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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구석구석/산으로 가자

북한산 백운대를 차가운 늦가을에 찾으니 선경이 따로 없네

by 노니조아 2023. 12.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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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참으로 고마운 친구
”담주에 별일 없어? “
”글쎄, 요즘은 그다지 바쁘지 않아 “
”그럼 산에나 갈까? “
”좋지! 어디로 갈까? “
”북한산 어때? “
”굿이여!! “
이렇게 친구와 의기투합해 북한산을 가기로 한다. 친구는 지금도 일주일이 멀다하고 원거리산행과 근교산행이 일상이다. 친구와 함께하는 산행은 이전에 올라본 곳이지만 코스는 일반적이지 않다. 늘 새롭고 항상 신선한 코스다. 그래서 친구가 산에 가자고 하면 내게는 설렘이 동반한다. 더구나 산행 내내 카메라에 동반자 모습을 찍어 보내준다. 정말 고마운 친구다.

산행 이틀 전에 친구는 어김없이 산행코스를 보내준다. 이번 산행은 북한산우이역 - 영봉 - 백운대 - 용암문 - 대동문 - 인수재 - 4.19묘역이다. 산행코스에 내가 많이 다녀본 길이고 특이사항을 발견할 수 없다. 출발은 북한산우이역에서 08:00라며, 아주 특별한 곳이 있으니 기대하란다. 어디로 날 데려가려는 거지?

해가 뜨려면 아직도 한참이나 남은 이른 아침 6:30에 집을 나선다. 35번 버스 - 올림픽공원역에서 9호선을 타고 가다 4호선과 우이신설선을 차례로 환승해 북한산우이역까지 1시간 반이나 걸린다. 우이신설선은 두량의 객차가 무인으로 우이동 안을 운행하는 경전철로 처음 타본다. 맨 앞이나 뒤에서는 지하로 뚫린 궤도철로를 직접 볼 수 있다. 나이의 켜가 제법인데도 맨 뒤에 서서 밀려나가는 철로가 굽이치며 재빨리 뒷걸음치는 모습을 바라본다.

2023년 11월 21일 08:10 산행길에 접어들다.
역사를 나와 오름길에 접어들자 북한산 정상에 솟아있는 백운대와 인수봉이 반가운 듯 우리를 얼른 오라 손짓을 한다. 갑자기 곤두박질한 기온은 대기를 채우고 있던 미세먼지를 쫓아버렸는지 공기가 차고 맑아 산봉우리가 깔끔하게 다가온다. 하지만 내 몸이 추워선지 저 봉우리들도 여름내 두르고 있던 옷을 벗은 지 얼마 되지 않아 추워 보인다. 장갑을 끼고 스틱을 꺼내 길이를 맞추고 가벼운 걸음으로 고고씽~~.

친구는 산행안내판을 보면서 오늘의 코스개요를 설명한다. 친구는 늘 내게 익히 다녀본 산인데도 늘 신박한 코스로 나와 친구들을 안내해 왔다. 오늘도 그런 숨은 코스가 있겠지 했는데 아직까진 그렇지 않은 거 같다. 그래도 친구와 더불어 하는 산행인데 일반적인 코스면 어떠랴!! 셑카봉으로 인증샷을 남기고 도선사 오르는 아스팔트옆으로난 인도로 들어선다.

도선사코스는 북한산의 여러 코스 중 백운대로 가는 가장 짧고 빠른 숏컷이다. 더구나 버스를 타고 도선사 주차장까지 갈 수 있어 산행시간을 상당분 탕감되기에 많은 산객들이 이용한다.

헌데 친구가 앞장서 가는 데크길은 전에 보지 못한 길이다. 그렇다. 도선사코스는 비봉능선이나 탕춘대능선에서 시작해 백운대를 찍고 하산하는 코스여서 오늘 오름길로 잡은 데크길을 몰랐을지도. 아니면 오랜만에 백운대를 오르다 보니 그간에 조성된 길일지도. 친구는 늘 이 길로 오르내렸단다.

백운대 암문으로 오르는 길에서
도선사로 오르는 아스팔트길도 제법 경사가 있으니 산길로 들머리를 잡았으니 쌀쌀한 날씨지만 몸이 점점 가열된다. 겉옷을 벗어 배낭에 걸어매고 간식타임을 가져본다. 어제저녁 마트에 들러 친구에게 문자를 보내 준비할 게 있느냐 하니, 걍 몸만 와도 된단다. 그래서 귤 한 꾸러미 사고 냉장고에 살고 있는 사과를 가져왔다.

갑자기 기온이 영하로 내려간 걸 증명이나 하듯 흘러내린던 작은 폭포가 얼어버렸다. 미끄러질까 봐 친구는 조심하란 경고를 연신 날리건만 아랑곳하지 않고 매달린 얼음에 입을 가져가본다. 길섶에서 산객이 주는 먹거리에 익숙한 듯 어린 강아지 쌍둥이가 뭔가를 던져주지 않을까 잔뜩 기다리는 눈치다. 뭐라도 줘야 하나?

백운대에 오르니 운무에 잠겨있는 황홀한 광경이
그다지 어렵지 않게 백운산장을 거쳐 백운대 암문에 도착해 곧바로 암봉 허리를 감아도는 등로를 쇠줄에 의지해 오른다. 작년 봄 북한산성 13성문 종주를 하던 기억이 난다. 대서문에서 빡세기로 소문난 의상능선을 지나면서 체력안배를 못해 여기 백운대 암문 앞에서 그만 백운대 정상을 포기하고 북문으로 내려갔다. 피로에 지쳐서일까 계단을 올라설 때마다 허벅지에 쥐가 올랐기 때문이다.

