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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구석구석/산으로 가자

사패산! 북한산, 도봉산과 한식구인데 이제야 오르네...

by 노니조아 2021. 3. 23.

갓바위를 이고 서서.. Photo by S.H.

2021 3 13 (토요일) 미세먼지가 위험수준이라네……

한 달에 한번씩 번개산행을 하기로 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지 40년이 지났다. 머리가 벗어지거나 하얗게 탈색되어 갈 나이에 다시 만난 친구들과 한 달에 한 번씩 번개산행을 하고 있다. 수락산을 시작으로 남한산성, 그리고 이번이 세번째 산행. 사패산을 찾았다.

천왕봉 일출이 비추고 있는 지리산 주능선

서울로 직장과 집을 옮긴 40대 초입에 들어설 무렵, 산을 찾는 사람들이 급격히 늘어나면서 아웃도어 의류와 장비가 전성기에 들어서기 시작했다. 나도 시대의 조류를 좆아 산을 찾기 시작했고, 주말이 되면 북한산, 도봉산, 태백산, 설악산과 지리산을 찾아나서곤 하였다. 원거리 산행을 할 여건이 되지 않을 때 가볍게 나선 곳이 서울 인근에 서있는 북한산, 검단산, 예봉산, 도봉산, 수락산이다. 그런데 어째 여태껏 사패산을 산행 목적지로 나서질 않았을까…..

아마도 정답은 하나다. 사패산은 북한산과 도봉산에 비해 나를 잡아끄는 스토리가 없었나 보다. 북한산은 다양한 산행코스와 함께 갈 때마다 새로운 맛을 보여주었다. 전통적인 비봉코스를 비롯하여 백운대코스, 의상능선코스에 더해, 12성문 순례코스와 숨은벽코스까지 산행에 투자할 시간과 체력적인 요구를 다채롭게 디자인하여 갈수 있는 산이다.

도봉산 또한 다양한 볼거리와 찾아볼 능선을 가지고 산객을 부른다. 포대능선, 자운봉, 회룡사코스, 우이암코스를 내려와 북한산으로 이어지는 길이며, 다섯 바위가 형제처럼 서있는 오봉, 그리고 이름도 야릇한 여성봉까지. 시간이 허락하면 아내와 함께 산행을 나서곤하면서도 사패산은 항상 내 산행지 레이다망에서 용캐도 빠져나갔다.

친구 덕분에 오늘 나는 사패산을 오른다. 내게 외면받아 온 사패산은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자못 궁금하기도 하면서 한편으로는 설레기도 한다. 어제 내린 봄비에 날씨가 조금 쌀쌀하지만 그래도 버들가지에까지 올라온 봄기운이 견디어낼 만 하다.

산행 전문가수준의 친구가 이미 그려놓은 코스로 산행을 시작한다. 의정부예술의 전당 인근에 있는 은밀한(?) 주차장에 안전하게 차를 놓고 북한산 둘레길을 따라 회룡탐방센터로 평탄한 도로를 어느정도 걷고나면 본격적인 산행들머리가 시작된다. 여기서부터 선바위 - 제1보루 - 제2보루 - 사패산 - 갓바위 - 문바위를 돌아 차가 세워진 곳으로 돌아오는 원점회귀코스다.

산행 들머리에 들어서면서 부드럽게 구비진 산길이 나온다. 푸른 잎을 자랑하는 소나무 사이로 난 길이 다정하게 우리를 반긴다. 산행을 하면서 우리는 이미 많은 산객들이 지나간 길을 따라간다. 사람들이 지나간 길을 따라서 또 걷고, 또 이어서 걷고앞서간 선인들의 선행과 업적을 밟고 오늘을 살아가듯이 우리들은 그 분들의 땀과 희생을 밟고 앞으로 나아간다. 불현듯 프로스트의 가지 않은 길(The Load not Taken)이 떠오른다.

" 노란 숲 속으로 길이 두 갈래로 나 있었지요.          나는 두 길을 다 가지 못하는 걸 안타깝게 생각하면서,
  오랫동안 서서 한 길이 굽어 꺾여 내려간 데까지,    바라다 볼 수 있는 데까지 멀리 바라다보았습니다.

  그리고, 똑같이 아름다운 다른 길을 택했습니다.      그 길에는 풀이 더 있고 사람이 걸은 자취가 적어,
  아마 더 걸어야 될 길이라고 나는 생각했었던 게지요.   (이하 중략)

약간의 오름길에 숨을 고르고 있는데 친구가 스틱으로 위를 가리킨다. 선바위라고 한다. 줌으로 한껏 당겨서 앵글에 담아본다. 산행을 시작한지 불과 몇 십분 경과한 것 같은데 사패산이 숨겨둔 명물을 하나 둘씩 보여주기 시작한다. 갑자기 발걸음이 가벼워진다.

"역시 친구의 선택이 틀리지 않누만. . . . ."

선바위가 일으키는 자기장에 이끌려 우리는 순식간에 선바위에 도착했다. 멀리서 줌인 할 때 예상해본 규모보다 훨씬 크다 장중하다. 우리는 소풍 나온 학창시절로 돌아가 마냥 장난질이다. 아무리 나이를 먹어도 옛 친구들과 어울리면 나이가 다시 그 시절로 회귀하나보다. 그러면 어떤가 즐거우면 그만 아닌가. 어차피 사는 한세상 즐겁게 살다가야지 찡그리며 살면 나만 손해지....

표면에 나있는 구멍들은 총탄자국이라네요...

