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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촌 구석구석/유럽

2001년 2월 아이들과 함께 한 서유럽 4개국 여행 - 둘째날, 고대 로마의 영광를 더듬어!

by 노니조아 2020. 2. 6.

1. 자전거나라 가이드와 조인트

 

도착하자마자 라면2개와 햇반 하나로 저녁삼아 간단히 해결하고 내일의 강행군을 위해 10시경 자리에 들었던 것 같은데 새벽 2시무렵에 저절로 눈이 뜨였다. 다시 잠을 재촉하여 보았으나 도무지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시차를 계산하여 보니 한국에서는 오전 11시 무렵이다. 정상적인 일상사이클로는 백주 대낮이니 나의 신체리듬으로는 잠이 오지 않는 것이 당연하다. 불을 켜고 아이들을 쳐다보니 녀석들도 마찬가지였다. 모두 어둠 속에서 눈만 멀뚱거리고 있었던 것이다. 기왕에 오지않는 잠을 무리하여 청할 필요까진 없다싶어 아이들에겐 가져온 책을 읽거나 오늘 게획된 투어지에 대한 사항을 읽어보도록 하고 나는 미리 오늘 투어중에 가지고 다닐 간편배낭을 정리한 다음 이것저것을 가져간 노트북에 정리하다 보니 벌써 시간이 6시 가까워진다. 밖을 내다보니 새벽별이 맑디맑은 하늘에 박혀빛나고 있었다. 유럽은 겨울이 우기라서 비오거나 흐린 날이 무척 많다는 여행안내 책자의 내용을 본지라 날씨가 맑기를 간절히 기원하였는데 다행이 여행 첫날의 날씨가 청명하기 이를데가 없다. 날씨가 우리의 여행을 돕고 있구나 싶어 괜스레 누군가에게 감사하고 싶어진다.

 

Hostel에서 제공하는 정말로 Light Breakfast( 1, 쥬스1, 카스테라1)로 아침을 해결하고 8시 반경 Termini 역앞으로 나섰다. 자전거나라 투어가이드와 만날 시간은 9 20분이지만 내일 베네치아 행 야간열차도 예약하여야 하고 만나기로 한 장소도 미리 확인하여 둘 겸해서 일찍 서둘렀다. 역 창구에서 미리 준비하여간 차량번호와 시간이 적혀있는 프리트물을 보여 주면서 예약을 요청하자 간단히 예약처리가 되었다. Tiburitina역에서 Venezia Santa Lucia역 까지 가는 Euro Night 1일등석을 예약하였다. 역 지하에 있는 매점에서 낮동안 먹을 물을 두병 사고나서 가이드와 만나기로 되어 있는 40번 버스 승강으로 갔다. 아직 이른 시각이라서인지 같이 투어에 참가하는 사람들이 보이질 않는다.

 

시간이 어느정도 지났는지 우리와 피부색과 행색이 비슷한 젊은이들이 서너명씩 몰려온다. 이번 투어에 참가할 사람으로 보여서 물어보니 사실이었다. 서로 간단하게 인사만 나누고 멈칫멈칫하고 있는데 버스 승객하차장 쪽에서 한무리의 일행이 이쪽으로 몰려오고 있다. 투어가이드와 그 일행들이었다. 원래 가이드와 조인트하는 장소가 참가자의 숙소를 배려하여 두곳으로 정해져 있었다. 아침 9시 정각에는 지하철 Termini역 다음역인 Vittorio이고 9 20분에는 이 곳 Termini역 앞에 있는 40번 버스정류장이다. 그리고 사정상 이시간에 합류를 하지 못한 여행객을 위하여 11 20분에 베네치아 광장을 예비장소로 배려해 두었다. 참가자의 명단을 점검한 노랑머리 염색 가이드는 몇가지 유의사항을 일러주었다. 다른 것은 일반적인 것이지만 배낭여행자들이 로마나 파리에서 항시 경계하고 있는 소매치기에 대한 사항은 다시한번 나를 다잡아 주었다. 특히 24번 버스는 가능한 한 이용하지 말것을 당부하였다. 로마시내의 주요 관광지를 끼고 운행하는 노선으로 승객이 가장 많아 슬쩍맨들이 가장 노리는 곳이며, 신문지를 말아가지고 다니는 사람들은 십중팔구는 슬쩍맨이니 조심하란다. 하여 배낭은 항시 내가 지고 다니고 버스에 오르면 진만이에게 뒤에 붙어 있으라고 일러주고 유의토록 하였다. 사실 배낭속에는 슬쩍맨들이 가져가봐야 별 소득될 만한 것들도 없지만 그래도 잃어버리거나 치기를 당하면 나에겐 아쉬운 물건들이니 조심하기로 했다.

