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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덕궁4

[창덕궁] 조선의 마지막을 떠나보낸 낙선재 1. 헌종의 검소한 면모가 느껴지는 곳 창덕궁에도 단청을 하지않은 전각이 있다. 바로 낙선재 영역이 그곳이다. 조선 24대 임금인 헌종은 김재청의 딸을 경빈(慶嬪)으로 맞이하여 1847년(헌종13)에 낙선재를, 이듬해에 석복헌(錫福軒) 등을 지어 수강재(壽康齋)와 나란히 두었습니다. 낙선재는 헌종의 서재 겸 사랑채였고, 석복헌은 경빈의 처소였으며, 수강재는 당시 대왕대비인 순원왕후(23대 순조의 왕비)를 위한 집이었습니다. 헌종은 평소 검소하면서도 선진 문물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건물의 모양새는 경복궁 건천궁처럼 아주 소박한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단청을 하지 않았고, 일반 양반가의 한옥 모습을 하고 있지요. 특히 왼편에 서있는 누마루는 다락방 형태의 마루로 아궁이를 갖추고 있으며 아궁이 벽면과 기둥 받.. 2020. 3. 31.
[창덕궁] 3. 창덕궁 정전인 인정전 용마루에 오얏무늬는 ? 1. 인정전에 들어려면 거쳐야 하는 진선문과 인정문 돈화문을 지나 오른쪽으로 돌아 금천교를 건너면 진선문(進善門)이 우리를 마주합니다. 경복궁에서 흥례문과 같은 역할을 합니다. 돈화문과 인정문이 남북의 축으로 세워진 데 반해, 진선문은 동서축으로 세워져 있지요. 1908년 인정전 개수공사시 헐렸던 것을 1999년 복원하여 지금에 이르고 있습니다. 인정문은 인정전이 지어질 무렵인 1405년 함께 세워졌으나 임진왜란, 영조시절, 순조시절까지 여러차례 화재로 소실되었던 것을 1803년에 복원하였지요. 하지만 일제강점기에 다시 일본식으로 변형된 것을 1988년 복원하여 오늘에 이르렀습니다 2. 아무나 칠 수 없었던 신문고 진선문에는 신문고를 설치했다는 기록이 전해지고 있는데, 에는 ‘원통하고 억울함을 호소할 자.. 2020. 3. 30.
[창덕궁] 1. 임금님이 사랑한 궁궐이요, 세계문화유산인 창덕궁으로 오세요. 1. 경복궁의 이궁을 세워진 궁궐. 창덕궁은 1405년 태종에 의해 지어졌습니다. 조선 개국 후 규모가 큰 경복궁이 창건되었는데도 태종이 새로운 궁궐을 세운 까닭은 무엇일까요? 태종은 경복궁의 형세가 좋지 않기 때문이라고 했으나 실질적인 이유는 다른 데 있었던 것 같습니다. 두 번에 걸친 ‘왕자의 난’으로 정적 정도전과 이복동생들을 죽이고 왕위에 오른 태종으로서는 그 피의 현장인 경복궁에 기거하는 것이 꺼림직했죠. 창덕궁이 세워짐으로써 조선 왕조의 궁궐 체제는 법궁(法宮)-이궁(離宮)의 양궐 체제가 됩니다. 시 기 법 궁 이 궁 임진왜란 이전 경복궁 창덕궁, 창경궁 임진왜란 이후 창덕궁, 창경궁 경희궁 고종이후 경복궁 창덕궁, 창경궁, 경운궁, 경희궁 대한제국 경운궁 여타궁궐 기능 상실 경복궁이 평평한 .. 2020. 3. 30.
서울엔 궁궐이 모두 5개가 있습니다 1. 궁궐이란? 궁궐이란 왕이 왕실가족들과 함께 살면서 생활하고 정사를 돌보는 곳이다. 궁궐은 왕과 왕실 가족이 기거하는 궁(宮)과 출입문 좌우에 설치하였던 망루를 뜻하는 궐(闕)이 합쳐져서 만든 말이다. 서양을 대표하는 왕이나 황제 살거나 살았던 궁인 버킹검궁, 베르사이유궁, 벨베데레왕궁은 단일 건물안에 다양한 기능을 하는 방으로 되어있는 데 반해 우리의 궁궐은 각각의 기능을 하는 전각들이 궁궐 안에 자리하고 있다. 2. 궁궐을 짓는 원리 궁궐을 지을 때 일정한 원리에 따른다. 가장 기본이 되는 원리는 전조후침(前朝後寢), 즉 공식적인 행사를 하는 곳은 궁궐 앞쪽에, 생활을 하는 곳은 뒤쪽에 두는 것을 말한다. 이에 따라 궁궐은 외전, 내전, 후원영역으로 구분하게 된다. 외전은 왕이 신하들과 정사를 보.. 2020. 2. 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