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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구석구석/제주도로 간다

설국의 나라로 변한 한라산 어리목-윗세오름-영실 트레킹일지

by 노니조아 2023. 2.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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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2. 3. 드디어 어리목-영실을 가게 되네.
이 길을 오르는 게 그렇게 어려웠을까? 제주올레길 종주를 위하여 지난 몇년동안 제주도를 찾았다. 올레길만 걷는 것이 무료할 수도 있어 방문할 때마다 투어 일정 사이에 한라산 등반일정을 끼워넣었다. 하지만 한라산 정상은 밟았으나 무슨 연유에선지 어리목-영실 구간은 이러저러한 사연으로 오르지 못했다. 지난 설명절을 전후해 쏟아부은 폭설로 일주일이 지난 지금까지도 한라산CCTV에서 보이는 윗세오름은 하얀 눈세상이다. 결국 한라산 눈꽃이 내게 보내는 손짓에 주저없이 제주도로 가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모든 일정의 맨 꼭지에 어리목-영실 코스로 잡았다.

제주 공항에서 어리목주차장까지 버스노선은 325번과 240번을 연결하면 된다. 한라병원까지 가장 먼저 오는 바스를 타고 이동해, 240번 버스를 기다리는데 도무지 오질 않는다. 답답한 마음에 두리번거리다 정류장에 붙어있는 배차시간표를 보고 이해가 되었다. 240번 버스는 서귀포까지 연결하는 1100도로를 달린다. 이 도로 주변엔 사실 마을이 거의 없고, 호국원, 영실, 어리목이 메인이다.

09:20 버스를 타고 어리목입구에 도착하니 승객 절반이상이 내린다. 사람들을 따라 도로를 횡단해 어리목탐방안내소까지 오르막 도로를 빠른 걸음으로 걷는다. 길 옆으로 제설된 눈들이 녹지않고 인도를 덮고 있다. 어리목입구에서 탐방안내소까지 1키로 남짓 얕은 오르막인데도 지루하다.

어승생악은 다음에 가자!
어리목탐방안내소겸 주차장엔 등반을 준비하는 사람들로 분주하다. 주차장은 눈이 제설되었으나 어리목탐방 입구엔 아이젠을 착용하는 산객들이 분주하다. 오르막길은 아이젠없이 오르는데 지장이 없을텐데? 하면서도 준비해왔으니 우리도 착용한다. 탐방로 입구에서 공단 직원이 아이젠 착용여부를 검사한 다음 통과시킨다. 한라산 등반에는 시간 제약에 장비 검사까지 좀 까다롭다.

어리목탐방안내소 표고가 970m 임을 알수 있다.

탐방으로 입구에서 주차장 방면을 바라보면 봉긋하게 봉우리가 사발처럼 엎드려있다. 어승생악이다. 윗세오름에서 남벽분기점을 다녀오려면 12:00전까지 도착해야한다. 어승생악을 다녀온 다음 윗세오름까지 12:00에 가기에 지금 시각으로 너무 늦다. 한라병원에서 8:30버스를 탔어야 한다.

어리목에서 윗세오름까지 탐방로 안내판

한시간만 고생하면 신천지가 기다린다.
윗세오름을 향해 출발한다. 어리목탐방안내소에서 윗세오름까지 4.7km로 약 두시간이 걸리고, 남벽분기점까지는 3시간이 걸린다고 한다. 탐방로 입구 표고가 970m, 윗세오름이 1,700m이니 약 700m 정도 고도를 올려야 한다. 각 구간별 난이도 표시에는 사제비동산까지 약 2.4km 는 어려움을 나타내는 적색표시다. 결국 이구간에서 힘을 쏟으면 무난하게 윗세오름까지 갈 수 있다.

탐방로입구를 출발하여 어리목 나무다리까지는 힘들지 않고 걸을 수 있는 마을 뒷산 오솔길처럼 어려움이 없다. 어리목 나무다리 아래를 가로질러 흐르는 어리목계곡은 광령천으로 이어져 올레길 17코스 외도월대에서 바다로 흘러들어간다. 마른천에 앉아있는 화산암 위로 오염되지 않은 청정한 곳이라 자랑하듯 맑고 하얀 눈이 녹지않고 아침 햇살을 받아 눈부시다.

어리목 나무다리를 지나자마자 본격적인 오름 비알길이 시작된다. 한시간동안 오르막길은 지쳐야 사제비동산에 도착할 수 있다. 함께 출발한 등산객들과 앞서거니 뒷서거니 하면서 한걸음 한걸음 올라간다. 지난 설명절을 전후해 내린 눈이 아직까지 등로를 덮고 있다. 눈이 그치자 국립공원 근무자들은 등산로 개척을 위해 굵은 땀방울을 쏟으며 러셀질을 하느라 한고생했을 걸 생각하니 진정 고마움이 밀려온다. 한참을 오르다 보니 겹쳐입은 옷 속으로 땀이 흐른다.

