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5. 06. 29. 돌로미티 극한 트레일 피츠 보에
슈퍼섬머카드를 사용할 수 있는 마지막 날이다. 우리는 일주일 내에 5일 동안을 무제한으로 사용할 수 있는 카드를 180유로, 한화로 약 28만 원을 주고 구매하였다. 이 카드를 들고 알페 디 시우시, 세체다, 라가주오이, 친퀘토리, 비엘 델 판과 사소룽고를 누볐고 오늘은 마지막으로 파쏘 포르도이에서 피츠 보에를 올라간다.

이번 여헹에서 해발고도가 가장 높은 3,152m 피츠 보에산장을 걸어서 올라가는 날이다. 파쏘 포르도이에서 케이블카를 타고 2,950m에 있는 마리아산장에 도착해 트레일 627 -> 638을 따라 피츠보에 정상의 파싸산장(Rifugio Fassa)까지 오른 다음 다시 마리아산장으로 내려올 예정이다.

이날까지 살아오는동안 내 두발로 걸어서 올라가본 최고 높이가 고작 1,950m 한라산 백록담이다. 기실 작년에 돌로미티를 방문해 2,500m 정도밖에 되지않는 세체다에서 십자가가 서있는 곳을 오르는데 가슴이 답답하게 조여오는 증상을 경험하였기에 3,000m를 넘나드는 피츠 보에 트레킹은 시작부터 온 몸에 조여드는 쭈뼛함에 긴장한다.


숙소에서 갸까운 코르바라 조형물에서 긴장도 풀어낼겸 친구들과 유쾌한 사진을 찍고 파쏘 포르도이로 차를 몰아 올라간다. 파쏘 포르도이에서 09:00 첫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간 곳에 이런 안내판이 서있다.
“It is a unique place in the world, which is absolutely worth a visit for the 360° view of the Dolomites. 돌로미티를 360도로 훤히 조망할 수 있는 유일한 곳”


윙슈트맨의 축하비행?
파쏘 포르도이에서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와 마리아산장에 내리니 2,950m가 확 눈에 들어온다. 지금부터 걷는 길은 내게 해발고도 기록을 경신하는 그 자체. 산장 밖으로 나와 주변을 둘러보는데 어제 다녀온 비엘 델 판 능선이 발아래로 보인다.


산장에서 피츠보에 정상으로 가는 이정표를 따라 발길을 옮기며 사방을 둘러보니 온통 황량한 암석덩어리 일색이다. 해를 가릴 그늘은 고사하고 한발짝 옮길 때마다 숨쉬는게 순조롭지 않다. 여행객들을 따라 서쪽으로 걸어가니 다시 만나게 되는 십자가. 돌로미티 명소를 방문할 때마다 여행객이 모이는 정상엔 언제나 십자가가 있다. 여기서도 우리는 무사히 완주하길 빌어본다.

십자가 앞에서 무사 산행을 기원하고 피츠보에 트레일로 나서려는데 십자가가 서있는 데서 조금 떨어진 곳에 낯선 모습이지만, 은근히 기대하였던 광경이 보여 친구들에게 빨리 오라고 손을 흔들었다. 맨 몸으로 수직절벽을 낙하하는 신종 스포츠인 윙 슈트맨이 낙하 준비를 하고 있는 모습을 발견한 것이다. 친구 화가 여행 오기 전에 윙 슈트맨 얘기를 꺼내기에 유튜브을 찾아보니 바로 이곳에서 그들의 낙하를 촬영한 것을 알게 되었고, 은근히 그들의 낙하를 기대하였다.
우리의 기대가 헛되지 않았다. 바로 우리 눈 앞에서 두 윙슈트맨이 차례로 낙하하는 장면을 직관하는 영광을 가질 줄이야!! 첫번째 낙하 장면을 DSLR 카메라로 연속 촬영하고, 두번째 낙하장면은 휴대폰으로 동영상으로 촬영하는 데 성공. 그들의 낙하장면을 가능하면 생생하게 찍으려고 낭떨어지 쪽으로 발을 내미는데 다리가 후들후들한다. 그들이 뛰어내려 정해진 착지 장소에 무시히 내려앉는 모습까지 보는 내내 가슴이 방망질한다.


본격적인 피츠 보에 트레킹
전혀 현실적이지 않을 낙하장면을 직관한 감동에서 벗어나 천천히 트레일을 따라 발길을 옮겨본다. 혹시나 고산증세를 겪을까 싶어 친구 화는 서두르지 말고 천천히 걸어가라고 연신 채근한다. 내 인생에서 가장 하늘을 가까이 이고 걷기에 친구 화의 채근이 고맙다. 길은 내리막으로 변해 포르첼라산장(Rifugio Forcella)으로 이어진다.


산장에 내려오니 Alta Via 2 트레일로 알려진 길이 파쏘 포르도이로 이어진다. 우리는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와 걷는데도 힘겨운데 급경사를 지그재그로 걸어서 올라오고 또 내려간다. 화의 리드에 따라 천천히 산장을 지나 정상으로 나아가면서 뒤를 돌아보니 우리가 케이블카를 내린 마리아산장이 두툼한 암봉 정상에 자그맣게 보인다.


