허벅지에 쥐가 오른 기억이 있어 최대한 균형 있게 페달링을 해선지 이전처럼 근육경련이 올 조짐은 없다. 대신에 이전과 달리 어깨가 무척 뻐근한다. 자주 상체를 일으키며 어깨를 풀어주는 동작을 하며 달리는데 그 빈도가 잦아진다. 한강 한가운데엔 윈드서퍼들이 강하게 불러오는 바람에 돛을 잡아 거의 수면 위를 1미터가량 떠서 날아간다. 아마 이 넓은 한강에서 가장 붐비는 곳이리라.
잠실철교 아래에서 상내천으로 갈라지는 길을 따라 벚나무길 위에 올라선다. 낮게 드리운 구름으로 아직 해가 질 시간이 아닌데도 사위가 어둑어둑하다. 출발하기 전 10시쯤 아침을 먹고 한강을 한 바퀴 돌면서 음료수 한 병과 귤 여섯 개 정도 먹었는데 배가 배고픈 증상이 하나도 없다. 그동안 축적시킨 지방이 이렇게 많았던가? 하면서 라이딩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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