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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구석구석/제주도로 간다

[제주올레5코스] 가랑비와 함께 샤려니숲길을 걷고나서 5코스 남원포구로

by 노니조아 2020. 3.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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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5월 5일 어린이날, 우리는 비를 맞으며 사려니 숲길을 걸었다.

아침부터 빗줄기가 걷힐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당초 계획은 남원포구에서 쇠소깍을 지나 외돌개까지 이어지는 올레길 5-6코스를 걷기로 하였었다. 하지만 비가 오는 날 올레길을 걷는게 그다지 멋스러워 보이지 않을 뿐더러 오히려 궁상스러워 보일수도 있다. 더구나 비포장 돌길에서 자칫 미끄러져 발목을 접질리거나 삐기라도 하면 여정을 접어야 하지도 모를 위험이 도사리고 있지 않은가.

그래서 나는 과감히 일정을 수정해 비에 젖은 사려니숲길을 걷기로 했다. 버스를 타고 성판악을 넘어설 즈음엔 해가 구름 사이를 비집고 삐죽히 나오기도 하기에 아! 날이 서서히 맑아지려나보다 하는 기대를 가지고 절물에서 버스를 내렸다. 사려니숲길 이정표를 따라 조금 걸어가니 입구가 나왔다. 비가 내리는데도 버스를 대절해 입구 근처를 관광하는 사람들이 제법 많다. 그들을 뒤로하고 우리는 샤려니숲 안으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아내는 준비해온 우산을 쓰고 난 우비를 덮어썼다.

 

이렇게 파란 하늘을 보기가 영 어렵다

어느 때부터인가 우리나라 하늘은 미세먼지와 황사가 더 자주 그리고 짙게 채워지고 있다. 어린시절에는 다사로운 봄햇살이 겨우내 얼어붙은 대지를 풀어낼 즈음의 여느날이든 하늘을 올려다 보면 그렇게 맑고 푸르를 수 없었다. 학교가 파하고 아이들과 함께 하교길을 걷을 때 눈 앞에 펼쳐지는 파란 하늘과 그 아래 고즈넉한 능선들은 연초록으로 옷을 갈아입기 바쁜 모습이 아주 자연스러워 보였었다. 그 좋던 시절을 일찍 마감하고 대학입시지옥과 직장생활로 이어진 지난 몇십년의 생활은 팍팍한 실내공간 속에서 생활하였다. 이로 말미암아 새벽에 나와 한밤중에 귀가하는 생활의 연속으로 하늘을 올려다 볼 기회를 좀처럼 가져보지도 못하였다.

어느덧 중년을 고개를 넘어가고 있는 요즈음, 사람들 사이에서 오고가는 대화는 건강을 어떻게 지켜나가는지가 주를 이룬다. 70%를 육박하던 흡연율도 이제는 동년배 모임에 나가보면 담배를 입에 무는게 마치 미개인 취급을 받을 정도로 흡연자가 거의 없다. 이처럼 공해와 미세먼지로 가득한 도회지 생활 안에서 과중한 업무에서 오는 중압감과 스트레스를 제때 해소하지 못하면 건강에 치명적일 수 있다는 조바심에 주말만이라도 그 지옥을 벗어나고자 야외를 찾고, 또 나아가 휴가를 내어 자연속으로 들어가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우리도 오늘 건강을 지키면서 아름다운 제주도가 자랑하는 대표적인 숲길을 걷고자 샤려니를 찾았다. 더부룩한 머리한가운데를 바리깡으로 고속도로를 낸 것처럼 편백나무 가로수 사이로 난 포장도로를 걸을 때만 해도 빗줄기가 잦아들 기미를 보였는데, 숲 속으로 깊이 들어설 즈음부터 다시 가랑비가 되어 그치려들지 않는다.

숲 사이로 난 오솔길을 한참을 걷고 있을 즈음. 입구에서부터 우리보다 열댓걸음 앞에서 아가씨가 걸어가고 있었는데 우산도 없이 비를 맞으며 걷고 있다. 되돌아 갈 요량이 전혀 아닌 걸 알아챘는가, 아내는 비록 작은 우산이지만 나누어 쓰면 얼굴에 바로 쏟아지는 빗줄기는 피할 수 있다며 아가씨에게 같이 쓰고 걷자고 청한다.

작은 베풂이 내 마음을 풍요롭게 하니까. 아가씨를 향한 아내의 배려로 졸지에 나는 이들의 뒤를 따라 걷는 외톨이가 되고 말았다. 두사람보다 서너걸음 뒤에서 비닐 우비를 뒤집어 쓰고 목에는 묵직한 카메라를 맨채 따라갔다. 비록 비는 오지만 사려니 숲길의 아름다운 모습을 카메라에 담으려니 우비가 여간 불편하지 않다.

 

물찻오름을 감아돌아 붉은 오름 출구로 방향을 잡았다. 사려니오름 방향은 진입이 막혀있어 유일한 출구다. 붉은 오름에 다다를 무렵이 되어서야 비가 조금씩 잦아든다. 잦아든 빗줄기에 아내와 우산을 함께 쓰고 하염없이 수다를 나누던 아가씨는 고맙다는 인사를 하며 작별을 하자 아내는 내게로 돌아왔다.

붉은 오름에서 출구로 나가는 길은 다시 하늘로 쭉 뽑아올린 편백나무가 빼곡히 서있고 숲 속은 어둑하기까지 하다. 아내와 기념사진을 몇장 남기고 버스 정류장으로 가 남원으로 갈 버스를 기다렸다.

