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4월 10일 토요일,
봄기운이 산자락에서부터 젖어 오르고 있다. 4개월동안 미루어온 산행을 마침내 실행에 옮기기로 하였다. 천안역에 9시 20분까지 모여 광덕사 주차장으로 출발~~
그동안 미세먼지가 봄을 시샘하듯 하늘과 땅을 온통 누렇게 덮어왔는데 오늘은 하늘도 맑고 대기도 깨끗하다. 주최측의 택일이 탁월하다는 자찬과 타찬을 섞어가며 소풍길에 나선 초딩처럼 재잘거린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한 건 건강에만 붙이는 게 아니다. 만나면 그 시절로 돌아가는 건 오랜 친구사이에서 자연스레 발산되는 생활의 활력소다.
광덕사 바로 앞에 있는 유료주차장에서 준비물을 챙기고, 각자 준비운동으로 혹시 모를 안전사고에 대비한다. 봄산행을 즐기러 아이들과 산행에 나선 가족도 보이고, 우리처럼 친구들과 길을 나선 분들도 보이고, 수험생활을 잠시 잊으려는 학생들도 보인다. 광덕사를 우측으로 끼고 산행을 시작한다.
오늘 산행은 광덕사 -> 568 계단 -> 팔각정 -> 헬기장 -> 정상까지 오르는 1코스를 거쳐 정상에서 -> 장군바위 -> 안산 -> 광덕사로 내려오는 2코스를 묶는 코스다. 천안에서 살던 시절에 여길 올랐으니 벌써 20여년이 훌쩍 지나간 세월이다.
오늘 산행은 광덕사 -> 568 계단 -> 팔각정 -> 헬기장 -> 정상까지 오르는 1코스를 거쳐 정상에서 -> 장군바위 -> 안산 -> 광덕사로 내려오는 2코스를 묶는 코스다. 천안에서 살던 시절에 여길 올랐으니 벌써 20여년이 훌쩍 지나간 세월이다.
조잘조잘 흐르는 냇물과 나란한 길섶에는 한껏 화장을 한 봄꽃들이 손짓을 하면 자기를 봐 달라고 한다. 야생화에 조예가 깊은 친구 도움으로 꽃이름을 하나씩 짚어가며 인사를 나눈다.
봄에 피는 꽃 중에서 가장 붉은 색을 자랑하는 명자나무꽃, 일명 '아가씨나무. 나뭇가지에 하얀 꽃들이 빼곡히 달라붙은 모양이 튀긴 좁쌀을 붙여놓은 것같은 조팝나무. 열매가 마치 개불알처럼 생겼다고 하여 붙여진 개불알풀.
봄을 알리는 전령사 제비꽃. 자줏빛 잎사귀에 엉글게 피어난 자주광대나물. 길게 뻗어내린 꽃잎 끝이 악어 입을 크게 벌린 것같은 현호색
봄꽃들과 인사를 나누고 본격적인 산행을 시작할 수 있는 갈림길에 섰다. 왼쪽 오름길로 가면 정상까지 가는 지름길인 1코스고, 오른쪽 평평한 길은 장군바위로 우회하여 정상으로 가는 2코스다. 1코스 오름방향으로 길을 잡았다. 다른 산객들 대다수가 왼쪽 오름길로 간다.
산행 시작과 함께 맞딱뜨린 계단. 처음에는 대략 2~300개 정도 되려니 하고 오르기 시작했다. 직선으로 오르다가 위를 보니 옆으로 휘어지는 모습이 보여 아! 저기까지 계단인가보다 하고 힘을 내어 오른다.
아니었다! 앞을 보니 계단이 끝도 없이 이어진다. 스틱을 접어서 뒷짐 진 손에 잡고 오르고 또 오른다. 도대체 이놈에 계단이 모두 몇 개나 된단 말인가. 숨이 점점 가빠오고 허벅지에 힘으 빳빳이 들어간다. 기왕 시작한 거 끝까지 쉬지않고 올라가보자..
처음엔 몇 계단인가 세어보다가 가쁜 숨을 몰아세다가 그동안 세어온 계단 숫자를 잃어버리고 만다. 지리산 화개재에 500여개가 되는 계단은 내림길이라 지루하기만 했는데 여긴 힘든 데다가 처음부터 끝까지 계단이다. 중간에 평평한 길 한 뼘도 없다. 50개마다 아예 계단수를 알리는 표지까지 붙여놓았네…. 미리 알았으면 세면서 올라오는 수고라도 덜었을텐데…
정상까지 올라가는 데 쓰려고 준비한 체력을 꼴랑 계단을 오르는데 그만 모두 탕진해버렸다. 광덕사 기점에서 1.0km왔다고 표지판이 말해준다. 팔각정 쉼터에서 숨을 고르는데 가슴이 메스꺼워진다. 친구들을 먼저 보내고 천천히 바닥난 체력을 자가발전 시켜가면서 올라야 할 판이다.
