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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유산알리미/서울 둘러보기

한양순성길 종주1, 뭘 해도 종주를 해냈을 때의 쾌감만 하리!!

by 노니조아 2022. 9.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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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04. 01 순성길 종주에 도전하다.

뭘 해도 종주를 해냈을 때의 쾌감만 하리!!

손재주가 없어 그림이나 만들기처럼 가만히 앉아서 할 수 있는 취미보다는 움직이면서 하는 게 내겐 어울린다. 산을 오르거나, 자전거에 올라 멀리까지 달리거나, 오늘처럼 도성길 순성같은 하이킹을 좋아한다. 서울로 이사를 와서는 서울 인근에 가까이 오를 수 있는 산을 찾기 시작하면서 지리산, 설악산 산행에 빠졌고, 퇴행성 관절염이라 오래 걷지 말라는 의사의 조언에 이번에는 자전거 라이딩으로 취미가 바뀌었다. 

제주도 올레길을 시발로 각 지방자치단체에서는 다양한 둘레길을 조성하여 사람들의 발길을 즐겁게 한다. 여기에 편승해제주도 올레길을 시작으로 사대문을 잇는 한양도성길 걷기에 나도 동참하게 되었다. 산행을 하고, 자전거 라이딩을 하고 둘레길을 돌면서 늘 종주에 대한 로망이 생겼다. 지리산 화대종주, 설악산 공룡능선 종주, 제주도 올레길 종주, 자전거 4대강 종주 등등이 나를 유혹한다. 

이런한 종주 유혹에 아직 마무리를 하지 못하고 숙제로 남겨진 구간이 있다. 지리산 화대종주를 그동안 여러번 시도하였으나 그때마다 날씨가 훼방을 치는 바람에  마무리를 하지 못하였다. 제주도 올레길도 코로나로 인해 두 구간을 남겨놓은 상태고, 자전거 사대강 종주는 다른 곳은 다 마쳤는데 낙동강구간이 쉬 엄두가 나지 않아 미루어둔 상태다. 금년에는 남겨진 숙제를 마무리하려고 한다. 그중에 가장 쉽게 나설 수 있는 한양도성 순성길을 한방에 돌아보려고 아침 일찍 집을 나섰다. 

도성길 종주는 어디서 시작하는게 나을까?

총 18.7Km의 도성길을 한번에 돌아보려면 체력을 어떻게 안배하면서 걸어야 할지 생각해봐야 한다. 인왕산과 백악산은 그다지 높은 산이 아니라고 하여도 산은 산이다. 가파른 구간이 있고, 산객들이 많으면 시간이 지체되기도 한다. 동대문에서 시작하게 되면 후반부에 인왕산과 백악산을 올라야 하기에 체력적으로 힘겨울 수 있다. 창의문에서 시작하면 마지막 구간이 인왕산을 올라야 하므로 가장 어려울 수 있다. 그래서 나는 한양도성길 4구간 인왕산 구간 시작점인 서대문역에서 출발하기로 하였다.

집에서 간단한 여장을 준비하여 지하철로 서대문에 도착하여 농협박물관 방면 출구로 나왔다. 서대문역 주변에는 지나온 역사의 현장을 말해주는 장소가 몇군데 있다. 김종서가 수양의 수하에게 철퇴를 맞고 쓰러진 김종서 집터가 농협박물관 길 옆에 표지석으로  남아있고 바로 큰길 맞은편에는 4.19혁명기념관 건물이 서있는데 그 자리는 원래 이승만에게 양자로 보낸 이강석에게 총을 맞고 죽은 이기붕의 집이 있었던 곳이다. 느리게 경사진 인도를 조금만 걸어올라가 강북삼성병원 쪽으로 횡단보도를 건너 오늘의 도성길 시작점인 돈의문터에 이르게 된다.

 돈의문터에서 시작한 도성길 종주는 강북삼성병원에 있는 경교장에서 백범의 최후의 모습과 마주하게 된다. 종주길을 나서는데 대한민국의 독립운동에 한평생을 바친 백범이 흉탄에 맞아 최후를 맞은 장소에서 시작한다?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경교장 맞은 편에는 돈의문박물관이 있고 그 뒤에 박물관마을이 새로 조성되어 1970년대 서울의 뒷골목 모습과 마주할 수 있다. 벽에 붙어있는 포스터며, 극장 간판과 목욕탕, 다방의 옛모습을 그대로 맛볼 수 있다. 

