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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구석구석/소풍가는 길

2015. 10월 Sitta Slow Village 청산도를 느리게 걷다 (3) - 슬로길 5-7코스를 걷다

by 노니조아 2020. 3. 3.

간밤엔 비가 내렸는데 방문을 열고 밖을 내다보니 하늘에 구름 한 점없이 맑다. 예보로는 오늘도 하루종일 흐리다고 했는데 이 또한 하늘이 우리 여행에 준 축복이다.

카메라를 준비해 숙소에서 가까운 서편제 길에 다시 올랐다. 바람이 제법 불어오는데도 벌써 서편제 길을 찾은 방문객이 드문드문 보였다. 아침 햇살이 내려쪼이는 서편제 길은 어제 오후와는 사뭇 다르다. 사람이 물러간 길 위로 아침이 주는 상쾌함이 젖어있고, 집집마다 분주한 아침 준비와 달리 여기는 또다시 몰려올 방문객을 맞이하려 조용히 단장을 하듯 깔끔한 모습이다. 진도아리랑이 길 위에서 구성지다 못해 처량하다.

포구가 내려다 보이는 서편제 주막에서 도락리 포구를 내려다 보니 여기마져 고요하다. 나도 빨리 마음의 고요를 찾아야 할텐데. 사진 몇 컷 얻고 아내가 기다리는 숙소로 돌아왔다. 아침 요기를 별도로 준비하지 못해 아내에게 부두에 있는 마트에서 간단한 요기거릴 사온다고 했다.

 

간단한 메뉴로 (빵 하나에 사과주스) 아침 요기하고 길을 나섰다. 오늘은 범바위코스-슬로푸드체험관-상서리 옛담장을 돌아보는 슬로길 5-7코스다. 숙소인 락펜션에서 200년 수령의 느티나무가 서있는 당리마을을 지나 청룡공원을 경유하여 권덕리로 가는 군도를 따라 걸었다. 오늘의 하이라이트는 범바위인 만큼 다른 곳은 볼 것 없이 보적산 능선에 우뚝솟아 청산도 어디에서도 보이는 범바위를 보며 걸었다.

가는 도중에 잠시 들러본 청룡공원엔 200년 수령의 느티나무가 당당한 모습으로 서있다. 겉으로 보기에도 무척 건강해보인다. 느리게 사는 청산도 사람들의 건강함을 보여주기라도 하듯, 가을이 깊어가는 시절인데도 잎은 청청하고 보통 사람 세 아름은 족히 되는 둥치는 때깔마져 싱싱해보인다. 늘어져 있는 가지마져 부목하나 없이 튼실하고, 여늬 느티나무처럼 수액 링거 꼽은 흔적하나 보이질 않는다. 나도 이처럼 싱싱하고 튼튼하게 앞으로도 살아야 할텐데...

 

범바위로 가는 길이 제법 멀다. 도상으로 목측해본 거리도 대략 5km는 되어 보인다. 구장리에서 권덕리로 넘어가려면 고개를 넘어야 하는데 오르막이 제법이다. 하지만 아내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걷다보니 그리 무료하거나 힘들지는 않다. 아내가 걷다말고 아스팔트를 뚫고 나온 강아지풀 가족을 발견하고 보라고 한다. 카메라를 멘 나는 그 모습을 찬찬히 들여다 보는게 아니라 무작정 렌즈를 갖다 들이댄다. 사물을 보면서 생각을 하는 아내가 오히려 나보다 더 의미있는 여행을 하고 있다. 처음엔 줄기 하나만 아스팔트를 뚫고 올라왔을텐데, 맏이 줄기가 닦아놓은 그 틈 사이로 동생 줄기가 올라오게 했을 것이고, 그 줄기들이 다시 자식들을 낳아 함께 길 섶에서 가족을 이루고 살고 있는 모습이란다. 아내의 설명이다.

