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03. 18. 귀국하는 날.
지난 3월 5일 저녁 비행기에 몸을 싣고 11시간을 날아와 오클랜드공항에 내린 게 엊그제 같다. 학사장교 같은 병과로 임관한 동기들 중에서 사정이 허락하는 일곱이 의기투합해 벌인 뉴질랜드 여행. 필립이 주도한 여행 제안에 선뜻 가겠다고 나서지 못하고 주저주저하다가 아내의 내락을 받고서야 합류 의사를 표한 게 작년 10월이다.
차곡차곡 필요한 여행에 필요한 준비과정을 진행하였던 일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간다. 항공권을 예약하면서 경유 편으로 할까, 직항으로 할까, 호텔 숙소는 어느 수준으로 해야 할까, 하루 삼시세끼는 어떤 방법으로 해야 할까 등등을 결정하기 위해 두 번의 사전회합을 가졌던 일들. 그때마다 이미 여라 차례 뉴질랜드 자유여행을 경험한 필립의 조언은 가히 절대적이었다.
호텔에서 마지막 아침을 먹고 캐리어를 꾸려 로비에 내려와 예약해 둔 셔틀택시를 기다린다. 호텔 앞에서 마지막 기념으로 인증샷을 앵글에 담고 공항으로 출발. 비교적 간단한 출국심사를 마치고 기내에 올라 출발을 기다리며 여행 중에 지출한 비용을 정산해 본다.
활주롤 벗어난 비행기가 제 궤도로 진입하자 식사가 나온다. 와인을 곁들여 식사를 마치고 비용 정산을 이어간다. 영수증과 신용카드 문자 알림을 하나하나 대조하면서 넘버스(엑셀과 같은 아이맥 어플)에 함수를 걸어놓은 항목별 집계금액을 수시로 확인해보기도 한다. 예산대비 실제 지출액 사이에 어느 정도 차이가 발생하는지 보는 게 나름 스포츠 중계를 보는 거 같은 짜릿함이 있다.
1. 여행비용은 예산의 90%를 소진하다.
14일 동안의 여행 경비로 한 사람당 4백만원을 책정하였다. 항공교통비로 2백만원, 숙박과 관광비로 1.1백만원, 식비와 기타 비용으로 9십만원. 항공교통비는 예산에 거의 맞아떨어졌고, 숙박과 관광비에선 20% 초과지출이 발생하였다.
하지만 주방팀의 완벽한 팀워크에다 셰프 정의 세심한 장보기 전략으로 식비가 예산 대비 60% 지출에 머물렀다. 등심, 안심, 초록홍합, 사슴고기, 양고기에다 요거트와 과일 그리고 신선한 야채를 갖고 세끼 식사를 차려낼 때마다 칼로리까지 고민하였으니 이보다 감사할 수가 없다. 정말 좋은 구경하고 돌아가는 길에 노자돈까지 챙긴 격이랄까.
우리 일정과 비슷한 패키지여행상품을 검색해 가격을 비교해 보았다. 옵션과 가이드팁을 포함하지 않았는데도 15% 이상 비싸다. 더구나 일정도 짧은데 말이다. 아마 제반 비용을 모두 감안하면 30%가 훌쩍 넘어갈 수도 있겠다 싶다. 더불어 여행사가 줄 수 있는 스트레스조차 없지 않았나?
2. 여행코스에 너무 많은 욕심을 담았다.
전체 14일 일정에서 출발일과 귀국일 이틀을 빼면 순수하게 뉴질랜드에서 여행으로 사용한 날짜는 12일, 그중 남섬이 9일, 북섬이 3일이다. 남섬이 갖고 있는 핵심 관광지는 거의 담았지만, 북섬은 오클랜드와 로토루아밖에 담지 못하였다. 패키지상품과 비교해 봐도 우리 일정과 그다지 차이를 보이지 않는다. 결국 보통의 뉴질랜드 여행지는 거의 훑은 셈이다.