사제비동산은 죽은 제비 혹은 매의 일종인 새잽이을 닮았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란다.

드디어 고생 끝. 사제비동산으로 오르는 마지막 오름 길목을 지나자 관목과 조릿대만이 듬성듬성 펼쳐진 넓은 초원이 반겨준다. 만세동산까지 완만하게 오르막길이 이어져 있고, 뒤로는 한라산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오름들이 발 아래 흩어져 있다. 멀기 바다로 눈을 돌리니 운해가 하늘과 맞닿은 곳까지 솜처럼 내려앉아있다. 이 감격스런 모습에 한시간동안의 힘겨움은 흔적없이 사라진다. 천천히 주변을 둘러보면서 만세동산으로 발길을 옮긴다. 앞서 걷던 중년 일행분들은 눈위에 눕거나 구르면서 동심의 세계로 빠져든 듯 폰카에 그 모습을 담으면서 즐거움 모습이다.

만세동산 전망대에서 내려다본 운해

사제비동산에서 바라보이는 언덕을 천천히 오르면 어렵지 않게 만세동산에 도착한다. 등산로에서 잠깐 비껴선 자리에 전망대가 마련되어 있다. 전망대에 오르니 탑방로 입구 하늘을 덮고있을 구름이 운해가 되어 한층 멋진 장관을 이룬다. 아까 올라온 사제비동산이 저 아래 보인다.

만세동산 전망대에서 바라본 한라산 정상. 백록담 오른쪽 완만한 구릉 아래 윗세오름이 자리하고 있다.

눈을 돌려 한라산을 올려다 보니 넉넉한 산마루가 백록담 암벽 좌우로 푸른 하늘 아래 선을 이루고 있다. 백록담 서벽 아래 오른쪽을 눈을 찡그려 자세히 보니 윗세오름 안내소 건물이 보인다. 윗세오름까지 아직도 1.5키로를 더 올라가야 한다. 틀레킹을 할 때 빤히 보이는 목표를 바라보면서 걷는 게 참 지루할 때가 있다. 길을 구비지고 완만한 동산들이 목표지점을 가리워줘야 지루하지 않고 시시각각 변하는 장면들을 즐기면 갈 수 있다.

윗세오름 표지목 절반이 눈 속에 파묻혀있다.

하얀 눈밭 세상 윗세오름에 드디어 도착!
어리목탐방안내소를 출발한지 2시간 반만에 윗세오름에 도착했다. 하얀 눈밭위로 윗세오름을 찾은 많은 등산객들은 가져온 양식으로 점심을 먹으며 동행들과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다. 식사를 마친 분들은 기념촬영에 여념이 없다. 우리도 준비해온 라면과 아들이 싸준 특식 과자를 펼쳐놓고 점심을 먹느다. 바람도 없고 날씨도 청명해 산에서 먹는 라면은 세상 어디에도 없는 꿀맛이다.

정상인증용 표지목이나 표지석에는 늘 사람들로 붐빈다.

식사를 마치고 우리는 본격적으로 윗세오름을 즐기기 위해 배낭을 정비하고 밖으로 나왔다. 한라산 정상을 알려주는 백록담 표지석이나 표지목에 인증샷을 담으려고 길게 줄을 서는 모습이 여기도 예외가 아니다. 윗세오름 표지목 앞에는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서있다. 우리도 차례를 기다리며 사람들이 보여주는 다양한 포즈를 감상한다. 젊은이들은 다른 사람들의 시선은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만의 포즈를 연출하며 카메라에게 아부한다. 나이가 지긋하신 분들은 역시나 증명사진 포즈를 벗어나지 못한다. 우리는 파격은 아니지만 그래도 멋없는 포즈에서 벗어난 모습으로 인증샷을 남긴다.

윗세오름에서 영실탐방로입구까지 3.7km지만 버스를 타려면 2km를 더 걸어야 한다.

남벽분기점을 포기하고 영실로 하산하며 맞는 장쾌한 눈밭 설경
우리가 윗세오름에 도착할 무렵, 돈내코탐방로 방면 출발 마감을 알리는 방송이 나온다. 시계를 보니 13:00에 가까워지고 있다. 돈내코방면으로 가다보면 남벽분기점을 만나게되는데 오늘 거기까지 다녀오려고 했으나 여의치 못하다. 올라오면서 눈밭에 빠져 시간을 많이 소비한 덕분(?)으로 위안을 얻는다.

영실로 출발해 웃세붉은오름을 감아돌아 나오면 새로운 세상이 펼쳐진다. 하얀 눈밭에 한가운데 백록담 서벽 거친 암벽이 불쑥 솟아오른 이국적 장관에 모두 압도당한 모습이다. 마치 만년설에 일년내내 덮여있는 곳으로 착각을 가져다 주는 모습에 취해 산객들은 너나없이 카메라 셔터를 누른다.

