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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구석구석/소풍가는 길

수원화성 순성길, 창룡문에서 화서문까지

by 노니조아 2023. 6.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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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성의 동문, 창룡문 위로 매일 저녁 둥근달이 떠오른다.
서장대에서 시작한 화성 순성길 이제 절반이 지났다. 출발한 지 대략 1시간 반가량 흐른거 같다. 창룡문은 수원화성의 동문이다. '동쪽을 지키는 신령한 청룡'을 상징하여 창룡문(蒼龍門)이라 붙였다. 한국전쟁 당시 문루가 소실되었다가 1976년 복원하였다.

수원화성을 하늘에서 내려볼 수 있는 기구풍선이 운영된다.

서울에서 화성에 있는 회사로 자전거를 이용해 월요일 아침과 금요일 저녁에 출퇴근을 한 적이 있었다. 편도 거리가 70키에 좀 모자라는 거리여서 매일 자출은 무리고 월요일 회사로 내려가는 길과 금요일 집으로 올라올 때만 자출하였다. 회사에서 집으로 올라오는 길에 수원 화성을 가로질러 올 때가 있었다. 마침 창룡문 위로 관광객을 태운 기구풍선이 떠오르고 있어 한동안 이를 감상한 적이 있다.

창룡문은 바깥쪽에서 보면 안쪽으로 휘어들어가는 곳에 자리잡고 있어, 돌출된 좌우 성벽이 자연스레 성문을 보호하는 치성역할을 하도록 축성되었다. 문루를 이층으로 올린 팔달문이나 장안문과 달리 1층으로 문루를 세워 격을 차이를 두었다.

창룡문 북쪽에 세워진 노대와 공심돈

수원화성에서만 찾아볼 수 있는 공심돈과 노대
창룡문을 지나 북쪽방면으로 이어진 성안길을 조금만 가다보면 이제까지 보아오던 시설에 비행사뭇 견고한 외양을 보이는 시설을 볼 수 있다. 이러한 시설들은 한양도성이나 남한산성에서는 전혀 볼 수 없는 화성에서만 만나볼 수 있다. 정조가 화성을 축성하며 이전의 축성방식에 비해 매우 혁신적으로 발전된 시설들을 성곽 요소요소에 배치하였음을 알 수 있다.

앞에 세워진 동북노대는 기계식 활인 노를 쏘기 위해 지은 시설이다. 노대는 치성 위에 벽돌을 쌓아 대를 만들어   적의 동태를 살피고 깃발을 이용해 적의 위치를 알리는 기능까지 갖추고 있다. 노대 상부에는 여장을 올렸는데 그 모습은 여타의 성곽과 전혀 다른 모습을 하고 있다.

노대 뒤에 원통형 옹벽을 두르고 서있는 공심돈은 일종의 망루인데, 속이 비어있는 돈대라 하여 공심돈이라 불리운다. 강화도에서 많이 볼수 있는 돈대는 성곽과 떨어진 곳에 세워 적을 감시하도록 세워졌으나 화성의 동북공심돈은 성 안쪽에 설치되어 외벽에는 밖을 감시하고 화포로 공격할 수 있는 구멍을 곳곳에 뚫어놓았다. 안으로 들어가 시설 내부를 보려고 하였으나 출입을 막아놓았다. 한국전쟁 등을 겪으며 절반 이상이 무녀졌으나 1976년 복원되어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더운 날씨에 잠시 쉬면서 땀을 재웠던 동장대
창룡문에서 북쪽으로 이어지는 성곽을 따라 눈을 따라가다보면 사방이 탁 트인 언덕받이에 제법 규모가 있는 건물이 서있다. 화성 동쪽에서 성 안을 살펴보기 좋은 위치에 세워진 동장대는 군사를 지휘하는 본연의 기능 이외에 무술연마가 이뤄진 곳이라서 연무대라고도 불리운다. 정오를 지난 태양이 쏟아내는 따가운 봄햇살을 맞으며 서장대부터 쉬지 않고 순성을 하다보니 더위에 갈증과 피로가 몰려온다. 연무대 너른 마루 위에 염치를 무릅쓰고 누워본다. 언덕 위로 불어오는 바람이 시원하게 덥혀진 몸을 훑고 지나간다. 더없이 맑은 청량감에 젖어본다.

자전거로 퇴근하는 길에 동장대 뒤로 해가 지고 노을이 예쁘게 물든 모습을 폰카에 담아보던 기억이 새롭다. 이제는 자전거로 출퇴근할 일이 사라져버려 일부러 자전거를 끌고 수원을 방문하지 않는 한 이런 모습을 볼 수 있을까? 가을이 깊어갈 즈음에  화성 야경을 감상하러 한 번 와봐야겠다.

