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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구석구석/산으로 가자

영화 남한산성 자취를 따라서

by 노니조아 2023. 1.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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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고유의 명절 설을 앞두고 남한산성에 오르다!
이번엔 남한산성으로 길을 나섰다. 지난해 마지막날 한양도성을 완주하면서 한해를 마감하였고, 한 살을 더하는 설을 하루 앞둔 오늘 남한산성에 오른다. 600년 도읍 서울엔 도성과 두 곳에 산성이 두르고 있다. 진달래가 다소곳이 얼굴을 내밀 무렵엔 북한산성을 찾아보자. 이름하여 북한산성 13성문을 이어서 완주하면 도성길과 산성을 모두 돌아보는 쾌감을 얻을 수 있다.

지난 주말에 넥플릭스에서 남한산성을 다시보기로 시청하다가 문득 겨울의 남한산성을 올라보는게 어떨까? 하는 심사가 발동하였다. 인조가 남한산성으로 행궁한 시절도 설이 끼어있었다. 설날 아침 명줄이 경각에 걸쳐있는 명나라 황궁을 향해 임금이 신하와 함께 망궐례를 올리는 모습과 그 양태를 망월봉에서 내려다보고 있는 칸의 모습이 머리에서 벗어나질 않는다. 현재의 나라 상황이 그때와 크게 다르지 않음에서 오는 걸까?

단단한 성안에서 명분과 실리가 부딪치다
오늘 산행은 고골에서 시작하려고 한다. 고골에서 치고 오르면 바로 북문이다. 체찰사 김류의 엉터리 전략에 남한산성 주력군이 무참히 참살당한 그 현장에서 산행을 시작한다.

산성을 올려다보며 적장 용골대는 귀화한 조선역관 정명수에게 “성이 단단해 보이는구나” 하자, “단단히 조이면 안으로 무너질것입니다.”
그들의 대화처럼 척화파 김윤식(김상헌)과 주화파 이병헌(최명길)은 단단한 성안에서 끊임없이 무너져내리고 있었다

고골에서 시작하는 등로에는 그때와 다름없이 차가운 날씨에 녹지못한 눈이 덮여있다. 눈 아래는 풀린날씨에 녹아내린 눈이 얼어있어 걸음을 옮기기가 버겁다.

얇은 장갑을 뚫고 들어오는 한기에 손이 시리다. 30만 대병을 이끌고 북서풍처럼 내달린 청병도 언 손을 녹이며 이 계곡에서 공성을 준비하였을리라. 북문이 가까워진다. 고골에서 북문에 이르는 길은 가파르다. 계단을 따라 오르다 보면 어느새 북문 앞에 설 수 있다

북문에 당도하였건만 성안으로 들어갈 수가 없다. 북문을 해체하고 복원공사중이다. 해체된 공사장을 기웃거렸으나 성안으로 들어갈 방도가 없다.

하는 수 없이 연주옹성으로 연결되는 암문을 통과해 성안으로 들어갈 수 있다. 이조판서 최명길이 적진의 상태를 살피고 칸이 내려왔는지, 아니면 내려오고 있는지 가늠하기 위해 성을 나올때도 암문으로 나왔던가. 아니다! 명길은 대신이니 서문(우익문)을 열고 나와 적병이 주둔하고 있는 삼전도로 말을 달렸을것이다.

패배의 아픔을 이렇게 극복하려는가?
암문을 통과해 드디어 성안길로 들어선다. 남한산성 일주가 시작된다. 암문을 들어서자 이내 북문으로 길을 잡는다. 북문 이름은 전승문이다. 산성을 축조할 당시에는 이름이 없다가 정조3년 성곽을 보수하면서 붙여졌다고 한다. 정조는 왜 북문에 전승문이라 이름을 붙였는가?

북문으로 오르는 계곡을 법화골이라고 한다. 성가퀴에서 올라왔던 길을 내려다본다. 지금은 3기 신도시후보지로 지정되면서 으례히 따르는 토지 보상에 갈등이 깊다. 성안에서 웅크리고 있던 조정은 영의정 김류의 까닭없는 명분에서 튀어나온 공격 전략에 어쩔 수 없이 동조한다.

양 옆이 산자락으로 에둘러있어 싸움을 걸어봄직도 하다. 성안군사 300을 뽑아 북문을 열고 나가 적진을 기습한다는 전략을 갖고 인조는 수어장대에서 병사들에게 ‘나가 싸워서 승리할 것‘을 주문한다. 문루에서 독전하는 김류의 서슬에 병사들은 주저주저하며 적진으로 다가갔으나 허망에 전멸하고 만다. 이름하여 법화골전투다.

간신히 목숨을 건진 패잔병들은 성안으로 들어온다. 그들은 조정의 무능에 무엇이라 항변할 수 있으랴. 다만 청병손에 죽으나 추위에 얼어죽으나 매한가지니 성을 깨고 나가든 성안에서 적들에게 죽든 하루빨리 결단이 나길 학수고대했으리라. 이런 병사들의 하소연을 들었는가, 정조는 그 때의 참담한 패배를 잊지 않겠다는 의지를 담아 전승문이라는 편액을 문루이 달았다고 한다.

