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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유산알리미/서울 둘러보기

한해를 돌아보며 한양도성 순성길을 일주하다!!

by 노니조아 2023. 1.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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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마지막날, 순성놀이에 나서다.
조선시대 한양에서 최고로 치는 관광이 순성놀이였다고 한다. 봄이나 가을에 도성을 한바퀴 빙 돌면서 안팎의 경치를 즐기는 것을 순성놀이라고 한다. 성곽 길이 40리(18.6km)를 하루에 다 돌면 과거시험에서 장원 급제한다는 속설이 생겨나면서 순성놀이는 더욱 유행했다고 한다. 몇 주 전부터 조용히 순성길을 돌면서 올해 마지막날을 마감하기로 마음을 정했다. 헌데 무엇을 소망하며 돌아볼꺼나...

여행의 시작은 집 앞에 보호수 400년 느티나무에서

업무달력으로 어제가 마지막날이다. 어디에도 속해있지 않은 나를 선배님이 회사 송년회식에 초대해주어 보통사람들처럼 송년회를 즐길 수 있었다. 그리고 올해의 마지막날 아침 일찍 눈을 떴다. 아내가 미리 끓여놓은 생강차를 데워 보온병에 채우고, 명인떡 3개와 물 한병을 배낭에 넣고 집을 나섰다. 늘 그러하듯 집 앞에 서있는 느티나무에게 다녀오겠다는 인사를 나누고 버스에 올랐다.

어느 방향으로 돌아야 하나?
순성길을 시작할 때 두가지를 결정해야 한다. 우선 ‘어디서부터 시작할까, 그리고 어느 방향으로 시작할까’ 이다. 결정하기 전에 고려해봄직한 포인트가 있다. 인왕산과 이어지는 백악산처럼 힘을 써야할 코스는 체력에 여유가 있는 오전시간에 배치한다. 또한 한해 마지막인 오늘같은 날엔 해넘이 명당으로 유명한 낙산을 마지막 코스에 배치하면 보다 의미있다.

그래서 내가 정한 코스는 흥인지문 - 낙산 - 백악산 - 인왕산 - 숭례문 - 남산 - 흥인지문으로 이어지는 시계반대방향이다. 체력을 아끼고 서울의 몽마르뜨에서 해넘이를 보려는 계획을 담아. 시계방향으로 돌려면 서대문에서 인왕산 방향으로 잡으면 좋다. 하지만 인왕산, 백악산 오름길에 급경사를 견뎌야한다.

오전 7:50 흥인지문에서 낙산구간 순성길을 출발하다.
지하철 4호선 동대문역을 나오면 앞에 옹성을 두른 흥인지문과 마주하게 된다. 스탬프포스트에서 도성지도를 꺼내 4대문 중 첫번째 관문인 흥인지문 스탬프를 찍고 바로 낙산으로 오른다. 동대문과 낙산성곽 사이는 성곽이 도로가 지나가는 바람에 성곽이 절개된 상태다. 절개된 자리에 도성축성 당시 책임자 혹은 축성을 담당한 지방 군현이 새겨진 각자성석이 모아져 있다. 도성을 정비하는 과정에서 수집된 것을 한곳에 모아놓았다고 한다.

08:15 낙산공원에 도착하여 완주인증시 제출할 사진을 찍고 바로 혜화문으로 향한다. 완주인증서를 받으려면 여기 낙산공원, 청운대표지석, 인왕산정상 바위, 남산봉수대를 배경으로 촬영한 사진과 지도(모바일지도)에 4대문을 통과하면서 찍은 스탬프가 있어야 한다.

출발지였던 흥인지문에서 낙산공원을 거쳐 혜화문에 이르는 구간을 흔히 낙산구간이라고 한다. 구간도 짧고 어렵지 않은데 반해 구간의 정상인 낙산공원에서 서울 도심지 위를 붉게 물들이면서 천천히 내려가는 석양을 감상할 수 있는 명당을 품고 있다. 특히 낙산공원에서 혜화문에 이르는 성밖길은 은은한 조명을 받고 있는 성벽에서 겪어온 세월만큼이나 은근한 매력을 느낄 수 있다. 축성시기별로 각기 다른 형상하고 높이 서있는 성체의 견본을 확인할 수 있는 곳도 여기다.

본래 자리는 도로에 내어주고 한쪽에 비껴 서있는 혜화문

08:30 도성길 1코스 백악구간 출발점 혜화문을 통과하다.
혜화문은 4소문의 하나로 조선시대 북쪽으로 연결하는 관문 역할을 하였다. 지금은 도시개발과 함께 본래 자리에서 비껴나 한쪽 언덕에서 사람의 왕래가 전혀없이 유물로서 역할을 하고 있다. 도시개발로 밀려난 유적과 유물이 어디 혜화문뿐이랴.

4.7km에 이르는 백악구간은 대부분 북악산 주능선을 따라 도성이 축성되어 오늘에까지 남아있으나 혜화문에서 와룡공원까지 성곽이 있었던 흔적을 간간히 찾아볼수 있을 뿐이다. 구서울시장 공관에서 경신고등학교와 서울과학고등하교에 이르는 구간은 학교 담장을 성돌로 활용한 것을 볼 수 있다.