 

참가자를 모두 확인하였나 싶었는데 이름을 부르지 않았다며 대학생쯤으로 보이는 한 젊은이가 앞으로 나왔다. 그 젊은이는 사정이 있어서 미리 예약을 하지 못하였다며 오늘 투어에 참가하기를 강력히 희망하였다. 이 친구 간곡히 사정하는 것에 나는 내심 저 정도 성의를 보이는데 가이드가 합류를 허락하겠구나예상했는데 결과는 그게 아니었다. 미리 예약을 하지않은 분들은 어떠한 사정을 막론하고 투어에 참가할 수 없다는 것이 자전거나라의 룰이며 아울러 룰 이전에 사정은 충분히 이해하지만 만약 투어 참가를 받아 들인다면 이런한 얘기가 인터넷을 타고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지게 되어 예약없이 참가하려는 사람들이 마구 늘어나게 되고 자칫 자전거나라의 이런 투어가 사라질 우려까지 낳을 수 있기때문에 받아들일 수 없다면서 다음 번 투어에 참가할 것을 권유하였다. 그리고 아주 정중한 말씨와 자세로 거절의사를 전하자 이 친구도 어쩔 수 없다는 표정으로 수긍하였다. 그래도 가이드는 미안한 마음에선지, 이 친구 오늘 일정이 걱정되어선지 인근 폼페이, 아시시, 피렌체, 피사 등 로마 인근에 있는 곳 중에서 오늘 하루에 다녀올 수 있는 곳을 추천하였으나 이미 모두 섭렵하였단다. 투어 정원20명에 한명 정도 더한다고 가이드가 설명하는데 크게 장애가 되지않을 것이고, 인근의 왠만한 곳은 모두 다녀왔고 오늘 로마 일정으로 자신의 스케쥴을 모두 조정해놓은 상태라고 하는데도 결국 가이드는 이 친구의 합류를 끝내 허락하지 않았다.

아마 내가 가이드의 위치였다면 합류를 허락하였을 것 같다. 아무리 유럽식 예약문화의 정착을 기치로 내걸고는 있지만 그래도 사람이 하는 일에는 어느 정도의 정상참작이라는 것이 있지않은가 하는 것이 나의 정서와 논리였으나 이날 나는 가이드가 정중히 거절하는 이유와 자세를 보고 가이드의 손을 들어주고 말았다. 우리들이 행하고 있는 예약관습에 분명히 문제가 있다는 것은 누구나가 인정하고 있으면서 그 경우가 본인일 경우에는 늘 예외를 생각한다. 이런한 관습을 바로 잡으려고 여러가지 규정을 자체적으로 만들어서 시행하는 곳이 여럿 있지만 실제적으로 당초에 만들어 놓은 규정을 준수하는 곳이 많지 않은 것 같다. 예약을 하지 않았으면서 본인의 편의를 위하여 언더머니로 해결하려거나, 회사의 직원을 통하거나, 높은 사람들에 기대어 해결하려고 하고 또 이런 것들이 충분히 통하는 사회를 우리가 버젓이 가꾸어 오지 않았던가. 이렇다할 빽도 줄도 없는 경우에 흔히 쓰는 수법이 얼굴 들이밀고 막무가내로 떼를 써대어 해결하려는 방법 등등오늘 가이드와 젊은 친구가 보여준 자세를 보며 서로 얼굴 붉힐 일 없이 서로 이해하고 수긍하는 모습이 참으로 보기 좋은 풍경의 연출이었다.

2. 콜로세움과 포로로마노에서 네로와 카이사르를 만나다.