홍이포 진지를 찾아서
성안길은 성가퀴로 이어진 길을 걷는다. 북문을 지나 동쪽에 가장 높은 곳에 자리한 동장대에 도착했다. 동장대 앞에 벌봉이 가지런하다. 지금부터는 어디서 행궁을 향해 장거리 포탄을 쏜 곳인지 그 곳을 찾아본다. 역사사료에는 망월봉이라 하는데 현재의 지명엔 망월봉이 없다

동장대에서 동문(좌익문)까지 성체는 가파르게 내려간다. 성밖에서 성안을 들여다볼 수 있는 곳에 홍이포를 설치하였으리라. 동장대에서 급경사를 이루며 급하게 내려가는 여장 끝에 솟아오른 봉우리가 눈에 확연히 들어온다. 지도에는 한봉으로 검색된다. 일단 저 산 정상에서 일직선으로 행궁까지 시계를 가늠해보자.

장경사를 지나자 성체보수공사로 성안길이 막혀있다. 대신 동문에서 장경사로 오르는 우회길로 가야했다. 장경사 입구에서 동문으로 가는 길이 크게 오른쪽으로 구비돈다. 그 마루에 서서 한봉과 행궁을 대각선으로 바라보자 시야가 트여있다. 정월 초하루 명나라 도읍을 향해 망궐례를 올리는 모습에 얼굴이 일그러진 칸은 홍이포를 쏘아댄다. 포탄을 맞은 행궁 처마가 무너져내린다. 소설엔 그랬다. 하지만 영화에는 정월 초하루엔 쏘지 않았다.

임금의 국서를 일개 천민에게 맡기다니!
조선이 살길은 삼남에 흩어져있는 근위병이 산성을 포위한 적을 외곽에서 조여야 한다. 예판 김상헌은 척화의 대의 뒤에 근위병의 능력을 믿었다. 대장장이 서날쇠는 인조가 내린 칙서를 근위병에게 전달하는 중책을 맡는다. 죽을 고비를 넘겨가며 칙서를 근위병 장수에게 전달한다. 하지만 근위병 장수는 그를 죽여서 칙서를 받지 못한 것으로 위장한다.

서날쇠는 조선 군영을 탈출해 다시 성안으로 들어온다. 소설에서 서날쇠는 임금이 행궁으로 들어오던 날 가족을 몰래 성밖으로 내보낸다. 영화는 그의 가족을 정묘호란 와중에 모두 죽인다. 서날쇠는 아니지만 서흔남이라는 천민에 대한 기록이 승정원일기에 남아있다. 아마도 김훈은 그 기록을 차용해 서날쇠라는 인물을 창작하지 않았을까? 영화나 소설에서 그의 공적은 김상헌에 못지않다.

동문에서 가쁜 숨을 밭으며 오르니 완만한 성안길이 이어진다. 인조 3년에 축성한 남한산성은 북쪽보다 남쪽이 더 단단하게 보인다. 북쪽에 연한 연주옹성에 비해 남쪽은 성밖으로 잇대어있는 옹성에는 화포를 고정해 놓을 수 있도록 포반이 구축되어있다. 아마도 왜적의 침략에 대비해선가?

산성일주도 막바지로 간다. 남문(지화문)이 저아래 보이고 서문으로 이어지는 성가퀴가 몸통을 드러내고 서있다. 서날쇠는 여기 어딘가 성 아래로 아내와 자식을 성 밖으로 내보냈다고 하는데 찾을 길이 없다.

산성에만 장대가 있고 도성엔 없다.
수어장대에 저녁 노을이 붉게 물들어있다. 북문을 열고 나간 군사들이 참담하게 무너지자 김류는 수어사 이시백에게 추가원병을 보내라 한다. 하지만 이시백은 추가원병의 군령을 어기게 되고 군령의 지엄함을 빌미로 곤장을 맞는다. 이시백은 김류, 명길과 함께 인조반정의 공신이다. 그와 명길은 이 산성에 갖혀 온갖 수모를 겪으면서 반정에 가담한 걸 후회하지는 않았을까? 차라리 광해가 나을지도 모른다고.

명길은 조정 대신들로부터 간신 역적으로 몰려 끊임없이 수모를 겪는다. 특히 상헌에게선 입에 담을 수조차 없는 치욕을 어전회의 때마다 겪는다. 이런 명길을 이시백은 조용히 불러 술 한잔을 기울이며 응원한다. 명길과 상헌은 세자와 함께 심양으로 끌려간다. 명길은 나중에 영의정에 오르고 상헌은 안동 김씨, 아니 장동 김씨 세도정치의 씨앗이 된다.

남한산성! 소설도, 영화도, 그리고 산성 그자체도 내겐 너무 감동이다.
산성종주의 마지막 성문인 서문 앞에 도착했다. 점심 무렵 시작한 산행이 해가 저물어갈 무렵에야 마무리되어 간다. 신하의 복장으로 갈아입고 군신의 예를 올리기 위해 삼전도로 향하는 인조를 상상해본다. 서문 밖은 길이 좁고 험하다. 신하의 복장이니 어가를 이용치 못하고, 길이 험해 말을 타고 내려갈 수도 없다. 남문을 열고 나가는 걸 왜 명길은 협상에서 얻지 못했을까? 없는 주제에 너무 많은걸 요구하는 게지?

한 해가 저물고 있다. 새해 인사를 나눈지가 엊그젠데 또 맞는 새해. 이를 어떻게 구분하여야 하나. 구정과 신정. 양력 설과 음력 설. 어떻게든 정리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나이 먹어가고 있다는 게 아직도 낯설지만 그래도 새해에는 마음가짐을 새롭게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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