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문화유산알리미/서울 둘러보기

한양도성 3구간 숭례문순성길, 성돌은 누가 다 치웠는가?

by 노니조아 2021. 5. 3.
반응형

2021년 5월 1일 다시 한양도성 순성길에 다시 오르다.
일기예보가 맞지 않기를 바랬다. 정진석추기경 장례미사가 끝나면서 집을 나섰다. 코로나가 아니었으면 명동성당으로 가 장례미사에 참석하려고 하였으나, 사회적 거리두기로 참석인원 제한에다 비까지 예보되어 평화방송으로 대체했다.

장례미사가 끝나자 구름이 엷어지고 햇살마져 내리 쪼이기까지 한다. 추기경께서 남겨놓은 재산이 너무 적고 그마져도 어려운 서민에게 돌려주신 것도 부족해 당신의 각막마져 기증하신 청렴과 희생에 하늘도 무심할 수가 없었나보다. 부디 하늘에 올라가 영면하시길 빈다. 용인 천주교 공원묘지에서 영원히 잠드실 준비를 할때까지 축복의 햇살이 고이 비추어 주길 희망해본다. 그래야 우리 순성길도 이어갈 수 있으니. . .

카카오 네비는 지하철 급행구간을 고려하지 못한다?

오늘 순성길 출발은 남산 자락에 앉아 있는 백범광장이다. 지난번 순성길 종점인 백범광장에서 순성길 순례를 이을 참이다. 집이 위치한 감일신도시에서 회현역까지 가는 길을 카카오네비로 검색하니 가장 빠른 코스가 감일버스주차장 - 5호선 올림픽공원역 - 동대문역사박물관역에서 4호선 갈아타기 - 회현역으로 1시간 20분이 소요된다고 한다. 하지만 네비가 알려주지 않은 구간을 선택한다. 감일버스 주차장 - 9호선 올림픽공원역에서 급행 탑승 - 4호선 동작역에서 갈아타기 - 회현역 하차를 구간별로 나누어 산정하니 1시간이 채 걸리지 않는다. 네비가 지하철 9호선 급행을 고려하지 못하는 건 아닐런지. 일단 내 판단에 의지해 순성길에 나선다.

지하철이 동작대교를 건널 때만 해도 비가 내릴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계속 일기예보 어플을 확인하는데 비가 내릴 확율이 30~40%라고 하기에 약간의 가랑비가 내리다 그치겠지 하면서 회현역에 내렸다. 지하철 출구를 빠져나가는데 우산을 접고 물기를 털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이 보인다. 밖으로 나가니 빗줄기가 제법 굵어지기까지 한다. 결국 우리는 비를 피할 수 있는 남대문시장 건물 안으로 잠입해 돌아다니다 다시 밖으로 나오니 이젠 빗줄기가 가랑비 수준을 넘어선다. 일정을 접고 하는 수 없이 집으로 돌아오면서 내일을 기약한다. 내일은 다행스럽게 예보가 맑음을 보여준다.

5월 2일 서울 하늘이 이토록 맑고 청명하였던가?

어제의 아쉬움을 보상하려는 것일까? 하늘이 더 없이 맑고 투명하다. 이런 하늘을 언제 보았을까? 맞다! 지난번 목멱산구간을 순례할 때도 오늘처럼 맑고 깨끗한 하늘이었다. 회현역을 나와 남산공원으로 오르면서 아내에게 백범광장으로 가자고 하니 지난번에 갔는데 왜 또 가냐고 약간의 투정이다. 여자 말을 들으면 자다가도 떡을 얻어먹는다고 하지 않았나. 방향으로 틀어 남대문으로 내려오는 길로 방향을 잡는다. 퇴계로에서 서울역을 가로지르는 고가도로를 시민에게 개방한 서울로길이 내려다보인다. 숭례문이 다가온다.

숭례문이 짊어지고 가야할 숙명?

2008210일 숭례문이 화재로 그만 주저앉았다. 서울에 있는 많은 문화재가 임진왜란, 일제 침략 그리고 6.25전쟁까지의 전란을 견디지 못하고 불에 타거나 훼철되는 수난을 겪게 된다. 하지만 남대문은 그런 위기에서 끝까지 살아남아 서울을 지켜왔는데 일개 몰지각한의 뜻밖의 행위에 그만 무너지고 말았다. 화재에 속절없이 스러져가는 모습을 어찌 할 바를 모르고 바라보는 국민들 마음마저 스러지게 만든 사건이었다.