12일 동안 뉴질랜드의 주요 관광지를 모두 섭렵하려다 보니 방문하는 도시마다 하루 숙박이 다반사고 일부 도시에서만 이틀을 체류할 수밖에 없었다. 뉴질랜드를 여행하면서 우선적으로 꼽은 것이 때 묻지 않은 대자연의 속살을 두 발로 어루만지는 것이고, 트레킹은 필수 코스일 수밖에 없었다.
하루밖에 할애되지 않은 도시에서는 당초 계획하였던 트레킹을 거의 하지 못하고 호수 주변을 가볍게 산책하는 것으로 만족하였다. 특히 와나카에서의 롭로이트레킹과 로토루아의 레드우드 그로브 트레킹을 하지 못한 아쉬움이 진하게 남는다. 도시 간 이동애 너무 많은 시간을 투입하다 보니 도시에 도착하여도 막상 트레킹에 나설 엄두가 좀체 나질 안았다.
그럼에도 남섬에서 꼭 해봐야 하는 여행객의 버킷리스트르 전부 해낸 것은 정말 감사햐야 할 것이다. 경이로운 자연 그대로의 밀포드 사운드와 만년설을 눈으로 직접 확인한 마운트 쿡과 후커밸리 트레킹.
퀸즈타운 스카이라인에서 여왕의 도시를 내려다보면서 즐긴 만찬. 그리고 말로는 도저히 표현할 수 없는 테카포호수의 신비로운 물빛과 밤하늘을 빼곡히 채운 은하수를 영접할 수 있었던 영광은 무엇으로 비견할 수 있을까.
만약 뉴질랜드를 다시 방문할 기회가 온다면
퀸즈타운에서 여행을 시작하려고 한다. 퀸즈타운 공항에서 렌터카를 빌려 테 아나우로 이동해 밀포드와 주변관광으로 2박. 와나카로 이동해 2박하면서 롭로이 트레킹 + 블루 풀 트레킹. 테카포로 이동해 3박하면서 마운트쿡 트레킹, 테카포 호수 트레킹, 푸카키호수에서 몰멍하고, 퀸즈타운에서 3박하며 퀸즈타운 주변을 관광하면 최상의 코스가 아닐까 싶다.
이렇게 남섬을 10일 관광하고, 이번에 부족하였던 북섬에 5일을 할애하여 로토루아, 와이토모 그리고 코로만델을 둘러보면 뉴질랜드를 섭렵할 수 있지 않을까?
3. 숙소를 빌릴 때 주방시설이 제일 중요하다.
숙소는 여행의 피로를 푸는 휴식 공간이면서 마트에서 준비한 식자재로 요리해 먹는 식당을 겸하게 된다. 레스토랑이나 패스트푸드점에서 끼니때마다 사 먹으며 여행을 할 수도 있다. 일 년간 뉴질랜드에서 살아본 필립은 식당에서 사 먹으면 편리하지만 가격이 만만치 않은 데다 맛도 그다지 추천할 수준이 아니란다.
여행기간 동안 7명 멤버들이 우리가 묵었던 숙소들을 예약할 때 네 가지 검색 옵션으로 걸러내고 예약하였다. 첫째 취사가능할 것. 둘째 도착 전까지 예약을 취소할 수 있어야. 셋째 방문객 평점이 8.0 이상일 것. 넷째 다운타운을 걸어서 다닐 수 있는 위치로 하였다.
이런 조건에 맞는 숙소를 다녀보니 가격대비 숙소 수준은 나름 훌륭하였다는 게 함께 한 친구들의 평가다. 묵었던 숙소들 중에서 단연 최고는 퀸즈타운의 단독빌라형 숙소였다. 3층 구조의 연립빌라 구조로 내부 계단으로 된 1층과 2층에 각각 침실이 두 개씩 있고, 3층은 주방과 거실에다 호수를 내려다볼 수 있는 테라스가 있다. 하루 50만원(커플당으로 하면 15만원 수준)으로는 아주 럭셔리 그 자체다.
