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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유산알리미/서울 둘러보기

한양도성 순성길 2구간, 서울의 몽마르뜨 낙산에 오르다.

by 노니조아 2022. 4.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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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5월 19일 드디어 한양도성 순성길 마침표를 찍다.
지난 4월부터 시작한 순성길 순례의 마지막 구간에 섰다. 순성길 2구간은 혜화문에서 시작해 흥인지문을 거쳐 광희문까지 약 3.2km의 비교적 짧다. 내사산 중에서 낙산이 그 중 가장 낮은 124m밖에 되지 않는 야트막한 언덕 수준이다.

정도전이 무학대사와 주산을 놓고 논쟁을 벌이다가 결국 태조가 정도전의 손을 들어주어 백악산(북악산)을 주산으로 경복궁이 들어서게 된다. 경복궁은 궁궐 건축의 기준이 되는 주례고공기에 한 치의 어긋남이 없는 남북으로 장방형 궁궐 모양을 갖추게 된다. 백악산이 주산이 되면서 자연스레 좌청룡 자리를 낙산이 차지하고 우백호를 인왕산이 된다. 풍수에 따르면 좌청룡이 장자를 이르고 우백호가 차남으로 치는데 인왕산에 비해 낙산이 산세 높이나 위용에서 필적하지 못하게 된다. 이는 곧 조선의 왕위 승계가 왕비의 적장자우선의 원칙을 가지질 못할게 될 거라는 무학대사의 예언이 적중하는 결과를 낳게 된다.
조선시대 왕위에 오른 27명의 임금 중에서 장자로서 왕위를 승계한 임금은 단 여섯 명에 불과하다. 문종, 단종, 연산군, 인종, 현종, 숙종인데 그나마도 숙종을 제외하면 임금의 자리에서 쫒겨나거나 단명한 임금이 대부분이다.

도성길을 따라걸으면서 때로는 성안길을 걷기도 하고, 성밖길을 걷기도 한다. 낙산공원까지는 성안길이 조성되지 않아 성밖길을 걷게된다. 성밖길에서는 높이 올라간 성곽의 본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느낄 수 있다. 성안길은 방어가 용이하게 여장이 성인 가슴정도로 올라오기 때문에 성밖을 훤히 내려다 볼수 있다. 이에 비해 성밖길은 높이 쌓아올린 성체와 성돌의 모습으로 어느 시기에 공사를 한 것인지를 분별할 수 있다. 옥수수 알갱이 모양의 성돌은 세종시대에 공사한 성체이고, 사각형의 네모 반듯한 성돌은 순조시대에 개축한 것으로 추정된다.

서울 중심지가 내려다보이는 낙산공원에서 서울 한복판에 콘크리트 숲을 방불케하는 고층빌딩에 하나, 둘 불빛이 켜지고 있다. 멀리 남산의 산그림자가 짙어가는 어둠을 머금고 있고 마루금 정상에 우뚝하니 선 남산타워에도 조명이 밝혀지고 있다.
서울의 몽마르트언덕이라는 별명을 즐기려 젊은이들이 해가 인왕산너머로 넘어간 뒤로 많이들 올라온다. 서울의 에펠탑이 있어야 몽마르트가 더욱 더 생기를 얻을텐데.

낙산공원에서 동대문에 이르는 성안길에는 새롭게 들어선 카페들이 저마다 독특한 인테리어와 메뉴로 지나는 방문객을 부르고 있다. 젠트리피케이션이라는 도시재생화가 이곳에도 불어와 낙후된 시설과 주택들이 새롭게 태어나고 있다.

성안길에 경관등이 밝혀지며 여장에 생기를 비추고 있다. 여장너머로 점점 더 높아지고 있는 고층아파트와 고층빌딩에도 환한 불빛으로 덮여있다.

낙산공원을 지나 카페거리가 끝나가는 지점에서 패션의 중심지가 내려다본다. 동대문은 이제 패션을 리드하는 중심으로 자리잡았다. 조선시대 군졸들에게 녹봉으로 지굽된 명주등의 옷감이 이곳 동대문일대에서 유통되던 것이 일제시대를 거쳐 지금까지 봉제, 염색, 가봉에서 디자인까지 가미된 대한민국의 대표 의류 생산기지로 성장한다.

드뎌 동대문에 도착했다. 4월부터 시작한 한양도성 순성놀이 마침표를 누르게 된다. 다음에는 순성길을 한번에 돌아보는 다소 버거운 순성놀이를 해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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