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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유산알리미/궁궐답사기27

[창경궁] 일제로부터 가장 심하게 훼손되었던 창경궁 1. 왕실 가족을 위해 지어진 궁궐 창덕궁과 이웃하고 있는 창경궁은 원래 상왕으로 물러난 태종을 위해 세종대왕이 지은 수강궁을 성종조에 이르러 늘어난 왕실 가족들을 위해 1484년 새롭게 지은 궁궐입니다. 성종 재위시에 선대 왕비가 세분이나 있어(세조의 정희왕후, 성종의 아버지 의경세자의 소혜왕후, 예종의 안순왕후) 이분들이 생활할 수 있는 거처가 필요하였지요. 따라서 정치적인 기능보다는 왕실의 생활영역에 가까운 궁궐이었지요. 경복궁과 창덕궁이 정전을 남향으로 하여 남북 중심축을 따라 건물을 엄격하게 배치한데 반해, 창경궁의 중심 부분은 특이하게 동향으로 배치되어 있습니다. 고려 때 동향이었던 것을 존중했다고도 하는데, 입지 여건상 동향으로 짓는 것이 지형에 더욱 자연스럽고 적합했기 때문인 듯합니다. 이.. 2020. 3. 31.
[창덕궁] 조선의 마지막을 떠나보낸 낙선재 1. 헌종의 검소한 면모가 느껴지는 곳 창덕궁에도 단청을 하지않은 전각이 있다. 바로 낙선재 영역이 그곳이다. 조선 24대 임금인 헌종은 김재청의 딸을 경빈(慶嬪)으로 맞이하여 1847년(헌종13)에 낙선재를, 이듬해에 석복헌(錫福軒) 등을 지어 수강재(壽康齋)와 나란히 두었습니다. 낙선재는 헌종의 서재 겸 사랑채였고, 석복헌은 경빈의 처소였으며, 수강재는 당시 대왕대비인 순원왕후(23대 순조의 왕비)를 위한 집이었습니다. 헌종은 평소 검소하면서도 선진 문물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건물의 모양새는 경복궁 건천궁처럼 아주 소박한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단청을 하지 않았고, 일반 양반가의 한옥 모습을 하고 있지요. 특히 왼편에 서있는 누마루는 다락방 형태의 마루로 아궁이를 갖추고 있으며 아궁이 벽면과 기둥 받.. 2020. 3. 31.
[창덕궁] 세자가 공부하던 성정각에서 김옥균의 3일천하가 막을 내리게 된다. 1. 세자의 일상이 숨쉬던 동궁, 성정각(誠正閣) 희정당을 나와 이어진 전각으로 들어서려면 영현문(迎賢門)을 거쳐야 합니다. 성정각의 남문으로 '어진 이를 맞이한다'는 의미로 어진 이를 맞아 공부에 힘쓰라는 의미로 볼 수 있습니다. 성정각은 세자의 교육장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왕실에서 아이가 태어나고, 그 아이가 다음 왕위를 이을 세자로 책봉되면 서연이라는 교육을 받게 되지요. 왕위에 오를 때까지 아주 체계적인 교육을 받는데 세자의 교육을 담당하는 기관을 세자시강원이라고 합니다. 이때부터 조선의 국본인 왕자는 임금이 되어 승하할 때까지 지독하고 혹독한 공부의 지옥 속에 살아야 합니다. 성정각은 일제강점기에는 내의원으로 쓰기도 했습니다. 지금도 선정각 앞마당에는 내의원이 사용하던 돌절구을 볼 수 있습니다... 2020. 3. 30.
[창덕궁] 4. 경복궁 강녕전을 헐어 창덕궁에 옮겨짓다. 1. 창덕궁 안에 있는 청와대, 선정전(宣政殿) 인정전에서 선정문으로 들어서면 편전인 선정전과 마주합니다. 경복궁의 사정전과 같은 기능을 하던 곳입니다. 창덕궁이 세워질 당시에는 조계청이라 불리웠는데, 세조가 '정치는 베풀어야 한다'며 선정전으로 이름을 바꾸었지요. 선정전은 광해군에 의해 재건되어 그 모습이 오늘까지 이어져 내려오고 있습니다. 창경궁 인정전과 함께 옛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몇 안되는 전각입니다. 사정전처럼 정전 바로 뒤에 있지않고 바로 옆에 붙어있습니다. 자연지형을 거스르지않고 전각을 배치한 창덕궁만의 특색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더불어 선정문에서 전각까지 비를 피할 수 있는 행각(복도각)으로 연결되어 있는 데다가 청기와를 이고 있습니다. 일반 기와와 달리 청기와는 비용이 비싸다는 .. 2020. 3. 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