호주의 유명한 배우 러셀 크로우가 주연하여 크게 히트친 영화 Gladiator에서 검투사가 된 막시무스가 상대를 무너뜨리고 황제의 처분을 기대리며 검투장 한가운데 당당히 서있던 무대, 바로 그곳이 오늘 우리의 첫번째 투어 Colosseum (실제이름은 Colosseo이다)이다.

 

지하철(여기서는 Metro라고 한다)Colosseo역을 나오자마자 눈 앞에 거대하게 다가선 운장한 건축물인 Colosseum은 서기72년에 베스파시아누스 황제 때 공사를 시작하여 8년 후인 80년에 그의 아들 티투스 황제 때 완공되었다. 콘크리트와 돌로 세운 이 거대한 건물은 가로, 세로가 각각 190미터, 155미터에 이르며 4단으로 된 관람석은 4 5천 개의 좌석과 5천 개의 입석을 갖추어 5만명을 수용할 수 있는 웅장한 규모로서 건축 당시에는 뜨거운 햇빛으로부터 관중들을 보호하기 위해 베라리움이란 천막 지붕을 설치되어 있었는데 지붕 가운데는 둥근 구멍이 뚫려 있어서 채광은 물론 환기구 역할을 했다.

 

관중은 80개의 지정된 입구를 통해 관람석으로 통하는 층계를 올라가게 되어 있는데 이런 좌석 배정 및 출입 통제 방법은 오늘날에도 사용된다고 한다. 아치형 입구를 받치고 있는 기둥은 각 층별로 그리스에서 유래된 건축방식들을 채택하였다. 일층에는 도리스식, 이층에는 이오니아식, 3층은 코린토식, 4층은 콤포짙식을 채택하였다. Colosseum이란 이름은 그 앞에 있었던 네로 황제의 거대한 동상콜로소(Colosso)' 에서 따 온 것으로 이는거대하다는 뜻의 라틴어 콜로수스(Colossus)에서 유래한 것이다.

우리의 동시대 역사 편년과 비교할 때 삼국의 시조들이 나라를 창건하고 그의 아들들이 왕위를 계승하여 국정을 살피고 한사군이 아직은 평양에 남아있던 시대에 로마인들은 5만명을 수용할 수 있는 거대한 검투장을 축조하였다. 검투장을 축조한 배경도 단순히 맹수와 검투사의 시합을 로마 시민에게 제공하기 위한 문화적인 배려에서가 아니라 흉흉한 민심을 돌려 세우려는 당시 권력층의 정치적 계산이 깔려있는 건축물이다. 서기64년 네로황제가 안티움이라는 나폴리 근교 별장에서 휴가를 보내고 있을때 로마 전역을 휩쓸어버린 대화재가 발생하였다. 네로황제를 얘기할 때 많은 사람들이 떠올리는 ! 로마는 불타고 있는가라는 대사는 네로가 가지고 있었던 탁월한 예술적인 능력과 방탕한 생활이 연결되어 지어진 말인 것 같다. 여하튼 네로는 이 화재의 책임을 그리스도교도들에게 전가하는 한편 화재진압과 재건축에 진두에서 지휘하며 피해복구에 만전을 기하였다고 한다. 이때부터 민심은 정부와 점점 멀어져갔고 황제와 원로원의 국정 장악력이 급속도로 약화되어 가자 궁여지책으로 이러한 이반된 민심을 다른 곳으로 돌려놓으려는 정치적 계산에서 거대한 검투장을 건설하게 되었다. 우리의 현대사에서도 프로야구 창설같은 유사한 정치적 유화책을 볼 수 있으니 2000년전의 정치를 우리가 답습하고 있는 것인가여하튼 Colosseum이 완공되고 이를 기념하여 거행된80일 동안의 검투시합에서 약 5000명이 넘는 검투사가 희생되었다고 한다.

