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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구석구석/제주도로 간다

[우도 올레]우도봉에서 올레길을 잃다

by 노니조아 2020. 3.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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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치기해변에 맞이할 일출은 내년을 기약해야

 어느 곳에 가더라도 항상 일출 사진을 찍는 게 습관처럼 되어죠. 어제밤 하늘에 별들이 총총히 빛나는 것 보고 잠자리에 들었죠. 알람소리가 울리기도 전에 눈이 떠지고 자연스레 복장을 갖추고 길을 나섰습니다. 어둠이 많이 걷혀 있지만 해가 떠오르려면 아직 시간이 좀 남아있는 시각입니다. 게스트하우스에서 광치기해변까지 빠른 걸음으로 십분이 채 걸리지 않네요. 해안에는 카메라를 삼각대에 올려놓고 해돋이를 기다리는 부지런한 진사들도 몇사람 보입니다.

 

어제밤과 달리 하늘은 또다시 잔뜩 흐려져있고 서쪽에서 불어오는 바람에 실려온 검은 구름마져 동쪽 하늘을 이중으로 가리고 있네요. 폰을 꺼내 방위각을 대충 잡아 해가 뜰 곳을 겨누어보니 구름이 두겹은 더 덮여있어 해가 중천에 올라도 볼 수 없을 정도입니다. 해돋이를 앵글에 담는 걸 포기하고 일출봉과 광치기해변을 포개어 여러 각도로 구도를 잡아보았습니다. 초자 수준도 못되는 주제에 폼 한번 잡아보았습니다. 이전까지 제주도를 여행할 때 광치기해변은 내게 전혀 주목받지 못한 곳입니다. 일출봉과 섭지코지가 유명해 찾아보았을 뿐이죠. 하지만 오늘 아침에 찾아본 광치기해변은 여늬 해안과는 색다른 모습으로 다가오네요.

용암이 바다로 흘러들어가다 그만 식어버려 바다 속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해변에 발목이 잡혀있네요. 그 바위 위에 푸른 색을 띄는 해조류가 썰물 때 모습을 드러내다가, 밀물이 되면 바닷물에 살포시 덮여 자취를 감춥니다. 맑은 날에는 푸른 해조류가 붉은 햇살을 받아 반짝거리며 빛을 발할 때는 무슨 색일까? 오늘은 일출봉 옆으로 힘차게 솟아오르는 해돋이를 영접하지 못하였지만 내년에는 반드시 앵글에 담아보리라...

 

자식만큼이나 보살핌을 받는 모모!!

일출을 포기하고 숙소로 돌아오는데 도로 반대편에 덩치가 제법 큰 애견과 함께 아침공기를 가르며 달리기를 하고 있는 게스트하우스 주인을 발견하였죠. 우리가 묵고있는 산토리니게스트하우스에는 우람한 몸집을 자랑하는 견공인 모모와 함께 생활하고 있습니다. 사실 몸집은 거의 갓 태어난 송아지만한 데 겨우 7개월된 유아견이라네요. 얼굴을 보면 어린티가 물씬 풍깁니다. 게스트하우스 사장님은 모모와(?)와 매일 아침 광치기해변과 오조리 제방을 한바퀴 조깅한다고 합니다. 모모가 건강하게 자라도록 사장님의 애정과 보살핌을 한껏 받으며 자라고 있지요.

 

그 덕분에 사장님 본인 건강도 부수적으로 챙길 수 있고, 활기찬 하루를 열 수도 있습니다. 경제 상황이 어려워지면서 가족처럼 함께 지내던 애완견을 유기견으로 내몰고 있다는 사회면 기사를 가끔 접하고 방송에서도 보게 됩니다. 함께 하던 애완견이 재롱과 응석으로 치유를 받을 때는 집안이 온통 웃음으로 넘쳐나다가, 애완견이 아프거나 감당하기에 부담스런 비용이 나오자 헌신짝처럼 버려지고 있는 극히 일부지만 그런 경우도 있다고 합니다.

 

게스트하우스에는 낭만과 여유, 휴머니즘이 있어요!

오늘은 이번 여행 마지막 일정입니다. 숙소로 돌아와 그동안 풀어놓았던 짐을 다시 배낭에 나누어 미꾸리를 마쳤습니다. 큰 배낭은 숙소 휴게실에 맡겨놓고 가볍게 꾸린 배낭을 메고 우도로 향했습니다. 성산항까지는 숙소에서 도보로도 그다지 멀지 않아 걸어가려는데 주인장이 기여코 운송해주겠다고 합니다.

펜션과 게스트하우스를 비교하여 보면 가격적인 메리트 이외에 여러가지 면에서 펜션보다 나은 장점들이 있습니다. 펜션에 묵을 때는 키를 교환할 때 외엔 주인장을 만날 일이 거의 없을 뿐더러, 함께 숙박을 하는 사람들과 교류할 기회가 거의 없습니다. 단지 함께 온 일행들과 편리한 시설에서 함께 음식 해먹고 마시다 가는 기능을 제공하지요. 하지만 게스트하우스는 다양한 숙박 옵션을 선택할 수 있고, 휴게실 혹은 옥외 테라스에서 일정이 다른 여행객들과 자연스레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 줍니다.

주인장의 아이디어로 다양한 프로그램이 운영되는 곳도 많이 있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원가에 제공하는 흑돼지 불고기 파티죠. 또한 거의 모든 게스트하우스는 컨티넨탈 조식을 제공합니다. 간식거리도 챙겨주는 곳도 있구요. 그리고 가까운 거리는 교통편을 제공하여 주는 인정마져 있습니다.