앞으로 돌아가 바라보니 바위가 절반으로 갈라진 모습이다. 요세미티국립공원에 서있는 하프 돔(Half Dome) 축소판이다. 마치 요세미티 하프 돔 잘려나간 반쪽이 우주를 날아갔다가 여기 사패산으로 내려온 것처럼. 그래서 나에게는 선바위라는 이름 대신 서울 하프돔이라고 붙여본다. 절개된 표면에 구멍들이 숭숭 나있는데 총탄 흔적이라고 한다. 아마도 우주에 올라갔다가 한바탕 두드려맞고 내려왔나보다.

선바위 옆에는 물개바위, 지도바위도 서있다. 지도바위는 한반도지형을 비슷하게 닮아있어 그렇게 이름이 붙여졌을텐데 그보다도 우리는 물개바위가 더 친근하다. 물개 등 위에 증명사진 찍듯이 포즈를 취한 녀석들을 부추켜 물개 등처럼 포즈를 요구하니 군말없이 응답한다. 아무렴 그래야지!!!

선바위에서 제법 시간을 허비했다. 앞으로 가야할 길이 멀다. 선바위에서 바라보이는 제1보루, 제2보루를 넘어 정상까지 가려면 다시 서둘러야 한다. 아니다! 여지껏 허겁지겁 살아왔는데..... 누가 내몰며 빨리 가라고 좆지도 않는데, 오늘 하루 즐겁게 산행을 나섰는데 또 무엇 때문에 서두른단 말인가. 역시 습관이 무서워... 느긋하게 가던 길을 다시 이어간다.

바위로 이루어진 북한산이나 도봉산, 수락산을 등산하다 보면 바위 틈에 뿌리를 내리고 꿋꿋하게 살아가는 나무들을 만나게 된다. 저 넓디넓은 비옥한 땅을 놔두고 하필이면 바위 틈에다 뿌리를 내리고 힘겹게 살아가고 있을까 하는 안타까움도 있다. 하지만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거나 애통해하지 않고 주어진 여건을 긍정하면서 당당하게 살아내는 모습이 나에게 타이른다.

"현재를 인정하고 힘써 노력하며 살지어다."

2보루를 오르려면 자신의 몸상태를 시험해볼 수 있는 홈통바위(일명 뚱땡이바위)구간을 통과하여야 한다. 몸을 앞으로 반듯이하고는 통과할 수 없고, 옆으로 서서 게걸음질로만 올라갈 수 있을 정도로 바위 사이가 좁다. 오늘 함께 산행하는 친구들 몸매는 약간의 나이살만 든 정도여서 그다지 어렵지 않게 통과한다.

바위를 기어가고 있는 달팽이바위

홈통바위를 빠져나오니 탁 트인 전망이 시원하다. 망월사에서 포대능선까지 이어지는 도봉산 자락이 눈 앞에 드리우고, 미세먼지로 희미하게 산그리메를 드러낸 수락산과 불암사도 멀리서 우리를 반긴다. 널직한 바위 위를 기어가고 있는 달팽이바위가 앙증맞게 드러누워 있다. 저 달팽이는 어디서부터 기어오르고 있을까?

회사를 본의 아니게 그만두고 마음을 달래려 청산도를 간 적이 있다. 우리나라에서 대표적인 슬로우시티인 청산도를 무작정 삼일 내내 걷고 또 걸었다. 달랭이처럼 느리게 걸으면서 마음을 달래려 갔지만 아무리 걸어도 헛헛한 마음은 그대로였다. 아직 세상을 덜 살았다고 위로하면 집으로 돌아왔다. 그 때의 힘이던가. 인생을 한바퀴 돈 나이임에도 일을 하고 있다. 남들이 알아주거나 말거나 내가 맡은 일에 그저 최선을 다하려고 한다. 친구에게 부탁해 물구나무 서는 모습을 찍어달라고 했다. 역시 친구의 촬영실력은 인정해줘야 해!!!

친구들과 수다도 떨고, 사패산이 보듬고 있는 명품 바위들을 하나씩, 하나씩을 거쳐오다 보니 가쁜 숨 한번 내쉬지 않고 사패산 정상에 올랐다. 정상석을 뒤로 도봉산 자운봉, 북한산 백운대와 인수봉이 멀리서 우리를 반긴다. 좀 가까이에서 오봉과 여성봉도 우리에게 손짓한다. 산행을 하면 버릇처럼 정상을 밟는다. 그리고 정상석과 나란히 포즈를 취해야 그날의 숙제를 마친 것처럼 개운하다. 오늘도 어김없이 그 개운하고 상쾌한 맛에 취해본다.

정상의 널직한 바위 한자리를 차지해 준비해온 컵라면으로 간단히 요기를 한다. 산에서 먹어보는 컵라면이 참으로 별미다. 이제 하산이다. 친구는 갓바위와 문바위가 기다리고 있는 성불사 방향으로 우리를 인도한다. 정상에서 내려서면서 보이는 바위가 있다. 남근석이라고 하는데 가까이 가보아야 실감할 수 있단다.

하늘에서 집채만한 우박이 떨어진 것처럼 무지막지한 바위가 하산 중인 우리를 맞는다. 문바위라고 한다. 문바위를 지나면서 오늘의 산행을 마무리한다.

사패산. 조선의 어느 임금이 시집가는 옹주에게 패물삼아 주었다는 사패산은 당당하게 북한산국립공원의 일원이다. 그럼에도 나는 오늘에서야 사패산을 찾았을까. 옆에 서있는 두 산에 비해서 전혀 빠지지 않는 등산코스와 명물들을 간직하고 있는데도... 정답이 하나, 내가 그동안 편식을 많이 했고, 이름과 명성을 좆아 산행을 해온 것이다.

사패산아 미안하다. 너를 늦게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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