가이드의 설명을 뒤로하고 Venezia광장으로 이동하였다. 보통 광장이라고 붙여진 곳을 우리는 시청앞 광장이나 여의도 광장을 연상하지만 로마시내의 광장은 그리 크지가 않고 대부분 교통의 중심지 역할을 하기 때문에 교차로 등으로 이용되기도 한다. 이 곳은 많은 거리들이 집중되어 있기 때문에 로마에서 가장 복잡한 곳 중의 하나이며 광장 정면의 커다란 백악관이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 기념관(Vittoriano)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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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5년부터 25년에 걸쳐 건축하여 1911년에 완성된 이 기념관은 이탈리아 통일(1870)의 위업을 달성한 초대 국왕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를 기념하여 세운 것이다. 로마시내를 다니면서 느끼는 도시의 색감은 브라운 풍이지만 이 건물은 희색 대리석으로 축성된 건축물로서 로마인들에게 로마의 이미지에 먹칠하는 대표적인 건축물로 꼽고 있다는데 로마를 방문하는 대부분의 관광객들은 이곳을 빼놓지 않고 거쳐간단다. 광장의 왼편에는 베네치아 궁전(Palazzo di Venezia)이 있는데, 2차 세계대전 당시 무솔리니가 이 곳 2층 발코니에서 군중들에게 연설한 것으로 유명. 현재는 박물관으로 이용되고 있다.

 

기념관 투어를 마치고 다음 장소로 이동을 위해 일행을 기다리고 있는데만득이를 외치며 고무풍선에 진흙을 섞어넣어 만든 것 같은 장난감을 팔고 있는 행상들이 몰려왔다. 얼굴과 행색을 미루어 볼 때 아시아 계통, 즉 인도, 방글라데시, 파키스탄에서 불법 체류자인 것 같다. 다른 집시들은 소매치기로 생계를 이어가려고 하는데 우리를 한국인이라 알아보고만득이라고 외치며 하나 사주기를 애원하는 이들이 오히려 치기들보다 순수하고 정성이 갸륵하다 싶어 인형 두개를 사주었다. 물론 가격은 이들이 처음에 불렀던 가격에서 절반으로 잘라서

우리 일행은 기념관 우측길을 돌아 미켈란젤로가 설계한 광장과 계단 등이 있는Campidoglio언덕으로 가는 길 가에 다 허물러져가는 건물을 마주하게 되었다. 고대 로마 시대에 있었던 아파트였다. 대략 4~ 6층 정도의 아파트였는데 내부구조는 요즘의 시설과 별반 차이가 없었으며, 이 아파트 주변이 그 당시에 카이사르가 성장했던 수부라지역이라 한다. 우리나라에선 아파트가 층별로 가치가 다르다. , 아래층 보다 높이 올라갈수록 소위 로얄층이라고 하지만 그 당시에는 위로 갈수록 신분이나 소득이 낮은 가족이 살았다고 한다. 하긴 그 당시에 승강기나 수도배관등의 시설이 없었을테니까 당연한 결과라 생각된다.

 

미켈란젤로가 설계하여 더욱 유명한 Campidoglio언덕과 광장에서 올라오는 완만한 계단을 위와 아래에서 감상하는 방법과 광장에 난 기하학적인 도형, S P Q R(모든 로마의 원로원, 집정관 시민 여러분 이름으로라는 의미)이 왜 로마에 존재하는 거의 모든 건축물과 동상 등에 새겨져 있는지에 대해 가이드의 설명을 듣고 우리는 아직도 끊나지 않은 로마의 살아있는 역사, Foro Romano를 발아래 두게 되었다.

 

이곳에서 우리는 거의 허기에 지치는 고문(?)에 가까운 3시간동안 가이드로 부터 카이사르가 중심이 된 시기의 고대 드라마틱했던 로마 역사를 저 아래 유적들과 연결지어 들을 수 있었다. 가이드에게서 듣고있는 줄거리들을 나는 이미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를 통해서 많은 부분 알고 있었지만 그 당시의 유적들을 보면서 듣고 있으니 그 당시의 로마 시민들에게 대중연설을 하는 카이사르, 로마 전성시대의 문을 연 옥타비아누스, 카이사르와 일대 설전을 벌이는 변호사 키케로, 카이사르의 가슴에 비수를 꽂아죽인 부르투스, 전쟁의 영웅 폼페이우스가 개선식을 하는 모습 등이 재현되는 것같다. 다음에 다시 로마를 방문하게 되면 로마인 이야기 전권을 반드시 통독하고 와야할 것 같다. 단순히 보고 지나가는 고대 유적이 아니라 그 유적들에 묻어있는 그 당시의 과거완료형 역사들을 오늘을 사는 우리들이 만들어 가고 있는 현재진행형 역사에 견주어도 손색이 없음을 체험할 수 있으리라.