고도를 높여가는데 점점 더 힘들어진다. 아침에 급하게 먹은 게 탈났는지 헛트림이 계속 나오고가슴이 여전히 메스껍다. 제법 경사가 있는 길을 가는게 힘겨워진다. 결국 헬기장으로 가는 오름길을 버리고 옆으로 우회하는 길로 가는데 내 상태가 걱정스러웠는지 나를 따라온다.
헬기장 아래 안부에서 한참 숨을 고르고 다시 마지막 깔딱고개를 오르는데 또 계단길이다. 오래전 아이들과 여기를 오를 때 광덕사에서부터 쉬지 않고 단숨에 올라왔던 기억만 믿고 초반부터 페이스 오버한 게 무척 날 힘들게 한다. 검단산이나 예봉산을 오를 때도 거의 쉬지 않고 정상까지 질러 본 경험이 있어 더더욱 깔본 대가를 치르는 것이다. 산을 오르면서 겸손을 배워야 한다고 그렇게 다짐을 했건만……
699.3m 광덕산 정상에 드뎌 올랐다. 최근 몇 년동안 산행을 하면서 가장 긴 시간 산행을 한 기분이다. 올라오는데 겨우 1시간 20분 밖에 걸리지 않았는데. 지리산 종주를 할 때도 이렇게 힘들게 오르지 않았으리라. 자신의 능력치를 겸손하게 생각하지 않고 ‘~~라떼’ 생각에 그만 자만한 결과다. 여찌되었든 정상에 섰다. 먼저 온 친구들은 한 쪽에 자리를 마련하고 나를 기다리고 있다. 각자가 준비해온 먹거리를 펼쳐놓고 그 위에 추억담을 더해서 즐거운 새참 시간을 즐겼다.
정상에서 함께 준비해온 계란, 과일, 음료수를 나눠 먹으며 정담을 나누고 나서 하산길을 나선다. 방전된 체력이지만 하산길은 문제없을 거 같다. 주전부리와 함께 휴식도 가졌으니 얼추 기력은 회복한 거 같다. 올라올 때는 거의 땅바닥만 보고 걸었던 거 같은데 이제는 주변의 경치도 보이고 굴참나무가 밑둥부터 여러 형제로 갈라져 올라간 모습도 보인다.
장군바위에서 부용묘로 넘어가는 산능선을 버리고 계곡으로 안산까지 이어진 길로 한참을 내려오니 나뭇가지마다 아기새순이 돋아난 숲이 싱그럽게 눈앞을 막아선다. 정말 봄의 모습이 이것이다! 싶으리만치 아름다운 경치가 우리를 반겨준다. 산 아래 연초록 빛깔과 아직 새순을 움튀우지 못한 능선의 적갈색이 절묘하게 조화를 담아내는 풍경이다.
우리 모임에는 전담 촬영기사가 있다. 우리 일행의 일거수 이투족을 사진에 담느라 때로는 선두에 서기도 하고 후미로 내려오기도 하면서 바쁘게 움직이며 본분(?)을 즐기는 친구다. 그 친구가 잠시 시야에서 벗어난 틈을 타 친구 독사 요청에 실력발휘를 해본다. 독사진은 아래에서 위로 앵글을 잡아야한다는 고전적인 지식에 나도 배를 깔고 앉은 자세인 친구를 위해 찰칵!!
그렇게 해서 얻은 친구의 싱글 컷! 친구가 만족한단다, 다행이다...
잠시 광덕사 경내를 돌아본다. 초파일이 오려면 아직도 한달이 넘게 남았는데 연등준비가 거의 다 되었나보다. 오방색 연등들이 준비를 마치고 보살님들의 시주를 기다리고 있다.
산행이 마무리된다. 일주문을 나서는 친구들 뒷모습을 일주문 안에 담아본다. 이 친구들과 더도 말고 덜도 말고 10년만 무탈하게 산행하게 해달라고 빌어본다. 오늘 568계단에 화들짝 놀란 가슴이지만 이제는 더없이 즐겁고 힘이 솟는다. 이래서 산을 찾고 땀을 쏟나보다. 화창한 봄날 산행...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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