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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구석구석/자전거 종주

[한강 자전거일주] 2. 청담대교부터 원효대교까지는 저마다 사연을 간직하고 있다.

by 노니조아 2022. 10.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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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담대교 아래에는 우영우 고래가 날아다닌다

11. 청담대교 아래 '우영우 고래'가 날아다닌다.
잠실대교에서 한강레져센터를 지나면 뚝섬유원지가 나오고 유원지 위로 청담대교가 지나간다. 복층구조로 건설되어 윗층은 탄천을 따라 분당까지 이어지는 자동차도로로 연결되고 아래층은 지하철 7호선이 달린다. 1기 분당 신도시가 건설되면서 분당 베드타운에서 서울로 출근하는 교통량을 해소하기 위해 건설되었으나 처음에는 지하철7호선 이구간이 하저터널로 계획되어 청담대교가 자칫 건설되지 않을 수도 있었다. 강북 뚝섬 유원지 부근 교량 아래에 우영우 고래 형상물이 날아가는 걸 볼 수 있다.   

'밤비 내리는 영동교오~를 홀로 걷는 이 마음~~' 유행가를 영동대교는 알까?

12. 영동대교를 건너 강릉까지 간다?
한강에 건설된 다리는 올림픽대교같이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잠실대교, 천호대교 처럼 다리가 연결하는 지역명에서 따온다. 이런 유형에서 볼 때 영동대교는 서울에서 강원도 영동지방을 연결하는 영동고속도로와 연결된다는 의미일까? 영동대교가 건설된 시기는 유신헌법을 공표할 무렵이다. 그 당시 강남은 개발 붐이 일기 시작할 무렵이고 한강 이남의 중심은 영등포지역이어서 강남지역을 영동이라고 불리울 당시에 지어진 다리라서 영동대교로 이름이 붙여졌다. 주현미가 부른 '비내리는 영동교' 때문에 더 유명하지 않을까?   

한강 다리 중에서 야경이 가장 아름다운 성수대교

13. 성수대교는 학생들의 허망한 죽음에 아직도 슬픔을 삼키고 있을까? 
1994년 10월 21일 아침 7시 40분 성수대교 다리 상판 50여미터가 그대로 한강물로 뚝! 떨어지면서 그 위를 달리던 버스와 승용차가 그대로 강물로 추락하였다. 이 사고로 학생과 일반 시민등 37분의 목숨을 빼앗아가고 17명의 부상자를 내었다. 서울 한복판에서 대형 교량이 갑자기 무너지리라고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지면서 삼풍백화점 붕괴와 함께 대표적인 사고중 하나로 남아있다. 지금은 그 당시의 모습은 온데간데 없다. 처음 건설될 당시에는 색깔이 청색이었으나 새로 건설하면서 금문교처럼 오렌지색으로 바뀌어 야경이 멋진 다리로 완전히 변했다.

교통흐름에 그다지 도움을 주지 못하는 동호대교

14. 동호대교에서 기관사는 비로소 하늘을 본다. 
지하철 3호선과 압구정에서 옥수동을 이어주는 차로가 함께 달리는 동호대교는 한강에서 수심이 가장 깊은 곳에 건설되었다. 지하철과 도로 교각이 따로 있는 구조이지만 다리 이름은 묶어서 동호대교로 붙였다. 처음에는 금호대교였으나 준공되면서 동호대교로 이름이 바뀌었다. 동호대교는 차로도 적고, 북단에서 강변북로로 곧바로 연결되는 도로가 없어 차량으로 이 다리를 이용할라치면 불편함이 이루 말할 수 없다. 더구나 지하철 3호선 서울구간은 지상으로 달리는 구간이 바로 이 다리밖에 없어 기관사들은 거의 전구간을 땅 속으로만 달리다 비로서 여기서 하늘을 보며 심호흡을 할 수 있다. 

15. 한남대교보다는 제3한강교로 더 유명하다?
가수 혜은이가 부른 '제3한강교'로 더 유명한 한남대교는 서울에서 4번째로 건설된 인도교다. 한남대교는 당시 서울 중심지인  4대문안과 강남, 그리고 경부고속도로를 연결하는 서울에서 가장 핵심이 되는 교량이었다. 처음에는 4차선으로 설계되었으나 평양에서 6차선 교량을 개통하자 부랴부랴 6차선으로 설계변경하여 개통하였다고 한다. 서울 도심에서 남산 1호터널을 지나면 한남동을 지나자 바로 한남대교에 올라서면서 경부고속도로로 연결된다. 당시 서울 동서남북 거의 대부분의 차량이 영남과 호남으로 가려면 경부고속도로를 이용하다보니 한남대교는 대한민국 교량의 중추역할을 떠안게 된다. 폭증하는 교통량을 감당하기위해 계속 증설을 하다보니 지금은 12차로 늘어나 하루 통과차량이 20만대에 이른다고 한다.