 

로마를 덮친 지진으로 원형이 대부분 파괴된 것을 오랜 기간동안 발굴작업을 통해 복원하여 지금의 모습을 보이고 있으며 계속하여 발굴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우리가 과거의 문화유산과 유적을 보존하고, 또 파괴된 유적을 복원하는 과정과는 사뭇 다르다. 복원된 결과물과 비교할 때 비록 원형 그대로 복원을 하여 놓지않고 발굴되서 나온 편적들로만 복원된 미완성의 모습이 오히려 발굴 유물이 아닌 고증을 거쳤다는 핑계를 대며 시맨트와 철골로 과거의 모습을 흉내낸 복원유적들을 자랑스럽게(?) 가지고 있는 우리와 비교할 때 완성되지 않은 채 앉아 있는 저 유적들에서 들려오는 역사의 소리를 우리는 가지지 못한 것 같다. 부서지고 무너진 것들은 깡그리 불도저로 밀어버리고 멋드러지게 현대의 기술로 과거의 장인 솜씨를 흉내낸 우리의 문화유적은 우리에게 무슨 말을 해 줄 수 있을까?

이제 우리도 부서지고 깨어져 있는 유적들을 다시 원형 그대로 복권이 불가능하다면 그대로 놓아두되 더 이상 원형이 파손되는 것을 막고, 고증을 통한 원형의 모습을 책자등으로 펴내는 문화재 보존 및 관광 홍보자료에 충실해져야 하지 않을까 싶다. 그리고 근대화, 경제개발이라는 경제논리를 내세워 옛것을 무조건 버리고 동양 최대 혹은 세계 최대 등의 별로 자랑스럽지 못한 수식어를 부착한 현대물로 탈바꿈 시키는 등의 우를 더이상 범하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이곳 Foro Romano를 지속적이고 끊기있게 복원해내고 있는 이들의 자세와 노력을 우리는 배워야 한다고 본다.

 

3. 추위와 싸워가며 강행한 오후 투어

 

11시부터 시작된 Foro Romano에서의 로마역사 수업(?) 2시가 거의 되어서야 가까스로 끊나고 시장을 반찬삼아 빅토리아광장 근처의 Pastarito식당에서 피자와 파스타로 정말 정신없고 맛있게 점심을 먹었다. 자전거나라의 노력으로 가격을 이미 절충하여 놓았기 때문에 저렴한 가격에 피자와 파스타, 와인을 먹고 마실 수 있었다.

 

맛있는 이태리요리로 허기를 채우고 난 일행들은 진실의 입이 걸려있는 Santa Maria in Cosmedin교회 앞 광장으로 인도되었다. 교회 맞은편 광장에는 2개 의 아담한 고대 건축물이 다소곳이 서있다. 그 중 하나는 기원전 200년 경 건축된 강과 항구의 신을 모시던 Tempio della Fortuna Virile신전으로 아직도 당시의 원형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다른 하나는 불의 신에게 봉헌된 Tempio di Vesta신전이다.

Santa Maria교회 입구에 걸려있는 진실의 입에 손을 집어넣은 채로 아이들의 사진을 한 컷 찍은 다음 교회 담을 끼고 뒤로 돌아가면 만나게 되는 대전차 경기장으로 투어는 계속 이어졌다. 지금은 옛날의 흔적은 모두 사라지고 경기장으로 추정되는 길게 난 트랙 위에 잔디가 파랐게 펼쳐져 있고 그 위를 몇명이 조깅을 하고 있는 모습만을 보게되었다. 이 대전차 경기장은 고대 로마 공화정시대 부유층들의 저택들이 자리잡고 있었던 Palatino 언덕의 뒤에 자리잡고 있었다.