 

붉은오름 주차장에서 남원행 버스를 타고 포구에 도착했다. 아직도 해는 보이질 않고 짙은 비구름이 하늘을 덮고 있다. 우리는 어제에 이어서 올레길 위에 섰다. 날이 저물어 올 때까지 순례길을 걷기로 했다.

 

남원포구를 벗어나자 절벽 위로 난 산책로에 올레길을 이어놓았는데 제주도에서는 큰엉산책로라 부른다. 이 길은 외돌개 근처 돔배낭길과 더불어 가장 아름다운 해안 산책로로 꼽히는데 그 이유는 높이 15~20미터 기암절벽이 성곽처럼 둘러서 있고 중간 중간에 큰엉이라는 절벽사이 언덕이 걸쳐있다.

에메럴드빛 바다가 올레길과 함께 이어져 있다고 올레 안내책자는 설명하는데, 맑은 햇살을 받아 뽐낼 쪽빛 바다는 종적을 감추고 사나운 회색빛 물결이 바람에 연신 떠밀려와 바위에 부딪히며 비명을 지른다. 부서지는 포말에 묻어흩어지는 파도소리가 경쾌하지 못하다. 하지만 아내와 함께 걷고 있는 이순간은 주변 조건과 무관하데 즐겁다. 이 맛에 올레길을 찾는 게 아닐까?

 

인디언추장바위에 내얼굴을 포개보고

좀처럼 끝날것 같지않은 큰엉 산책로를 가다보면 중간 중간 안내판과 함께 색다르게 사진을 찍을 수 있는 포토존이 만들어져 있다. 인디언 추장 얼굴처럼 머리에 깃털로 장식을 꾸미고 각진 미간과 그 아래로 메부리코가 길게 뻗어내린 모양을 한 바위에 우리 얼굴을 겹쳐서 사진을 찍을 수 있는 곳에서 우리는 포즈를 잡았다. 날씨가 좋았다면 얼마나 신나는 올레길 순례일까...

 

인디언 추장과의 조우를 뒤로하고 다시 가던 길을 이어서 어느 정도 걸어가니, 이번엔 좁다란 오솔길을 덮을만큼 울창한 나무들을 다듬어 한반도 지도를 닮은 전망을 만들어 놓은 곳이 우리를 반긴다. 그냥 지나칠 수 없지 않은가? 렌즈에 그 모습을 담을 수 밖에.

 

오월의 해가 길다고 해도 늦은 시간에 시작한 5코스는 중간스탬프 지점에서 마무리를 해야할 거 같다. 애기동백과 홍동백이 올레길을 풍성하게 장식한 '위미 동백나무 군락지'에 5코스 중간스탬프가 있다. 위미에는 제주도 다른 지역과 달리 동백이 흐드러지게 피어있다. 바다에서 세차게 불어오는 바람을 막아보려 원 할머니가 한라산에서 동백나무 한그루를 얻어 위미마을에 옮겨다 심었는데 이제는 마을 대표하는 동백나무군락지로 번창해 많은 관광객을 모으고 있다.

정말 눈길이 가는 곳마다 짙게 물든 동백나무 천지고, 길 위에는 떨어진 동백꽃이 지천이다. 동백마을에 있는 주차장에서 오늘 일정을 마무리하고 서귀포 맛집으로 가기위해 버스에 올랐다.

 

 

이번 여행을 준비하면서 올레길 도상에 있는 맛집도 인터넷을 검색하여 미리 선정하였다. 어제는 춘자국수집에서 잔치국수를 먹었고 오늘 저녁에 먹을 맛집은 서귀포 시내에 있는 세 곳의 맛집 중에서 갈치요리로 유명한 '네거리식당'이다. 로타리에서 다음지도가 가리키는 방향으로 걸어가는데 그리 멀지도 않은 길이건만 배가 고파선지 참 멀어보였다. 네거리식당이 맛집임은 멀리서도 알수 있었다. 단체와 개별 손님들이 식당 앞에 무리지어 차례를 기다리고 있다. 안내받은 자리에 앉아 갈치 정식을 주문하였다. 빈자리가 하나도 보이지 않는다.

 

여행 후기를 여러차례 쓰지만 맛집에서의 경험을 맛깔스레 적어놓은 적이 한번도 없다. 아내도 그렇지만 나는 이상하리만치 먹지않고는 평생을 후회할지도 모른다는 류의 맛집 후기를 쓸 수가 없다. 우선 식자재 종류는 물론 각각의 식자재가 주는 식감을 음미하면서 제대로 표현해 낼 수가 없다. 그저 배고픔을 해소하는 식의 식사다 보니 맛을 느끼기 보다는 포만감이 주는 행복을 먼저 느낀다. 그런 연유로 여행을 하더라도 그 지방이 품고 있는 특산물과 맛집을 굳이 찾아보고자 하는 노력을 별로 기울이지 않는다. 그래서 하는 수 없이 다른 사람들이 추천해놓은 집을 찾아가서 배고픔을 해결하거나 끼니를 때우는 수준을 벗어나지 못한다. 만약 길게 늘어선 줄을 기다리는 수고까지 투자해서 먹어야 한다면 우리는 주저없이 사양하고 빨리 먹을 수 있는 집으로 발길을 돌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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