아내에게 카메라로 모습을 찍어보게 했다. 랜즈를 가까이 대고 반셔터로 초점을 맞추고 셔터를 누르도록 했다. 아내에게 첨으로 DSLR 기기로 사진 찍는 걸 알려주는 것이었다. 아내도 회사를 그만두면 적당한 스펙의 사진기를 사주고 함께 사진을 배우러 다니자고 해야겠다.

 

권덕리에서 범바위로 방향을 잡아 오르막 산행을 해야 범바위에 다다를 수 있다. 오르막길 끝에 범바위 주차장이 있고, 그 곳 부터는 포장도로가 범바위까지 연결되어 있다.

범바위에 오르면 청산도를 한 눈에 조망할 수 있고, 날씨가 맑으면 여서도, 거문도, 제주도까지 보인다고 한다. 범바위 전망대에는 느림 우체통이 서있다. 우체통에 편지를 써서 넣으면 일년 뒤에 받아볼 수 있다고 한다.

맑은 날씨 덕분에 범바위에서 바라본 남해 푸른 바다가 한없이 싱그럽다. 탁 트인 전망이 가슴 속을 시원하게 만들어준다. 범바위 전망대에 있는 매점에서 빈대떡에 막걸리 한잔 비우자고 아내에게 떼를 써 보았지만 종무소용이다. 이내 포기하고 아내와 함께 6코스 들머리인 청계리로 가는 내리막 길로 들어섰다. 마누라 말 들으면 자다가도 떡이 나온다질 않는가.

청계리로 내려가는 길은 포장된 도로여서 걷기가 수월하다. 내려가는 길 도중에 장기미에서 올라오는 길 양쪽에 다랑이논이 층층이 이어져 있다. 다랑이논이 일반인에게 친숙하게 다가온 것은 남해에 있는 가천 다랑이논이 관광지로 알려지면서부터다. 하지만 농사일에 지쳐있는 농민에게는 다랑이논이 여간 힘든 농사처가 아니다.

좋은 말로 다랑이논이고 옛날에는 천수답이라고 불렀다. 모내기 철에 비가 내려주지 못하면 논에 모를 이앙할 수 없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우리 부모님도 삽교천이 준공되어 농업용수가 천수답인 우리 논까지 공급되기 전까지는 모내기철만 되면 가슴을 졸이곤하셨다. 어느 해인가는 모가 너무 자라 모내기하기에 너무 늦은 시기까지 비가 내려주지 않아 발을 동동구르며 안타까워 했던 적이 있다.

 

범바위 주차장에서 청계리까지는 1.8km정도여서 30분도 되지않아 도착했다. 아침을 너무 가벼운 메뉴로 마쳐서인지 배고픔이 짜증과 함께 몰려오는 듯하다. 청계리에서 한 20분 더 가면 오늘의 점심식사 장소인 슬로푸드 체험관에 다다르게 된다. 청계리 마을은 슬로길 6코스 들머리다. 마을 안에 구불구불 나있는 고샅 사이로 돌담들이 가지런히 연해있고, 돌담 위로 채송화가 햇살을 맞아 소담스레 피어있다. 이따금씩 마을 어르신이 지나칠 때면 가볍게 인사를 드리니 기특하다는 표정을 건네 보인다. 하지만 경운기를 몰고 일터로 가시는 분들에게는 인사를 건네기는 여간해서 쉽지않다. 놀러온 객꾼이 고단한 일터로 나가는 분들께 건넬 인사가 마뜩찮았다.

 

논길을 가로질러 군도에 오르니 슬로푸드체험관이 가까웠다. 점심요기 할 곳이 가까워지니 더 배가 고파오는 것같다. 가는 중간에 청계리의 명물인 구들장논 체험관이 길에서 250m벗어난 곳에 있다는 이정표를 의식적으로 무시하게 될 정도로 쉬면서 요기하고 싶은 마음이 더 앞섰다.