오늘 참가한 투어 일행은 가이드를 따라 Foro Romano를 중심으로 모여있는 유적들 감상을 모두 마치고 Pantheon으로 이동하였다. 기원전27년 올림포스의 모든 신들에게 제사를 지내기 위해 옥타비아누스의 부장이었던 아그리파가 만들었다. (Pan)은 모든 것, 테온(Theon)은 신이란 뜻. 고대 로마 유적 중에서 가장 잘 보존된 신전으로 80년에 벼락이 떨어져 큰 불이 난 뒤, 128년에 개수하여 현재의 모습이 되었다. 판테온의 기둥은 원통형 모양으로 모두 16개이며, 내부 돔은 직경과 높이는 똑같이 43.3m이고 천장에는 직경 8m Hole이 나 있어 자연 채광이 가능한 구조를 가지고 있어 벽면과 바닥의 모자이크가 천장으로 부터 내리쬐는 빛에 반사되어 환상적인 아름다움을 나타낸다. 대류현상에 의해 이 Hole을 통하여 빗물이 들이치지 못하게 되어있다. 이미 고대 로마시대에 자연 대류 현상을 응용하여 자연채광이 기능한 건물을 세우는 지혜를 갖고 있었다니 놀랍기도 하였다.

Pantheon을 나오니 벌써 날이 많이 저물어 땅거미가 내려앉기 시작하였다. 2월의 로마날씨는 영상 10도 정도가 평균기온이라는 정보를 얻어왔으나 청명하기 이를 데 없는 맑은 날씨임에도 불구하고 이날의 기온은 영하 이하의 한겨울 날씨를 보였다. 더구나 저녁 무렵이 되니 뚝 떨어진 체감온도에다 진아는 시차적응이 되지 않아 오늘 새벽에 제대로 자지 못해선지 춥고 졸리니 숙소로 가자고 자꾸 조른다. 춥고 졸려서 더는 못 다니겠다고 계속해서 성화다. 조금 참으라고 달래고 진만이를 보니 녀석은 아직 꿋꿋하게 잘 버티고 있다. 그래도 사내녀석이라 그런지 안심도 되고 든든하기도 했다. 나도 정말 춥다. 해골사원을 거쳐 다음 코스인 Navona광장으로 가기위하여 버스를 기다리는데 다른 때는 기다리는 버스가 재깍재깍 오더니 날 저물고 추워져 모두가 지쳐있는데 한참을 기다려도 오지 않는다.

 

퇴근 무렵이라 승객을 꽉 채운 만원버스에 실려 우리는 Navona 광장에 도착했다. 다른 광장과는 달리 이 곳은 차량 통행이 되지않는 곳으로 고대 로마시대에는 대전차경기장으로 이용되었던 곳이었으나 바로코 시대 조각의 거장인 베르니니 작품인 세개의 조각분수와 주변의 궁전이 어우러져 환상적인 멋을 자아내는 로마의 명소라고 한다. 그 중에서 중앙에 있는 강의 분수(Fontana dei Fiumi)는 바로크 조각의 걸작으로 꼽힌다. 오벨리스크 아래에 다이내믹한 4명의 남성상이 있는데, 이는 나일 강, 갠지스 강, 도나우 강, 라플라타 강을 의인화한 것으로 각각의 자세와 표정은 당시 유럽인의 시각으로 다른 대륙을 가로질러 흐르고 있는 강에 대한 느낌을 읽어볼 수 있다. , 유럽, 로마가 세계의 중심이고 다른 대륙은 오로지 유럽을 위하여 존재하거나 그 존재 자체가 대수롭지 않다는 속내를 나타내고 있다고 한다.

 

정성스레 설명하는 가이드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모두들 추워서 어쩔줄을 몰라하는 모습들이다. 잠시 사진 촬영시간을 준 다음 바로 Trevi분수로 자리를 옮겼다. 로마의 분수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분수로 꼽히는 바로크 양식의 트레비 분수는 교황 클레멘스 13세가 모집한 분수 설계 공모전에서 당선된 니콜라 살비(Nicola Salvi)의 작품으로, 1732년에 착공, 1762년에 완공되었다. 폴리 궁전의 벽면을 이용한 조각은 이 분수의 아름다운 배경이 되고 있는데, 바다의 신 넵튠이 트리톤이 조종하는 두 마리의 말을 타고 달려가는 모습은 박력이 넘친다. 롯데 잠실 백화점 지하에 이 분수의 모방품을 만들어 놓았으나 아름다움과 규모에서 비교가 되질 않는다. 역시 작품은 원작을 보아야 제맛인가 보다. 분수를 배경으로 가족사진 촬영을 마치고 스페인광장에 이르러 오늘의 대장정에 마침표를 찍었다. 스페인 광장에도 난파선 분수가 있다. 언젠가 로마에 대홍수가 나고 이 스페인 광장앞에 난파선 한척이 걸려있는 모습을 베르니니가 조각분수로 형상화하였단다.

