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경복궁7

임금과 왕비의 은밀한 공간 - 강녕전, 교태전 그리고 아미산 1. 조선시대 임금은 왕비와 각방을 썼나? 편전인 사정전에서 나와 향오문을 들어서면 임금의 침전(寢殿)인 강녕전(康寧殿)이 나오고, 강녕전을 돌아 양의문을 지나면 왕비의 침전인 교태전이 나옵니다. 임금과 왕비가 머무는 사적인 공간이 따로 떨어져 있습니다. 사실 침전이라고는 하지만 각각 개인적인 공간으로서 역할이 있습니다. 왕의 침전은 사정전이 공식적인 일과를 보내는 곳이라면 강녕전은 임금이 공적인 업무를 접고 개인적인 시간을 보내는 곳입니다. 이곳에서 독서와 휴식을 즐겼고, 때로는 은밀하게 신하를 불러 면담도 하는 곳이지요. 왕비가 거처하는 교태전은 왕비의 전용 공간으로 중궁전이라 부르기도 합니다. 이곳은 임금을 제외하고 원칙적으로 외척이나 종친이라도 출입이 엄격히 차단되는 곳이지요. 왕자가 생산되는 곳.. 2020. 3. 3.
경복궁이 자랑하는 걸작 중의 걸작, 경회루 1. 언제, 왜 지어졌나 국보 224호, 경회루는 연못 안에 조성된 2층 목조 누각으로, 외국 사신을 접대하거나 임금이 공신들을 위해 연회를 베풀고, 가뭄이 들면 기우제를 지내는 등 국가적 행사 장소로 사용하던 건물입니다. 경복궁 창건 초기에는 작은 누각이었으나 정종이 개경으로 환도한 이후 보잘것 없는 모습으로 전락하였습니다. 1412년 창덕궁에서 정사를 보던 태종이 공조판서 박자청에게 명하여 웅장하고 화려한 누각으로 다시 탄생하였죠. 누각 이름을 지어올리라는 명을 받은 하륜은 "올바른 정사를 펴는 임금은 올바른 신하를 얻는 것으로 근본을 삼았으니, 올바른 사람을 얻어야 경회한다"는 의미로 "경회루"라고 지었습니다. 하지만 임진왜란에 경회루도 피해를 피하지 못하고 소실되었으나, 대원군에 의해 1867년 .. 2020. 3. 3.
경복궁 중심인 근정전, '백성을 보살피길 게을리하지 말라'고 경고한 정도전 1. 임금, 세자 그리고 중국 사신만 출입이 허용되는 근정문 홍례문에서 영제교를 건너 어도를 따라가면 근정전으로 들어갈 수 있는 근정문이 나옵니다. 중국 '주례고공기'에 궁실제도에 보면 '삼문삼조(三門三朝), 오문삼조(五門三朝)라는 조항이 나옵니다. 경복궁은 이 주례고공기의 '삼문삼조(三門三朝)'의 기준에 가급적 맞추어 지어졌다고 볼 수 있습니다. 경복궁의 삼문은 조정신료와 궐내각사가 근무하는 외조(外朝)의 출입문으로 일명 고문(皐門)이라는 광화문, 정사를 논하는 정전과 편전이 있는 치조(治朝)의 출입문인 치문(雉門) 역할의 근정문, 그리고 왕과 왕실의 생활 공간을 일컫는 연조(燕朝)구역을 출입하는 노문(路門)인 향오문으로 되어 있습니다. 근정문은 조정의 출입구일 뿐만 아니라 중요한 정치적 행사를 가장 .. 2020. 3. 3.
경복궁, 광화문에서 기별청까지 - 기별이 없는데 어찌된 일? 1. 일본에 가장 많은 수난을 받은 경복궁 남문, 광화문. 자, 이제 경복궁 안으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경복궁을 찾게 되는 사람들 뿐만 아니라 세종로 거리를 걷거나, 버스를 타거나, 택시를 타고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공짜로 볼 수 있는 경복궁 남문, 광화문. 경복궁 창건 당시에는 `午門`으로 부르다가 세종 8년(1426년) 궁의 문과 다리의 이름을 지었는데, 그 때 `光化門`이라 부르게 되었습니다. 우선 다른 궁궐 정문들과 건축 양식이 다릅니다. 돈화문이나 홍화문은 나무로 지어져 있는데 반해 광화문은 세 개의 아치형 석문(홍예문이라고 한다)과 석축으로 기단을 쌓고, 그 위에 2층 우진각 지붕과 문루를 올린 형태를 갖추고 있다. 홍예문 천장은 널천장으로 하고, 어간에는 쌍봉(雙鳳)이 보주(寶珠)를 다투며 노.. 2020. 2. 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