암문에서 한 발짝씩 오를 때마다 바뀌어가는 능선들의 모습이 선명해진다. 가파른 오름길을 자랑하는 의상봉을 여기서 보니 그저 펑퍼짐한 동산이다. 그 옆으로 공룡의 등줄기처럼 힘차게 소용돌이치며 문수봉까지 오르는 의상능선이 선연하다.

백운대 앞을 지키는 만장대 뒤로는 운무에 잠긴 원봉이 삐죽거리며 짙푸른 가을하늘을 희롱한다. 대기가 차가운 공기로 채워지면 습기가 말라 멀리까지 쨍한 풍경을 주는 늦가을 산행이 참 좋다. 늦은 아침까지 잠자리에서 빠져나오지 않은 듯 멀리 남산타워와 롯데타워가 운무에 잠겨있고, 그 뒤로 관악산이 세수를 마친 얼굴을 들고 서있는 모습이다.

백운대 정상에 올랐다. 정말 오랜만에 올라본다. 평일이고 날씨마저 차가우니 산객마저 조촐해 대기줄을 서지 않고 인증샷을 갖은 포즈로 담아본다.

산행을 하면서 가져보는 또 하나의 즐거움. 바로 정상을 찍고 나서 한적한 자리를 잡은 뒤에 가져보는 간식타임이다. 백운대 바로 아래 너른바위에 주저앉아 준비해 온 과일과 따뜻한 커피로 산행이 가져주는 상쾌함을 함께 한 동반자와 즐긴다. 친구는 준비해 온 컵라면을 풀지 않고 있다. 혹시 가져오지 않았는지 물으니 하산길에 인수재에서 맛있는 점심을 먹어야 하니 생략하잖다. 인수재?

휴식시간을 접고 하산길에 오른다. 쇠줄을 잡고 내려오면서 다시 볼수 있을까 싶은 경치에 빠져든다. 백운대와 자웅을 겨루며 우뚝 솟아있는 인수봉이 머리를 조아리며 앉아있고 그 너머로 연봉들이 손에 손을 잡고 에둘러 서있다. 그중에도 수락산은 자못 위용을 자랑하며 떡하니 바티고 서있다. 마치 그 모습이 호랑이굴에 여우 형상이다.

하산은 대남문으로 가는 북한산성 성안길로
언제나 그렇지만 산행에서 정상을 찍고 나면 긴장도 풀리고 설레임도 반감기를 돌아 나온 듯 지루해지기 십상이다. 오늘 우리가 잡은 하산길은 백운댜 암문에서 용암문을 거쳐 대동문에서 4.19묘역으로 내려가는 진달래능선길이다. 만경대 허리를 감아 돌아 노적봉 삼거리에 이르면 산행의 고단함은 종소리를 울린다.

용암문 갈림길에서 동장대를 지나 대남문까지는 산행루트라기엔 왠지 마뜩잖을만치 평이한 길이다. 성안길을 따라 편안히 걸어갈 정도로 길은 순조롭다. 동장대에 도착해 누각과 주변을 돌아보면 잠시 휴식을 가져본다. 처마에 단청은 탈색되고 누각을 오르는 입구는 자물쇠가 막고 있다. 사람의 온기와 손길이 끊겨버린 동장대는 쇠락의 모습으로 서있다. 수원 화성에 서있는 누각은 시민들과 탐방객의 휴식처가 되어 생기가 넘치는데 왜 여긴 사람들의 출입을 막고 있지?

대동문이 보수공사를 마치며 제모습을 드러내고 서있다. 주변엔 공사 뒷정리로 어수선하지만 문루가 깨끗한 단청을 뽐내고 있다. 제 색깔을 잃고 서있는 동장대 처마의 애처로운 모습과 겹쳐지며 머지않아 동장대도 보수공사를 기다려야 하지 않을까? 북한산을 찾아오는 산객들에게 개방한다면 퇴락하는 속도가 좀 더디어질텐데

진달래능선길을 따라 인수재로
대동문 홍예를 지나 조금 내려가면 계곡을 따라 하산하는 소귀천길과 능선길로 4.19묘역으로 내려가는 진달래능선길로 나뉜다. 산행 시작부터 기대를 부풀려온 인수재로 가려면 능선길로 좇아야 한다.

친구가 산행 들머리부터 내게 기대심을 부어넣은 인수재는 진달래능선이 끝나갈 무렵 갑자기 심산 김창숙선생과 김도연선생이 누워계신 묘역으로 올라간 끄트머리에 자리잡고 있다. 점심때가 많이 기운 시각인데 젊은 커플들이 맛있게 고기를 구워먹고 있다.

친구는 숯불에 구워먹는 갈매기살이 일품이라면서 막걸리와 갈매기살을 주문한다. 전부터 꼭 와보고 싶었던 곳인데 소원 풀었단다. 주인께 가져온 컵라면을 밥 삼아 늦은 점심을 하는데 시장이 반찬이다.

친구따라 오랜만에 백운대를 오르고 기막힌 경치까지 얻어오는 즐거웠던 산행이다. 그 여운은 좀 더 누리기 위해 학창시절 친구가 즐겨먹던 곱창으로 뒷풀이를 하잖다. 전철을 타고 서둘러 마천시장으로 와 마천시장에서 소문난 곱창을 찾아 길게 여운을 다시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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