도성길 안내 표지를 따라 월암공원을 지나다보면 홍난파가 말년을 보낸 붉은 벽돌집과 그의 흉상을 만나게 된다. 흉상을 조각한 사람, 돌에 안내 글을 쓴 사람, 그리고 흉상의 주인공의 공통점은 모두 친일 경력의 소유자... 김구의 가슴을 뚫고 나간 총탄에 금이 간 경고장 유리창을 보면서 마음이 묵직한데 이어서 만나는 곳이 친일의 흔적이 한데 엉켜있는 난파의 흉상이다. 난파의 집에서 도로를 따라 조금 오르면 또하나의 붉은 벽돌집을 만나게 된다. 

고종의 출상에 맞춰 전국에서 들불처럼 일어난 3.1운동의 배경과 일본의 무자비한 대처의 만행을 은밀하게 미국 언론사에 기사를 송고한 앨버트 태일러의 생가인 딜쿠샤다. 그는 금광개발을 위해 조선으로 건너온 부친을 따라 함께 조선에 와서 본래 직업과 병행한 미국 언론사의 통신원이었다. 

성안길로 갈까? 성밖길로 걸을까?

딜쿠샤를 뒤로하여 늙은 느티나무 왼쪽으로 빌라로 들어가는 길을 따라 오르면 드디어 성벽길이 나온다. 성벽길은 성안길과 성밖길 모두 가능하다. 성안길을 선택하면 여장 너머로 보이는 마을을 조망하면서 걸을 수 있고, 성밖길은 오롯이 높다랗게 쌓아올린 성돌과 소롯길을 따라 걸을 수 있다. 인왕산구간은 성안길보다는 성밖길이 운치도 있고, 오가는 사람들도 적어 호젓한 산행의 맛까지 곁들여 즐길 수 있어 내게는 더 좋다.

성밖길은 선바위를 지나서부터 인왕곡장까지 길도 험하고 군대부대가 진행방향의 길을 막고 있어 성안길로 들어와야 한다. 이제부터는 본격적인 산행길이다.

중간중간 산객들이 몰리면서 외진 길이나 바위계단 구간은 병목구간이 되어 진행이 더디게 된다. 이럴때는 가빠진 호흡을 조절하고 눈을 멀리 보내 그동안 걸어온 길을 되짚어 감상하면 지루함이 다소나마 줄어든다. 

도성길 4구간의 중심인 인왕산에 오르다.  

서대문방향으로 고개를 내밀고 우뚝하니 서있는 인왕곡장을 지나고, 오르고 내려오는 산객들로 꽉막힌 범바위 돌계단을 오르면 인왕산 정상에 다다른다. 인왕산 정상에 서면 서울 도심과 경복궁 그리고 멀리 남산과 롯데타워까지 시원한 조망을 선물한다. 올해는 맑은 날이 많아 인왕산에 오를때마다 시원한 도심의 모습을 거리낌없이 볼 수 있다. 정상에서 창의문까지는 별다른 어려움없이 성곽길을 따라 내려가면 된다.

창의문으로 내려가다보면 이렇게 서로 손을 맞잡고 서있는 부부소나무를 볼 수 있다. 뿌리가 다른 나무 가지가 서로 이어져 마치 한 나무처럼 자라는 현상을 "연리지(連理枝)"하고 하는데, 한 나무가 죽어도 다른 나무에서 영양을 공급받아 살아나도록 도와준다고 한다. 말을 못하는 식물도 서로 아끼고 사랑하는데 사람들은 왜 서로 도와주지는 못할 망정 해치려 드는지..

도성길 4구간 종점은 창의문이다. 조선조에는 거의 문이 닫혀있었다고 한다,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그 특별한 경우가 바로 인조반정이었다. 영화 남한산성에 주연과 조연으로 나오는 김류, 김자점, 이괄, 최명길 그리고 적통이 아닌 능양군이 군사를 모아 세검정에서 쿠데타의 결기를 다지고 바로 창의문을 통과해 창덕궁에서 미리 내통하고 있던 훈련대장 이흥립이 돈화문을 열어주어 손쉽게 쿠데타를 성공할 수 있었다.

