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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구석구석/제주도로 간다

[제주올레18코스] 올레길에는 소박하지만 정성스런 제주의 손길을 느낄 수 있다.

by 노니조아 2020. 7.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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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도봉 아래에는 인근 주민들이 쉴 수 있는 소박한 공원이 자리하고 있다. 아내가 준비한 녹차로 입을 적시면 잠시 휴식시간을 가졌다. 공원에는 그늘막, 벤치 화산암을 이용한 석상들이 군데군데 서있다. 우리는 정랑 앞에서 자리를 잡고 앉았다.

화북포구로 이어지는 올레 바당길을 걷고있는데 어느 가정집을 돌분재와 수석이 에워싸 마치 자연공원 같은 분위기를 물씬 풍긴다. 조각과 분재를 설명하는 안내판을 이렇게 말한다. 제주를 아끼고 제주의 자연을 사랑하는 어느 독지가의 정성과 노력이 올레꾼에게 기쁨을 선사한다. 

돌과 나무 오름 올레 설립 개요

1961년부터 수석과 석분재가 자연스레 어우러진 공원설립계획을 갖고 작품을 수집, 소장하게 되었다. 석분재는 돌과 나무를 결합시킨 작품으로 어느 한 개인의 소장품이기보다 제주도민 공유의 자산이라는 사회적 책임을 자각하고 향후 천년을 유지발전시킬 수 있도록 면밀히 검토된 돌과 나무 그리고 오름올레 정원에 전시하고자 한다.”

그 옆으로 집담과 밭담이 함께 어울려 있는 모퉁이에 올레 방향지시 말뚝이 우리를 인도한다. 텃밭에는 마늘, 대파 그리고 옥수수가 자리하고 있지만 비교적 넓은 면적은 수확을 마친 상태라 비어있다. 은퇴하고 시골로 내려가면 요만한 정도 텃밭을 가꾸면 우리 가족이 일년내내 친환경 식자재를 자급자족하지 않을런지

마을길을 벗어나 바다로 바짝 붙어있는 바당길로 바꾸어 가는데 해안선을 따라 뱀처럼 구불거리며 긴 돔담이 이어져 있다. 외부 침입을 저지하는 환해장성이다. 환해장성 안쪽에는 적의 동태를 감시하는 옹성을 배치하여 놓았다. 밭담이나 집담과 달리 환해장성은 듬성듬성 바람이 관통하는 돔틈이 보이지 않을 만큼 돌 모서리가 서로 정교합을 이뤄 정교하다.

길은 삼양검은모레 해변을 지나면서 바당길을 버리고 다시 마을길로 이어진다. 나지막한 원당오름을 비껴서 살짝 숨을 고르게 하더니 이내 마을길로 이어준다. 밭담너머로 노랗게 익어가는 보리가 가벼운 바람에 흔들린다. 맞은편 밭은 벌써 수확을 끝내선지 대충 깎은 까까머리처럼 보리 밑둥이가 어지러이 서있다. 걸어가는 우리 사이에도 서늘한 바람이 쓰치듯 쓸고 간다. 걷기 참 좋은 날이다.

다시 바당길로 들어서서 한참을 걷고 있다. 시원한 바닷바람은 더워지는 몸을 식혀주고 지루해질 올레길을 탁 트인 푸른 바다는 눈을 서늘하게 해준다. 인적이 별로 없던 올레길에 사람들 걸음이 잦아진다. 해변에 정자가 서있고 그 옆으로 사람들이 폰카질에 여념이 없다. 닭모루였다.

얼핏보면 거북선 머리 모양으로 보이기도 하지만 제주도민들에겐 닭머리로 보였나 보다. 화산활동으로 분출한 용암은 식어가며 다양한 모습을 연출한다. 연출자없는 화산활동은 우리같은 올레꾼들에게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한다. 이래서 제주도가 좋다.

늦은 아침을 먹었지만 오후시간도 절반 가까이 넘어서고 있어 배고픈 신호가 온다. 눈에 띄는 식당이 나오면 무조건 요기를 채우기로 하고 걷는 데 얼마 되지도 않아 식당이 나온다. 관광객보다는 올레꾼들이 지나가다 찾을 정도로 시골마을 한복판에 서있는 식당에 들어섰다. 이층은 가정집이고 1층에 식당이 자리하고 있는 국수전문점 '조반물'식당이다.

