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에밋들'은 '너른 들 평야를 일컫는 말이니, 곧 '김제만경 너른 들이라는 말이다.
대하소설 『아리랑」에는 "그 끝이 하늘과 맞닿아 있는 넓디나 넓은 들녘은 어느 누구나 기를 쓰고 걸어도 언제나 제자리에서 헛걸음질을 하고 있는 것 같은 착각에 빠지게 만들었다"고 표현되었다.
또한 '징게맹외에밋들'과 '나락'들은 조선을 침략한 일본 제국주의자들의 첫 번째 수탈의 대상이 되었다. “
군산을 지나면서 온 세상이 하얗다. 밤새 내린 함박눈이 호남평야 너른 들판을 덮었고, 나무들은 눈꽃을 탐스럽게 피워 올렸다. 튼실치 못한 나뭇가지는 눈꽃에 겨운 듯 허리가 휘어져있다. 목포를 향해 이른 아침부터 달리던 차를 고속도로에서 벗어나 김제평야를 일직선으러 가로지르는 도로 위를 천천히 달린다. 김제 벽골제에 세워진 조정래 아리랑문학관에 차를 세운다.
조정래가 소설 아리랑 서문에서 . . . .
“조국은 영원히 민족의 것이지 무슨 무슨 주의자들의 소유가 아니다. 그러므로 지난날 식민지 역사 속에서 민족의 독립을 위해 피 흘린 모든 사람들의 공은 공정하게 평가되고 공평하게 대접되어 민족통일이 성취해 낸 통일조국 앞에 겸손하게 바쳐지는 것으로 족하다. 나는 이런 결론을 앞에 두고 소설 『아리랑」을 쓰기 시작했다. 그건 감히 민족통일의 역사 위에서 식민지시대의 민족수난과 투쟁을 직시하고자 하는 의도였다.
역사는 과거와의 대화만이 아니다. 미래의 설계가 또한 역사다. 우리는 자칫 식민지시대를 전설적으로 멀리 느끼거나 피상적으로 방치하는 결과라는 사실을 명백히 깨닫는다면 그 시대의 역사를 왜 바르게 알아야 잘못을 저지르기 쉽다. 그러나 민족분단의 비극이 바로 식민지시대의 하는지도 알게 될 것이다.”
지난 12월 3일 밤 대통령은 아무도 예상치 못한 황당하기 이를 데 없는 계엄령을 발표했다. 그는 지난 2년 반동안 줄기차게 항일의 흔적을 지우는데 필요한 인사를 요직에 임명하고, 일본에 대해 지나칠 정도로 우호적인 외교정책을 구사해 왔다. 대표적인 논쟁으로 홍범도장군이 중심에 있었고, 식민사관에 매몰된 뉴라이트 출신 독립기념관장 임명이다. 뉴라이트 대표주자인 이영훈 서울대 경제학교수는 어째서 역사에 대해, 그중에서 일제가 국권을 침탈한 시기를 재해석하고 싶었을까? 이완용이 그리워서였을까?
작가로서 조정래
대하소설 아리랑을 집필하는데 꼬박 10년 8개월 동안 글감옥에 갇혀버렸다고 한다. 조정래는 대한민국의 근, 현대사를 관통하는 대하소설 아리랑, 태백산맥 그리고 한강을 완성하였다. 아리랑은 일본이 러일전쟁을 승리한 1904년부터 해방을 맞은 1945년까지 40년의 세월 동안 참담하고 가혹했던 이 한반도에서 살아가야 했던 다양한 백성들의 군상을 역사적 사실을 곁들여가며 서술한 대하소설이다.
아리랑을 써내려가기 전에 그는 해방 후 격동기 극렬한 좌우 대립을 주제로 한 태백산맥을 먼저 출간하고, 아리랑을 발표한 다음 다시 해방 후부터 5.16에 이르는 이승만 정권을 관통하는 서사를 한강에 그려냈다. 이렇게 그는 전업작가가 받아들여야 할 숙명적인 글감옥에 반평생을 기꺼이 묻어버린 치열한 작가로서 명성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아리랑을 위해 지구를 세 바퀴 이상 돈 발길
조정래는 작업에 충실하기 위해 많은 취재여행을 하는 걸로 유명하다. 특히 소설 아리랑은 우리나라가 일제 치하에 있으면서 우리 민족은 세계 여러 지역으로 유랑하는 삶을 살아야 했었기 때문이다.
중국 2번, 미국 3번, 러시안 2번, 일본 3번, 이 취재여행의 거리를 전부 이어 놓으면 지구를 세 바퀴 이상 돈 것과 맞먹는 행보라고 한다. 이들 지역들은 모두 아리랑의 무대가 되었고, 그러다 보니 아리랑은 그 무대가 제일 넓은 소설이 될 수밖에 없었다.
소설 아리랑은 김제 만경평야의 한 부락 죽산면에서 시작한다. 죽산면에서 시원하는 소설의 무대는 군산과 만주와 블라디보스톡 그리고 멀리 하와이 옥수수농장까지 지구의 절반에 이른다.