서귀포 앞바다에서 피어오르고 있는 구름과 그 뒤로 넓게 드리워진 운해가 하얀 눈밭과 어울린 모습이 바로 나를 제주로 부르게 한것이리라. 내려갈 생각을 잠시 잊고 제주가 네게 선물한 이 멋진 모습에 취해본다. 정말 이번 여행을 저지른 것에 고마움이 뭉글뭉글 차오른다.

한라산을 올려다보기 딱 좋은 윗세족은오름

윗세족은오름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등로 오른쪽으로 나있다. 한라산을 색다르게 조망할 수 있고 넓게 펼쳐진 초목지대를 덮고 있는 눈밭을 굽어볼 수도 있다.

윗세족은오름 전망대에 서면 용머리해안 앞에 불쑥 솟아있는 삼방산을 찾아볼 수 있다. 그 뒤로 올레길 중 가장 아름다운 길을 품고 있는 송악산이 바다로 흘러내리고 송악산 앞에 드러누워있는 가파도, 그의 동생 마라도까지 거침없이 눈에 찬다. 가까이에는 영실로 내려가는 곳에 구상나무단지가 펼쳐져 있다.

내려오는 대 어느 산객분이 우리에게 봄에 다시 여길 꼭 와보란다. 겨울엔 설경이 멋지지만 봄에 여길 오면 보이는 온천지가 붉은 철쭉으로 덮힌 또하나의 환상적인 풍광에 취할 수 있다고 한다. 유홍준교수가 문화유산답사기 제주편에서 읽은 기억이 난다. 늦은 봄에 이 코스를 꼭 찾아보리라.

신들이 살고있다는 영실!
살아서 백년, 죽어서 백년을 산다는 구상나무 고사목지대를 지나면서 신들의 안식처로 불리는 영실이 시작된다. 여기서부터 등로는 급격한 나무계단 하산길이다. 경사도 솔찬케 급해 영실에서 올라오는 산객은 꽤 많은 땀을 쏟아야 할 판이다. 신들이 머물고 있다는 이름 그대로 영실탐방로로 내려가는 내내 기암과 계곡에서 상서로운 기운이 감돌는 듯 하다.

하산길에 바라본 영실기암

하산길 왼쪽으로 흐르는 능선 줄기에는 기암들이 눈밭에 서있다. 능선이 급히 흘러내리다 멈춘 곳에 검은 화산암 절벽이 깎아지른듯 서있고, 급하게 패인 계곡 끝에는 흐르던 물줄기가 얼어붙어 있다. 영실기암이다.

오백이나 되는 자식을 둔 설문대할망이 자식들에게 먹일 죽을 끓이다가 솥에 빠져죽었는데 이를 모르고 집으로 돌아온 자식들이 끓여논 죽을 맛있게 먹고 있었다. 맨 나중에 귀가한 막내가 죽을 뜨다 어미의 뼈를 발견하고는 어미의 몸을 먹은 형들과 함께 살 수 없다하여 차귀도로 가 바위가 되었고, 나머지는 한라산에 올라가 돌이 되었는데 능선에 흩어져 서있는 기암들이 그 아들들이라고 한다. 

왼쪽이 병풍바위고 오른쪽인 영실기암이다.

구상나무 군락에서 계단을 내려오다 보면 등로 왼쪽은 깎아지른 절벽이지만 등로에서는 그 절벽을 이루는 바위를 볼 수 없다. 내리막을 거의 다 내려와서야 절벽을 이루는 바위를 바라볼 수 있는 병풍바위다. 수직으로 넓게 펼쳐져 서있는 바위들이 마치 병풍을 세워놓은 것같아 붙여졌는데 한여름에도 구름이 지나가면서 몸을 씻을 정도로 깊다고 한다. 물기를 머금은 눈길은 아이젠이 전혀 기능을 하지 못해 미끄럼을 타듯 내려오니 숲속으로 난 완만한 오솔길이 기다린다.

영실탐방로가 가까워질 무렵 등로 주변은 듬직한 소나무들이 군락을 이루서 서있다. 육지에 여느 산을 가든 흔한 것이 소나무건만 제주도에서 소나무 군락을 만나기가 쉽지않다. 해가 서쪽으로 많이 기울었는지 나무들 그림자가 길게 누워있다.

영실탐방로 입구에 도착하면서 새벽부터 시작된 여행 첫날 일정이 마무리되어 간다. 오전 10:30에 어리목을 출발한 오늘 산행은 오후 네시에 가까워질 무렵 영실에 도착했다. 영실에서 아이젠을 정리하고 다시 버스 정류장까지 2.5km가량을 빠른 걸음으로 가야 한다. 서귀포에서 출발해 1100번 도로를 따라 제주로 가는 16:36분 버스를 타려면 시간이 넉넉치 않다. 240번 버스는 주중에는 거의 한시간 간격으로 운행하기 때문에 하산길에는 버스시간을 고려하여 산행 시간을 조절하여야 한다.

서귀포에서 제주로 가는 버스시간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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