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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촌 구석구석/유럽

[동유럽 체오헝 12일] 여행 2일차, 프라하성 투어_프라하성에서 남쪽정원을 모르신다구요?

by 노니조아 2026. 5. 20.
카를교에서 바라본 프라하성의 새벽 풍경

2026. 05. 07 목요일, 어차피 시차적응은 시간이 약!
가벼운 폭탄주도 효과가 없었다. 억지로 눈을 붙여보았으나  두 시간을 넘기질 못한다. 이렇게 한가한 사투를 두 번 치르다 결국 옷을 입고 밖으로 나온 게 새벽 4시 반이다. 아직 해가 뜨려면 한 시간이나 남은 시각. 천천히 구시청사를 갔다가 프라하성까지 걸어가 보기로 한다.

프라하에서 이만한 숙소를?  
이번 여행을 준비하면서 숙소 예약을 일찍 서두른 덕분에 가격 대비 호텔 레벨이 괜찮은 곳을 선택할 수 있었다. 프라하에서 우리가 묵고 있는 곳이 Hotel U 3 Pstrosu, 영어식 이름으로 Hotel At the Three Ostriches로 구글에 나와있다. 위치가 압권인데 카를교가 끝나는 프라하성방향 교탑 바로 아래다. 프라하성과 구시청사광장까지 걸어서 15분이면 도착할 수 있다.

조식 메뉴가 꽤 다양하고 풍성하다

이 호텔은 일반적인 룸타입과 취사가 가능한 아파트먼트타입 모두 가지고 있다. 우리는 취사와 조식을 모두 포함한 조건에 하루 숙박비 20만 원으로 예약하였다. 아침은 컨티넨탈 조식으로 해결하고, 점심이나 저녁은 숙소에서 직접 해 먹는다면 프라하에서는 거의 식사비가 들지 않을 수도 있다. 물론 콜레뇨는 먹어봐야겠지.

2일 차 여행은 레논벽에서 출발!
숙소에서 5분 거리에 레논벽이 있다. 1980년 존 레논이 암살이라는 비극으로 세상을 떠나자 전 세계 젊은이들이 그를 추모하였다. 아직은 소련 공산당의 통제권에서 자유를 억압받고 있던 체코슬로바키아에서도 그를 추모하는 젊은이들이 몰타국 공관 자격으로 치외법권 보호를 받는 이곳 벽에 그를 기리고 추모하는 글을 쓰고, 가사를 적은 것이 시발이 되어 이제는 프라하를 방문하는 관광객들에겐 필수 방문코스가 되었다.

암울한 공산정권 아래 신음할 수밖에 없는 젊은이들이 그의 대표곡 Imagine을 부르고, 반정부 구호를 외치며 저항해도 몰타국 대사관의 치외법권이 적용되기에 함부로 잡아가지도, 벽에 그리거나 써놓은 반정부 구호들을 공권력으로 지울 수도 없었다고 한다. 이렇게 아픈 기억의 서사가 많다보니 관광객들에게 알려져 프라하에서 명소로 자리잡았다. 1980년 우리에겐 더 참혹한 아픔과 역사의 현장이 있는데 그걸 폄훼 못해 안달이 난 자들이 버젓이 강단에 서있는 게 슬프다.

레트나공원에서 내려다보는 프라하와 블타바강

프라하와 체코를 관통하는 블타바강 그리고 레트나공원
프라하 시내를 남에서 북으로 블타바강이 흐른다. 독일어로몰다우강으로 불리는 이 강을 거슬러 올라가면 체스키크룸로브로 이어진다. 프라하시내와 블타바강 그리고 카를교와 다른 다리들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공원이 있다.

