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06. 16. 돌로미티 트레킹 첫날
우려와 달리 구름이 많은데 비는 내리지 않는다. 가져온 옷가지 중에서 가장 보온할 수 있는 것들로 행장을 갖추고 출발한다. 얇은 바람막이를 이중으로 입고 목에 버프까지 하고 밖으로 나왔는데 아침날씨건만 냉기가 느껴지지 않는다.
첫 단추가 어긋나는 바람에 일정을 조정하였다. 날씨가 좋지 않은 동부의 트레치메 트레킹 대신 날씨가 좋은 서부 돌로미티를 돌아보기로 한다. 당초 계획에 서부 돌로미티는 세체다와 알페 디 시우시를 각각 하루씩 일정으로 잡았으나 오늘 하루에 다 돌아보기로 한다. 대신 트레일코스를 대폭 축소하였다.
돌로미티를 효과적으로 여행하는 방법
돌로미티에는 2,000~3,000미터 높이에 있는 트레킹 명소들이 산재되어 있다. 이들 명소는 곤돌라나 케이블카, 리프트가 트레커들을 실어 나른다. 돌로미티에서 곤돌라나 케이블 카를 이용하려면 두 가지 방법이 있다. 이용할 때마다 일회권을 구매하여 탑승하는 방법이 있고, 종일권이나 3일권, 5일권으로 불리는 슈퍼섬머카드를 구매하여 정해진 기간 동안 무제한으로 탑승하는 방법이 있다.
만약 세체다를 올라갈 때 32유로를 내고 왕복 일회권을 구매해 세체다 정상에서 하루종일 트레킹을 하고 마지막에 운행하는 케이블카를 타고 내려온다면 굳이 종일권을 62유로 내고 살 필요는 없다.
따라서 경제적으로 사용하려면 먼저 돌로미티에서 곤돌라나 케이블카 혹은 리프트를 타고 가야 할 코스들을 묶고 일정을 효율적으로 안분한 다음 그에 맞는 슈퍼섬머카드를 구매하는 게 맞다. 트레치메나 브라이에스호수는 곤돌라가 없는 곳이고, 알페 디 시우시는 오전 9시 이전에 방문하면 무료주차구역에 주차하고 넓은 초원을 마음껏 걸을 수 있으니 이런 정보를 미리 조사해 가는 방법도 필요하다.
꿈에 그리던 세체다에 오르니 가슴이 답답하네?
세체다로 올라가는 케이블카 탑승장에서 일일권 슈퍼섬머카드를 구매하여 케이블카에 오른다. 세체다에서 후네스까지 올라간 다음 미니 버스만 한 케이블카로 갈아타야 정상까지 올라갈 수 있다. 어제까지 낮게 드리운 구름이 아직도 머뭇거리듯 시야를 가리고 있다. 혹여나 세체다 정상에 칼날처럼 솟아오른 봉우리를 보지도 못하는 건 아닐까?
세체다 2500 고지에 있는 케이블카 승강장에 내린다. 우리는 지체없이 밖으로 나와 십자가가 서있는 2518 고지와 세체다 파노라마로 걸음을 옮긴다. 서두르다시피 발걸음을 옮기는데 가슴이 답답하다. 갑자기 고도를 천 미터 가까이 올라와선지 고산증세가 나타난다. 세월에 장사가 없다거늘 내게도? 하면서 보폭을 줄이고 걷는 속도도 현저히 줄여본다. 오들레산군 북사면은 마치 칼로 베어낸 듯 깎아지른 절벽인데 오늘은 구름이 꽉 차서 그 모습을 볼 수 없다. 대신 완만히 흘러내리는 산군 남사면 푸른 초원이 우릴 반긴다.
2518 고지에 서서 세체다를 올라온 산객들을 맞고 계신 예수님이 십자가에 매달려 계신다. 예수님께 우리도 올라왔다고 인사를 드리고 파노라마 포인트로 자리를 옮긴다. 구름이 오들레 산군 봉우리를 에워싸고 있어 믿기지 않는 경치를 보여주려 하지 않는다.
세체다에서 겨우 한 시간 트레킹
우리는 6번 트레일을 따라 천천히 걸어가면서 맞은편에 서있는 싸소룽고와 알페 디 시우시를 바라보는데 푸른 하늘을 낮게 드리운 구름이 가리듯 열어 보이듯 한다. 자연이 빚어낸 이 경이로운 경관을 표현하지 못하는 내 상상력이 참으로 안타깝다. 왜 세체다인가는 정말 올라와봐야 그 진가를 눈으로 그리고 가슴으로 오롯이 느낄 수 있다.
하루에 여러 곳을 가보려니 세체다에서 겨우 한 시간 트레킹하고 내려가야 한다. 아쉬움을 뒤로하고 케이블카 승강장으로 돌아온다. 올라올 때만 해도 낮게 깔린 구름들이 산봉우리를 얼르고 있었는데 우리가 내려가려니 서서히 걷히고 있다. 세체다 맞은편에 광활한 초원을 이루는 알페 디 시우시로 가기 위해 하산길에 오른다.
