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06. 17. 돌로미티 3일 차
하늘엔 여전히 회색빛 구름이 낮게 드리우고 있다. 돌로미티에 왔다는 설레임이 늦잠꾸러기를 침대에 잡아두지 않는다. 마을을 한바퀴 돌고 아침식사가 마련된 식당으로 내려간다.
우리가 묵고 있는 Lamiri는 원래 목축을 하는 농가 주택이었는데 개조해 농가호텔로 운영한다. 외양과 내부 구조가 모두 나무로 지어져선지 잠자리가 아주 쾌적하다.
정원에서 보면 1층이고 도로에서 보면 지하인 식당에 방번호 별로 테이블이 지정되어 있다. 아침 7시부터 아침을 제공하고 저녁엔 각자가 준비한 식자재로 식사를 해 먹을 수 있다. 하루 숙박비도 10만 원이라 가성비가 갑이다.
일정을 조정해 오늘은 돌로미티 호수 투어로 잡았다.
평균 2,000~3,000미터 높이인 돌로미티는 6월 말까지도 눈이 쌓여있고 계곡이 깊어 아름다운 호수들이 곳곳에 숨어있다. 오늘은 그중에서 가장 유명한 브라이에스호수를 간다. 이름난 호수들이 대부분 동부지역에 속해있어 이동거리가 제법 된다.
브라이에스호수를 가려면 숙소가 있는 바디아에서 파쏘 팔자레고를 지나 동부지역 거점도시인 코르티나 담페초를 지나게 된다. 도로는 고도 1000미터에서 2000미터 사이를 오르내리면서 수많은 헤어핀구비로 되어있다.
파쏘 팔자레고에서 내리막길을 따라 30분 정도 내려가다 보면 얇은 터널을 지난 지점에 전망대가 있다. 여기서 내려다본 코르티나 담페초는 깎아지른 듯 솟아있는 돌로미티 봉우리들 속에 파묻혀 있는 아담하고 귀여운 도시다.
유럽은 자전거 라이더들의 성지?
돌로미티 안에 거미줄처럼 나있는 도로를 달리다 보면 차량들 뿐만 아니라 오토바이와 싸이클을 즐기는 무리들과 마주치게 된다. 나도 자전거로 오래 전 이화령고개를 딱 한번 넘어오면서 힘겨움에 혀를 내두른 적이 있는데 돌로미티를 달리는 라이더들은 이화령를 하루 두세 개를 넘어달리는 라이더를 수없이 보게 된다.
심지어 두 발로 굴러선 도저히 오를 수없지 않을까 싶은 경사로를 온 힘을 짜내어 오르는, 정말 라이딩에 진심인 싸이클러를 만난 수도 있다. 평지를 달리는데 특화된 싸이클이 대세지만 트레치메 트레일처럼 조그만 자갈이 깔려있는 트레킹 코스를 달리는 MTB 라이더들도 흔히 볼 수 있다.
호수투어 첫 코스는 미주리나호수
트레치메로 가는 길목에는 미주리나호수가 자리 잡고 있다. 거친 암봉 기슭에 숨어있는 눈이 아직도 녹지 않고 매달려있는 모습이 호수에 반영된 모습으로 구글맵에 소개되는 미주리나호수 남쪽 끄트머리에는 노란색으로 단장한 건물이 서있다.
요양원으로 알려진 이 건물이 뒤에 서있는 암봉과 함께 호수에 비친 모습을 보려면 바람이 자고 있는 이른 아침에 와야 한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주차권 결제를 하려니 자꾸 집어넣은 카드를 뱉어낸다. 몇 번을 시도하다 포기한다. 호수 반영도 없어 사진 두 장만 찍고 다음 장소로 이동한다.
도비야코호수로 가는 길에 우연히 만난 명소
네비에 도비아코호수를 찍고 룰루랄라 유람하듯 차를 몰 고 가는데 노란색 들꽃이 지천으로 깔린 평지 공원이 나타난다. 천천히 공원 사이를 걷고 있는 관광객들이 눈이 띠어 우리도 길 한편이 차를 세운다. 뭉실한 곡선이 그리고 서있는 산그리메 사이로 사진에서 많이 접한 봉우리가 우뚝 서있다. 우뚝 솟아있는 봉우린 누가 봐도 트레치메다.
초록한 대지에 저마다 다양한 모습과 색깔을 뽐내며 바람에 한들거리는 들꽃들과 함께 트레치메를 올려다 보면사 구글링을 하니 여기가 Vista panoramica Tre cime 영어로 바꾸면 Panoramic view of Tre cime Lavaredo. 즉 트리치메 전망포인트다. 자유여행이 주는 여유와 혜택이 바로 이런 게 아닐까?
주차권 발행이 왜 이리 어려워
트레치메에서 브라이에스호수로 가는 도중에 세 개 호수가 있다. 트레치메 입구를 지키고 있는 미주리나호수, 트레치메 준봉에서 시원한 연초록 란드로호수와 도비아코호수는 SS51번 도로 좌와 우측에 자리잡고 있다. 호수는 자마다 호수를 한 바퀴 돌아볼 수 있도록 트레킹 코스가 나있다.