이번 여행에서 게스트하우스에 대한 명쾌한 정의를 얻고 가게 되었습니다. 게스트하우스에는 낭만과 여유 그리고 휴머니즘이 담겨있는 정감어린 숙소입니다.

 

괜히 잘난 척 하지말자!!

성산항에서 배편을 사 배에 오를 때는 주민증을 제시하고 연락처를 적은 용지를 제출해야만 합니다. 세월호 이후 많이 강화된 제도지만 사실 당연한 절차였지요. 우리는 당연한 절차지만 설마하는 생각에 이를 등한시하다가 엄청난 재앙을 그동안 여러차례 겪었으니 앞으로는 기본적인 절차와 준수사항을 생활화하여 다시는 끔찍한 일을 겪지말아야 겠죠.

아내와 조타실 바로 앞에 있는 난간에서 사진을 찍다보니 벌써 우도항 부두에 접안을 하고 있네요. 배에서 내려 우선 올레길 1-1 우도 출발을 기념하는 스탬프를 패스포트에 찍고 우도봉으로 길을 잡았습니다. 아직까지 하늘은 엷은 구름이 나지막히 드리우고 있지만 오후부터는 햇살이 나타날 것 같은 날씨입니다.

등대박물관이 있는 우도봉으로 오르는 길은 두갈래 입니다. 해안 단애 위로 난 길이 있고 널다란 초원 가운데를 가로질러 가는 길이죠. 우리는 기왕 가는 거 절벽 위로 난 길을 선택하였습니다. 헌데, 아뿔사! 등대가 서있는 데 도착하니 길이 끊어져 있고 더이상 갈 수 없는 막다른 길이네요. 아래 우도봉 갈림길에서 보니 올레길 리본이 초원을 가로질러 가는 길 위에 걸려있는 걸 보고, 왜 사무국은 경치가 아름다운 절벽길을 선택하지 않았지? 하면서 그들의 선택을 마음 속으로 나무라기까지 했는데... 결국 다 이이유가 있었네요. 이래서 서울에 안갔다 온 사람이 서울에 대해서 더 많이 안다고 우긴다고 하는가? 막다른 길 앞에서 다시 뒤돌아 내려오다보니 초원 가운데 길로 연결되는 길이 나오네요.

 

우도봉에서 내려다 보는 경치가 가장 우도다운 경치?

등대를 뒤로 하고 우도봉 마루금 위에 난 편평한 길을 따라 가다보면 검벌레 해안 뒤로 넓게 펼쳐진 밭들과 그 가운데 파란 지붕을 이고있는 마을이 한 눈에 잡힙니다. 몇년 전에도 이 언덕에서 내려다 보는 경치에 압도되었는데, 오늘도 그때와 다르지 않은 감흥을 줍니다. 노란 유채꽃이 그득히 채워진 밭이 모자이크처럼 여기저기 박혀있으면 그 경치는 더욱 더 아름답지 않을까 상상해봅니다. 그래서 제주도는 4월에 와야만 하나봅니다.

 

올레길을 대표하는 사진이 아닐까?

올레길은 검벌레해안을 경유하지 않고 마을 사이로 난 길에 리본이 달려있어 우리를 안내합니다. 우도봉을 내려와 제법 걸었다 싶더니 옥빛 해안을 보듬은 하고수동해변에 도착합니다. 용암이 굳어 바다로 들어가다 멈추어버린 곳에 엄마해녀와 딸래미해녀 조각이 서있습니다. 햇살이 쏟아지면 바다물 색감은 더욱 더 맑은 빛깔을 뽐내며 우리 눈을 즐겁게 해줄텐데.. 그래도 저렇게 맑고 푸른 옥빛 바다를 만나는 것만으로도 행복한 올레길 순례입니다. 하고수동에서 가볍게 과일로 입만 채우고 다시 길을 나섰습니다.

 

하고수동 해변에서 오늘 순례길 종착지 하우목동항으로 가는 길은 해변에서 안쪽으로 한참 들어온 마을길에 리본과 방향막대가 있습니다. 경계를 위해 세운 건지 바람을 막기 위해선지 돌담들이 밭과 밭 사이를 가르고 있고 그 사이에 길이 나있습니다. 맨 앞에 올려져 있는 사진은 올레길을 대표하는 사진이다 싶어 구도를 잡아본 것인데, 볼수록 올레길을 백마디 말보다 더 명쾌하게 설명하고 있는 거 같다.

 

하고수동 해변을 볼때는 파도가 전혀없었는데, 우도 북쪽에서 만난 깊고 푸른 바다는 세차게 불어오는 북서풍에 커다란 포말을 터트리면 파도가 부서지네요. 15키로 남짓되는 해안길을 가진 우도가 이처럼 완전히 다른 얼굴을 한 바다에 둘러쳐 있네요. 갑갑한 가슴이 풀어진 자리에 시원스레 터져 올라가는 하얀 포말이 쉬지않고 부셔져 퍼져가네요. 양 팔을 크게 벌리고 바다를 향해 크게 소리쳐 봅니다.

 

걷고 또 걷고, 오르고 또 오르고...다시 걷고 또 걷. 이번 여행에서 아내와 함께 제주도에 남겨놓고 가는 흔적입니다. 흔적은 남기고 찌꺼기는 모두 가져가는 여행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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