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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구석구석/산으로 가자

2023년을 남한산성 산행으로 보내주고 롯데타워에서 2024년 새해를 맞이하였네

by 노니조아 2024. 1.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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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마지막 산행을 남한산성에서 가져본다.
올해 달력도 한 장만이 덩그렇게 남아있다. 언제나 그러하듯 늘 함께 하는 친구들과 송년산행을 갖는다. 한 해가 저물어가던 어느 날 관악산이 후보로 올랐는데 남한산성을 추천하니 친구들 모두 오케이 사인을 보내준다. 산행블로그 ID가 mangsan인 친구야 수없이 오르내렸지만 감리일로 바쁜 또한 친구는 자주 와보지 못한 장소다.

밤사이 진눈깨비가 내렸는지 도로 위에 얇은 눈이 덮여있다. 두 친구는 분당에서 만나 남한산성 주차장까지 대중교통으로 올라오고 나는 집에서 곧바로 연주봉으로 올라가기로 했다. 약속장소인 산성 주차장까지는 집에서 한 시간 반가량 걸린다. 산행을 시작하기로 한 10:30부터 또는 비가 예보된 상태라 mangsan은 우산을 준비하길 권했지만 영상의 기온에다 1 밀리미터 정도라 방수재킷으로 막아보기로 한다.

평소와 같이 집에서 연주봉까지 논스톱으로 올라가 본다. 평소 같으면 널문이고개에서 잠시 숨을 고르지만 오늘은 혼자인 데다 약속시간이 빠듯해 내쳐 올랐다. 널문이 고개부터 연주봉까지는 그다지 어렵지 않은 능선길이라 힘이 부치진 않는다. 세모에다 토요일이라선지 그룹을 지어 어르는 산객들이 제법 많이 보인다.

mangsan 친구가 보내준 산행계획은 북문/전승문을 출발해 동문 - 남문/지화문 - 서문 - 연주봉까지 산성을 한 바퀴 돌아 마천동으로 하산하는 코스다. 연주봉 암문에서 성안길을 따라 북문인 전승문으로 내려간다. 하늘은 잔뜩 찌푸린 구름이 가리우고 새벽에 흩뿌린 눈은 그대로 성가퀴와 길 위를 덮고 있어 온 세상이 하얗다.

복원공사를 마치고 우리 곁으로 다시 온 전승문
북문인 전승문으로 내려가고 있는데 친구들도 주차장에서 올라오고 있다. 지난가을까지만 해도 공사 중이라 가림막 속에 있던 전승문이 제모습을 드러내고 서있다. 말쑥하게 새 옷으로 단장한 전승문을 다시 보니 반갑다.

호란으로 여기 산성에 행궁을 세운 것이 양력으로 1637년 1월 9일이니 대략 390년 전의 이즈음이다. 여기 전승문 누각에 오를 때마다 무참하게 적에게 몰살당한 400여  군사들의 넋이 저 아래에서 울부짖는 거 같아 마음이 무겁다. 체찰사이자 영의장인 김류의 어리석은 전술에 애먼 군사들만 속절없이 스러지고 말았다.

왜란으로 전국토가 피로 물든 지 불과 40년밖에 지나지 않았던 그 시절. 선조나 인조나 다 같이 무능한 리더였으나 선조는 걸출한 인재들이 나서서 전쟁을 승리로 마감하였으나 인조는 40년 전에 응축해 놓았던 군사력으로 충분히 청나라의 공격에 견뎌낼 수 있었건만 어찌 된 영문인지 옹색한 산성에 웅크리고 있다가 속절없이 항복하고 만다.

설경 속으로 녹아든 송년산행
동장대터로 오르는 가파른 성안길에서 거친 호흡을 내쉬는데 예보와 달리 굵은 눈송이가 하늘에서 쏟아져 내린다. 감리 친구가 눈송이를 바라보면서 외친다.
“오늘 산행 날짜 누가 잡았지?”
“너 아녔어?”
“그렇지? 역시 내가 날 하나는 잘 잡아!!”
송년산행을 기념하는 오늘 산행에 하늘도 도와주려고 함박눈을 우리에게 쏟아주고 있다. 정말 환상적인 설경이 우리를 압도한다.

동장대터 못미처에 숨어있는 암문으로 나가면 벌봉과 한봉으로 갈 수 있다. 우리는 오늘 산성일주코스를 밟고 있는데 암문으로 성밖으로 나간 데는 이유가 있다. 산성조주지만 그래도 산행이니 정상석을 인증해야지 않는가. 남한산 정상석은 벌봉으로 가는 길에 서있다.