조선총독부와 등진 형태로 심우장을 짓고 살던 한용운

와룡공원에서 말바위 전망대까지 구간은 온전히 성곽이 남아있으나 성안길과 성밖길 모두 일반인이 통과할 수 없다. 민간인 출입통제구역이라는 붉은 팻말이 철조망에 걸려있다. 청와대가 더 이상 대통령 경호 구간이 아닌데 여긴 여전히 청와대를 지키고 있다. 우회구간을 따라 북정마을과 심우장을 들러볼겸 우회로를 버리고 북정마을로 내려왔다.

성북동과 북정마을을 관통하는 성북동길에는 돌아볼 명소가 많다. 오늘은 도성길을 하루에 모두 돌기로 하였으니 명소 순례는 접어두고 도성길을 잇기위해 말바위안내소로 오른다. 지난가을에 도성길을 돌 때만해도 패찰을 받았는데 이제는 그마져도 생략하고 그냥 통과다. 말바위안내소에서 완주 인증을 위한 스탬프를 잊지않고 꾹~~~

09:55 청운대에 오르다.
숙정문을 지나면 천천히 고도를 높여가며 걸어야 한다. 특히 백악곡장까지는 계단으로 된 성안길을 호흡을 가다듬으면서 걸어야 할 정도지만 길이는 그다지 길지 않다. 청운대 너른 공간에 도착하면 서울 도심이 훤히 보인다. 여기서 인증용 사진을 찍어야 한다.

10:35 백악산 정상석에서 인증샷을 남기고 창의문으로 이어지는 급경사 계단을 한 발 한 발 조심스럽게 내려왔다. 아직까지 계단에는 잔설과 얼음이 남아있어 자칫 미끄러질까 염려가 되었다. 창의문은 1코스 백악구간과 4코스 인왕산구간의 경계다. 아울러 4대문 중에서 아직도 원형을 그대로 간직한 채 서있다. 원래 창의문은 늘 닫혀있었으나 광해을 몰아내기 위해 세검정에 모인 능양군과 반정공신들이 바로 이 문을 통과하였다고 한다. 그렇게 정권을 찾았으면 제대로나 할 것이지...

10:50 도성길 4코스 인왕산구간을 출발하다.
창의문 근처에서 팍팍해져오는 다리를 풀어주고나서 윤동주시인의 언덕에 오른다. 시인은 후쿠오카 형무소 수감중에 생체실험 대상으로 고통을 받다가 돌아가셨다는 얘기에 전율을 느꼈다.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 . . . . " 서시가 새겨진 바위너머 서울 도심과 남산이 보인다. 도성길 위나 주변에는 많은 이야기가를 담고 있는 역사적인 인물들을 만날 수 있다. 단종의 비, 지봉유설을 지은 이수광, 심우당의 한용운, 윤동주, 반정의 공신, 이광수 등등..

부부송이라고도 하고 연리지라고도 부르는 소나무 부부

인왕산구간은 서대문에서 오르나 창의문에서 오르나 비슷한 거리에 비슷한 체력을 요구한다. 오늘은 처음으로 창의문에서 오르고 있다. 윤동주와 헤어져 오름길을 한 15분 오르면 부부 소나무를 만나게 된다. 뿌리가 다른 나무에 가지가 서로를 연결하여 마치 한그루 나무처럼 자라는 '연리지'는 영양분을 나누기 때문에 설사 한그루가 뿌리에서 영양을 받지 못하여도 살아갈 수 있다고 한다. 두 몸이 하나의 몸처럼 된다고 하여 영원한 부부의 사랑을 상징하는 연지리가 도성길에 서있다.

11:25 인왕산 정상에 오르다.
그다지 어렵지 않게 인왕산에 올랐다. 서울 시내가 한 눈에 들어오는 최고의 조망지다. 삿갓바위에서 완주용 인증샷을 남기고 이내 범바위방향을 내려간다. 오르면서 흐른 땀이 아래에서 불어오른 바람에 선뜩함이 느껴진다. 인왕산을 내려가 서대문에 도착하면 도성길 종주의 반을 채우게 된다. 하늘은 여전히 짙은 구름으로 덮여있다. 낙산에서 계획하고 있는 송년해넘이는 어렵겠다....

인왕산 정상에서 내려다 본 2022년 마지막날 서울시내 모습

정상에서 범바위방향으로 내려서면서 바라보이는 서울 도심 모습과 능선을 따라 완만히 구부러져 이어진 성곽이 참 아름답다. 멀리 남산과 관악산까지 이어지는 도심의 폭이 세계적인 도시, 서울이구나 싶다. 산자락 구비구비에는 엊그제 내린 눈이 녹지않고 잔설로 남아 수묵화를 이룬다.

딜쿠샤, 이제는 서울시가 인수하여 관리한다.