많은 분들이 남대문도 복구된 문화재로 알고 있는거 같다. 하지만 600여년동안 수없이 많은 위기를 꿋꿋하게 버티어 살아남았던 조선을 대표하는 문화재다. 오랜 세월 그 자리에서 버티고 서있던 숭례문과 관련하여 여러가지 설이 분분하다.

첫번째 논란은 숭례문 현액을 누가 썼느냐일 것이다. 양녕대군의 기개가 돋보이는 필체와 닮았다는 설에서부터 조선전기 명필인 정난종, 신숙주의 부친인 신장, 중중때의 명필인 유진동 등등 여러 명필의 이름이 거론된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양녕대군의 유필로 많이 알려져 있다.

두번째 논란은 국보 1호 지정에 대한 반론이다. 일제가 조사한 조선문화재를 조사하여 정리하는 과정에서 숭례문을 조선문화재 1호로 올려놓았고 1962년 문화재보호법을 제정하면서 일제가 조사한 걸 그대로 받아들였다. 일제가 숭례문과 동대문을 각각 문화재의 등급의 1호로 지정한 것은 임진왜란 당시 한양을 입성한 가토 기요마사와 고니치 유키나가에게 개선문 역할을 하였다는 자가당착의 이론에 그 배경을 두고 있다. 하진만 숭례문은 조선을 대표하고 서울을 대표하는 건축물로서 상징성에 전혀 손색이 없다는 게 문화재 관련자들의 중론이다.

관악산 불기운이 얼마나 드세었으면. . . .

남대문광장에서 서울역 방면으로 내려오다 대로를 건너 대한상공회의소 쪽으로 올라가다 보면 사진과 같이 남지터표지석이 길 옆에서 조용히 앉아 있다. 조선초 경복궁을 건축할 당시 관악산의 불기운을 어느 정도 죽이기 위해 숭례문 앞에 작은 연못을 만들었다고 한다. 지금은 그 모습조차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도시화가 되어버렸다.

한양도성길에 성돌은 모두 어디로 갔을까?

대한상공회의소 앞을 지나가면서 인도를 내려다보면 공장에서 찍어낸 보도블럭이 아닌 성돌로 깔려있다. 한양도성 성곽이 남대문에서 이어진 성곽길을 복원하지는 못하고 바닥에 성돌모양으로 인도를 만들었다. 그 성돌 인도가 끝나는 지점에 성곽길을 복원하였다는 안내판이 이 길의 성격을 말해준다. 대한상공회의소 뒤로 연이어 서있는 건물의 울타리에는  그 옛날의 성돌이 받침돌이 되어 현대식 건물을 에두르고 있다. 그나마 얼마남지 않은 도성의 흔적 위에 성곽 모습을 복원하려거든 여장과 총안이라도 더했으면 어떨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기업이 소유한 사유재산이라도 유네스코에 등재하려는 정부의 노력에 조그만 정성을 보태면 될 수 있는 일인데 말이죠......

소의문터 안내판이 한양도성길을 벗어난 곳에 세운 뜻은?

도성길 흔적을 좆다보면 순성길 안내표지는 삼성건물과 호암아트홀 사이 횡단보도를 건너라고 일러준다. 만약 표지판을 따라가면 소의문터 안내 표지를 만날 수 없다. 횡단보도를 건너지 말고 주차장 담장을 우측으로 돌아가는 모퉁이에 표지석이 서있다. 사소한 것 같지만 사람들은 소의문 표지석을 찾느라 해메일 수 밖에 없는 안내도이니까.

소의문은 서울의 사소문 중에서 남서쪽으로 나있는 성문이다. 사대문과 사소문 중에서 유일하게 옛모습을 전혀 찾아볼수 없는 두 성문이 바로 돈의문과 소의문이다. 소의문은 광희문과 마찬가지로 시체가 나가는 시구문 역할 하는 한편 인천과 강화 방면을 연결하는 관문이었다. 1914년 일제에 해 도시개발의 미명 하에 그 모습을 잃어버리고 이제는 서소문동이라는 행정지명이 그 옛날 여기에 소의문이 서있었다고 알려준다.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