슬로푸드 체험관을 안고 있는 느린섬 여행학교는 2009년 폐교된 청산중학교 동분교를 개조하여 슬로푸드 체험관, 숙박동, 홍보관 등을 갖춘 다목적 복합시설로 탈바꿈하여 탄생하였다. 청산도의 토속 식자재로 조리된 슬로푸드 메뉴로 방문객에게 식사를 제공하고, 숙박시설도 일반에게 제공되고 있다. 식사를 위해 1층에 마련된 슬로푸드 체험관으로 가 건강밥상 메뉴를 주문하여 늦은 점심을 마쳤다.

 

식사를 마치고 나오니 하늘이 다시 짙은 구름으로 덮혀버렸고, 햇살마져 사라져 바람이 제법 싸늘해졌다. 배가 두둑해졌으니 오늘 예정한 코스를 마져 돌아보기로 했다. 돌로 가지런히 쌓아올린 돌담길이 아름다운 상서마을 옛담장과 신흥리 풀등해변을 돌아보는 일정이다. 차가워진 날씨 속에서 학교 맞은 편 산자락에 가지런히 들어앉은 상서마을로 향했다.

마을어귀에 이르니 상서마을 옛담장이 2006년 문화재 지정되었다는 안내 비석이 서있다. 마을 안에 자리한 집과 집들을 이어주는 담장이 돌로 아담하고 정교하게 적당한 높이로 쌓아 이어져 있다. 돌담 아래에는 채송화, 맨드라미들이 예쁘게 꽃단장하고 서있다.

 

상서마을 옛돌담을 지나 동촌마을을 거쳐 풀등해변으로 향했다. 풀등해변은 밀물 때가 되면 썰물에서 드러난 해변이 물에 모두 잠기는 곳으로 이름을 알렸는데, 막상 가서 보면 별다른 느낌이 없다. 시간을 두고 밀물과 썰물이 교차할 때까지 기다릴 수 있는 시간 여행자에게나 의미로 다가올 곳이다. 신흥리에서 도청항으로 가는 버스가 오길 기다리며 버스 정류소에 앉았는데 버스가 올 기미가 없다. 인터넷을 검색하여 버스기사 휴대폰으로 전화하니 운행주기가 배가 도청항에 들어오는 횟수와 같다고 한다. 도청항에 배가 들어오면 하선하는 손님을 태우고 이곳 신흥리까지 데려다 주고 다시 도청항으로 돌아가는 운행코스와 시간을 갖고 있다면서 한시간 뒤에 이곳에 도착할 예정이란다.

 

아내와 상의한 끝에 걸어가기로 결정했다. 신흥마을에서 도청항까지 대략 한시간 정도 걸리니 기왕 청산도에 슬로 걷기하러 왔으니 돌아가는 길도 걸어서 돌아가기로 의기투합했다. 군도를 따라 한참을 걷다보니 어제 슬로길 3코스에서 빼먹고 보지 못한 고인돌 유적지가 나왔다. 청동기시대 대표적인 무덤형태인 고인돌이 남방식 지석묘 원형 그대로 남아있다는 안내판이 서있다. 고인돌 앞에는 하마비가 서있다.

청산도 하마비는 자연석에 부처를 새겼는데 아무리 지체가 높은 사람도 이 앞을 지날 때는 말에서 내려 걸어갔다고 전해진다.

 

고인돌을 지나 언덕에 오르니 청산도 제일 명소 서편제 길을 다시 만나게 된다. 바로 도청항으로 가더라도 출항 시간이 아직 많이 남아있어 독살이 드러난 도락리 포구로 내려갔다.

 

이번 여행을 갈무리하고 멋진 사진을 남기고 싶어서다. 아내와 그동안 함께 살아온 날들을 소중히 하고 앞으로도 행복하고 즐겁게 살아가자고 다짐하였다. 해는 이미 중천을 지나 서쪽 바다 쪽으로 한참 기울었다. 우리가 함께 살아온 날도 함께 살아갈야 할 날에 비하면 이미 중천을 지난지 오래지않은가. 황혼이 아름다워야 살아온 날들이 아름답듯이 서녁 하늘로 해가 모두 뉘우기 전까지 남아있는 시간을 함께 즐겁고 행복하게 살아야 아름답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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