레트나공원 바로 앞의 유대인지구와 프라하

레트나공원(Letná Park)이다. 카를교에서 강변길을 따라 공원방면으로 걸어가다 보면 공원으로 올라가는 길 안내표지가 나온다. 블타바강 북쪽 언덕에 위치해 있어 아침시간이나 일몰이 가까워지는 시각에 여기 공원에서 내려다보는 프라하시내와 블타바강은 보는 이들의 눈을 아주 맑게 해 준다. 저녁시간에는 이곳에서 맥주 파티가 열리다 보니 젊은이들이 즐겨 찾는 핫한 곳이다.

1,000년의 세월을 기다리며 완공된 성 비투스성당

프라하성 안 첫 번째 명소, 비투스성당
프라하성 입장권으로 관람할 수 있는 곳은 성 비투스성당, 구왕궁, 성 이르지성당 그리고 황금소로다. 프라하성 안으로 들어오는 것은 무료지만 이들 명소들은 티켓을 보여주어야 한다. 오늘 새벽 혹시나 하고 성 안으로 들어가는데 아무런 제재를 받지 않아 혼자서 유유자적 성 안을 돌아보았다.

지붕을 떠받치고 서있는 육중한 기둥과 스테인드 글라스

성 비투스 대성당(St. Vitus Cathedral)의 현재 모습은 천년 이상의 건축학적 발전의 결과라고 할 수 있다. 보헤미아의 왕이자 신성 로마 제국의 황제였던 카를 4세에 의해 1344년 건축을 시작해, 성 바츨라프가 사망한 지 정확히 1000년 후인 1929년에 건설이 완료되었다.

어떻게 이처럼 오랜 세월에 걸쳐 성당을 건축하였을까 하는 의문이 생긴다. 개인적인 생각은 건축비가 가장 큰 문제였지 않을까. 프라하는 신성로마제국의 수도이던 카를 4세 시기에 융성하다가 얀 후스의 종교개혁으로 촉발된 30년 전쟁으로 쇠퇴하여 긴 세월을 궁핍한 재정이 지속된다. 이에 따라 성당 건축에 필요한 재원을 마련하기 보단 백성들의 생계가 더 시급한 문제가 된다.

성서의 내용을 그림을 표현한 스테인드글라스, 오른쪽은 프라하의 성인 얀 네포묵 성인의 묘

성당 실내로 들어오면 거대한 기둥이 웅장한 아치형을 지지하고 있고, 아름다운 장식의 스테인드 글라스는 반짝이는 햇살에 은근한 빛을 투과시킨다. 대성당의 가장 중요한 곳에 바로 성 바츨라프 예배당이 자리하고 있으며, 대성당에서 만날 수 있는 성인, 왕, 왕자와 대주교의 무덤 중 가장 중요한 곳은 바로 성 얀 네포무크(St. John of Nepomuk)와 카를 4세(Charles IV) 왕의 안식처다.

그왕궁 안에 대 연회장

프라하성 안에 구왕궁,
프라하성은 870년 보헤미아 공국의 건국과 함께 건설되어 요새로 쓰여 오다가, 14세기 신성로마제국 황제이자 보헤미아국왕 카를 4세 시대에 고딕 양식으로 재건되었다.

2차 창문 투척사건의 바로 그 현장

1526년부터 합스부르크 가문이 집권하면서 빈에게 밀려 정치적인 입지를 점점 잃었고 오스트리아 왕위 계승 전쟁, 7년 전쟁에서는 프로이센 왕국군에 의해 몇 차례나 파괴되는 수난을 겪으며 그야말로 고난의 연속이었던 체코의 근현대 역사를 대표하는 건물이기도 하다. 또한 로마교황청의 관료를 신교도가 창문 밖으로 던진 2차 창문투척사건의 현장이기도 하다.

오른쪽 아래층의 가운데 창으로 교황청 신하들이 내던져진 현장

이 사건을 계기로 프라하는 긴 전쟁의 소용돌이에 내몰린다. 신성로마제국 내 공국과 제후들 사이에 이해관계가 작용하고 프랑스까지 합세하는 진흙탕싸움으로 번진다. 30년 전쟁이라는 이 싸움은 베스트 팔렌조약을 통해 막을 내리고 현재와 비슷한 영토의 유럽이 형성되기 시작한다.