믿음직한 리더를 따라 천천히 서두르지않고 한발 한발 앞으로 나아간다. 저 아래엔 30도를 웃도는 기온인데 여긴 아직도 눈이 녹지않고 남아있다. 잠시 눈위에서 장난스런 포즈로 힘든 트레킹을 잊어본다.

이 척박하기 이를 데 없는 곳이건만 질긴 생명력으로 버티며 길섶에서 우리를 보고 인사하는 야생화가 있다. 경이롭다고 해야하나? 야생화 앞에서 한참을 바라보고 서있다 다시 길을 재촉한다.


피츠 보에 정상은 결코 만만히 우릴 받아주지 않네
마리아산장을 출발한 지 거의 두 시간 만에 627 트레일을 따라 보에산장(Rifugio Boe)이 보이는 언덕까지 왔다. 여기서 627 트레일에서 벗어나 정상으로 올라가는 638번 트레일로 갈아탄다. 정상이 3,152m니 산술적으로 300미터도 안 되는 고도를 올라가건만 심리적으론 까마득하다.

육중한? DSLR카메라를 배낭에 집어넣고 오로지 발끝만 보며 천천히 그러나 쉬지않고 올라간다. 호흡이 심하게 거칠어지고 이따금 가슴이 팍팍해져올 때면 잠시 걸음을 멈추어 본다. 녀석들은 힘들지도 않은가? 하면서 올라가 보지만 격차는 좁혀지지않는다. 쇠줄을 잡고 마지막 힘을 내어본다. 드디어 정상에 서있는 파싸산장(Rifugio Fassa)이 시야에 들어온다.


먼저 올라온 친구들과 하이파이브를 나누고 산장 야외 테라스에 자리를 잡는다. 갈증 해소보다 정상을 정복한 기쁨을 축하하기 위해 맥주를 쭉 ~~~~. 목줄기를 타고 남아가는 청량함에 올라오면서 쏟아낸 원기를 회복하는데 히늘에서 우리의 등정을 축하하듯 행글라이더가 선회비행을 한다. 오늘은 침으로 다채로운 축하를 받는 날이다.


하산길도 여긴 만만치 않네
맥주를 즐기며 올라오는동안 소진된 기력을 회복하고 다신 원점회귀 하산길을 나선다. 경사진 길에는 잡석들이 무질서하게 채워져있다. 산장 앞에는 십자가와 함께 마리아상이 서있다. 오늘까지 돌로미티를 여행하는동안 마리아상이 서있는 곳은 이곳이 유일하다.

마치 달 표면처럼 건조하고 팍팍한 내리막 하산길은 경사도 위협적인데다 작은 암석 파편같은 돌 위에 발을 디디다 미끌어져 내려가면 어쩌나 하는 불안에 속도를 내기 어렵다. 내리막길을 한참내려오다 뒤를 돌아보니 프르다 못해 흑청빛 하늘이 산장을 집어삼키는 거 같다.

고산증세가 잠시 왔다 간다.
묵묵히 그져 발끝에 시선을 박고 걸어내려오다 보니 평지가 나온다. 미끌어져 넘어질까 한껏 조리던 긴장에서 벗어나 잠시 호흡을 크게 들이마셨다 내쉬어본다. 혹시나 고산증세라도 당할까봐 내심 걱정이 많았다. 사실 638트레일을 따라 거의 정상에 다다를 즈음 메스꺼움에 한동안 서있었다. 친구 화는 우리들 중에서 고산증세를 보일까봐 본인 스스로가 더 긴장하고 있는 거 같았다. 페이스를 조절하고 몸상태를 걷는 내내 살피고 있다.

트레킹 리더로서 책무를 하면서도 분위가가 처질라치면 흰소리로 웃음을 자아내게 만든다. 든든한 리더임에 틀림없다. 든든한 리더를 따라 친구들도 무사히 산행을 마무리한다.

비록 8키로 정도 구간이지만 30키로는 걸은 듯 온몸이 무겁다. 멀리 피츠 보에 봉우리가 수고했어! 하고 날 다독여주듯 서있다. 산행을 무사히 다녀오길 기원하는 마음으로 쌓은 걸까? 앙증스런 돌탑이 옹기종기 모여있고 그 뒤에 완강한 모습으로 버티고 선 피츠 보에에 인사를 하고 하산한다.

네가 가이드 자격이 있어?
케이블카를 타고 파쏘 포르도이로 내려와 페다이아호수로 차를 달린다, 돌로미티 최고봉 마르몰라다를 오를 일정에 부풀어. 곤돌라탑승장이 있는 치아펠라산장(Malga Ciapela)에 도착한 시각이 16:10. 여행계획을 수립할 때 획득한 정보에 마르몰라다를 오르려면 오후 두시전에는 이곳에 도착해야 한다고 당일 계획서에 써넣고도 그걸 까맣게 잊고 있었다.

알페 디 시우시와 세체다에서 길을 잃어 친구들을 헛걸음치게 하고, 오늘은 친구들이 그렇게 기대한 돌로미티 정상에서 만년설을 밟아볼 기회를 강탈하고. 세심한 듯하면서 이렇게 어이없는 실수를 한다. 친구들 정말 미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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