암문 상부의 여장이 다른 성곽과 다르게 축성되었다.

연무대에서 조금만 더 나가면 성 밖으로 나갈 수 있는 동암문이 나온다. 수원 화성은 북한산성이나 남한산성에 비해 암문이 비교적 적은 5개가 설치되어있다. 암문은 비상출입문으로서 적이 모르게 깊숙하고 후미진 곳에 설치되어 군사들의 출입이나 비밀리에 군수품을 조달하는 기능을 가지고 있다. 화성에 설치되 암문의 상부에 올려진 여장은 그 모습이 다른 성체와 다르다. 일반적으로 여장에는 총안과 타구가 정해진 규격으로 설치되는데 화성의 암문엔 둥근 여장과 좌우에 네모난 비예를 세운 모습이다.

전시용 감시초소지만 군사들의 휴식을 위해 정자기능까지 갖춘 동북각루

군사용 시설에 운치와 격조를 갖춘 정자 기능을 함께 갖고 있는 동북각루
동부각루는 동북쪽의 군사 감시용 시설이다. 바위 위에 각루를 세워 주변을 감시하고 화포를 쏠 수 있도록 시설을 갖추었다. 군사시설이지만 아름다운 연못과 함께 경치를 즐기는 정자로 많이 쓰였기에 방화수류정이라는 이름을 갖고 있다. 보통 각루는 1층에 군사들이 휴식할 수 있도록 온돌을 넣었는데, 여기는 임금을 위해  2층에 온돌방을 두고 창문을 설치하였다. 

수문 위에 누각을 세우고 화홍문이 이름을 붙였다.

방화수류정에서 내려가면 수원천을 건널 수 있도록 만든 북수문을 지나게 된다. 남수문과 달리 7개의 홍예 위에 돌다리를 놓고 누각을 올렸다. 누각 안에는 일반인들이 앉아 흐르는 물소리와 시원하게 불어오는 바람에 오후 시간을 보내고 있다. 누각에 화홍문이라는 현판이 걸려있다. 북수문은 1848년과 1922년 두차례의 홍수로 유실된 것을 1932년 현재와 같이 복원하였다.

화홍문과 방화수류정이 하나의 화각에 들어온다.

화홍문과 방화수류정이 바라보이는 그늘에서 잠시 땀을 들이며 휴식을 가져본다. 동북포루 뒤로 관광객을 실은 기구풍선이 올라오고 있다. 다음에 기구를 타고 하늘에 올라 화성과 행궁을 내려다보는 기회를 가져보기로 한다.

화성의 정문 위용을 자랑하는 장안문
장안문은 수원화성의 북문이면서 정문이다. 정조는 장안문이 이름을 내린 의미로 '북쪽으로 한양의 궁궐을 바라보고, 남쪽으로 융릉을 바라보며 만년의 편안함을 길이 알린다' 라 하였다고 한다. 다른 성문과 같이 옹성을 만들고 좌우에 적대를 세워 방비를 튼튼히 하였다. 팔달문과 같이 2층의 누각을 올려 격식을 갖추었는데, 한국전쟁때 폭격으로 파괴되어 1975년 현재와 같이 복원하였다.

장안문 방비용 적대(왼쪽)와 포루

장안문에서 북문인 화서문까지는 평지에 직선으로 성이 이어진다. 가능하면 성밖길로 걸어가야 제대로 된 화성의 웅장함과 견고함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 평지에 축성된 구간이다보니 장안문을 공격하는 적을 효과적으로 제압하기 위해 장안문 양쪽에 일정한 거리를 두고 적대를 설치하였다. 적대는 우리나라 성곽중에서 유일하게 수원화성에만 있다.

서북공심돈과 화서문 

건립당시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화서문
장안문에서 적대와 포루를 바라보면서 성곽 앞에 넓은 잔디밭을 걷다보면 이내 화서문이 반긴다. 화성의 서쪽이라는 의미인 화서문은 창룡문처럼 단층의 문루와 옹성을 갖추고 있다. 화서문앞은 넓은 개활지여서 주변을 감시하기 위해 높다랗게 감시초소를 세웠다. 이 감시초소가 서북공심돈이다. 동북공심돈과 같이 망루와 포구를 설치하였다. 서북공심돈은 세개의공심돈 중에서 축성당시 모습 그대로 남아있다.

화서문을 끝으로 수원 화성의 순성놀이도 마감할 시간이다. 서장대까지 올라 순성일주를 완성하고 싶었으나 친구와의 약속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다음엔 해가 질 무렵에 수원화성에 와 야경을 함께 누리는 시간을 가져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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