로마시내에서는 이름난 유적과 광장에 각양각색의 형상을 한 아름다운 조각분수가 있다. Vesta신전 앞에도 있고, Pantheon 앞에도 있고, Navona광장, 스페인 계산 앞에도 있고, 내일 가게 될 San Pietro 광장에도 있다. 이들 분수에서 한가지 공통점을 찾을 수 있다. 우리는 분수하면 월드컵을 기념하여 설치된 한강 분수나 예술의 전당에 설치된 음악 분수처럼 금속 노즐에서 힘차게 뿜어져 나오는 시원한 물줄기를 연상하게 된다. 헌데 로마에서 마주치는 분수들은 뿜어져 나오는 물줄기가 영 시원치 않다. 분수라기 보다는 아담한 계곡사이를 흘러내리는 작은 물줄기 혹은 놀이공원 여기저기 만들어 놓은 식수대에서 솓아오르는 물줄기같다. 그렇지만 이들 분수는 각각 제 스스로가 갖추고 있는 아름다운 자태와 그 자태를 절대로 해치지않고 오히려 그 조각이 드러내는 의미있을 것같은 형상을 아주 부드럽게 진무하고 감싸 앉으면서 소담스레 솓아오르거나 흘러내리는 물길은 통상적인 분수의 정의를 살포시 바꾸어 놓게 된다. 시원스레 뿜어대는 물줄기는 전기나 모터라는 현대의 동력원에 의지하지만 대부분 17세기에 만들어진 로마의 분수는 수로에서 비롯된 수압에 의하여 솓아나오게 설계되었다고 한다. 그 당시에 전기도 없었고 물이 풍족하지 못한 로마에 분수를 세우는 것은 쉽지 않은 것이라 생각된다. 그래도 예술과 자연과학을 응용하여 아름답게 만들어 놓은 분수가 우리같은 여행자들의 눈과 마음을 맑게 해주고 있어 로마를 찾고 있는것이 아닐까

 

저녁이 되자 이따금씩 빗줄기마져 흩뿌려대어 투어참가자는 더욱더 힘에 겨워하다가 드디어 대단원의 막을 내리고 가이드의 서비스 시간이다. 역사가 110년 이상을 자랑하는 아이스크림 집으로 우리를 데려가 넉넉한 양의 아이스크림을 하나씩 선사한다. 저녁 식사 전에 먹게되면 밥맛을 잃어버릴 수도 있으니 저녁을 마치고 다시 모여 먹자고 가이드가 친절을 베풀었으나 피로에 지친 투어 참가자들은 괜찮으니 그냥 먹고 가겠다 하여 10시가 가까워진 늦은 저녁에 우리는 아이스크림으로 허기진 배를 채우게 되었다. 오늘 하루 가이드의 새심한 배려와 설명에 감사하고 맥도널드에서 저녁을 사가지고 숙소로 돌아왔다.

어제 저녁에도 난방이 되지않아 고생하였는데 아직도 난방이 고쳐지질 않아 프런트에 빨리 고쳐달라고 하니 대답이 기막히다. 어제 저녁부터 오늘 아침까지 프런트에 히터 수리를 신신당부하였으나 서로 인수인계도 제대로 이루어지질 않았고, 지금 담당자는 아예 잘 모르겠다고 내일 아침 Hostel 주인이 출근하면 다시 얘기하란다. 애들은 오늘 하루 투어하면서 몸을 많이 떨었기에 따뜻한 숙소를 무척이나 기대하였는데 여간 실망하는 눈치가 아니다. 프런트와 오랫동안 실랑이 하다가 포기하고 그냥 방으로 올라와 자기로 하였다. 이게 로마인이 우리를 대접하는 방법이라고 체념하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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