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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구석구석/산으로 가자

더위를 피해 남한산성에 오르니 피서에다 서울 야경을 덤으로 얻었네

by 노니조아 2023. 7.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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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07. 07. 양력 칠석이네?
7월 초순인데 날씨는 복날을 찜쪄먹었나보다. 섭씨 35도가 우스워질만큼 덥다. 열폭탄을 퍼붓는 날씨에 차량에서 내뱉는 열기까지 더하니 숨이 막힐 지경이다.

생각보다 업무가 일찍 끝난터라 세시 조금 지나 집에 도착했다. 점심을 과하게 먹어 더부룩해진 속을 비울 요량으로 남한산성에 오를 채비를 한다. 집을 나서면 이내 산성으로 오르는 등산길이니 달리 요량을 다질 필요도 없다. 금암산에서 연주봉으로 이어지는 능선에 푸른숲이 청량해보인다.

등로에 들어서자 참나무 숲이 하늘을 가린다. 널문이고개까지는 어느 정도 고도를 높여가며 걷다보니 흐르는 땀에 눈이 맵다. 고개에 당도해 의자에서 잠시 휴식을 가져본다. 교산지구에서 불어오는 바람에 흘러내린 땀을 지워준다. 오른쪽 능선길로 길을 잡으면 연주봉까지 다시 고도를 높여야 한다. 쉬~~익하며 솔가지를 훑고 지나가는 바람이 가슴까지 시원케해준다.

연주옹성에서 남한산성 종주를 시작하다.
우뚝 솟아오른 연주봉에 적의 공격을 차단하기 위해 산성에 잇대어 옹성을 쌓았다. ’청병이 북서풍처럼 내려오자‘ 인조와 대신들은 부랴부랴 남한산성 행궁에 조정을 꾸렸다. 소설가 김훈은 행궁에 갖힌 인조의 심정을 아주 담백하게 표현했다.
“그해 겨울은 일찍 내려와서 오래 머물렀다.”

체찰사 김류는 수어사 이시백의 간언을 무시하고 보잘것없는 군사중에서 400을 추려 북문을 열고 청병의 주둔지 기습을 감행한다. 하지만 기습정보가 빠져나간 것처럼 군사 400은 눈위에 아까운 목숨을 눕히고 만다. 정조는 이 안타까운 패전을 가슴에 새기고자 북문을 개축한 자리에서 무조건 승리하자며 ’전승문‘이란 현판을 달았다. 전승문은 허물고 다시 짓는데 아직도 공사중이다. 동장대로 오르는 길 옆으로 난 암문을 나서야 남한산 정상석을 만날 수 있다.

장경사로 내려가는 길의  겨울과 여름 정경

청나라가 여름에 쳐내려왔다면?
과거의 쓰라린 역사만큼이나 가설을 즐겨 대입해보는 경우도 없을거 같다. 겨울이 아닌 여름이었다면 전쟁은 어찌 되었을까? 민가의 지붕을 걷어내 병사들 추위를 달래주려했더니, 말먹이가 부족해 이마져도 빼앗기는 기막힌 아이러니도 없었을 것이고, 밭에서 숲에서 먹거리를 조달할 수 있어 더 길게 버텼을지도 모른다. 허나 조정이 웅크리고 버틸수록 성밖의 고통과 피해는 삼남끝에까지 미쳤을지도 모른다.

맨앞에 보이는 산이 망월봉이다.

아래로 뻗어내려가는 성체의 여장이 바라보고 있는 산봉우리가 망월봉이다. 저 위에서 칸은 설날 아침 명나라 조정을 향해 망궐례를 올리는 행궁에다 포탄을 퍼부었다. 결국 인조는 항복하기로 한다. 홍이포를 쏜 곳을 지난 봄에 올라보았다. 정말 행궁이 환히 보였다.

북문과 동문을 지났으니 산성종주는 절반이 지나간다. 남문을 지나 수어장대까지 걸릴 시간과 해가 저물시간을 헤아려보면서 휴식을 가져본다. 동문 근처 어디쯤에서 김상헌이 올린 구원병을 보내라는 밀지를 가슴에 품고 서날쇠는 성을 나선다. 하지만 이미 기울어진 판세에 전의를 상실한 성밖의 장수는 서날쇠를 없애고 밀지를 받지못하였다고 둘러대기로 한다. 이건 영화에서 줄거리고 소설에서는 성이 깨진 뒤 서날쇠는 성으로 돌아온다.

산성 동쪽과 남쪽에는 지금 보기에도 단단한 옹성과 치성을 쌓았다. 임진왜란 이후에 축성하다보니 왜적의 침입에 대비한것일까 추측해본디. 본성에서 제법 멀리까지 옹성을 두르고 화포를 거치할 수있도록 포대도 있다. 검단산 위에 구름이 석양에 물들고 있다. 서둘러야겠다.

남문인 지화문 위로 빠른 걸음을 재촉한다. 자칫 해넘이를 놓칠지도 모른다는 조바심이 크다. 지화문에서 서문으로 가는 성안길이 가팔라 호흡이 거칠어진다. 그나마 서늘해진 기온이라 오를만하다.

산성에 오른 진사들은 오늘 로또에 당첨됐다네요
가까스로 언덕받이에 오르니 남산타워 뒤로 붉은해가 지다말고 기다리고 있다. 얼른 폰에 셀카봉을 체결해 타임랲을 걸어본다. 해가 넘어가고 있는 동안 가쁜 호흡도 다스리고 팔을 벌려 솟구쳐오르는 바람을 맞는다. ‘언제 더웠단 말인가?’ 싶다.

서문을 지나면 서울시내를 한눈에 담아볼 수 있는 명당이 나온다. 이미 거기엔 프로 냄새가 물씬한 진사들이 두툼한 삼각대에 카메라를 얹져놓고 연방 셔터를 누르고 있다. 서울 야경을 찍기 위해 유월 한달동안 호시탐탐 노렸다는 연세 지긋하신 진사분이 한마디 하신다.
“오늘처럼 이렇게 깨끗한 날이 일년에 며칠없어~~.  오늘 여기 오신분들 내려가서 로또사셔~~”

지난 겨울 한낮 날씨가 깨끗해 무거운 DSLR을 메고 왔었는데 거무틱틱한 연무에 쌓인 서울 야경만 담고 내려왔다. 정말 오늘은 피서삼아 올라왔는데 이런 대박을 맞을 줄이야. ‘정말 로또라도 사얄까부다’ 하는 엄한 생각을 하며 하산길로 나선다. 오늘 하루 피서도 하고, 보너스로 쨍한 야경도 보고, 맑게 저무는 일몰도 보는 행운까지 더한 오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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