프라하성에서 가장 오래된 성당, 성 이르지성당
구왕궁 관람을 마치고 나오면 적당한 넓이의 광장이 나오고 광장 한켠에 붉은색으로 단장된 건물이 눈 확 들어온다. 성 이르지 성당(Bazilika sv. Jiří). 체코 프라하 성 내에 위치한 성당으로 가장 오래된 교회 건축물이자 체코에서 가장 잘 보존된 로마네스크 양식의 문화유산이다.

영어식 표현으로 성 조지 바실리카(St. George's Basilica)'로도 알려지는 이 성당은 920년경 보헤미아의 브라티슬라프 1세 공작에 의해 목조로 지었다가 1142년 프라하 성 대화재로 소실된 후, 현재의 견고하고 웅장한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재건되었다. 다소 화려한 외관과 달리 소박한 내부를 가지고 있다.

황금소로 집안 구조 3평남짓 크기다.

황금소로엔 카프카 대신, 상점만 즐비
프라하성 마지막 유로 방문지는 황금소로. 프란츠 카프카가 잠시 머물면서 소설을 썼다는 서사가 붙으면서 프라하성에서 필수 방문코스가 되었다. 원래 성을 지키는 초병들의 막사로 성 아래 아치에 붙여지은 작은 가옥들이었는데 이후 연금술사가 세공을 하며 먹고살았다고 해서 황금소로란 이름을 얻었다.

입장권 체크받아 안으로 들어가니 좁은 골목 안이 마치 시장을 방불케 한다. 카프카가 소설을 집필했다고 알려진 22번 주택 앞에서 사람들은 인증샷을 찍거나 단체팀들을 끌고 온 가이드가 설명하느라 분주하다. 번잡함에 그닥 익숙지 않아 우리는 곧바로 출구를 찾아 벗어났다.

프라하 예쁜 모습을 내려다볼 수 있는 남쪽정원
황금소로 출구표시를 따라 나오면 로브코비치궁전 입구와 만나는 돌길로 연결되고, 이 길을 따라 내려가면 성문 밖으로 나오고 프라하성에서 해방된다. 길에서 왼편으로 넓은 공지가 있고 프라하시내를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전망대가 마련되어 있다. 어젯밤 내린 비에 깔끔하게 씻겨 내려간 오렌지빛 지붕이 구름사이로 내리쬐는 햇살이 더없이 예쁘게 빛나고 있다. 이 전망대에서 잠시 쉬면서 시내를 조망하고 이내 아래로 난 길을 따라 내려간다면 정말 아쉽다.

전망대 옆으로 난 소로를 따라 프라하성 남쪽으로 걸어가면 잔디밭과 성체의 여장이 허리춤 높이로 이어진다. 여기가 프라하성 남쪽정원이다. 중간중간 쉬어가라고 벤치도 있어 프라하성을 투어 하느라 지친 몸에 잠시 휴식을 가져다줄 수 있는 곳이다. 쉬면서 눈길을 시내로 보내면 프라하의 예쁜 모습이 눈에 가득 찬다. 이전에도 프라하성을 두 번이나 와보았지만 이런 정원이 있는 줄 몰랐고, 그때는 오늘처럼 한가로이 시간을 부릴 여유도 없었다.  

이 남쪽정원을 두르고 있는 성벽 아래에도 여러 개의 정원들이 이어져 있다. 숙소에서 미리 도시락과 음료수를 준비하였으면 이곳에서 휴식을 하면서 맛있는 야외 도시락을 먹는 사치도 부려볼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정원 끝은 다시 프라하성 입구와 연결된다. 우리는 숙소로 돌아와 간단한 점심 겸 저녁을 해 먹고 프라하 두 번째 일정을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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