두 번째 코스는 알페 디 시우시
알페 디 시우시는 축구장을 160개를 만들어낼 수 있을 장도로 드넓은 대평원이다. 광활한 넓이인 만큼 접근하는 방법도 다양하다. 여러 곳에 시설된 케이블카, 차량으로 접근할 수 있는 도로들 그리고 트레킹 코스들이 다양하다. 세체다에서 내려오자마자 오르티세이에서 알페디 시우시로 가장 빨리 오를 수 있는 몽트섹(Mont Seuc)향 빨간색 리프트를 탄다. 리프트가 빨간색으로 도색된 앙증맞은 사이즈엿서 우리 둘만 탑승한다.
몽트섹에서 리프트를 내리니 그림같은 알페 디 시우시 푸른 초원이 눈앞에 펼쳐진다. 트레킹을 몽트섹부터 시작할 수 있지만 시간이 한정되어 리프트를 타고 Sonne sole까지 다시 내려간다. 여전히 뾰족이 솟아있는 산봉우리엔 구름들이 감고 있다. 드넓은 초원 끝자락에 서있는 봉우리 기슭엔 미처 녹지 못한 눈이 덮여있다.
Sonne Sole에서 시작하는 6반 트레일을 따라 걸아내랴가는데 여전히 호흡하기가 편치 않다. 하지만 노란색 야생화가 지천을 덮고 있어 걷는 발걸음이 한결 상쾌하고 즐겁다. 맑은 물이 무심히 흐르는 계곡을 건너 오르막을 조금 오르니 듬성듬성 앉은 초막과 초막 주위로 펴져나간 초원에는 야생화가 흐드러져 있다.
마치 노란 융단이 끝없이 펼쳐진 초원길을 느릿한 발갈음으로 걷고 있으니 세상 부러울 게 없는 듯한 세상에 들어선 거 아닐까. 초원에서 사진도 찍고 오전에 올랐던 세체다 첨봉이 서있는 곳을 바라보니 봉우리를 감고 있던 구름은 사라지고 대신 하늘에 드리운 구름을 이고 있다. 시간이 되어 다시 리프트를 타고 몽트섹으로 오르는데 커다란 요령을 목에 단 젖소들이 발아래서 풀을 뜯고 있거나 나무 그늘에 앉아 쉬고 있다.
오늘의 마지막 일정 라가주오이산장
케이블카를 타고 오르티세이로 다시 내려와 간단히 점심을 먹고 나니 시간이 촉박하다. 파소 팔자레고에서 라가주오이산장으로 오르는 케이블카 마지막 운행시간이 오후 4:40이다. 오르티세이에서 파소 팔자레고까지 차로 한 시간이 넘게 걸리는데 오르티세이에서 출발한 시각이 세시 반을 넘겼지만 어차피 숙소로 가는 길에 있으니 일단 출발.
파소 팔자레고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승강장으로 걸어가는데 우리를 태우고 올라갈 케이블카가 내려오고 있다. 안도의 숨을 돌리며 슈퍼섬머카드 당일권을 사용할 마지막 코스를 입장한다. 라가주오이산장으로 운행하는 케이블카는 두 대가 코스를 교대로 왕복한다.
2752m 라가주오이산장에 오르면 이제까지 우리 눈을 가득 채워주던 초록초록한 컬러가 모두 사라지도 무채색의 험준한 별세계가 펼쳐진다. 열흘이 지나면 7월인데도 이곳은 아직도 두터운 눈과 얼음으로 덮여있다. 하늘엔 낮게 드리운 구름에서 금방이라도 닭똥같은 눈물을 짜낼 듯 찌푸리고 있다.
표고 2117m 파소 팔자레고는 돌로미티를 동편과 서편으로 나누는 분기점이다. 이 분기점에서 올라온 라가주오이에서는 돌로미티를 구성하고 있는 셀라산군, 오들레산군 그리고 피츠 보에 산군을 360도로 돌면서 일안조망이 가능하다. 산장 뒤로 이어지는 트레일을 따라 걸어 올라가 이들 산군을 직접 눈으로 확인해 본다. 절벽 끝에 서있는 어느 산객의 모습이 아찔한 데 그 뒤로 십자가가 보인다.
그것도 케이블카로 올라오자마자 일망무제로. 더구나 시야를 약간 낮은 곳에 두면 돌로미티 명소, 친퀘토리가 내려다 보인다. 마침 저녁 햇살을 온몸으로 받고 서있는 모습이 마치 우릴 보고 반갑게 인사하는 게 아닌가 하는 착각을 불러온다.
막차로 올랐으니 막차로 내려와야 한다. 슈퍼섬머카드 당일권으로 오늘 하루 부지런을 떨어가며 세체다-알페 디 시우시-라가주오이를 다녔다. 어차피 돌로미티를 한 번만 오고 말 곳이 아니니 사전조사를 하려면 되도록 많은 곳을 직접 다녀봐야 한다. 오늘은 그 일환 중에 하나. 숙소가 있는 알타 바디아까진 차로 30분 거리. 오늘 일정을 파소 팔자레고에서 마치고 마트에서 야채와 쇠고기로 저녁을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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