그것도 산 정상이 아니라 길섶에 정상석이 세워져 있다. 친구 말로는 정상부가 공사를 하고 있어 임시거처로 여기에 서있다고 한다. 친구는 정상부근의 공사가 벌써 마무리되었는데 왜 옮겨놓지 않는지 의아하단다. 남한산 정상부근의 외성 암문에서 잠시 휴식을 갖고 준비해 간 생강차로 몸을 녹여본다.

겨울 산행은 꼼꼼히 준비해야
예보와 달리 내리는 눈의 양도 많고, 기온도 차가워진다. 더구나 우리 셋 모두 산행 장비에 하나씩 빠뜨리고 와서 종주하는데 장애가 생겼다. 아이젠을 빠뜨린 친구, 스틱을 하나만 챙겨언 친구 그리고 나이론 얇은 장갑만 가져온 나. 하여 우리는 당초 계획을 과감히 버리고 빠르고 안전한 길을 잡아 하산하기로 한다. 얇은 장갑이라 손이 시려 아예 벗어버리고 주머니에 손을 넣어 한기를 재운다.

제3암문에서 동장대로 오르는 대신 현절사 방면의 비교적 안전한 길로 내려가 산성마을에서 서문으로 하산길을 잡는다. 내리막에 들어서기가 무섭게 이내 현절사가 나타난다. 현판을 보니 스님들이 기거하는 도량이 아니고 옛날 충신들의 절개와 의기를 후세에 알리는 사당이다. 문지 잠겨있어 어느 분을 모셔놓은 곳인지 알 수는 없다. 아마도 호란 속에 기개를 보인 신하지 않을까? 그렇다면 명길은 그 안에 묘셔있지 않으리라.

마천동 하산길
산성촌에서 서문인 우익문으로 가는 길은 오름경사도 완만하고 또 길지 않다. 인조가 곤룡포 대신 신하의 복장으로 삼전도로 가기 위해 말을 타고 올랐던 길이다. 서문을 지나면서 길이 험해 걸어서 내려갔다고 한다. 한없는 참담함을 가슴에 꾹꾹 눌러가면서 한걸음 한걸음 떼어놓으면서 이렇게 속으로 외쳤을까?

“내 이러려고 반정을 도모했단 말인가? 차라리 대군으로 남아있을 것을. . . ”
그 뒤를 눈물을 뚝뚝 흘려가며 만고의 역적을 자처한 명길은 무어라 되뇌어 따랐을까. 아마도,
“내가 어찌하여 척화에 줄을 서지 않았을꼬? 죽어서까지 나라를 오랑캐의 입에 처넣은 만고의 역적이란 모멸을 어찌 감당할꼬?”

전망대에서 경사진 구간이 모두 데크로 대체된 하산길을 인조와 명길을 차례로 떠올리며 내려오다 보니 어느덧 마천동이다. 어릴 때처럼 나뭇가지에 쌓여있는 눈을 털어내는 장난을 해보며 송년 산행을 마무리한다. 마천시장에 소문난 곱창집에서 뒤풀이 겸 조촐한 우리만의 파티를 하고 분당으로 옮겨 밀맥주에 가는 해를 아쉬워한다.

그리고 계해년 마지막날,
어제의 고단을 핑계로 늦잠에서 일어나 간단한 아점을 먹고 명동성당으로 갈 채비를 한다. 몇 해 전만 해도 새해 일출을 보러 가느라 길게 늘어진 교통체증 석에 있을 시간이었건만 이제는 원거리 해맞이 출사를 거둔 지 몇 해째다. 날씨마저 잔뜩 찌부러져 한가닥 남은 출사의지마저 접게 한다. 송년 미사로 올 한 해 무탈하게 지냄을 감사하고 내년에도 우리 가족에게 사랑과 행복이 함께 해주길 소망해 본다.

미사를 마치고 잠실로 오니 새해가 불과 30분밖에 남지 안았다. 버스를 갈아타려고 기다리는데 잠실 타워 주변으로 사람들이 모여든다. 우리도 집으로 가는 걸 미루고 석촌호수로 달려간다. 자리을 잡으려는데 모여든 인파 사이로 카운트다운이 시작된다. 타워 벽에도 카운트다운 숫자가 빠르게 바뀐다.
“9, 8, 7, 6, 5, 4, 3, 2, 1!!!”
“Happy New Year!!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타워 옥상에서 새해를 축하는 불꽃이 퍼져 오른다. 이렇게 우리는 새해를 맞는다. 그리고 모든 사람들에게 골고루 새해 소망이 이루어지길 빌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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