12:10 딜쿠샤에 도착하였다. 건물 관리하시는 분이 개관이 되어있으니 들어가 관람하고 가라고 권한다. 갈길이 남아 담에 들르겠다고 하고 경교장으로 향한다. 딜쿠샤의 옛주인 앨버트 테일러가 아니었으면 3.1운동과 이를 진압하는 과정에서 일제가 저지른 만행이 세계 만방에 고발되지 못하고 한낫 우리의 고통으로만 남았을 수도 있었다.

12:30 경교장을 거쳐 돈의문터를 건너가다.
돈의문터 관리실에서 인증스탬프를 찍고 경교장으로 간다. 경교장을 지나올때마다 늘 되새겨묻는 질문, 왜 백범은 백범일지를 이광수에게 대필케 하였을까? 왜 해방된 나라로 돌아와 하필 친일파가 제공한 경교장에서 머물렀을까? 백범의 가슴을 뚫고 나간 총탄에 파편된 유리창을 보면서 이런 의문이 든다. 경교장을 나오면 한양도성표지판은 횡단보도를 건너라고 일러준다. 단돈 205원에 경매로 헐린 돈의문이 서있었던 바로 그 자리에는 성문이 서있었던 흔적하나 남겨져있지 않고 아주 깔끔하다.

옛 삼성그룹 본관 뒤에 받침돌로 남아있는 도성 성돌

정동길을 지나 숭례문에 이르는 구간은 대한제국과 도시 근대화를 거치면서 외국 공관과 학교, 교회들이 들어서면서 가장 먼저 한양도성이 파괴되었다. 성곽이었다는 흔적은 창덕여중의 담장 아래 혹은 옛삼성그룹 본관 건물 뒤를 두르고 있는 담장에서 일부 확인할 수 있다. 이 구간은 앞으로도 영원히 복원되지 못할 구간이다.

13:30 남산에서 마지막 완주인증 스탬프를 찍다.
이제 남산구간만 통과하면 완주를 마치게 된다. 흥인지문에서 낙산 - 백악산 -인왕산을 넘어 여기까지 대략 여섯시간 정도 걸린거 같다. 남산만 오르면 그다지 힘들이지 않고 갈 수 있는 거리다. 주변 빌딩 로비에 들러 생강차와 명인떡을 먹으며 추위도 달래고 팍팍해져오는 다리한테 휴식도 주었다. 여전히 하늘은 백색이다. 심지어 진눈개비마져 떨어진다.

아까 경교장에서 물었던 질문을 다시 한번 물어본다. 옆에 서있는 이시영선생이라도 그 답을 해주시려나? 아니면 저 위에 서계신 안중근의사가 답을 주시려나?? 남산은 일제시대 조선신궁이 서있던 자리였다. 그 자리에 지금은 안중근기념공원과 백범광장이 조성되어 서울 시민들이 자주 찾는 공간이다. 혹자가 이르길 여기 서있는 동상을 조각한 작가와 글을 쓴 서예가가 친일부역자였다고 한다.

13:50 남산봉수대에서 마지막 완주용 인증샷을 확보하고 남산타워 앞으로 가다보니 YTN 기상캐스터가 2022년 마지막 기상을 뉴스로 보내기 위해 준비하고 있다. 폰에 스크립터를 보면서 뉴스를 보내는 모습을 뒤로 하고 남은 구간을 향해 전진..

조선 태조시대 축조된 성곽의 원형을 보여준다.

다른 구간에 비해 유독 남산을 두르고 있는 성곽은 조선초기에 축성된 모습을 많이 만날 수 있다. 산에 흩어져있는 돌을 모아서 모양과 크기를 가공하지 않은 채로 축성에 사용하였다. 아울러 중간중간 축성을 담당한 지방 군현을 표시한 각자성석도 그대로 남아있다. 만약 축성된 성이 허물어지면 해당 군현이 올라와 보수하여야 한다고 전한다. 완벽한 책임제다.

조선후기에 천주교박해로 죽임을 당한 신자들이 광희문 밖으로 내버려졌다고 하여 시구문이라 불리기도 하였다. 광희문 밖은 지금도 신당동으로 불리운다. 억울하게 죽임을 당한 넋이라도 위로하기 위한 신당이 많았다고 한다. 이제 남은 흥인지문까지 평지길로 10분 남짓 남았다. 광희문 처마 사이로 파란 하늘이 보인다. 낙산 해넘이를 보아야 하나??

15:20 드디어 40리길 순성길을 완주하게 된다. 7시간 반만에 한양도성길 4대문과 내사산을 모두 찍고 완주를 하였다. 과거에 응시차 올라온 과객은 도성길을 돌면서 급제를 꿈꾸지 않았을까? 난 오늘 순성길을 돌면서 내내 무엇을 화두로 삼았을까? 그것은 고마움이다. 한 해를 무사히 보내게 된 데 감사하고, 우리 가족 모두 별다른 어려움 없이 한해를 보낼 수 있어 감사하다. 지나고 보니 금년 한해 참으로 정신없이 헐레벌떡이며 보내고 있는 거 같다. 하릴없이 고민하며 보내느니 정신없이 보내는게 더 낫다. 내년에는 적당히 바쁘고, 적당히 힘겹게 살아갈 수 있기를 소망하며 순성길 종주를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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