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해가 저무는 마지막 날 밤은 늘 뜬 눈으로 지새운다. 차 안에서 제야의 종소리를 들으며 새해 새 날을 길 위에서 맞이한다. 지나간 한 해를 조용히 되돌아보는 것도 좋지만 나는 새롭게 밝아오는 새해 첫 일출을 온 몸으로 맞이하고 싶어 밤길을 달려간다. 그렇게 해야지만 새해맞이를 제대로 하였구나 하는 뿌듯함과 새로운 다짐을 한다. 코로나바이러스로 좋아하는 여행도 제대로 하지 못해 그동안 다녀온 여행지에서 건진 사진을 보는 게 습관이 되버렸다. 그동안 해맞이 여행을 다녀온 장소가 어디어디인지 돌아보고 그당시의 추억을 되새겨본다.
2006년 12월 31일 천안에서 두 형님을 모시고 순천으로 달렸다. 이번 여행은 일몰과 일출 두마리 토끼를 모두 잡아보기로 하였다. 우리나라 일몰장관으로 가장 멋진 곳 중 하나가 순천만이다. 일몰로 유명한 곳은 강화도 장화리해변, 안면도 꽃지해수욕장 그리고 부안 채석강이 잘 알려져 있다. 하지만 일출과 일몰을 동시에 누리려면 일출과 일몰을 동시에 맞이할 수 있는 땅끝마을이거나 아니면 일출명소와 일몰명소가 가까이에 있어야 한다.
오랜만에 잡은 일출여행이라 가능하면 해맞이와 해넘이 명소가 가까이 붙어있는 곳을 찾아보니 순천만과 여수 향일암이었다. 순천만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자연생태습지로 자리잡았으나 그 당시에는 S자 물길위로 붉게 부서지는 낙조로 명성을 날리고 있었다.
차를 주차하고 갈대숲 사이로 만들어놓은 목판길을 따라 부지런히 걸었다. 해가 넘어가기 전에 용산전망대에 도착하여야 한다. 붉은 노을에 물든 S자 물길을 제대로 감상하려면 용산전망대를 올라야 한다. 갈대숲길이 끝나고 낮게 누운 산길이 나온다 전망대까지 가려면 아직 10여분은 빠른 걸음으로 재촉해야 한다.
소나무 사이로 난 길을 바삐 재촉하여 걷다보니 숨도 차고, 나무들 사이로 갑자기 시야 툭 터져나온다. 잠시 가쁜 숨도 고르고 해가 어디쯤 내려가고 있나 살필 겸해서 잠시 쉬었다. 아직 해가 넘어가려면 시간이 제법 남았다. 괜히 서둘렀나 싶어 형님들께 미안했다. 우리를 좆아오시느라 힘겨워하신다.
드뎌 용산전망대에 당도했다. 사람들이 제법 모였다. 가능하면 사진 프레임 속에 오로지 해와 S자 물길만 담아보려 전망대 맨앞에 카메라를 설치했다. 연무에 감겨있는 해는 화포해변 뒤에 누워있는 능선 위로 멀찍히 걸려있다. 갯벌 사이로 난 물길 위로 핏기가 다 빠진 햇살이 힘없이 물결에 흔들리고 있다.
고기잡이를 마치고 돌아오는 어선과 관광객을 태우고 내려가는 배 꼬리로 물결이 기러기떼가 하늘을 날듯이 퍼져나가고 있다. 해넘이를 바라보는 전망대 방문객들도 대부분 넘어가고 있는 해를 바라보면 뭔가 아쉬움이 얼굴이 담겨있어 보인다. 저 배와 같이 시간은 쉬지 않고 천천히 올 한 해를 흘러왔고 지금도 흐르고 있다. 내일이면 또 오늘처럼 무심히 세월의 시계바늘은 멈추지 않고 흐를것이고, 그 시계바늘 위에서 우리들은 바삐 돌아가는 세상에 내던져질 것이다.
돌아오는 배에 눈길을 매달고 이러저러 생각에 잠김 사이 2006년 한해를 달구었던 해가 조용히 저물어가고 있다. 올 한해 욕심부렸던 것들은 달성하지 못하였어도 후회하지 말고 내일 맞이할 새해에 이월처리하자. 내일 떠오르는 해에게 더 불어난 욕심을 쥐어주고 더 열심히 뛰어보자.
산너머로 해가 넘어가자 빛을 잃어버린 바다 물길 위에는 어둠이 서서히 내려앉으며 침묵 속에서 내일을 맞이할 준비에 들어간 모양이다. 우리도 왔던 길을 되짚어 내려왔다. 주차장 근처에 식당에서 저녁을 먹고 향일암으로 길을 잡았다.
순천만에서 향일암으로 가는 길은 거리는 그리 멀지않아도 시간은 제법 걸린다. 향일암은 여수 남쪽에 자리한 돌산도 남쪽 끝에 위치해 있다. 순천에서 출발하면 여수시내를 거쳐 돌산도로 넘어가는 길에 돌산대교가 있다. 제법 경관조명으로 치장해서 멋드러진 모습을 연출한다. 잠시 시간을 내어 돌산공원에서 돌산대교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숙소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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