주차장을 이용하려면 2유로를 지불해야는데 모두 무인이다. 때문에 기계에서 주차권을 발행해 앞유리 와이퍼에 끼워놔야 하는데 내가 가지고 있는 카드를 거부한다. 1유로 혹은 2유로 동전이 있으면 되는데 수중에 10유로권이라 기계가 먹질 않는다. 결제를 기다리는 여행객에게 동전으로 바꿔줄 수 있는지 물어보니 카드만 있다며 미안해한다. 결국 미주리나호수와 도비아코호수를 한 바퀴 도는 트레킹을 포기하고 브라이에스호수로 직행!
돌로미티가 가장 자랑하는 브라이에스호수
브라이에스호수는 차량통행이 많은 도로 옆이 아니라 깊은 산속에 숨어있다. 워낙 그 아름다움이 뛰어나 주차장도 여러 곳에 조성되어 있다. 주차관리인이 따로 있을 뿐만 아니라 주차비도 다른 곳과 확연히 차이진다. 그나마 여름 성수기엔 자가용 출입대신 셔틀버스를 이용해야 한다고 한다.
브라이에스호수 주위에 조성된 일주 트레일코스는 3.5킬로로 대략 한 시간 반가량 걸린다. 주차장에서 브라이에스호텔로 가다가 호텔 왼쪽길로 접어들면 트레일시작지잠이 나온다. 물론 호텔 오른편으로 돌아가도 트레일코스가 나온다. 대부분의 방문객이 가는 왼쪽길로 가면 브라이에스호수를 시계방향으로 돌게 된다.
트레일코스는 잘 조성된 길을 따라 비교적 편안하게 걸을 수 있다. 대부분 길은 짙은 나무그늘이 길게 드리워져 있는데 트레킹을 시작한 지 20여분 정도 지나면서 서서히 오르막경사가 시작된다. 경사로는 짧은 된비알을 보이는 듯 하더니 이내 굽이진 내리막으로 바뀐다.
그다음부턴 평평한 오솔길 그 자체다. 트레일코스를 절반 가량 지난 지점이 호수 끄트머리다. 그 꼭짓점에 Alta Via 1 시작점이 있다. Alta Via 1은 돌로미티의 전문 트레킹 코스로서 산장과 산장을 이어서 계속 걸어가는 길이다. 뒤에 있는 숫자가 올라갈수록 트레킹 난이도가 올라간다고 한다. 마치 백두대간 종주길처럼 한 구간이 끝나는 지점에 있는 산장에서 숙식을 하고 다음날에 그 지점에서 다시 새로운 구간을 시작하듯이...
브라이에스호수를 한 바퀴 돌면서 아내는 호수가 주는 아늑함과 편안함이 더없이 좋다고 한다. 하늘을 덮고 있는 푸른색과 푸르름을 시샘하듯 몰려다니는 흰구름이 그늘을 드리워주고, 연초록 호수를 두르고 있는 험준한 봉우리들을 보고 있노라니 그 자체가 곧 '별유천지 비인간( 別有天地非人間)'
트레일을 마치고 출발점으로 다시 돌아와 늦은 점심을 먹고 다음 행선지로 출발한다. 떠나면서도 아쉬움이 남아선지 계속 호수를 바라보게 된다. 브라이에스호수 안녕!!!!
오늘의 하이라이트 산타 막달레나 뷰포인트
브라이에스호수를 출발해 산타 막달레나 뷰포인트로 차를 달린다. 브라이에스호수 진입로를 벗어나 돌로미티 북쪽지역을 관통하는 고속도로를 30여분 달리다 다시 구불구불한 시골길로 접어든 지 20여분. 드디어 산타 막달레나교회와 그 뒤로 병풍처럼 오들레산군이 두르고 있는 경치는 사진을 찍는 진사들에겐 성지와 같은 곳이다. SNS에 여행을 기록하는 MZ세대는 두말할 것도 없고..
굳이 긴 시간 차를 몰아 이곳에 온 목적은 오직 하나. 바로 이 사진 한 장을 얻기 위해서다. 산타 막달레나성당과 평화로운 시골 풍경을 앞에 세워놓고 날카롭게 솟아오른 하얀 침봉들과 그 앞에 엎드려있는 수림은 그 무엇에도 비견되지 않는 평화로움 그 자체다. 그 모습에 매료된 사진작가 혹은 작가연하는 사람들에겐 세상에서 꼭 가봐야 하는 명소 중에 하나로 꼽는 바로 그 자리에 오늘 우리가 왔다.
계획대로라면 돌로미티에 도착한 첫날 오들레 산군 아래 숨어있는 아돌프 문켈 트레일(Adolf Munkel Trail)을 걷는 것이었다. 쇼핑과 궂은 날씨로 계획을 접었으나 오늘 우리가 두 눈에 담고 있는 이 모습은 도저히 포기할 수가 없었다. 오늘 하루 우리는 브라이에스호수와 산타 막달레나가 주는 아름다운 경치에 한없이 푹 빠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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