주말이면 잠수교는 차없는 도로가 된다.

16. 반포대교 아래 잠수교는 안보교로 건설되었다.
요즘은 달빛무지개분수쇼로 더 유명해진 반포대교는 하부에 건설된 잠수교보다 6년 뒤에 건설되었다. 종합청사와 서울시청에서 출발하여 남산터널을 지나면 용산미군기지와 국방부에 이른다. 여기서 다시 잠수교를 건너 거대 아파트 단지가 조성된 반포지구를 지나 서초동 법조타운으로 이어진다. 유사시에 입법을 제외한 사법, 행정의 핵심부서가 바로 이 다리를 건너게 되어있다. 이에 박정희정권은 다리를 유사시 군장비의 신속한 도하와 폭격에도 끄떡없게 설계하였다고 한다. 

지금은 주말에 잠수교에 차량을 통제하고 반포대교에 가설된 분수에서 정기적으로 20분간 분수쇼를 연출하면서 서울의 새로운 랜드마크와 함께 서울시민들의 휴식공간으로 사랑을 받고 있다. 특히 교량과 분수와 남산타워을 하나의 앵글에 담는 사진 촬영의 명소로 유명하다.

17. 동작대교는 목이 잘린 형상이다. 
동작대교는 원래 서울시청과 강남을 이어주는 교량으로 설계되었으나 교량 북단에서 서울시청까지 연결하려면 용산 미군기지를 통과하여야 한다, 하지만 사정이 여의치 못해 북단은 서울의 주요 도로와 연결되지 못하고 잘려버려 이촌동 도로로 빠져나가도록 되어있다. 미군기지가 평택으로 이전하면서 연결될 줄 알았는데 무슨 이유에선지 아직까지 이러한 계획이 구체화되지 못하고 있다. 하다보니 교통흐름보다는 지하철 4호선 교량으로서 주된 역할 이상을 하지 못하고 있다. 교량 서쪽의 인도는 사람과 자전거가 이동할 수 있게 넓게 만들어져 있어 여의도를 배경으로 일몰을 찍는 명소로 유명하다. 

중지도와 연결된 한강인도교

18. 한강대교가 바로 제1한강교, 6.25 발발후 3일만에 아군이 폭파하여 시민의 피난을 막았다. 
한남대교가 제3한강교였고, 당시 제1한강교가 지금의 한강대교였다. 3.1만세운동이 일어나기도 전인 1917년 당시 금액으로 84만원에 건설된 한강 위의 최초 인도교. 강 중간에 있는 노들섬이 중간에서 다리를 남과 북으로 이어주고 있다. 6.25가 발발하자 북한군의 남하를 저지하기 위해 예고도 없이 교량을 폭파하여 피난에 올랐던 차량과 무고한 시민들 약 800여명이 그자리에서 폭사하거나 익사하였다고 한다. 국군이 적을 굳건히 막아내고 있다는 거짓 방송을 하면서 정작 그들은 짐을 모두 싸서 도강하자마자 폭파하는 가증스런 만행을 저 다리는 기억하고 있을까?

19. 한강철교는 한강에 건설된 다리 1호다.
대한제국이 들어서면서 한성에 전철이 들어서고 이어서 경인선과 경부선 철도가 부설된다. 당연히 경인선과 경부선 철도가 한강을 건너는 다리가 필요하게 되어 부설권을 가진 미국인 제임스 모스는 철도와 인도가 있도록 설계하였다. 하지만 자금난으로 제임스 모스가 부설권을 일제에 빼앗기자 공사비를 이유로 철로만 건설키로 하여 1900년 7월 5일 준공하였다. 이후로 늘어나는 교통량을 감당하기 위하여 증설을 거듭해 지금은 교량 4개가 지나간다. 6.25 전쟁시에는 아군과 적군의 폭격으로 거의 완파될 정도로 피해가 심했다고 한다. 

10월에 있는 불꽃놀이의 대미는 바로 원효대교에서 아래로 쏟아지는 폭포불꽃이다.

20. 원효대교 아래에 은거하던 괴물은 이제 없어졌겠지?
2006년 개봉한 영화 '괴물'에서 주인공이던 한강 괴물이 은거하면서 송강호 딸로 나온 고아성이 끌려간 곳이 바로 원효대교이다. 한화그룹이 매년 10월 첫째주 토요일에 시민들에게 선사하는 한강불꽃놀이는 한강철교와 원효대교 사이에다 발화용 바지선을 띄운다. 63빌딩과 여의도를 배경으로 가을 밤하늘에 화려한 불꽃을 피워올리는 장관이 코로나로 인해 지난 3년간 가지질 못하였는데 올해 다시 재개한다고 한다. 오전 일찍 서부 이촌동 한강 유원지에 자리를 잡고 불꽃놀이를 즐겨보아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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