내부에 들어서니 할머니가 우리를 반긴다. 할머니 입성만큽이나 식당 안은 정갈하고 깔끔하다. 인테리어도 세련되보이고 주방도 개방형이다. 시골식당이라 내부도 그저 그럴거라는 선입견은 휙하고 한번 둘러보는 순간 리셋되고 말았다. 메뉴도 많지않고 할머니 손맛으로 자신할 수 있는 것으로 마련한 느낌이다.

우리는 소라칼국수 하나랑 돔베고기를 주문했다. 나무도마 위에 올라온 돔베고기. 그냥 접시에 올라오면 수육이라 불러도 되는데 도마 위에 올려 내오니 제주는 돔베고기라 부른다. 지나다가 우연히 건진 식당인데 정말 제대로 왔다. 매스컴이나 SNS에 소개되고 있는 맛집은 그다지 선호하지 않는 우리인지라 일부러 맛집을 찾아가는 수고는 하지 않는 편이다. 하지만 오늘 우리는 할머니 손맛을 제대로 느낄 수 있는 정갈한 식단을 받는 호사를 누렸다. 밭에 서 직접 키운 야챙 돔베고기를 싸먹는 맛은 상큼하고 알싸했다.

도시자본이 만든 거대하고 화려한 중문이나 애월보다 젊은 청년들 쌈지돈으로작지만 개성넘치고 아이디어가 오밀조밀배어든 작은 식당, 카페 그리고 게스트하우스가 제주도 작은 마을 곳곳에 독립군처럼 은거(?)해있어 이들을 색출(?)해 내는 재미에 빠져 젊은이들이 제주를 찾는걸까. 예전에 해외로 나가는게 젊은이들의 로망이었는데 소확행 붐을 타고 제주로 회귀하는 젊은이들의 주관이 부럽다.

하늘에는 낮게 구름이 드리우고 있다. 오늘 계획한 올레길 18코스도 종착지에 다다르고 있다. 종착지 부근에 바다를 향해 정자가 당당하게 서있다. 연북정(戀北亭)이다. 제주로 유배되어 온 사람들이 제주의 관문인 이곳에서 한양에서 올지 모를 기쁜 소식을 기다리며 북녘의 임금에 대한 사모의 충정을 보낸다 하여 붙인 이름. 기록에 의하면 1590(선조23) 당시의 조천관을 중창하여 쌍벽정이라 칭하였다가 1599(선조32)에 다시 건물을 고쳐서 연북정이라 개칭하였다.

건물은 네모꼴에 가깝고 높이14자의 축대 위에 동남쪽을 향해 세워져 있다. 축대의 북쪽으로는 타원형의 성곽이 둘러 쌓여 있다. 이 곳의 모양의 크기가 옹성과 비슷한 것으로 미루어 보아, 연북정은 망루의 용도로 지어졌을 것으로 추측된다

조선시대 제주로 부임하는 목사나 판관들이 여기 조천포구를 통해 입도하였다고 한다. 도착한 관리들은 다시 중앙에서 임금이 부르길 학수고대하며 연북정에서 한양을 향해 큰절을 올리고 제주목 관아로 향했을 모습이 선하다. 이렇게 제주로 부임한 관리들의 업적을 기리기 위하여 비석을 세우고 그 공적을 칭송하였으니 그 비석들이줄지어 서있는 이 거리를 비석거리라고 불렀다고 한다.

제주에서 일어나 3.1운동을 기리기 위하여 여기 조천에 3.1만세동산을 세우고 그 숭엄한 정신을 기리고 있다.

1919321, 신천, 조천, 함덕에서 온 사람들이 미밋동산(만세동산)에 모였다. 서울 휘문고등학교에 다니다 3.1 만세운동에 참가하고 고향에 돌아온 고등학생 김장환이 동지들과 함께 만세운동을 준비했던 것이다. 미밋동산에 태극기를 꽂고 김시범이 독립선언서를 낭독한 뒤 대한독립만세를 부르며 조천 비석거리까지 행진하였다. 주동자들은 모두 연행되었다. 이튿날 조천장터에서 연행자들의 석방을 요구하며 다시 만세운동이 벌어졌고, 또다시 많은 사람들이 연행되었다. 그 뒤로 미밋동산은 만세동산이라 불리게 되었다. 조천만세동산에는 항일운동기념관과 애국선열추모탑, 독립유공자비 등이 세워져 있다.

만세동산 옆에 있는 올레18코스 종착지 포스트에서 올레수첩에 스탬프를 누르며 오늘 일정을 마무리한다. 내일은 이번 여행을 갈무리하는 마지막 일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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