소설 1부 줄거리, 아! 한반도
감골댁의 큰아들 방영근은 집안의 빚 20원을 갚기 위해 하와이로 팔려 간다. 백종두는 자청하여 친일파가 되고 보부상 장덕풍은 잡화상을 차린다.
우체국장 하야가와는 불우한 아이 양치성을 보살펴주며, 아이의 영혼까지 잠식한다, 일본인 요시다와 하시모토는 조선인을 고용해 땅을 사들이기 시작한다.
을사보호조약이 체결되자 송수익은 의병장이 되어 맹활약한다. 그 과정에서 승려 공허를 만나 함께 활동한다. 국내에서의 의병항쟁에 한계를 느낀 송수익은 만주로 떠난다. 송수익의 애국심에 감동을 받은 친구 신세호는 학교를 열어 아이들을 가르친다.
일진회 회장으로 친일에 앞장선 공을 인정받은 백종두는 죽산면 면장이 된다. 헌병 보조원 장칠문은 아이들에게 민족사상을 가르치는 신세호를 염탐, 체포한다. 신세호는 주재소에 끌려가 심한 고문을 당한다. 방대근은 누나 수국을 겁탈한 일본 헌병 백남일을 보복하고, 가족들과 함께 만주로 떠난다.
우체국장 하야가와의 후원으로 일본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양치성은 비밀경찰이 되고, 한쪽 눈을 잃은 백남일은 헌병자리에서 쫓겨난다. 총독부에 의해 토지조사 사업이 시작된다. 하와이로 팔려간 방영근의 일행은 갖은 고생을 다하여 이국 땅에 적응한다.
샌프란시스코에서 조선 청년 장인환이 조선의 외교고문이며 친일주의자인 미국인 스티븐슨을 저격한 사건이 일어난다. 그 사건을 계기로 독립운동단체 <국민회의》가 만들어져 미주지역 이민 동포들의 열렬한 환영을 받는다.
사진결혼이 유행한다.
소설 2부 줄거리. 민족혼
일제의 토지조사가 본격화된다. 하시모토는 죽산면장 백종두를 종용해 토지조사 사업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는 <지주층대〉를 친일파 지주로 심어놓는다.
전국에서 친일 <지주총대〉를 죽이는 사건이 발생하고 일제는 공개살로 이를 억압한다. 하시모토는 죽산면 토지의 반을 차지하는 대지주가 되고, 토지를 빼앗긴 농민들은 대도시의 인부가 되거나 만주로 흩어진다. 조선 총독부는 조선 45%를 차지하는 조선 최대의 지주로 군림한다.
만주로 간 방대근, 지삼출 일행은 상투를 자르고 독립군이 된다. 대종교의 민족공화주의 사상을 받아들인 송수익은 독립군과 이민동포들의 지도자가 되어 바쁜 시간을 보낸다. 방대근은 만주 신흥무관학교를 졸업한다.
한편 독립자금 마련을 위해 지주의 집을 털던 공허는 일경이 파놓은 함정에 걸려 필사의 탈출을 한다. 신세호는 비밀리에 민족사상 서적들을 필사해서 공허를 통해 배포한다. 또한 송수익의 큰아들 중원과 딸 하엽을 결혼시킨다.
기미 3• 만세운동은 삽시간에 전국으로 번진다. 죽산면의 박건식과 김춘배 등 땅을 잃은 농민들은 하시모토 집에 불을 지른다. 백종두는 한밤중에 들이닥친 시위대에게 맞아 죽는다. 일본 헌병과 경찰의 탄압도 극에 달한다.
일제는 7천5백 명의 조선인을 가장 끔찍한 방법을 택해 죽이면서 3•1 운동을 진압한다.
김좌진과 홍범도가 이끄는 독립군이 청산리 전투에서 대승을 거둔다. 이에 열이 오른 일본군은 조선인 마을을 무차별 방화, 1만 명 이상의 조선인을 학살한다(경신참변). 방대근의 어머니 감골댁도 화를 당한다.
소설 3부 줄거리, 어둠의 산하
김제평야의 만석꾼 정재규는 미두에 미쳐 알거지로 전락하고, 집안의 쥐도 굶겨 죽일 정도로 야박한 인심으로 동생 상규가 만석꾼의 꿈을 이루어가는 가운데, 일본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정도규는 호남지역의 조선공산당 핵심인물이 된다.
신세호는 신간회에 가입하여 대표로 농민들의 투쟁을 이끈다. 만주 침략 후 일제의 국내 독립운동 탄압은 더욱 전면화된다. 1, 2차 조선공산당 검거선풍이 일어난다. 신세호, 송중원, 정도규, 고서완, 유승현 등은 가택연금을 당한다.