치치에서 첫 번째 숙박을 하면서 자연스레 숙소평가항목이 정리되었다. 첫째, 7명이 사용하게 될 샤워장이 두 개 이상 가지고 있는가? 둘째 침실이 최소 세 개이상인가? 셋째, 주방에 쿡탑같은 조리시설은 충분한가, 요리용 칼과 가위 그리고 초록홍합이나 찌개를 끓일 냄비가 있는가?
전부 9곳의 숙소 중에서 빌라형 숙소는 위의 조건을 대부분 충족하였는데 모텔형 숙소는 미흡한 부분이 많았다. 모텔형 숙소는 두 개의 객실을 예약하는 형태일 수밖에 없어 식탁도 부족하고 조리시설도 4인 기준일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5인 이상이 함께 여행한다면 빌라나 아파트형 숙소를 위주로 선택하면 유리할 거 같다. 여기에 더해 셰프 정은 요리용 칼과 가위는 한국에서 미리 가져가는 걸 강력 추천한다. 숙소에 비치된 개 영 부실하단다.
3. 식당에서 사 먹는 게 더 어렵다?
뉴질랜드를 여행할 때 끼니에 맞춰 매식을 하는 게 편해 보일 수도 있지만 가성비가 절대적으로 떨어진다. 우리는 치치에 도착하자마자 K마트에서 식자재를 구매하였다. 쌀을 살 때는 훅~ 부는 입김에 날아가는 안남미인지 꼭 확인해야 한다. K마트는 우리나라보다 가격이 세지만 필요한 식자재는 거의 모두 살 수 있다. 하지만 치치나 퀸즈타운같은 큰 도시에서만 가능하다.
우리가 방문한 도시에는 우리나라 이마트같은 대형 할인매장이 한결같이 있다. 그중에서 가장 큰 게 Pakn Save그리고 New World, Fresh market 등이 자리잡고 있어 어렵지 않게 식자재을 구입할 수 있다. 우리가 주로 구매한 품목으로 소고기 등심, 양고기, 사슴고기와 과일, 우유, 점심식사용 빵과 야채 그리고 요플레와 종이박스로 포장된 와인이다. 가격도 무척 착해서 7인분 하루 식자재로 18만원 정도였으니 한 끼 식사로 만원도 들지 않은 셈이다.
퀸즈타운에서 매식한 퍼거버그 하나값에도 미치지 않는 비용으로 우리는 매 끼니를 맛나게 즐긴 셈이다. 마트에서 구매한 장바구니 물가가 우리나라보다 비교적 싸게 든 셈이다. 그중에서도 고기와 초록홍합 그리고 와인과 아이스크림은 절반에도 미치지 않은 가격으로 만찬을 즐길 수 있었다.
뉴질랜드 여행을 마치며
팬데믹이 가로막은 해외여행이 다시 재개되면서 그동안 눌려있던 욕구가 스프링처럼 솟구쳐 올랐다. 필립 제안으로 감행?한 여행은 내게도, 친구들에게도 생각지 못한 뉴질랜드가 다가왔다. 중년을 넘어선 남자들만 일곱이 여행에 나선다고 하니 가까운 찬구들이 걱정을 한다. 친구들 각자의 기호와 생각이 달라 서로 의견 충돌이 생길 수 있고, 충돌이 없더라도 끙끙대면 속앓이를 할 수도 있을 수 있다며 적잖은 충고투성이다. 하지만 여행을 마무리하면서 되돌아보니 친구들의 충고가 괜한 기우에 불과하였다.
우리가 여행을 준비하면서 세운 원칙은 아주 단순했다. 자유여행 특성상 식사는 숙소에서 자급하고, 렌터카를 이용해 이동하므로 주방을 운영할 팀과 운전을 책임질 팀 그리고 여행일정을 컨트롤할 팀으로 나누고 각 팀에 지원자를 받았다. 이렇게 꾸려진 팀은 맡은 바 역할을 한치의 소홀함이 없이 완벽했다.
귀국 후 한 달여 만에 가진 뒤풀이에서 모두들 이구동성으로 하는 말,
“우리 다음엔 어디로 갈지 빨리 정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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