영조는 문루를 다시 세우고 쿠데타 주역들의 이름을 현판에 새겨 걸어놓았는데 지금도 찾아볼 수 있다. 백성을 살리고자 거사를 일으켰으나 인조는 결국 병자호란으로 더 많은 백성을 전쟁의 볼모로 내몰았으니 역사를 되돌려 광해군이 계속 집권하였다면 병자호란은 피할 수 있지 않았을까??

백악산에 오르다.

창의문에서 시작되는 된비알 계단길을 거칠어질대로 거친 호흡을 토해내면 오른다. 시선을 계단에 박고 오르면서 오름길 왼쪽 멀리 담장을 치듯 둘러선 북한산 비봉능선을 잠깐씩 훔쳐본다, 호흡을 조절할 겸해서.  두 번 정도 호흡을 가다듬을 만큼의 잠깐 휴식을 뒤로 하면 어느새 백악산 정상에 오른다. 

예전 특별한 신분일 때 일반은 감히 출입을 할 수 없는 구역을 내집 드나들듯이 북악스카이웨이를 오토바이를 타고 오르내리기도 하고 여기 백악산 정상에 주둔해있던 부대에도 올라온 적이 있어 낯설지가 않은 장소이다. 지금은 대공진지가 없어지고 일반인이 무시로 오를 수 있게 개방되어 있다. 하지만 아직도 나무와 목책이 막고 있어 청와대와 서울 시내를 시원스레 내려다 볼 수는 없다. 다만 산 정상에 올랐다는 만족감만 간직한 채 가던 길을 재촉한다. 

백악산을 지나 청운대로 내려오면 드디어 경복궁, 서울 도심과 남산을 지나 멀리 관악산까지 탁 트인 조망을 누릴 수 있다. 청운대 표지석 주변은 제법 크기를 자랑하는 너럭바위와 휴식공간을 제공한다. 여기서 준비해온 과일을 먹으면서 조금은 긴 휴식시간을 가지면서 아직도 많이 남은 도성길 종주 예상시간을 가름해 본다.

숙정문에서 혜화문 구간은 차라리 성북동과 북정마을길을 이용하는 게 훨씬 낫다.

창의문에서 시작한 백악구간은 백악산과 청운대, 백악곡장을 지나 소나무군락지 내림길 끄트머리에 숙정문이 서있다. 조선조에는 거의 닫힌 상태에다 문루마져도 없을 때가 많을 정도로 홀대받은 4대문이다. 사실 지금도 도성길 탐방을 위해 이곳을 지나는 사람들 이외에는 숙정문으로 일반인이 통과할 일이 없다.

성북동에 있는 최순우고택 앞마당 모습

숙정문을 지나 말바위 안내소부터 와룡공원까지는 성안길도 아니고 성밖길도 아닌 우회로를 따라가게 되어있다. 성체 위에 대공포진지와 부대가 주둔해 있어 민간인이 출입할 수가 없다. 더불어 혜화문에 이르는 구간까지는 차리리 성북동 북정마을에 숨어있는 심우장 - 수연산방 - 최순우고택을 찾아보면서 가는 게 오히려 나을 지도 모른다. 북정마을을 지나서부터는 성체는 새로 들어선 마을과 학교들에게 마구 훼손되어 도성길 고유의 맛이 없다.  

도성길 인왕구간과 백악구간을 오르내리는데 5시간이나 걸렸다.

성북동 최순우고택에서 경신고방향으로 길을 잡으면 다시 도성길을 만나게 되고 얼마 가지않아 백악구간의 종점인 혜화문에 이르게 된다. 혜화문은 교통에 방해가 된다는 개발과 경제논리에 밀려 원래 있었던 자리를 잃고 한쪽으로 밀려난 곳에 복원되어 서있다. 이럴 바에야 돈의문처럼 차라리 복원을 하지 말고 흔적을 알리는 표지석을 세워놓느니만 못한 복원이 아닐까?

북방으로 통하는 숙정문과 창의문이 풍수지리의 영향으로 늘 닫혀있다보니 여기 혜화문이 함경도로 가는 길목 역할을 하여 옛부터 번성하였다고 한다. 돈의문에서 시작한 도성길 종주 절반을 달리는데 5시간이나 소요되었다. 앞으로 남은 구간은 인왕산이나 백악산처럼 시간을 잡아먹는 오름길이 덜하고 체력소모도 덜하니 서둘러야 오늘 해질 무렵까지 마칠 수 있을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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