경신참변 후 독립군은 러시아 연해주 지방으로 이동한다. 젊은 축을 중심으로 공산주의 사상이 급격하게 확산된다. 소련 적군파 소속인 윤철훈, 이광민은 정보원의 임무를 띠고 활동한다. 그들은 민족주의 색채를 인정하지 않는 코민테른에 대하여 깊게 고뇌한다. 소련 적군파와 함께한 줄기찬 투쟁으로 일본군을 연해주에서 몰아낸 조선 독립군들은, 전선을 찾아 만주로 향한다.
대종교 이념으로 독립운동을 하던 승수의도 무정부주의 활동가로 변신하고 방대근, 윤주협은 의열단에 가입한다.
만주에서 일본군과 투쟁하던 독립군은, 중국의 국공합작 분열로 큰 어려움을 겪는다. 윤주협, 방대근이 속한 의열단은 사회주의 노선을 수용한다.
무정부주의 노선을 견지하며 독립운동에 힘쓰던 송수익은 조선 독립군 제(통)세력의 연대를 모색하던 중 일경에 체포되어 15년형을 받는다.
하와이 이민 동포의 생활은 조금씩 안정을 찾아간다. 하지만 〈국민회의》 내 박용만과 이승만의 주도권 다툼으로 동포들은 심한 몸살을 앓는다. 남용석은 이혼한 선미를 죽이고 자살하고, 방영근은 늦장가를 들어 아들 셋을 낳고 하와이 정착민이 되어간다.
소설 4부 줄거리, 동트는 광야
송중원, 가원 형제는 투옥된 아버지 승수익을 면화하기 위해 만주로 온다. 송수익은 아들들에게 만주에서 싸우라는 유언을 남기고 한 많은 세상을 떠난다. 혈청단원인 삼봉 일행을 이끌고 국경을 넘던 공허는 불시에 나타난 일본군을 육탄으로 막아선다. 공허는 목숨이 불어있는 단 한순간까지, 도망치는 젊은이들을 걱정하며 일본군에 저항한다.
송수익의 사망 소식을 들은 신세호는 술에 취하면, 관청 앞에 소변을 갈겨대어 ‘오줌대감이라는 별칭을 얻는다. 전향서, 창씨개명을 거부한 송중원은 감옥에 갇힌다. '창씨개명, '조선어 폐지, '조선인 남녀의 전쟁 참여를 지지하는 친일파들의 강연회, 문학작품이 앞다워 쏟아진다. 한편 백남일은 아편쟁이로 물러앉고, 장칠문은 군산 굴지의 기업가로 떠오른다. 하시모토는 김제 읍장 자리에 올라 '강제징용, '증군위안부' 문제를 일선 지휘한다.
송가원은 만주 항일연군 소속 의사로 복무한다. 항일연군의 별동대장으로 활약하는 방대근은 일본군 수색대 지휘관으로 변절한 동기 노병갑을 처단한다.
일본군의 토벌작전이 대규모화되면서 항일연군은 큰 곤경에 빠지고, 지대장으로 직책이 바뀐 방대근은 일본 보급대를 습격한다. 필녀, 수국, 삼봉, 이광민이 전사한다.
지시마 열도에서는 비행기 활주로 공사를 마친 1천 명의 조선인 노무자가 집단 학살을 당한다. 종군위안부로 끌려간 조선의 처녀들은 패망하는 일본군을 따라 물결처럼 출렁이면서 비참한 최후를 맞는다. 일제는 <물품)-<배급>-<소모> 라는 간단명료한 표현으로 그 무고한 죽음들을 정리한다.
8•15 해방이 되었다. 그러나 작가는 환희에 들뜬 서울의 거리를 그리지 않았다. 대신 중국인에게 쫓겨 만주 벌판을 헤매는 동포의 수난을 형상화하는 것으로써, 아직도 온전히 복구되지 못한 우리의 민족사에 대한 깊은 화두를 던져 주었다.
4부 12권을 읽고 나서 친구에게 한 말이
부동산중개사 시험을 치르고 도서관으로 달려갔다. 미뤄두었던 소설 아리랑을 빌려 읽기 시작해 근 한 달 가까이 시간을 투자했다. 읽고 나서 불문학을 전공한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니 소설을 왜 쓰다 만겨? 마무리가 없자녀!”
“얘는, 원래 대하소설은 다 그런겨. 230명이 넘게 나오는디 그걸 어떻게 마무리허냐. 대하소설이라는 게 그 시대를 살아가는 다양한 삶에 대한 기록이나 마찬가지여. 토지는 마무리가 됐냐? 똑같지 결말이. “
감골댁과 두 아둘, 딸의 얘기부터 지삼출, 송수익, 공허, 신세호 등이 일제에 맞서 치열한 투쟁을 벌이는 반대편에서 백종두, 장덕풍등은 일제에 빌붙어 친일에서 나아가 일제보다 더 악랄한 행위를 서슴지 않는 모습을 12권에 담았다. 마지막으로 내게 물어본다.
‘내가 만약 그 시대에 태어났다면 나는 소설 속에 누구의 삶을 좇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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