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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구석구석/제주도로 간다

[제주올레12코스]수월봉 오름길보다 바닷가 자연탐방로를 선택하면 어떨까요?

by 노니조아 2020. 5.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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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 요기를 하고나니 피로도 풀리고 팍팍해졌던 두다리에는 생기가 돈다. 하늘에는 솜같이 보드라운 구름이 나지막이 드리워져 있다. 바다에서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에 더위는 몸에 스며들 엄두도 못낸다. 멀리 수월봉이 보인다. 올레 12코스 종점은 저 수월봉을 넘어서도 한참을 더 가야 한다. 갈길이 앞으로도 창창하다.

 

수월봉으로 올라가는 길을 버리고 해안가로 난 길을 이어 걷다보니 지질트레일 안내표지와 자연트레킹 코스 푯말이 나온다. 전에 제주도에 왔을 때 수월봉은 올라가 넓은 바다를 조망해본 적이 있어 자연트레킹코스로 길을 잡았다. 해안가 모래 위를 어느 정도 가다보면 다시 올레길로 올라가는 계단이 나올거라 판단하였다. 하지만 앞으로 가면 갈수록 절벽의 높이만 점점 높아져만 갔다. 우리는 어쩔 수 없었다. 그냥 이 길을 즐기기로.... 

수월봉은 지하에서 상승하던 뜨거운 마그마가 차가운 물과 만나 발생한 폭발적인 분출에 의해 만들어진 화산체다. 수월봉 해안 절벽 곳곳에는 다양한 크기의 화산탄(화산암괴)들이 지층에 박혀있고, 지층이 휘어져 있는 탄낭구조를 볼 수 있는데, 무수히 많은 화산탄과 탄낭구조는 수월봉의 화산활동이 얼마나 격렬하게 일어났는지 짐작케 한다.”

 

자연트레킹 코스를 가면서 마주하는 다양한 지층구조에 놀라게 된다. 수월봉 지하에서 뿜어져 올라온 마그마가 바닷물을 이겨내지 못하고 급속히 식어가는 과정에서 다양한 모습들이 연출되었다. 뜨거운 용암이 파도를 만나면서 벌집으로 굳어지거나, 지각활동으로 융기한 지층아래로 마그마가 굳어버린 듯한 모습등 다양한 지각활동의 결과물을 볼 수 있다.

 

 

화산 폭발에 수반하여 융기된 지층 사이로 동굴이 만들어져 있다. 동굴 안에 식물이 자라고 있다. 햇볕조차 들지 않는 동굴 안에서도 생명이 자라고 있다. 식물이 뿌리는 내리고 있는 지표는 바위다. 정말 질긴 생명의 존귀함을 눈으로 확인하자 경외감마저 든다. 풍요로운 물질의 홍수 속에서 불평과 불만으로 사는 우리 인간들은 저 척박한 땅에서 생명을 이어가고 있는 식물보다 못하지 않은지….

 

백사장길이 끝난 지점부터는 크고 작은 화산암을 징검다리 삼아 조심스레 걸어나가야 한다. 때로는 겨우 한사람만이 지나갈 수 있는 좁은 트레일을 지나야 하고, 커다란 돌들 사이를 겅중겅중 뛰어서 건너야 하는 길도 있다. 하루에 걷는 올레길이 대략 20여키로를 넘게 되는데 이 곳 트레일을 불편한 자세로 오래 걷다보면 발에 물집 잡히기 십상이다.

 

자갈과 굳어진 용암덩어리 사이로 바닷물이 들어차 있는 곳에서 잠시 휴식을 갖기로 했다. 발바닥이 화끈거리고 두다리에 묵직하게 피로가 매달려 있다. 양말을 벗고 두발을 바닷물에 담그니 스르르 피로가 빠져나간다. 아마도 한시간 반가량 트레일 코스를 걸었나 보다. 따갑지 않은 햇살을 온몸으로 받으며 시원한 바닷물이 발을 적시는 이 시간정말 상쾌하고 평화롭다.

 

드디어 트레일길에서 벗어나 올레길을 다시 만났다. 수월봉을 넘어 자구내포구로 내려오는 엉알길(낭떨어지 아래로 난 길)이 트레일 코스 종점과 만난다. 잘 포장된 길을 다시 걷게 되니 한결 쉽고 편안하게 순례길을 이어갈 수 있다. 여기 엉알길도 트레일구간과 마찬가지로 격렬하게 화산활동 흔적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다소 편안한 마음으로 엉알길을 걷다가 잠시 오던 길을 되돌아보았다. 바다에 연해있는 해변에는 모래 대신 바닷물에 응고된 거무튀튀한 화산암과 돌들이 밀려오는 파도와 정겹게 숨바꼭질한다. 멀리 수월봉이 보이고 우리가 고군분투하며 걸어온 해안 절벽이 스라이 눈에 잡힌다. 이렇게 엉알길은 자구내포구까지 이어진다.

 

자구내포구에서 마르고 텁텁해진 입을 아이스크림으로 어루만져 주면서 잠시 휴식을 가졌다. 수월봉 오름길을 피했더니 거친 해안가 돌밭길을 걸어오느라 좀 지쳐있는데다, 생이기정바당길을 올라야 한다. 제주 방언으로 생이는 새, 기정은 벼랑, 바당은 바다를 이르며, ‘새가 살고 있는 절벽 바닷길이라 해석할 수 있다. 언덕에 오르니 사방이 탁 트였다. 수월봉이 확연하게 보이고, 차귀도가 햇살에 반짝이는 바다 한가운데 누워있다.

 

가던 방향으로 시선을 가져가면 해안가에 조성된 풍력발전 단지가 시야에 잡힌다. 12코스 종점이 저기에 있다. 시원하게 불어오는 바닷바람이 무척 상쾌하다. 눈을 돌려 어디를 보아도 경치도 그만이다. 옥빛과 푸른 빛이 어우러진 바다는 잔잔히 파랑을 살랑인다.

 

우리와 앞서거니 뒷서거니 하던 일행분 중 한 분의 배낭에 산티아고 순례길을 상징하는 조개가 달려있다.

산티아고 다녀오셨네요?”

, 몇 번 다녀왔어요..?”

한번도 아니고 몇 번을 다녀오셨어요? 직장에서 시간을 되나보죠?”

, 저는 제주도 성산에서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하고 있어 시간 여유가 있어요…”

저도 정년이 되면 한번 가보려고요..”

예에.. 꼭 다녀오세요…”

 

생이기정길이 끝나도 해안에 접한 길로 올레길은 이어진다. 구비구비 해안길을 따라 걷다보니 올레길 12코스 절부암에 당도하였다. 아내와 하이파이브로 12코스 완주를 기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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