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06. 18. 트레치메 트레킹 하는 날
돌로미티에서 트레킹 마지막날이다. 이탈리아여행의 대미를 트레치메 트레킹으로 잡았다. 이곳으로 들어오던 날 비가 흩뿌리고 제법 찬기운을 품은 바람이 서늘함보다 추위를 느끼게 했다. 짙은 회색빛 구름이 산봉우리들을 덮고 있어 돌로미티가 우릴 받아주지 않으려나 하는 걱정 앞세우며 돌로미티에서 일정을 시작했다.
궂은 날씨로 우릴 맞은 돌로미티는 하루 그리고 이틀이 지나니 언제 그랬나 싶으리만치 티 없이 깨끗하고 푸른 하늘이 열리고, 수증기를 잔뜩 머금었던 회색 구름은 물기가 미르면 새털 같은 흰구름이 되어 하늘 높은 자리로 올라갔다.
그리고 오늘은 구름들 마저 모두 자기 집으로 돌아가 숨어버린 정말 깨끗한 아침이다. 헌데 아내는 날씨와 반대로 몸에 구름이 짙게 드리워졌나 보다. 감기로 인해 오늘 일정을 함께 하지 못하겠단다. 하는 수없이 아침 일찍 숙소를 나선다. 약을 먹었으니 오후 일정은 함께 하지 않을까 싶어 반나절 안에 트레치메 트레킹을 마무리하기 위해서다. 붉은 햇살이 백운암 봉우리를 붉게 물들이는 시각에 차에 시동을 건다.
트레치메 시작은 미주리나 호수
코르티나 담페초를 지나 미주리나호수에 도착한다. 이른 아침시각인데도 호수 표면에 작은 바람이 스치면서 물결이 흔들려 절반의 반영을 보여준다. 수면에 잔돌 하나를 던져 호숫가를 배회하는 오리를 화각 안으로 불러본다.
미주리나호수를 벗어나면서 이내 삼거리가 나오고 오른쪽 좁은 길로 접어들면 트레치메 주차권을 판매하는 게이트가 나온다. 게이트 오른쪽 안내표지엔 트레치메 주차장에 주차가능대수를 실시간으로 표시해 준다. 성수기인 7월 중순부터 8월 말까지 기간엔 이른 아침부터 방문차량으로 넘쳐난다.
600대 주차공간이 채워지면 빠져나가는 치량 대수만큼만 입장할 수 있어 어중간한 시각에 오면 두세 시간을 기다리는 게 다반사. 이런 혼잡에 대비해 미주리나호수에서 트레치메 주차장까지 버스를 운행한다. 호수에 주차하고 버스로 올라가는 편익을 제공한다. 물론 버스비가 상식범위를 많이 벗어나는 수준이다.
준성수기 기간에다 이른 시각인 6:30의 게이트 풍경은 매우 한산하다. 거의 기다림 없이 30유로 입장료를 결제하고 주차장에 도착하니 주차장이 채워지려면 두세 시간은 족히 걸릴 정도로 한산하다. 아우론조산장에 가까운 자리에 주치하고 배낭과 사진기를 들고 본격적인 트레치메 트레킹을 위해 산장으로 걸어간다.
트레치메 루프트레일코스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에 등재된 트레치메는 돌로미티 심벌이자 No 1 방문지로 알려져 있다. 아우론조산장에서 시작하는 트레일코스는 로카텔리산장을 찍고 돌아오는 루프타입으로 10km 거리에 대략 6시간이 소요된다.
트레킹은 101 트레일과 105 트레일을 걷게 되는데 아우론조산장에서 101 트레일을 따라 반시계방향으로 걷는 게 일반적이다. 하지만 충분한 시간과 체력에 자신이 없는 분들은 101 트레일로 로카텔리산장을 왕복하기도 한다. 그만큼 101 트레일코스는 오르내림이 거의 없는 평이한 길이다.
이에 반해 105 트레일코스는 로카텔리산장에서 아우론조산장까지 제법 오르내림을 겪어야 한다. 평균 표고 2000미터가 넘는 트레일코스다 보니 비알길을 오르는데 평지보다 더 산소를 요구하니 금방 지치게 된다. 그래서 많은 블로거들은 트레치메 트레킹을 시계방향으로 돌아보기를 권한다. 충분한 체력이 있을 때 힘든 105코스를 지나 로카텔리산장에 도착하면 돌아오는 101 트레일코스는 거의 거저먹는 수준이라 수월하다.
하지만 트레킹을 빨리 마치고 숙소에 남아있는 아내에게 가야 해서 101코스로 출발한다. 6:40분에 아우론조산장을 출발해 로카텔리에 08:00 도착하고 105 트레일을 따라 원점회귀하면 12:00에 도착하는 시간계획을 잡는다. 첫 번째 기착지 라바레도산장으로 가는 길은 깊이 패인 계곡과 미주리나 뷰포인트를 우측에 두고 트레치메 세 봉우리 아래로 난 평평한 길이다.
101 트레일 위에는 아직도 눈이
해가 떠오른 지 얼마 되지 않아 계곡은 높은 산군이 지운 어둠으로 아직 깨어나지 못한 듯 잠들어있다. 라바레도산장을 지나면서 트레일 주변엔 아직도 녹지 않은 눈과 얼음이 덮여있다. 길은 평지에서 낮은 경사로로 바뀐다.
로카텔리산장으로 넘어가는 등성이에 이르자 눈은 사람 키보다 높게 쌓여있다. 하지만 방문객을 위해선지 길 위엔 눈은 말끔히 치워져 있어 트레킹엔 지장을 주지 않는다. 다만 군데군데 님아 있는 눈과 얼음이 있어 잘 살펴 걸어야 한다. 등성이에서 잠시 호흡을 가다듬을 겸 휴식을 가져본다. 멀리 로카텔리산장이 아침 햇살에 반짝이고 있다.
고개를 지나 눈과 살얼음으로 덮여있는 내리막길을 어느 정도 내려오다 뒤를 돌아보니 여태까지 포개져 보이던 트레치메가 완연한 제모습을 보여준다. 푸른 하늘 한가운데 아침 햇살에 빛나는 암봉 세 개가 다투어 위용을 뽐내며 자기를 봐달란다.
로카텔리산장에 왔다면 동굴에 올라 인증샷이 필수
돌로미티 트레커들에게 로카텔리산장 숙박을 가장 큰 로망으로 꼽는다. 떠오르는 태양과 서산으로 지는 석양으로 붉게 물든 트레치메를 보려면 바로 이곳 로카텔리산장에서 일박을 해야 한다. 물론 한여름밤에 트레치메 위를 수놓으며 흐르는 은하수는 보너스. 8시가 되지 않아 로카텔리산장에 도착한다. 산장은 열흘 뒤에나 오픈하기에 썰렁하다.
로카텔리산장 뒤에는 자그마한 바위봉이 서있다. 이 바위산 중간부를 자세히 보면 여러 개 구멍이 뚫려있는 걸 볼 수 있다. 산장에서 올라가는 길을 따라 5분이면 도착한다. 자연 풍화로 생성된 게 아니고 인공의 힘으로 만들어진 것이란다. 바로 1차 세계대전 당시 참호용으로 개설되었단다.
지금은 많은 트레커들이 동굴과 트레치메를 배경으로 SNS 인증샷을 남기는 성지가 되었다. 나도 카메라와 폰으로 되도록 여라 장의 샷을 구사해 본다. 언제 내가 다시 이곳에 올까 하는 조바심에 사진을 찍고 확인하고, 또 찍고 확인하느라 한참을 지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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